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는
율법(안식일)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자로 여겨졌다.
괜히 그런게 아니었다.
예수께서 친히 그렇게 싸움을 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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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첫 공식적 활동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시작되었는데
공관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첫 기적도
안식일에 치유하신 기적이다.
마가복음의 이야기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벌써 1장에서
제자들을 모집하자 마자
제 일빠로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거기 있던 귀신들린자의 귀신을 쫓아내셨다.
(1:21-28, 눅 4:31-39 참조)
그것이 공관복음이 말하는 첫 기적이요
그 일은 안식일에 이루어졌다.
예수, 안식일에 귀신을 쫓아내다!
데뷔전은 중요하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첫 전투는 전투 승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첫 싸움에서 예수께서는
두가지 선전포고를 하신 것이다.
1.나는 나의 왕국을 건설하러 왔다.
귀신은 물러가라!
2. 나는 해방시키러 왔다.
사람 잡는 모든 것은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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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2장에서
안식일 문제로 유대 종교인들과 다툰다.
밀밭을 지나다가 이삭을 잘라 먹은 이야기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효과적인 봉사를 위해서
충돌은 삼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었겠으나
바로 예수는 회당에 들어가서
안식일에 또 일을 하신다.
작심하고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밀밭 사건 바로 이후 막 3장1절에나오는
한쪽 손 마비된 사람의 이야기는 마태와 누가도 기록하고 있다.
복음서들은
이 일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막 3:4)
했다.
복음서의 초반에 이미
전선이 형성되었다.
유대의 종교세력 (바리새파) 은
평소 멸시하던 정치세력 (헤롯당) 과 결탁하여
예수를 죽이기로 했다.
예수는 안식일을 범함으로
유대종교와 유대사회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안식일로 발목이 잡혔다.
스스로 덫을 놓고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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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안식일 치유의 기록을 일별해 보자.
막1:21-28; 눅 4:31-39
공관복음의 첫 기적
귀신들린 사람
마 12:9-14 ; 막 3:1-6; 눅 6:6-11
손 마비된 사람 (소아마비?)
눅 13:10 - 17
18년 동안 꼬부라진 여인
눅 14:1-6
고창병 (부종. 심부전증? 신부전증? 간경화?) 환자
요 5:1-18
베데스다. 38년된 중풍병자
요 9:1-34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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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고질병, 만성 환자들이다.
18년, 38년, 평생...
하루 이틀 더 기다린다고 어떻게 될 사람들 아니다.
회당장의 말대로
"일할 날이 엿새나 있는데 왜 하필이면 안식일에?"
볼 멘 소리 나올만 하다.
외 하필이면 안식일에?
안그래도 됐잖아?
죄목이 걸리고 죽음까지 당하게 될 것을 뻔히 아셨으면서도
구태여 안식일에 이들을 치료하신 이유는
그 날이 사람 살리기에 딱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수의 음모를 폭로하기 딱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려고 주신 안식일을
사람잡는 날로 만들어 버린 너희들은
하나님을 모를 뿐더러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독점하듯 전하고 있다.
그 관념, 그 관행, 그 제도를 파괴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할 수 없다.
원수를 박살낼 수 없다.
그래서 싸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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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은
예수께서 공적활동을
안식일에 나사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을 읽은 것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눅 4:16)
그리고
예수님의 공적활동의 마감은
안식일과 함께 왔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바리새인들은
그 예수가 죽는 모습을 끝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안식일은 다가 오고... 전전긍긍... 집에 갈까 말까...
예수는 다행히! 안식일 전에 운명하시고
로마 병정은 확인사살을 위해 창으로 찌르고 (요 19:33)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장사하는 것 까지
다 확인했다. 안식일 오기 전에.
바리새인들에게 얼마나 다행이었나.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은
(그 용감한 여인들! 남정네들은 다 달아나 버리고)
"그 뒤를 좇아 그 무덤과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 보고
돌아과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였다.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다. " (눅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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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다 쉬었다.
예수를 죽인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도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도
예수도
예수를 죽이고도 안식일 지킬 수 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서둘러 죽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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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그 좋은 하나님의 선물이
사람 잡는 날이 되었다.
예수는 그것을 못견뎌 했고
그걸 걸고 넘어져 싸웠고
그래서 죄목이 걸리고 죽었다.
성전모독죄와 함께.
안식일
성전
그 거룩한 것들이
우상이 될 수 있다.
우상은 돌부처나 서낭당 나무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의 집도
사람을 살리려고 주신 것이
사람 잡기 딱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것을 대적하여 싸웠다.
주영님 올리시는 글들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입니다. ^^ (제목 부터가 잼있어여~)
딜레마라고 해야하나...
무엇인가를(유대인에게는 율법, 안식교인에게는 안식일)을 강조하지 않으면 기본 체계(선택된 민족-유대인, 남은 무리- 안식교 )가 무너질 것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알기에 "목숨걸고" 사수하는것은 아닌지 종종 생각해봅니다.
거기에는 복잡 미묘한 이해관계가 있을것이기에...
주영님의 깊은 생각을 제가 어찌 헤아릴수 있으리오...
그러나 안식일의 "순수한 개념을 환기" 시키려고 하시는 것 같은 의중이 있는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종종 성경에서 예수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 하느냐고 하는 질문을 종종 생각해봅니다. (뚱딴지 같으 소리해서 죄송...)
주위에서 주님은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아마도 예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야, 이 멍청이들아, 난 그냥 사람이야! 사람!" 이러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적 있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훗날 자꾸만 덕지 덕지 뭔가 붙여서 "속의 예수는 안보이고, 포장지만 보고 있는 우리는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가방끈 존나 짧은 관계로 여기까지만 쓸께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꾸우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