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의에 침묵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by 필리페 posted Feb 23, 2012 Likes 0 Replie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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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의에 침묵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인터뷰-이강서 신부] 내가 제주 강정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것이다. 국책사업이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다“

지난 2월 14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에 대한 재판에서 이강서 신부는 이렇게 최후진술했다. 이강서 신부는 이날 징역 1년 6월 구형을 받았다. 이 신부는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4번의 체포와 3번의 유치장행을 겪기도 했다.

제주 해군기지 사업이 중단되어야 할 명백한 이유들

   
▲ 이강서 신부.
재판 전 만난 이강서 신부는 제주 해군기지 사업의 부당성과 명분없음을 조목조목 따져봐야 한다며 입을 열었다.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 민주주의적 절차 문제, 가톨릭 신앙의 관점 그리고 무엇보다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한 해군기지 설계 오류와 이중계약 문제 등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국민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이 모든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고 거부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평화의 섬 제주’의 평화는 군사기지화 아닌, 전쟁과 이념갈등 상처를 치유하는 것

이강서 신부는 지난 2005년 국가가 제주 4.3항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것은 전쟁과 이념갈등의 최대 피해지에서 평화의 섬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였다고 설명하면서, “비극적 역사의 아픔이 여전히 서려있는 제주를 위하는 것은 전쟁기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해군기지를 유치하고 추진하는 것은 ‘평화’라는 관점과 전면 위배되는 자기모순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평화’의 관점에서도 명분이 서지 않는 일이지만 추진 절차상으로도 민주주의국가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오류를 범했다고 하면서, “해군기지 유치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상식 수준에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날치기 관철이었다. 화순과 위미를 거쳐 강정에 유치되기까지 강정주민들이 인지하고 논의할 시간도 주지 않고, 찬성하는 몇몇 주민을 내세운 날치기 통과였다. 이는 민주주의 가치의 전복이며, 반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하나의 절차상 오류는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며 세계 자연문화유산인 제주에 군 기지를 들이는데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이를 두고 “개발 이익앞에서 다른 가치가 인정받을 수 없고 다수의 의사와 민주적 절차가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이익만을 우선하는 ‘신종 전체주의 국가’로 진입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만천하에 드러난 오류와 사기행각에도 꿈쩍않는 오만한 해군
중립성 잃은 경찰, 해군과 시공사의 사설 용역인가?

특히 이강서 신부는 지난 2011년 국정감사에서 국방부와 제주도가 체결한 합의각서 내용이 해군측은 해군기지, 제주도측은 민군합동관광미항으로 다르게 기재된 것 그리고 군항과 민간여객선이 교행할 수 없다는 설계상의 심각한 오류가 지적돼, 문책성으로 천억원 대의 예산삭감이 이뤄졌음에도 해군측은 어떤 해명이나 수정도 없이 밀어붙이겠다고 발표한 것을 들면서, “국책사업에 있어 이중계약이라는 사기가 이뤄졌다는 것부터 풀어야 하며, 국방부조차 시인한 설계상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공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이런 기초적인 상식조차 무시한 채, 지난 1월 21일 해군측이 ‘2012년에 차질없는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대국민 선전포고이며, 오만방자한 태도다”라고 비판했다.

이 신부는 제주 해군기지 사업장 앞에서 끊임없이 경찰과 마찰을 빚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고착되고, 연행되는 사태에 대해서도, “국민은 국책사업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항의할 권리가 있음을 헌법에서 인정하고 있다. 설사 시공사나 해군 당국으로부터 시설보호 요청을 받았다고 해도 경찰은 중립적인 입장이어야 한다. 항의만 불법인가?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불법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적발하지 않는다. 이는 경찰이 삼성이나 대림의 사설 용역으로 전락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신앙은 실존적 결단을 전제하는 것..
부당함에 눈감는 신앙은 자기 기만이다

“나는 부당하고 불의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 침묵이야말로 불의에 동의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직시한다면 불의에서 손을 떼고 부당함을 고발하고 저항해야 한다”

이강서 신부는 자신이 믿는 가톨릭 신앙에서 가르치는 평화, 신앙이 요청하는 삶에 비추어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방법을 달리 선택할 수 있겠지만, 부당한 현실에 대해 고발하고 항의하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라고 단언했다.

이 신부는 “우리의 신앙은 실존적 결단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신앙안에서 찾기 원하는 마음의 평화와 영적인 성장 조차도 바로 그러한 실천을 통해 얻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에서 ‘사랑’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또 그들을 옹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며, 평화를 증진하는데 투신하도록 만든다. 신앙은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선택하도록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소외되고, 짓밟히고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 부당함에 대해 불복종하고 저항하고, 나아가 현실을 고발하고 항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신앙은 자기 기만이다”

또 이강서 신부는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국가의 안보와 평화를 이야기하고 온 인류 역시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그 평화를 이루는 방법이 무력의 균형이나 첨단 무기의 확보는 결코 아니다. 우리가 가야할 평화의 길은 대결보다 대화, 군비 증강이 아니라 축소이며, 종국에는 적대행위를 전제로 하는 모든 군사적 해결 의지를 내려놓는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이 신부는 정당성없고 모순적인 국책사업으로 평화를 가장해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새로운 긴장을 유발하는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평화의 섬 제주도’를 화약고로 만드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체포나 연행을 불사하고 저항할 것이다. 부당한 국가 공권력의 횡포와 폭력을 외면하면서 성숙한 신앙인의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없다.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강정 주민들과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 돌 하나 얹는 심정으로 저항에 동참하는 것이 ‘연대’다”라고 전했다.

이강서 신부는 오는 2월 24일 다른 11명의 사제, 수도자들과 함께 선고 공판을 받는다. 검찰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이 신부에 대해 신문과 방송 기사에서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조서를 꾸몄다. 그렇게 해서 기소된 것이 9건 중 3건이다.

현재 서울 장위동 빈민사목 선교본당 주임이기도 한 이강서 신부는 본당 사목에 소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강정에 힘을 쏟는 중이다. 알고 보니, 자신이 강정에서 경찰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상관 없다”고 웃어넘겼다. 다만 할 일을 할 것이고, 갈 길을 갈 것이라고. 그리고는 다음 날이면 다시 제주에 내려가야 한다면서 소풍가듯 가볍게 다시 길을 나섰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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