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여름 어느 날 이었다. 회사 주변과 각 층 마다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일주일 동안 전화 테러로 회사 업무를 마비시킨 제자교회 성도(담임목사 조혜진 CBS 종교부 기자지지측)들이 이번엔 직접 회사로 항의하러온 것이었다.

당시 난 서울 목동의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가 교회 돈 32억6천여 만원 횡령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교회 헌금을 유용한 의혹이 일고 있다는 기획보도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 정삼지 목사는 공동의회(교인들의 최고 의결기구)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는 담임목사가 재정집행 권한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담임목사 지지측만 참석시킨 가운데 통과시킨 정관 개정안에 ‘교회 재산을 담임목사 명의로 등록할 수 있다’는 등의 독소조항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 지지측은 보도가 편파적이라며 강력 항의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CBS는 편파보도를 중단하라’란 문구를 대략 세로길이 6~7미터 크기의 현수막에 적어 몇 달 동안 교회에 걸어놓기도 했다. 이쯤 되니 아무리 무시하려해도 슬슬 약이 올랐다.

그러던 지난해 말, 편파보도라 주장하던 정삼지 목사 지지측의 억지를 한 방에 날려버린 판결이 있었다. 12월 2일 정삼지 목사가 결국 4년 형을 받고 법정구속된 것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32억6천여 만원 횡령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대형교회 목사로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데도 성도들의 신망을 악용해 헌금을 횡령한 것은 죄질이 나쁘다고 따끔한 지적도 했다. 한 마디로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다.

이제 담임목사 지지측과 반대측으로 나뉘어 지난한 법정 공방을 벌여온 교회가 제 모습을 찾을 것을 생각하니 기사를 쓴 내가 다 기쁠 지경이었다. 담임목사 지지측은 정삼지 목사를 고발했던 반대편 성도들에게 “지금까지 오해해 미안했다”며 사과하고, 후임목사 청빙 논의에 착수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한마디로 상처받은 교회를 수습하기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상상’에 머물고 말았다. 담임목사 지지측은 여전히 교회재정을 장악한 채 정삼지 목사가 돌아올 때까지 교회를 지키겠다며 정 목사 구속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반대측 성도들과 반목하고 있다. 또, 잘못된 목회자를 치리해야하는 교회의 상위기관(노회, 총회)은 같은 신학교에서 공부한 선후배사이로 엮인 탓인지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목사님을 고발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의 맹신도까지 합세한, 가히 상식이 기적이 돼버린 한국교회의 씁쓸한 모습만 확인할 뿐이었다.

   
조혜진 CBS 종교부 기자


이 잃어버린 상식을 찾는 일, 이것이 바로 교계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이들은 교계 기자를 교회 홍보맨 정도로 오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일부 언론은 대형교회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다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CBS 교계 기자들은 사회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교회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은 요즘은 그 역할이 더 막중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건강해질 때, 우리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더 충실히 감당할 수 있다. 교회가 제 역할을 하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고, 교회의 문제가 기독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의미이기도 하다. 선교 초기, 신앙인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이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지금의 교회가 되도록 애정 어린 충고와 격려를 끊임없이 해나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