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산하 조국통일연구원은 2월21일 ‘이명박 역적 패당이 지난 4년간 저지른 10대 반통일 죄악을 만천하에 알린다’라며 비망록을 발표했다. 이 비망록에는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부정, 남북 대화 파탄, 남북 협력사업 말살 등 지난 4년간 남북 관계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동안의 관계에 대한 북한식 총결산인 셈이다. 북한이 새삼스레 비망록을 들고 나온 이유는 더 이상 이명박 정부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표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남북 간에 결산할 만한 일이 생긴 적이 있었나.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말은 그동안 만나왔다는 것인데, 지난 4년간 그래왔듯, 최근에도 별 의미 없는 말싸움 외에 오간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수면 아래로 한 꺼풀 내려가면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남한과 북한이 뭔가 만들어보기 위해 움직인 시간이 있었다. 지난해 9월19일 통일부 장관에 취임한 류우익 장관이 11월부터 본격 전개한 북측과의 일련의 물밑 접촉 시도다. 북한 측의 비망록은 바로 지난 몇 달간의 물밑 접촉에 대한 종결 선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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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원 가운데)이 1월18일 오후 경기도 5사단 신병교육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무산된 첫 시도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12월17일 사망하지 않았다면 류우익 장관의 시도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올해 1월 중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그가 공언한 대로 남북 간의 모든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남북 고위급 대화 채널의 확보 및 남북 정상회담까지도 시야에 넣는 게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 위원장은 ‘평양을 방문해 남북 현안을 논의하고 싶다’는 류 장관의 메시지가 베이징을 거쳐 북측에 전달되기 하루 전, 갑자기 사망했다.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김 주석이 사망했던 김영삼 정권처럼 류 장관 역시 자신의 메시지가 베이징에 도착한 날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따라서 류 장관의 평양 방문 및 김 위원장 면담 계획은 당사자에게 전달도 되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될 뻔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사망했지만 적어도 류 장관의 뜻은 북측에 접수됐고, 그 후계자인 김정은 면담 계획으로 되살아났다. 이처럼 지난해 12월부터 북측이 비망록을 발표한 최근까지 남북 관계의 중심에는 류 장관의 평양 방문 및 김정일·김정은 면담 계획이라는 남북 간 극비 현안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 기간에 남북 간에 오고 간 발표나 설전, 그리고 사건들은 바로 이 ‘현안’과 직간접으로 연동돼 있었다.

한 예로 조문 문제를 들 수 있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측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남측의 조문 사과에 집착했다. 이명박 정부가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조문 파동을 의식해 나름 신중하게 처신했음에도 북측의 사과 요구는 집요했다. 바로 이 문제 역시 류 장관의 방북 문제와 직간접으로 얽혀 있는 것이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 사망 직후 북한 측은 베이징 대사관을 통해 남한 측에 정식으로 두 차례나 조문을 요청했다. 북한 나름으로는 남한 통일부 장관이 그 직전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 표현까지 했던 만큼 성의 있게 나오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특히 북한 내 대화파는 남측이 조문할 경우 이를 계기로 북한 내 강경파를 설득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남측은 선별적으로 조문을 허용했고, 기대에 못 미치자 북측은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까지 했으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와 함께 한편으로는 류우익 장관의 방북 제안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북한 국방위원회가 12월30일 조문 문제로 인해 남측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고 한 마당이라 남북 대화를 계속하려면 남측이 조문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성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남북 비밀 접촉의 막전 막후


조문 문제로 인해,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싶다는 자신의 진정성이 의심을 받게 된 류우익 장관으로서도 다시 한번 그 진심을 재천명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지난 1월5일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있었던 류 장관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날 류 장관은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남북 간에 책임 있는 고위급 대화 채널이 구축되고 그것이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면 의제의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의 방점은 뒷부분, 즉 ‘의제의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고 한 부분에 찍혀 있다. 이날 발표된 통일부 업무 보고 내용에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비롯해 이산가족,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 문제, 대북 인도적 지원, 남북 경협 등’이라고 이를 부연했다. 즉 북측이 남측과 협의하고 싶어하는 현안까지 모두 망라해 발표함으로써 북측에 강력한 대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이날 업무 보고를 계기로 좌초 위기에 처했던 류 장관의 방북 카드가 기사회생했다. 김정일 위원장 면담 계획은 자연스럽게 김정은 면담 추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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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 통일부 장관
류 장관의 방북을 위해서는 사전에 당국 간의 실무 접촉이 필요했다. 1월17~18일 개성에서 열린 것으로 알려진 남북 당국 간 비밀 접촉이 바로 그것이었다. 류 장관의 최측근인 차세현 통일부 정책보좌관, 그리고 얼마 전까지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지낸 서호 남북협력지구 지원단장과 북측 인사들 사이에 열렸다고 하는 이 접촉은 통일부 업무 보고 직후 남측 제안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남측은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당분간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욕하지 말고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사람끼리 만나서 끝장 토론을 하자”라고 북측에 제안했다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남측은 “어떠한 의제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6·15, 10·4, 5·24, 개성공단 활성화, 금강산 관광 등 모든 방면을 논의할 수 있다. 그리고 장관 방문 그 이상도 논의할 수 있다”라며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접촉 대상에 대해서도 ‘말꼬리 잡고 대결하자는 게 아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담 분위기는 대단히 좋지 않았다. 회담 직전, 남측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 때문이었다. 회담 이틀 전인 1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대외전략기획관으로 전격 승진 발령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사의 배경에 대해 ‘남북 관계의 균형을 위한 인사’라고 했다고 한다. 북측으로서는 이 대통령이 이중 플레이를 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류우익 장관을 앞세워 북측을 대화 마당에 끌어내놓고, 또 한편으로는 김태효 비서관을 승진시켜 사사건건 간섭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9월19일 류우익 장관 취임 이후 류 장관 본인 역시 끊임없이 안팎의 간섭에 시달렸다고 한다. 전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류 장관을 대리한 남측 인사가 북측과 베이징에서 의중 타진을 위한 접촉을 한 직후 국정원 등 정권 주변에서 ‘통일부가 단독 행보를 하겠다는 거냐’라면서, 견제 움직임이 여러 방식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류 장관이 김태효 비서관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대통령을 접하는 류 장관과 매일 접하는 김 비서관 사이에 누가 실세냐’ 따위 얘기다. 뭔가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류 장관이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했다’는 것이었다. 남북 대화의 전권을 일임하든지, 아니면 그만두겠다는 것이었고, 그 뒤로 ‘남북 관계는 통일부가 한다. 청와대·국정원은 빠졌다’는 얘기가 정권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정작 통일부가 뭔가 해보려는 순간, 대통령이 남북 관계 균형을 맞춘다며 최측근 강경파 인물을 승진 발령했고 북한이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남측 대표단은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수모를 겪었다. 보통은 정부 간 접촉 시에는 CIQ(세관(Customs), 출입국관리(Immigration), 검역(Quarantine)의 약칭)를 통과할 때 편의를 봐주는 게 당연한 관례인데, 이번에는 북측 검사요원이 남측 대표단의 짐을 일일이 뒤지며 시간을 끌었다. 접촉 과정에서도 북한이 ‘류 장관이 과연 힘이 있느냐, 류 장관과 합의해봤자 김태효가 뒤집어버리는 것 아니냐’라는 등 시종일관 남측의 진의를 캐묻는 바람에 본안에 대한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명박 정부로부터 계속 뒤통수를 맞았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즉 그동안 남북 간에 네 차례나 비밀 접촉을 해 합의를 보았으나, 결국 남측이 다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조심스레 다시 대화의 문을 열어보고자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과거의 상처를 연상케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술 더 떠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북한을 자극했다. 1월18일 오후 경기 연천의 군부대를 방문해, 북한을 호전적인 세력이라 칭하며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강조한 것이다. 회담 과정에 이런 발언 내용까지 알려지자 곧바로 ‘파토’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얘기가 잘되면 1월19일까지 연장할 계획이었으나 이마저 취소하고 18일 아무 성과 없이 대화를 끝냈다고 한다. 그나마 서로의 대화 의지를 확인한 것은 다행이라 여겼다.


뭔가 해볼 만하면 보수 언론이 재 뿌려


그러나 그마저도 이튿날 터진 또 다른 돌발 사태로 미궁에 빠져들었다. 1월19일자 <중앙일보>가 바로 이 비밀 접촉 사실을 보도해버린 것. ‘류우익 측근 개성공단 방문’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보도는 차세현·서호 두 사람이 “개성공단 활성화 조치를 점검하기 위해 지난 17일부터 1박2일간 방문했다”라는 ‘정부 당국자’ 발언을 인용한 것이지만, 북측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남북 접촉은 철저히 비밀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최고기관이라 할 국방위원회가 이미 지난해 12월30일 ‘이명박 정권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더구나 2월 말부터 시작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으로 한반도에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북측 당사자들로서는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4·15 김일성 주석 100주기 이후를 염두에 두면 대남 접촉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사상과 군사 강국에 이어 경제 강국을 표방할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4월 이후 경제개발 계획을 본격화하려 한다. 남측의 투자와 자본 진출이 긴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경제일꾼이나 해외파들로서는 이명박 정부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해도 의사 타진의 필요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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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그런데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전에 남쪽 언론의 사전 보도로 대화 전망은 다시 미궁에 빠져버렸다. 원래 계획상 실무접촉이 잘되면 1월 말이나 2월 초 평양을 방문하려 했던 류 장관의 계획도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일정을 다시 뒤로 늦춰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는 2월27일 이전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 생일인 2월16일부터 27일까지 약 열흘간이 류 장관 방북 계획의 성사 여부를 좌우하게 됐다.(<시사IN> 제230호 ‘한반도 운명, 앞으로 열흘에 달렸다’ 기사 참조)

그러나 2월 초에 접어들면서부터 남북 양측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치 ‘모놀로그(독백)’를 하듯 했다. 분명히 의사 전달 통로가 있었음에도 ‘못 알아들으면 말고’ 식의 제안이 몇 차례 오고 갔다. 먼저 2월2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명의로 발표된 9개항의 공개 질문장. “남조선 당국이 제 입으로 북남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을 바란다고 광고한 이상 다음과 같은 공개 질문에 명백히 대답할 것을 촉구했다”라며 9개 질문 사항을 제시했는데, 그 내역은 ‘민족의 대국상 앞에 저지른 대역죄 사죄 여부, 6·15와 10·4 이행 의지, 천안호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으로 (북한을) 더 이상 헐뜯지 않겠다고 공언할 수 있는지, 대규모 합동군사훈련 중단 용의,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올바른 견해 정립 등 외에 △대북 심리전 중지 △남북 교류 재개 및 활성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에 대한 호응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한 용의’를 묻는 것이었다. 다소 오만하게 보이는 북측 공개 질문장에 대한 정부 반응은 ‘선전 차원의 억지주장을 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는 것이었다.


남북, 서로 ‘독백’만 하는 상황


그러나 정부의 이런 대응에 대해 반론도 제시된다.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북측이 제시한 9개항 중 6개항은 이미 1월5일 류 장관이 통일부 업무 보고 때 공언한 ‘모든 현안’에 포함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평화협정, 한·미 합동군사훈련, 보안법 문제 등은 상투적으로 해온 얘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6개만 가지고도 만나자 하면 됐는데, 이를 무시해버렸다는 것이다. 남쪽 전문가들이 대체로 북한의 의도를 대화 중단의 책임을 남쪽에 돌리기 위한 것이라 본 데 비해, 연세대 국학대학원의 존 들러리 교수는 “일종의 올리브 가지를 내민 것일 수 있다”라며 상반된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측 당국이나 전문가들의 대북 독해력이 떨어진 탓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측의 남쪽 의중 떠보기가 또 한 차례 있었다. 6·15 남측위와 북측위가 2월9~10일 중국 선양에서 접촉하겠다고 치고 나왔다. 남측 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월7일 통일부는 이를 불허했다. 대신 같은 날, 판문점 적십자 채널로 북측 국토환경보호성에 고구려 고분군 일대의 산림 병충해 방제를 위해 남북 당국 간 실무 접촉을 하자는 산림청 명의의 역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당연히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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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일으킨 서남전선지구에 있는 인민군 제4군단 군부대를 시찰했다.


2월14일, 정부는 또다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을 제안했다. 당시 언론에는 남북 간에 모종의 직간접 메시지가 오간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이 역시 ‘모놀로그’에 불과했다. 기존에 유지해온 대화 채널이 있었음에도 사전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불쑥 던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핵안보정상회담과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 호도용 쇼를 벌인다고 보기 딱 좋았다. 이처럼 상호 불신으로 악화 일로를 걷던 중 김 위원장 생일인 2월16일 탈북자 단체가 임진각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함으로써 결정타를 날렸다. 아직 상중에 있는 북측으로서는 상주를 모욕하는 행위에 대해 남측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막을 수 있음에도 이를 방치했고, 심지어 언론에 보도함으로써 ‘초상집에 불까지 지른 격’이 됐다.

여기에 2월23일부터 독일과 유럽연합(EU) 방문길에 오르는 류우익 장관이 ‘흡수통일을 연구하러 독일에 간다’고 방독 이유를 설명했다고 북측에 알려진 것은 엎친 데 덮친 격이요,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 되어버렸다. 북측이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져온 류 장관의 진정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조국통일연구원이 2월21일 비망록을 발표하기 며칠 전 북측은 베이징 채널을 통해 ‘MB도 MB지만 류우익도 필요없다’고 대화 종결을 선언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결과는 흐지부지된 ‘류우익 프로젝트’. 이로써 이명박 정부 남은 기간에 남북 관계는 자력으로 고위급 대화 채널을 개설하기보다는 최근 타결된 북·미 관계에 얹혀 가거나, 개성공단 활성화 등 실무적 관리 수준에서 종언을 맞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