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듯이 법은 알아도 궤는 모르는 분들에게

by fallbaram. posted Jul 28, 2016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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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한복음이 재해석하고 정리한 성경 전체의 핵심들을

읽고 난 다음에 요한복음을 겨드랑이에서 가슴으로 옮겨 놓았다.

그 중에서

요한복음 5장 39절은 내가 성경을 읽을 때에 사용하는 돋보기이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친히 주신 돋보기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그 다음절인 40절은 내가 성경을 읽고 난 후에

믿고

바라고

따라가고 싶은 예수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현재 진행형의 이 말씀은 우리가 언제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영생의 과녁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하는 말이다.


성막 전체가 예수의 사역을 말하는 그림이다.

성막이 있는 이 땅에 오셔서 그 그림과 순서대로 사시다가

마지막 순서인 지성소의 피 뿌림을 십자가에서 하신 후에

성막을 주신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그 성막을 찢으셨다.

십자가는 성막의 순서대로 보면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지성소로 자신의 피를 들고 들어 가시므로

단번의 제사

단 한번의 속죄

순종의 제사로 말할 수 있는

성막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 안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그의 죽음에서 다 이루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면 다 이루었다를 언제 어디서

적용하게 될지를 알게 될 것이다.


거기에

아론의 싻난 지팡이와 십계명을 새긴 두 돌비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들어 있는 법궤가 있고

그 위에 시은소라고도 불리는 속죄소가 있고

그  양편으로 날개를 편 두 천사가 법궤를 덮고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보호와 심판이라고 하는 두개의

기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천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십자가는 아론의 싻난 지팡이다.

죽은 나무에 싻이 난 이적처럼

죽은 나무에 첫 열매가 되어 달려 있는 십자가는

아론의 싻난 지팡이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도 십자가이다.

만나는 말씀으로 주셨던 율법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오직 금 항아리인

예수의 삶과 죽음이다.

만나가 핵심이 아니라 금 항아리가 핵심이다.


시은소 또는 속죄소

다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십자가의 선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궤인데

법궤는 조각목에 금칠을 한 궤를 말한다.

조각목을 인성으로

금칠을 신성으로 말하는 신학자도 있다.

그러나 법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돌비를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처럼


죄인이 지킬 수 없어서 저주와 죽음으로 치닫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을 당신이 지키고 감당함으로 죄인들을

살리는 십자가를 말한다.

궤에 들어가 있지 아니한 말씀들은 다 저주요 죽음의

말씀들이다. 그러나 궤속에 들어 있는 말씀은 다

은혜요 빛이요 생명이요 구원이 되었다.

법궤는 그런 것이다.


모세가 궤에 들어 있지 아니한 말씀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 왔을 때

언제나 우상으로 돌아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하루에

삼천이나 살륙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 났었다.

그러나 우리는 궤에 넣지 아니한 십계명을 말하지 않고

우상숭배라고 하는 금송아지 사건에만 눈길을 준다.



어떤 면에서 법궤는 십자가의 예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 금송아지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을 깃점으로 전과 후로 갈라서는 이스라엘의 두

지도자는 모세와 여호수아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을 불순종의 백성으로 몰아가서

두 믿음의 사람들을 제외한 애급출신의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몰살시켰다.


그러나 은혜와 안식을 약속하는 여호수아는

그 율법을 궤에 넣어서 요단강 (속죄의 의미가 들어있는) 을

건넌다. 하나도 죽지 않고 또 죽이지도 않고.


이렇게
"다 이루었다" 의 지성소를 다시 하늘에 옮겨 놓고

예수 이전에는 모든 것을 표상으로

그리고 예수 이후에는 모든 것을 상징으로 설명하는

성경을 통해서 사람들이 지성소 하나를 더 만들었다.

2300년이나 걸려서 만든 최고의 성막이다.


그가 거기에서 상징적으로 부르짖는

"나의 피" 는 아버지 하나님께 아직 확증되지 아니한

십자가의 목적을 세워달라고 하는 부르짖음인가

아니면 은혜의 시기를 늘려 가시면서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뿌리는 "은혜의 피" 인가를 잘 구분해야 한다.



"나의 피"는 아버지 하나님이 들어셔야 할 부르짖음이 아니다.

너와 내가 지금 들어야 할 손짓이다.


십자가에서

심판도 끝이 나고

의도 끝이 나고

죄도 끝이 났다고 하시지 않으셨는가


십자기 이후에 남아있는 죄는 딱 한가지다.

우리가 이것을 믿지 않는죄

이름하여 성령의 세가지 역사를 믿지 않고 훼방하는 죄

밖에 없다.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 그 율법과 말씀이

궤 밖에 있는가 아니면

궤 안에 있는가?

이 아침에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라.

은혜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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