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과 소급적용은 같이 쓰는 용어이다.
히브리 1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의역을 해 본다면
"믿음은 앞으로 가지고 싶은 것을
소급하여 가진것처럼 사는 것이요" 라고 할 것이다.
계속해서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믿음의 조상들이 믿음이 오시기까지
소급하여 살고 있음을 말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바를 알지 못하고 또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장막이라고 하는 방향을 향하여 나아간 자들의 삶을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라니?
십자가를 표상하였던 그 모리아의 제단이고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 돌" 의 나라를 말하고 있다.
쳐다만 보아도 살리라고 한 소급의 의미가 들어있는 모세가
장대에 달아 올린 구리뱀이다.
여기에서 믿음은 십자가라고 하는
완성된 속죄
완성된 은혜
완성된 약속
완성된 나라를 소급하여 보는 것이고 또 그것으로 사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이미 값이 치뤄진 속죄, 은혜, 생명 그리고 약속을
믿고 다시 오시는 예수의 진짜 나라를 바라는 믿음으로 살고 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그러나 우리는 그 약속을 받았다.
이미 받은 약속 그것이 십자가인데
또 어디서 다른 약속을 받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약속을 받지 않은 것 처럼 중보자 없이 선다하고
인간의 연대로 카트라인을 만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믿음 그 소급적용은 온 인류가 모든 역사의 시간 속에서
같은 약속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약속이 아니었던가
요한복음 17장에는 십자가의 전날밤에 주님이 아버지께 올리는
간절한 기도가 있다.
다 흩어져 도망 갈 제자들의 삶이지만
먼저 소급해 놓으시고 또 그 소급이 진실이 되도록 기도하는
내용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 기도를 드리신 분이 다시 조사를 하기 위하여 지성소를 들리신다 하니
기가 찬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위에서 드리신 주님의 기도가 거짓말이던지
조사심판이 거짓이던지.
두 얼굴의 예수를 우리가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