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는 몹시 미안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이나 논쟁에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다.
화잇의 습한 유령이 판치(지배)는 교회.
예수는 없고 쓸데없는 논쟁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교회.
이런 교회.
이런 화잇.
이런 조사 심판,
성화,
품성변화,
성소,
지성소,
대쟁투,.....
이런 개뼉다귀 따위...
개나 줘 버려!
개에게는 몹시 미안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이나 논쟁에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다.
화잇의 습한 유령이 판치(지배)는 교회.
예수는 없고 쓸데없는 논쟁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교회.
이런 교회.
이런 화잇.
이런 조사 심판,
성화,
품성변화,
성소,
지성소,
대쟁투,.....
이런 개뼉다귀 따위...
개나 줘 버려!
입 한 번 걸구먼...
나는 이미 용서 했으니
자제 하시게
혹시나 일갈님이 나를 오해할 까봐 하는 말인데
나는 재림교회의 녹을 먹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을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신앙은 사람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저는 목사님은 제 신앙 생활을 돕는 조력자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필요하고 내가 혹시 선생님 보다 나아도 선생님에 대한 예절은 지켜야 하지요.
개인의 학문적 발전은 '자신을 몫'이겠지요. ( 물론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면 행운이지요.)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필요하고 목사님의 일부 흠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에 대한 예의는 지키는게 바람직 합니다.
(물론 좋은 목사님을 만난다면 행운이지요)
신앙의 자라남도 또한 '자신의 몫'이겠지요. 목사님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집사님은 선하신 분 같습니다^^
혹여.
말입니다.
교회안의 독사새끼들을 보시면 주저 없이 예수님 같이 일갈해 주실 거라 생각하겠습니다.그럴때 예수가 다리 뻗을 공간이 생기겠지요.
자유란 초월, 넘어섬, 해방입니다.
집착의 담을 넘어섬입니다. Ken Wilber의 경계를 넘어섬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초월적 자유가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 개인에게 행복입니다.
집사는 직분에 더 충실하고
일갈은 나를 따르라
들판은 무르 익었고
추수꾼은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