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안 풍경 기억하나.. 20년전 이야기입니다)
오래된듯한 낡고 좁은 포장천막안 낮은탁자 하나에 긴의자 3개
연탄불에 올려진 잘삶긴 순대냄새가 후각을 돋군다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시는 단골순대가게 점순이 아지매
순대만큼이나 굵은 손마디로 뭉턱썰어 푸짐히 담아주신다
어느날 저녁 못먹는 소주를 한잔 달라며 홀짝넘기셨다...
며칠후 조용히 물어보니 눈물을 글썽이며 큰딸이 얼마전 죽었단다...
누구에게도 말못할 사연을 저에게는 항상 말씀하시곤했죠
학원강사인 그녀가 마지막 여행다녀오는도중 약을 먹었다며
내심 짐작으로는 실연의 아픔인가 더깊은 사연도 있었겠지만
마음아플까봐 더 자세히 묻지않았다...
아들하나 집안 살리겠다며 30넘도록 여러번 사법고시 쳤지만
그마저 여의치 못했던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터라
막내딸은 교대나와 초등학교 선생으로 임용되었다며
얼마전 그렇게 기뻐하셨건만...
아들녀석 분유통을 돈통으로 하겠다며 하나 드렸더니
그걸 근20여년 동안 사용하였다. 이~ 돈통이 복이있다며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다
어느날 주인이 바뀌어 물어보니~ 아지매가 암에 걸렸단다
몇달간의 투병생활후 그렇게 돌아가셨다...
찾아간다 마음은 몇번 먹었건만 그렇지못한 아쉬움에 짐진듯 무거웠다
단돈천원 순대한접시에 소주한병놓고 다리꼬아 앉아서 몇시간 죽치는
탕제원한다는(개소주아저씨) 덤으로 막걸리한잔에 취해 헛소리하는 문철이
과일 리야카하는 홍이아빠도 그곳의 트로이카멤버로 일명 블랙리스트 멋쟁이였다
인간들~ 점순이아지매 속도 많이 썩였다...
언제나 저녁 그시간이면 아파트입구 미니점포 구두수선아저씨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아들 이름이 영구라 땡칠이아빠로 불리운 하루품팔이 도배사아저씨도 앉아있었지
카바이트불빛에 깜박였던 시절 서로의 그림자로 소주한잔에 그렇게 대화를 하였고
몇년후 뒷집에 사정하여 한달삼천원의 30촉 전구다마 하나에 너무 기뻐하셨죠
큰아들 고시포기후 창원에 공무원합격과 함께 결혼하자 모았던 돈으로 집도 사주었다
손주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만하니 가셨는 가부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이 언제나 그랬듯이 점순이 아지매도 그렇게 가셨다
가끔 단하나 친구와 같이가면 언제나 VIP 대접을 해주셨던 점순이 아지매
친구의 소원이 고생하는 점순이 아지매를 위해 노래방에 한번 모셔가는것이었는데
결국 그소원 이루지 못했지만...
여필종부의 마음으로 아저씨에게도 아내의 덕목을 잃지 않으셨고
이름과는 달리 얼굴도 인자하고 예쁘장하게 생겼던 분...
점순이 아지매 지금 하늘나라에서 큰따님 만나 행복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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