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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시는 심판, 재림 전 심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화잇이 예언한 조사심판재림 전 심판이 둘 다 재림 전에 이루어진다는 면에서는 동일할지는 모르나 사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심판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 재림교단 안에서는 이 두 다른 심판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 결과 복음의 올바른 이해에 심각한 방해가 되어있다.

그러므로 조사심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재림 전 심판의 분명한 의미를 밝혀야 한다. 사실 1888년 이전의 화잇의 조사심판예언이 나오게 된 이유는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재림 전 심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알았느냐, 몰랐느냐는 질문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았느냐, 몰랐느냐의 질문과 같은 심각한 질문이다. 이제, 화잇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기 전, 1888년 이전의 예언과, 깨달은 이후에 그가 다시 예언한 차이점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야 화잇이 과연 위대한 선지자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마지막 선지자 엘렌 지 화잇은 [재림 전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영감의 글 예언의 신에는 오직 "조사심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에서도

여전히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본교리에서도 '재림 전 심판'이란 단어보다

오히려 '조사 심판'이란 단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본교리 24 첫머리 '요약'에도 '조사심판'이란 단어만

사용하고 있지 '재림 전 심판'이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재림교회는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이단 시비 등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조사심판이란 단어 대신에 '재림 전 심판'이라고 명칭을 바꾸어

사용하는 지혜(꼼수)를 활용하고 있으나 영감 받은 선지자가

본래 사용한 단어가 바로 '조사 심판'임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화잇의 조사심판은?

 

1888년 이전에 화잇은 1844년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십자가의 구원을 받아드린 의인들의 죄들(불순종의 행위들)을 도말하시는 조사심판을 아직까지도 계속 하시고 계신다고 예언하고 가르쳤다. 화잇은 1888년 이전에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이 문은 1844년에 예수께서 성소에서의 중보 사업을 마친 후에 비로소 열렸다. 그 때 예수께서 일어나사 성소의 문을 닫으신 후 지성소의 문을 여시고 둘째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는 지금 법궤 곁에 서 계시며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상달된다.(초기 42)

 

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지상 성소를 정결케 한 것같이 예수께서 1844년 다니엘 8장의 2300주야의 예언이 마칠 때,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마지막 속죄를 하시고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초기 254)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for whom mercy still lingers)과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다. 이 속죄는 죽은 의인과 살아 있는 의인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를 믿고 죽었으나 계명에 대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계명을 범한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초기 254.1)

 

화잇이 조사심판에 관하여 기록한 위의 글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기로 하자.

 

전반부의 글은 다음과 같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for whom mercy still lingers)과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다.

 

전반부의 글을 보면, 조사심판의 대상은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여 무지한 가운데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1844년 이래로 아직도 진행하시고 계신 것이 조사심판이라는 뜻이다.

이 글에서 오해의 소지가 되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비를 이미 거두신 죄인들이 있고 또 어떤 죄인들에게는 자비를 거두시지 않은 죄인들이 있다는 오해를 할 수 있는 표현이이 바로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라는 표현이다. 사실 하나님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하시는 무조건적 사랑의 품성을 가지신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시는 분은 아니시다.

 

위의 글에서 후반부의 글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조사심판)은 예수를 믿고 죽었으나 계명에 대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계명을 범한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

 

위의 후반부의 글을 살펴보면, 예수를 믿었지만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고 죽었던 루터와 같은 의인을 위하여 1844년부터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지성소에서 루터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아버지께 나의 피를 외치시며 아직(오늘)까지도 중보하시고 계신다는 뜻이다. - 그러나 루터는 죽은 후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수도 없다. 이것이 조사심판이다?, 과연 그럴까?.

 

조사심판은 믿음을 파괴한다.

그렇다면, 루터의 구원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루터가 숨질 순간에는 그의 구원이 결정되지 않았고 마침내 약 300년 후인 1844년부터 그의 구원여부를 놓고 속죄의 중보가 하늘 지성소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보혈을 믿은 루터나 다른 그 어느 누구도 죽을 때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고 숨지셨고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을 때에 모든 세상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피 흘리셔서 구원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면서 이루신 것은 죄인들의 구원이 아니라는 뜻이다, 십자가는 단순히 어린 양을 죽여서 지내는 속죄 제사의 과정만 간소화시키기 위하여 의문의 율법만을 폐하시고 나머지 십계명과 다른 도덕적 율법은 폐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들이 십자가를 받아드린 것이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며, 남은 여생동안 도덕법들을 잘 순종해야 하며 최종적 구원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은 주님께서 죄인들이 죽은 이후에 다시 율법에 대한 순종여부를 심사하는 조사심판을 거치고 마침내 재림하셨을 때에 죄인들이 부활하게 되는 순간이 와야만 죄인들은 마침내 , 마침내 내가 구원을 받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조사심판은 믿음을 파괴, 회개와 순종은 불가능하다.

정말 구원을 받는 것이 이렇게 조사심판을 통과 한 후에 결정지어지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안, 또는 숨지기 전에는 구원의 확신이란 가질 수 없다. 결국 부활하기 전에는 주님이 십자가에 피 흘리셔서 지기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진리를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마음속의 원함을 말 하던가, “나는 천국에 갈 예정이다라는 추측만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서는 안식일을 비롯하여 다른 도덕적 율법을 잘 지켜서 조사심판의 과정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속죄의 중보를 아버지께서 받아드리심에 달려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죄인들이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죄인은 미래에 결정될 구원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조사심판을 믿는 신앙으로는 변화(성화)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변화란 나를 변화시키는 힘, 곧 성령의 능력이 들어와서 변화시키는데 이 힘은 믿음’, 곧 확신으로만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사심판을 믿는 이런 신앙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신앙이며 믿음이다. 이런 식의 믿음으로 하는 모든 순종이나 행함은 거짓 순종에 불과하다. 믿음이 없이는 모든 순종이란 구원을 받기 위한 위선적 행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구원에 회개라는 조건이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다.

 

조사심판에는 감동, 감사, 기쁨이 없다.

진정한 믿음만이 참 순종을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게 한다.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미 다 이루셨기때문에 !, 나에게 구원이 주어졌구나, 감사 하구나!”라고 기쁨과 감사에 넘쳐서 말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진 후에야 비로소 회개와 순종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심판을 믿으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조사심판이 있다면 회개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회개하기 전에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신 십자가의 구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된다. 회개와 순종과는 상관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십자가에서 이미 주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드리지 않은 것이며 은혜를 받지 않는 것은 성령을 받지 않는 것이고 성령 없이는 죄인이 회개할 수도 없기 때문에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순종이 없다면 그 믿음 역시 위선적인 믿음이다. 참 믿음은 성령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 성령은 언제나 행함을 생산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사심판을 믿으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진정한 믿음 없이 하는 순종과 회개는 진정한 순종도 회개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조사심판을 믿으면 진정한 회개나 순종이란 불가능하게 된다.

 

다시 예언하여교회의 운명을 바꿀 새 기별이 필요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화잇에게 진정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구원을 위한 모든 속죄의 과정을 완성하셨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셨다. 그리하여 와그너를 통하여 교회의 운명이 달린 증언, 곧 진정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하나님께서 화잇에게 주신 것이다. 이 기별은 그야말로 1882년에 하나님께서 화잇에게 약속하셨던(초기 270) ‘교회의 운명이 달린 증언이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 후에도 조사심판이라는 과정이 남아 있다고 가르쳐 왔던 화잇의 생각이 변하여 1844년에 예언하기 시작하여 1888년 이전까지 전했던 조사심판의 예언을 새롭게 수정하여 다시 예언하게”(10:11)하시지 않으신다면 이 남은교회의 운명은 행위주의, 율법주의의 어둠에 속에 빠져서 그 장래가 그야말로 절망의 구렁텅이로부터 구원해 내실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0: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다음의 화잇의 글을 보면 십자가를 받아드려 의인이 되었을지라도 과거의 잘못을 통곡하며 자복하는 기도가 아버지께 도달되지 않으면 구원을 주시지 않으신다는 인상을 강력하게 풍기고 있다. 이런 글은 죄인이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영적상태에서 죄인이 회개와 순종을 할 수 있는 영적능력이 있다고 화잇이 오해한 상태에서 예언하였다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들은(그 당시에 살아 있던)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들이 과거에 범한 잘못에 대하여 심히 통곡하였다. 나는 예수께서 그들이 드린 자복과 기도를 아버지께 올릴 때 향단에서 향연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향연이 올라가자 환한 빛이 예수와 시은소에 임하였다.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을 깨닫고 번민 가운데서 진지하게 기도한 자들은 축복을 받았고 그들의 얼굴은 희망과 기쁨으로 빛났다. (초기 256)

 

모든 영혼들의 운명은 이 (회개하고 순종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조사심판) 기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있다.(초기 259)

 

다음 화잇의 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실제로 완성하신 때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신 때가 아니라, 1844년에 시작한 조사심판의 기간 동안에 회개와 순종을 잘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자격을 획득한 자들에게 인 치시는 일이 끝났을 때에 비로소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시는 때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손을 치켜 들고 다 이루었다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엄숙하게 선포하실 때 모든 천사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던졌다.(초기 279)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을 때에는 그 누구의 죄도 사하여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십자가의 가치,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 자체는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화잇이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가장 심각한 오류이다. 이 오류는 반드시 수정되어 다시 예언하여야한다. 계시록에도 화잇이 다니엘서의 예언을 다시 예언하여야 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0:11 그때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과 왕들 앞에서 다시 예언해야 하리라."고 하더라.

 

그리고 1888년 화잇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고 난 후에 화잇이 비로소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라고 다시 예언하였다. 이로써 위의 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었다.(조금 후에 화잇이 다시 예언한 글을 한꺼번에 열거할 것임)

 

다음의 화잇의 글에서는, 조사심판이 끝나고 나서야 마침내 믿는 자들의 구원이 결정되고 사단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든 상황은 결정되었고 모든 보석은 헤아려졌다.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 뜰에서 잠시 머무르신 후 그가 지성소에 계실 때 고백된 죄악들을 죄의 창시자요 죄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사단에게로 옮기셨다.(초기 281)

 

그러나 위의 예언도 다시 수정하여 예언하였다. 1888년 이후에 화잇은 기록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부르짖는 순간이 사단에게 사망의 종이 울린 심판의 순간이었다고 다시 예언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다 이루었다고 구원자는 부르짖으셨다. 그 부르짖음은 사단의 사망을 고하는 종소리였다. 선과 악의 대쟁투에 최종 결정이 났고 최후로 악의 제거가 확실하게 되었다.(HF 310.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시는 순간이 선과 악의 대쟁투에 최종결정이 났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최후로 악의 제거’, 죄의 도말이 확실하게 되었다고 다시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화잇은 죄의 도말이 조사심판이 끝나야 이루어진다는 1888년 이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지 못하였던 상태에서 했던 자신의 과거의 조사심판의 예언을 전면적으로 부인한 새로운 예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 임금, 곧 사단이 조사심판이 끝나면 심판을 받을 예정이 아니라,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과거형 시제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이 말씀을 하신 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창세전에 피 흘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은 때를 뜻하시는 것이다.

 

구원은 창세전에 피 흘리심으로 다 이루셨다.

 

구원의 계획은 창세전에 세워졌다. 그리스도는 땅의 기초가 세워지면서 구원을 위해 죽으신 어린 양이시다.(CTr 30.4) .

 

위의 글은, 구원의 계획도 창세전이 세우셨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구속하신 것도 창세전, 곧 구원은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구속은 신적 본성에 속한다.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창세전에 죽음에 내어 주신 바 되었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264)

 

화잇은 존스와 와그너의 새로운 기별을 받아드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죄인의 구원은 창세전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없이는 하나님의 낙원에 거할 수 있는 집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영문시조 1889, 12, 30)

 

구속의 경륜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세워진 사후 고안(事後考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알게 하신 그 비밀”(1625)의 계시였다. 그것은 영세 전부터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어 온 원칙을 공개한 것이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이 반역할 것과, 그 반역자의 기만적인 권세로 인하여 인류가 타락할 것을 아셨다. 하나님께서 죄가 존재하도록 정해 놓지는 않으셨으나 죄가 존재할 것을 내다보고 그 두려운 비상사태를 위하여 대비책을 세워 놓으셨다.(과거) (DA 22.2)

 

다음의 화잇의 글을 보면 영생의 시작점은 조사심판이 끝나는 시점이 아니고 창세전에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을 주셨음을 성령의 역사로 믿는 자가 된 순간이다. 1888년 이후 화잇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록하여 조사심판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다시 예언 하였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 이 말씀을 들었던 사랑하는 요한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교회에 이렇게 선언하셨다.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요일 511, 12).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그 진정한 품성 그대로 보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며, 믿음으로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 영생의 시작이 된다.(소망 388)(인류의 빛 55)

 

위의 글에서, 인용한 요일 5:11절에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이다. 바로 지금 영생을 가졌다는 말이다. 결코 앞으로 영생을 가지게 될 예정이다라는 미래형의 뜻이 아니다. 또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에서도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바로 지금, 현재)이지 생명을 주실 예정이고라는 미래형의 뜻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조사심판이 끝나야만 비로소 영생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화잇의 조사심판에 대한 다음의 예언을 심층 분석하고 최종 결론을 내기로 하자.

 

우리의 죄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로 옮겨지는 것이다. 또한 지상 성소에서의 표상적인 정결은 성소를 더럽힌 죄를 제거함으로 성취되는 것처럼 하늘 성소의 정결은 거기에 기록된 죄를 도말함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하늘에 있는 기록책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성소의 정결은 조사심판의 사업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 조사심판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시기 전에 해야 할 사업이다(살아남는 378)

 

예수께서는 지금 지성소에서 우리의 희생과 기도와 잘못과 죄에 대한 고백을 받고 계신다. 그분은 성소를 나오시기 전에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도말하시고 용서하실 것이다.(초기 48)

 

우리는 위의 화잇의 예언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오류, -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의 죄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로 옮겨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금 지성소에서 우리의 희생과 기도와 잘못과 죄에 대한 고백을 받고 계신다.” - 화잇이 기록한 이 두 말은,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죄인들의 죄가 도말되어 구속이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화잇은 구속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의 글에 나타난 것처럼, 화잇이 십자가에서 영원한 구속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았던 이유는, 십자가의 피는 단순히 죄를 제단으로부터 성소로 옮기기만 했을 뿐이며 속죄는 제사장이 성소를 거쳐 지성소로 가서도 계속하여 속죄를 해야만 마침내 완전한 속죄(구원)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화잇의 이러한 설명은 염소와 송아지를 제물로 하여 실제 성소에서 속죄제를 드릴 경우에 해당하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화잇은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구속을 위한 속죄의 과정이 십자가 이후에도 계속 되어야 한다는 화잇의 생각과는 다르게 성경에서는, 십자가에서 단 한번에 모든 속죄의 과정을 완전히 끝내시고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9:12, 10:10)고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번(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과거시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과거시제)

 

그렇다, 바울은 분명히 십자가에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고’,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이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죄의 도말이 이루러져서 구속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화잇이 가르친 이유는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몰랐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 분명한 오류였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런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자신들도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잠에서 깨어야 한다.

 

화잇은 이 분명한 십자가의 가치를 나타내는 성경적 진실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만약 화잇이 이 오류를 수정하여 다시 예언하지 않았다면 그는 선지자로서 자격이 없어져버렸을 것이다. - 그러나 1888년 이후에,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고 난 후에 마침내 화잇은 다음과 같이 그의 구원(속죄)의 완성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오류를 수정하고 다음과 같이 다시 예언하였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인류의 구속이 영원히 확실하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다 이루었다”(1930)는 부르짖음을 들으셨다.(소망 490)

 

위에서 화잇이 다시 한 예언은 아래에 그가 예언하였던 조사심판에 대한 그의 과거의 예언은 전면적으로 오류임을 알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 오류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하늘에 있는 기록책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는 모든 죄인에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가진 것”(3:15,16)이다. 기록책에 있는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이미 도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영생을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지성소의 기록책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십자가의 복음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십자가의 속죄는 이 지옥세상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오류 - “따라서 성소의 정결은 조사심판의 사업이 포함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 과연 성소의 정결과 조사심판이 관계가 있을까? -

 

조사심판 예언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십자가에서 속죄가 끝나지 않았다고 예언한 문제.

 

2,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속죄가 다 이루었다는 뜻이 아니라,

조사심판 이후에 다 이루었다!”라고 부르짖으셨을 때에 속죄가 끝났다고 예언한 문제.

 

3, 지성소의 문이 닫혀 있었다고 예언한 문제. - 지성소는 휘장이 찢어져 완전히 열려 있었 다. 닫혀 진 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4, 아사슬 염소, 곧 사단의 심판이 조사심판 이후에 이루어진다고 예언한 문제. - 그리스도께 서는 다 이루었다!”와 함께 사단은 심판을 받았다.고 기록하셨다.

 

5,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확인할 수 있는 때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에서 나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예언한 문제.

 

6,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직후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셨음(10:12)을 부인하는 점.

 

7, 십자가 직후에 아버지로부터 왕국과 온 하늘의 왕권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조사심판이 끝 나면서 받으실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한 점.

 

18세기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성소의 첫째 장막에서 속죄의 중보를 하시고 계셨다.(HF 260.1)

 

(조사심판이 끝나면서)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생사 간에 결정되었다. 예수께서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동안 죽은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들에 대하여 심판이 행하여졌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대속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왕국을 받으셨다. 그리고 왕국에 살 거민들이 결정되었다. 어린양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왕국과 온 하늘의 왕권이 예수님과 구원을 상속받은 자들에게 주어진바 되었으며,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시게 되었다.(초기 280)

 

그러나 1888년 이후에 화잇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궁정에서 보좌 우편에 않으시고 왕국과 온 하늘의 왕권을 받으셨다(18세기 동안 성소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고 다시 예언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생명의 임금에게 주어졌으며 그분은 당신의 권세와 영광을 나누어주시려고 죄악 세상에 있는 당신의 제자들에게로 돌아오셨다.(소망 790)

 

부활하신 후의 그리스도의 행보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셨고 하늘나라에 가셔서 처소를 예비하시고 난 후에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구원은 완성되었으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14:1)

 

14:2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분은 부활 후에 하늘나라에 가셔서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지성소에서 대속죄일의 속죄봉사를 계속하신다는 말씀은 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사단을 예표 하는 아사슬 염소도 이미 쫓겨났다.

 

우리는 1888년 이전에 화잇이 예언한 조사심판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거의 예언의 문제점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죄의 도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죄의 도말이란?

 

죄의 도말이 언제 된 것인가?

1888년 이전의 화잇의 조사심판의 예언에는 1844년부터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에서 죄의 도말을 위하여 속죄를 하시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 속죄 후에 비로소 죄가 도말되고 구원여부가 결정 된다고 가르친다. 화잇의 이런 예언이 과연 성경과 일치할까? 성경은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전에 이미 죄를 도말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 성경말씀을 보면,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죄를 도말하여 주시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먼저 모든 죄인의 죄를 도말하시고 구원하셨으니 돌아오라는 뜻이다. 사단은 죄의 도말의 때, 곧 구원의 때를 변개코자 하였다. 이제 죄가 도말 된 때를 알기 위하여 다음 말씀을 보자.

 

[44:22]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위의 말씀은 구약성경의 말씀이지만 구원의 복음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다. 죄의 도말은 과거에, 갈바리 십자가 이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다.(13:8), 그리고 구속은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품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이다.(창세전 구원을 참조)

그러므로 이제 화잇의 조사심판의 예언은 총체적으로 성경적, 복음적인 예언이 전혀 아니라는 진실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화잇은 다시 예언하여야 하였던 것이다.

 

많은 믿는 자들이 오래 동안 심판이라면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받아드리지 않은 죄인들을 위한 최후의 흰 보좌 심판’(20:12)만 있다고 오해하고, 의인을 위한 재림 전 심판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망각하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총체적으로 오류투성이인 조사심판의 예언을 화잇이 함으로 말미암아 재림 전 심판의 존재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남은교회가 잠든 상태로부터 깨어나게 한 중요한 개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많은 기도교인들은 한 동안 루터가 발견한 십자가의 은혜쪽으로 너무나 치우쳐서, 한번 구원이면 영원한 구원이라고 외치면서 구원 이후에 닥아 올 사단과의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해버리고 그 결과 믿음과 율법의 행함의 관계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화잇의 오류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드리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의인들의 믿음을 유지시켜 주시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 주시는 구원의 확신을 잃지 않도록 하시는 재림 전 심판이 존재한다는 진실이 분명히 나타나게 되었다.

이 역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나게 하신 것이다. 결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재림 전 심판을 설명하려다 보니 조사심판이라는 오류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잇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기 전에 예언한 조사심판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깊이 깨닫지 못하면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재림 전 심판의 다른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두 심판은 심판의 시기만 재림 전이라는 동일한 시기이지만, 그 심판의 목적과 의미는 전적으로 다른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재림 전 심판과 조사심판을 같은 의미로 혼용하는 것을 중단하여야 한다.(재림 전 심판을 참조)

 

죄의 도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의 도말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를 알아야 한다. 죄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 곧 불의(不義)이다. 그러므로 사단의 불의, 곧 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의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 곧 생명

하나님이 의롭다고(옳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무조건적 사랑이다, 무조건적 사랑은 피조물들에게 완전한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피조물로부터 섬김을 받으시는 것보다는 섬기시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시는 은혜이다. 이 은혜는 죄가 많을수록 형벌을 더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더하시어 죄인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시는 십자가로 나타나는 사랑이다. 은혜는 섬기라고 명령하지 않고 반대로 섬기기 위하여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약속이다. 바로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 곧 무조건적 사랑이 피조물들에게 생명이 되는 것이다. 1888년 이후에 화잇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명령은 하나의 약속이다. 의지로써 이(약속)에 동의하고 심령이 이(약속, 곧 사랑)를 받아들이면, (사랑의 약속)로 인해 무한하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이르러 오게 된다. 이와 같은 일들로 사람의 품성이 변화되고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창조되는 것이다.(교육 126)

 

바로 이런 무조건적 사랑의 은혜, 곧 생명이 하나님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의 = 무조건적 사랑 = 은혜(십자가) = 생명

 

사단의 의, 죄의 본질

그러나 사단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의를 옳지 않은 것, 곧 불의(不義)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단은 하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무조건적 사랑의 은혜가 의롭지 않는 것, 곧 공의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단은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하는 것이 옳은 것, 곧 의(), 곧 공의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죄의 형벌을 면제해 준다면 그분은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사단은 주장하였다.(소망 761)

 

(사단)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들에게 은혜를 나타내고 계심으로 그분은 공의로우실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소망 761)

 

그러나 1888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달은 후에 화잇은 공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다시 예언하였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죄 값을 따라 우리를 취급하지 않으신다. 비록 우리의 죄는 정죄받기에 합당하지마는, 그분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신다. - 우리가 방황하고, 심령이 완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있을지라도 그분의 팔은 여전히 우리를 향하여 뻗쳐 있다. 은혜는 은혜 받기에 합당치 못한 인간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태도이다. 우리가 은혜를 찾는 것이 아니고 은혜가 우리를 찾아왔다.”(치료봉사 161)

 

사단이 이렇게 십자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주시고, 섬기시고,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하신다면 우주정부는 곧 통제불능의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사단은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조건적 사랑을 폐지하시고, 조건적 사랑으로 피조물들의 의지의 자유를 제한하시고 불순종할 경우 형벌을 주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사단의 생각이 불의이며 불법이며 죄이다. 이 죄의 본질이 바로 사단이 의(, 옳다고)롭다고 주장한 조건적 사랑이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은 생명이다. 그러나 사단이 주장한, 죄 곧 조건적 사랑은 그 결과가 사망이다.

 

조건적 사랑의 결과가 왜 사망인가? 조건적 사랑은 불순종하는 상대방을 형벌로 통제하여 섬김을 받으려는 이기심에 불과하다. 사실상 사랑이 아닌 욕심의 본질이다. 형벌은 두려움을, 두려움은 위선을 부른다. 그리고 욕심은 경쟁을,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오게 하고 패자는 패배감과 절망감을 승자는 교만과 우월감에 도취되어 패자들을 멸시한다. 패자들은 시기심과 질투심,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히어 스트레스 속에서 노화하고 병들어 사망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이다. 죄의 세상이란 조건적 사랑이 옳다고 생각하는 생각, 곧 사단의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죄의 도말은 죄인의 마음속에서 사단의 조건적 사랑이 옳다는 생각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죄의 도말은 오직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사랑, 곧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림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사망이다. 죄는 사망이다. 그러므로 사망을 해결하면 죄는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다. 이것을 이 죄의 세상에서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품성과 사단의 조건적 사랑을 대조하여 온 우주에 보여주셔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십자가에서 이 온 우주의 피조물들의 마음속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던 죄의 도말을 완전히 이루셨다.(“, 이루었다!”) 우주거민들과 범죄 하지 않은 천사들의 마음속에는 이제 죄, 곧 조건적 사랑의 생각이 과연 옳은 생각일까? 라는 의문은 완전히 도말되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만이 생명임을 더 굳게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리어 의인이 된 죄인들의 마음에서도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사랑이 하나님의 의이며 생명이라는 진리를 받아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수 천 년 동안 사단의 영향으로 유전자에 입력되어 체질화 되어 있는 조건적 사랑의 성향(죄적성향)은 현실적으로 도말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셨다. ? 다시 무조건적 사랑의 품성을 회복시키시어 거룩하게 하시고 유전자에 입력되어 있는 흠을 없애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구원을 다 이루시고 모든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다.(1:4,5) 죄인을 먼저 구원하시지 않으시고는 흠을 없애주실 수가 없기 때문에 먼저 100% 은혜만으로 구원을 주신다, 그리고 죄인이 이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드려야만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화잇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품성)에 대한 오해로 어두워졌다. 음울한 그늘이 밝아지고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단의 기만적 세력이 깨어져야 했다. 이것을 힘으로는 할 수 없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무조건적 사랑)원칙과는 배치된다. ~ 그분의 품성은 사단의 품성과 대조되어 드러나야 한다. 온 우주에서 오직 한 분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아시는 그분만이 그것을 드러내실 수 있었다. 세상의 어두운 밤에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42)지 않으면 안 되었다.(소망 22)

 

그러므로 루스벨이 하나님을 반역하였다는 그 행위 자체가 죄의 본질이 아니라 루스벨이 가진 조건적 사랑의 생각이 곧 죄요 사망의 본질이다. 그의 반역은 결국 그의 생각의 결과이다.

 

[6:19]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하나님의 생각)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무조건적 사랑의 생각)을 버렸음이니라.

 

그럼으로 하나님은 그 조건적 사랑의 생각, 곧 죄는 미워하시지만 루스벨은 미워하시지 않으신다.

 

그렇다, 사단이 무조건적 사랑을 버린 것은 생명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사망(조건적 사랑의 생각)을 선택한 것이다. 사망은 오직 생명(무조건적 사랑)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생명이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이 선택한 사망을 대신 죽어주시어 죄의 값을 지불하시는 것, 그리고 부활하시는 것으로 죄는 완전히 해결하시어 죄(조건적 사랑의 생각)는 도말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죄의 모든 것을 완전히 해결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죄(조건적 사랑의 생각)의 문제를 완전히 끝내신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남은 교회의 교인들이 다음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부류: 십자가에서는 양을 죽여 번제를 드리는 제사형식(의문의 율법)만을 해결하였을 뿐, 나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아직도 나의 구원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1844년부터 재림하시기 전까지 지성소에서 의인들의 죄를 도말하시려고 중보의 봉사, 조사심판을 계속하고 계신다. 나의 구원은 조사심판이 끝나야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영생은 나의 부활 후에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부류(1844년이 시작한 조사심판이 끝나기 전에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가르친 1888년 이전의 화잇의 가르침이다. 이런 관점은 죄를 조건적 사랑의 생각으로 보지 않았고 불순종의 행위로 본 관점이다.)

 

둘째 부류: 죄인들의 구원이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되었음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시면서 나의 습관이 된 조건적 사랑의 생각을 점차 고쳐주시고 유전자에 입력된 죄 된 성향의 흠을 없애주시며 죄를 도말하시기 시작하셨다. 이 과정이 바로 재림 전 심판의 과정이다.(1888년 이후에 화잇이 다시 예언한 생각)

 

다시 예언한 화잇, “구원의 완성은 십자가에서!”

다음의 글로 화잇은 자기가 1888년 이전에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가르침을 버리고 마침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달은 1888년 이후에 그는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를 성령의 역사로 믿고 받아드리는 순간이 영생의 시작점이라고 그의 과거의 가르침을 수정하고 다시 예언한 것이 분명하다,

그분은 사단이 선동하려던 참소와 기만과 허식의 위험이 하늘에서 영원히 없어지고 잃어버린 인류의 구속이 영원히 확실하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다 이루었다”(1930)는 부르짖음을 들으셨다.(소망 490)

 

그러므로 회잇이 이 구원의 시작점을 다시 예언한 것은 1844년부터 예언하였던 조사심판의 가르침과 예언을 포기하고 다시 수정하여 예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결과 화잇은 1844년의 의미 역시 다시 예언하여야 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1844년 시작한다고 믿었던 조사심판이 성경적이지 않다면 1844년의 의미도 다른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위에서 기록한, 첫째 부류의 교인들 역시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순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고 영생이 시작 되었다. 이제 구원이 완성된 시점을 다시 예언한 화잇의 글들을 살펴보자.

 

화잇이 이 다니엘서의 2300주야의 예언을 다시 예언하기위해서는 그가 반드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올바로 깨달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교단의 운명은 완전히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로 이끌어가는 사단의 손아귀로 들어갔을 것이다. 남은교회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나님은 교회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기별을 주실 것이라고 1862년에 화잇에 계시를 보여주시고 1888년에 마침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화잇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마침내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는 엄숙한 증언”(초기 270)을 와그너를 통하여 화잇에게 주셨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속죄의 과정은 끝났으며 그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였다. 할렐루야!

 

나는 참된 증인의 증거가 절반도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는 이 엄숙한 증거가 전적으로 무시당하거나 가볍게 평가되고 있다. 이 증거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흔들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초기 270, 편집)

 

교회의 운명이 달린, 화잇이 다시 한 예언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십자가를 꽂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희생제물이 되신 아들을 마라보시며 그 앞에서 그 제물과 희생의 완전함을 인정하신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속죄는 완전히 끝났다!”고 말씀하셨다.(RH, Sep. 24, 1901)(7ABC 459.6)

 

범죄와 죄악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소생함을 입는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구주가 되시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는 자는 그를 위해 이루어진 속죄를 통하여 효능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곧 그처럼 무한한 값으로 산 구원의 완성을 깨닫고 그의 영혼이 찬양과 감사로 충만해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을 깨닫는다.(믿음과 행함 106)

 

산중턱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인류를 위한 그분의 희생이 충분하며 완성되었다는 발표였다. 속죄의 조건들은 성취되었고 그분이 이루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사업은 완성되었다.(소망 819)

 

그러나 구주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면서 운명하심으로 구속의 경륜을 완전히 성취하셨다(쟁투 348)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이루신 속죄를 보고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느끼게 되고 무한한 값을 지불하고 이루신 구원의 완전하심을 보고 그들의 마음에 감사와 찬양이 넘칠 것이다.The Signs of the Times, July 4, 1892. (RC 75.6)

 

그리스도를 그 진정한 품성 그대로 보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가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며, 믿음으로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 영생의 시작이 된다. (DA 388.1)

 

그러나 보라! (다 이루었다라고 부르짖으셨을 때에)이 휘장이 두 조각으로 찢어진 것이다. 지상 성소의 일부인 지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니다. ~ 큰 희생이 이루어졌다. 지성소로 가는 길은 열렸다. 새롭고 산 길(생명의 길)이 만민을 위하여 (열려버려)준비되었다. 더 이상 죄 많고 슬픔에 찬 인간들은 대제사장이 나오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소망 757)

 

그러나 1888년 이전에는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화잇은 속죄의 완결로 보지 않았고 오직 소와 염소로 드리는 희생제물을 드려 속죄하는 의식만 끝났고, 속죄 자체의 전 과정은 옛날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유대인의 희생과 의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셨다.(초기 259)

 

구원의 완성을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셨다.

 

범죄와 죄악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소생함을 입는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구주가 되시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는 자는 그를 위해 이루어진 속죄를 통하여 효능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곧 그처럼 무한한 값으로 산 구원의 완성을 깨닫고 그의 영혼이 찬양과 감사로 충만해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을 깨닫는다.(믿음과 행함 106)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셔서 성소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늘 궁정에 가셔서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시고(10:12) 바로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조사심판이 끝나고 모든 권세를 받으신 것이 아니다.) 화잇이 1888년 이후에 다시 예언한 글에도 십자가의 속최는 충분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분은 (부활하여) 하늘 궁정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람들의 죄에 대한 당신의 속죄는 충분하였고 당신의 피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보증의 말씀을 친히 들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생명의 임금에게 주어졌으며 그분은 당신의 권세와 영광을 나누어주시려고 죄악 세상에 있는 당신의 제자들에게로 돌아오셨다.(소망 790)

 

그것은 땅과 하늘 사이에 세워져 있으며, 그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는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받으셨고, 천사의 무리가 그 십자가 앞에 나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희생제물을 받으셨다. 그리고 친히 머리를 숙이셨다. 그것은 하늘의 요구에 응답했고, 우리가 그분을 믿는 믿음만을 가지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충분하고 완전하고 온전한 희생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인간과 화해가 이루어졌다.(믿음과 행함 72)

 

위의 글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화목이 이루어진 시점은 미래의 조사심판에서가 아니라 분명히 창세전에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과거시제이다.

 

성경에 나타난 십자가와 구원의 완성

그러나 성경은 십자가의 속죄는 완전하였고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9:12)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시는 순간 지성소의 휘장은 찢어졌다고 사도 성경은 기록하였다.

 

[23: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다음의 말씀에서도 히9:12절의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를 끝내셨고,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9:12)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과거시제)

 

다음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끝내셨다. 이 때문에 그분은 더 이상 성소, 또는 지성소에서 서서 중보를 하시지 않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속죄를 계속하시기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가셨다는 화잇의 주장은 오류임이 확실히 나타났다.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셔서 죄인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신 것이다.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드린 이후에는 그들의 속에 입력되어 있던 조건적 사랑의 생각()의 더러움 씻어내고 굳은 마음을 제하기 위하여 당신의 무조건적 사랑의 영을 부어주셔서 당신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어 성화를 이루어 가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38:26-28)

 

10: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십자가서 모든 죄를 사하신 이후에는 의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시지도 않으실 것이다.

 

10: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바울은 십자가 이후에는 죄를 사하기 위한 제사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사실 바울은 조사심판과 같은 오류를 예방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한 것으로 보인다.)

 

10: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위의 바울의 말씀(10:18)은 화잇이 예언한 조사심판을 명백하게 반박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모든 죄의 속죄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위하여 제사(속죄)드릴 일이 없다고 결론짓고 있는 것이다.

 

모든 죄인은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드리면, 조사심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늘보좌 앞으로 당당함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보장 되었다.

 

[3:12]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펌글 )


  • ?
    자유의 가치 2016.06.18 02:28
    명확하게 느껴집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높이고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신 사랑에 감동됩니다.
    이미 이루신 구원에 감사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하고 따르고 싶어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심판 2016.06.18 04:08

    나름대로  답답해서 끼어들었습니다
    이래도 하나님의 은혜를 안 받아들이면
    평생을 조사심판의 굴레 아래서 살아야 겟지요
    성경은 선지자의 글로 반박하는데 선지자의 글이라서인지
    전혀 반론이 없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모나리자 2016.06.18 07:51
    십자가에 큰 사랑을 관속에 넣고서
    강대상뒤에 모셔놓고 예신으로 덮고서
    교인들 기만한 목사님들
    그 책임
    어찌 지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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