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사님께서 어찌하다가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매우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기는 이박사님의 판단체계를 굳히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열린마음으로 마음의 여지를 남기시어 조정의 가능성을 열어두시고 살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글에서 이박사님은 '옛 세 천사의 기별' 이란 분류를 만드셨는데 그것에 오류가 있습니다.
다음은 이박사님께서 분류하신 옛 세 천사의 기별입니다.
---/1888년 이전의 옛 세 천사의 기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첫째 천사의 기별 – 밀러의 재림기별과 재림운동
2, 둘째 천사의 기별 – 밀러의 재림기별을 거부하는 교회는 바벨론이다. 나와라!
3, 셋째 천사의 기별 – 1844년에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에서 조사심판을 시작하셨다.---/
위와 같이 분류하셨는데 여기서 시간을 1888년 이전이 아니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생기기(1860. 9.29) 전으로 기간을 잡으셔야 하는데, 그 이유는 1844년 10월 대실망 전까지
둘째 천사의 기별이 전해졌고, 셋째 천사의 기별은 대실망 직후에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1844년 당시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는 예언을, 처음에는 예수의 재림으로 알았다가
대실망후 다시 연구하여 보니 예수께서 지성소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는 뜻으로 알게 되어
지성소 봉사가 곧 조사심판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셋째 천사의 기별로 정하신것 같은데
잘못 정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성소로 들어가시고 조사심판이 시작되었으므로 전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 를 가리키는 첫째 천사의 기별이 곧 조사심판의 기별인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것을 모르고 심판하실 시간을 재림으로 여겼기때문에 재림운동이 된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 처음부터 제대로 알았더라면 대실망을 경험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오늘날도 역시 첫째 천사의 기별은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것이고 이번엔 진짜 재림입니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그대로, 임박한 재림기별을 거부하는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럼, 당시에 셋째 천사의 기별은 무엇이었을까요? 결론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안식일 기별입니다.
초기문집 254쪽, 셋째 천사의 기별 이란 소제목하에 있는 글을 자세히 정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성소의 봉사를 끝내시고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 서 계실 때 세 번째 기별을 가진 힘센 천사를 세상에 보내셨다"............중략....................
"예수께서 지성소의 문을 여실 때 나는 안식일에 대한 빛을 보았다.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받았던 것처럼 (당시)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험을 받았다."
1844년 실망후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 번째 천사의 기별에 의해 시험받은 것은 안식일 기별입니다.
초기문집 254-258쪽까지 셋째 천사의 기별이란 소제목을 몇번 정독하시면 이해 되실 겁니다.
이때 안식일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모여서 나중에 생긴 단체가 바로 현재의 재림교회가 되었지요.
아래는 이박사님께서 인용하신 초기문집의 내용입니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for whom mercy still lingers)과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다.
이 속죄는 죽은 의인과 살아 있는 의인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를 믿고 죽었으나 계명에 대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계명을 범한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초기 254.1)
=>위 내용을 근거로 이박사님의 주장을 전개하셨는데 이박사님이 인용한 내용은 제가 위에서 인용한
중략부분에 들어있는 내용으로써 제가 아래와 같이 좀 더 인용하였습니다.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를 베풀 모든 사람과 무지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다. 이 속죄는 죽은 의인과 살아 있는 의인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를 믿고 죽었으나 계명에 대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계명을 범한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
다음은 위의 이박사님께서 인용한 내용을 근거로 박사님이 전개를 시작한 서두 부분입니다.
---/화잇이 ‘조사심판’에 관하여 기록한 위의 글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기로 하자.
전반부의 글은 다음과 같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for whom mercy still lingers)과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다.”
전반부의 글을 보면, 조사심판의 대상은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여 무지한 가운데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1844년
이래로 아직도 진행하시고 계신 것이 조사심판이라는 뜻이다.
이 글에서 오해의 소지가 되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비를
이미 거두신 죄인들이 있고 또 어떤 죄인들에게는 자비를 거두시지 않은 죄인들이 있다는 오해를
할 수 있는 표현이 바로 “아직도 자비가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라는 표현이다.
사실 하나님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하시는 무조건적 사랑의 품성을 가지신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시는 분은 아니시다.
위의 글에서 후반부의 글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조사심판)은 예수를 믿고 죽었으나 계명에 대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계명을 범한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
위의 후반부의 글을 살펴보면, 예수를 믿었지만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고 죽었던 루터와 같은
의인을 위하여 1844년부터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지성소에서 루터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아버지께 “나의 피”를 외치시며 아직(오늘)까지도 중보하시고
계신다는 뜻이다. - 그러나 루터는 죽은 후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수도 없다.
이것이 ‘조사심판’이다?, 과연 그럴까?.---/
=>이박사님이 분류하신 위의 옛 셋째 천사의 기별에서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못하셨기 때문에 그 다음의 전개부터는 빗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당시에도 안식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박사님께서도 후반부의 전개에서
그것을 약간은 인식한듯 하셨으나 전체적인 이해를 못하신것 같습니다.(초기문집 254쪽 정독)
인용한 내용을 다시 나눠서 살펴보면,
1.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를 베풀 모든 사람과 무지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다.
2. 이 속죄는 죽은 의인과 살아 있는 의인을 위한 것이다.
3. 그것은 예수를 믿고 죽었으나 계명에 대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계명을 범한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
위의 2번에서 '이 속죄는 죽은 의인과 살아 있는 의인을 위한 것이다.' 라고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1번은 살아있는 의인에 대한 설명이며, 3번은 죽은 의인에 대한 설명인 것입니다.
죽은 의인이라 함은, 로마 카톨릭이 안식일 계명을 변개시켜 감춘후에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들로써
1260년이란 종교암흑시대 동안 카톨릭에 의해 순교당한 수천만의 순교인들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1844년 이후로도 카톨릭교와 개신교내에서 일요일이 거짓 안식일인 줄 모르고 여전히,
참 안식일로 믿고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다가 죽은 의인들이 그 대상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의인이라 함은, 예수 재림직전까지 즉, 앞으로 마지막 세 천사의 기별이 힘있게 전파되어
안식일 진리가 확실하게 들어나기 바로 전까지도 살아있는 의인 중에는 여전히 일요일을
안식일로 잘못 알고 지키는 다른 개신교와 카톨릭내의 의인들이 있을 것인데, 위의 1번 내용에서
'무지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 이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주께서 마지막까지 그런 사람을 위해서 속죄의 중보(변호)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박사님께서 '루터' 의 예를 들으셨는데, 예수께서 매일 똑같이 죽은 의인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오늘이나 내일이나 루터를 위해서 여전히 "나의 피, 나의 피" 를 외치시며 중보하시는게 아니라,
제가 위에서 언급한 수천만의 순교자들로 시작해서 1844년 이후로 죽은 의인들까지 빛을 받지 못하여
무지함으로 무의식 중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특히 넷째계명) 의인들을 한사람씩 중보의 과정을
통하여 죄를 도말하는 과정을 마쳐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다 마쳐가지 않았겠습니까?
갈수록 세상이 악해져서, 점점 의인이 줄어드는 판국이니 중보의 대상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중보할 죽은 의인이 없어지고 살아있는 의인들은 품성을 완성하여 더 이상
중보할 일이 필요 없어지는 때가 되면, 그때는 지성소 중보를 마치시고 " 다 이루었다." 를 선언하시면서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마지막 선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얼마 안 남은 은혜의 기간 동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고자(계 22:14) 노력해야 하고,
이 희어진 두루마기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예복으로 입기 위해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아.. 유쾌하게 되는 날이.."(행 3:19) 이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무지함으로 무의식 중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특히 넷째계명) 의인들을 한사람씩 중보의 과정을
통하여 죄를 도말하는 과정을 마쳐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다 마쳐가지 않았겠습니까?"
이상구 박사님의 주장이 옳은 것이지 아닌지 잘 모르겟지만
예수님이 150년이 넘도록 저일만 하고 계시다니....
정말 헐 이네요.. 저도 SDA를 수십년 다녔지만 성경을 엘렌지 화잇의 틀에서만 해석하려는 선입견을 깨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합시다...
진정한 교회는 엘렌지 화잇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참교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필요하니까요.
엘렌지 화잇이 없으면 무너지는 교회... 과연 무엇위에 서있는 교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