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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문이 그 유명한 『논어』의 맨 첫 장,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 대해 묻자 도암은 자세하게 답을 해 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인이 성인이 된 까닭은 ‘숙(熟 익숙함)’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숙(熟)’ 자를 깊이 음미해보면 그 의미가 무궁하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면 제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성리학의 기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배우기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배워서 알게 된 것을 때때로 익혀서[時習]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도암은 여기에서 ‘숙(熟)’ 한 글자를 강조합니다. 배운 것이 진정 내 것이 되려면 완전히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성인(聖人)들도 사실 익숙해질 때까지 자신이 배운 것을 익힌 사람들이었지, 처음부터 우리와 바탕이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도암은 녹문에게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고, 익숙해지도록 해서 종국에 성인이 되기를 기약하는 공부를 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현대인과 공부(工夫)의 목적도 다르거니와 공부 과정 역시 다릅니다. 지식의 홍수라고 할 만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느 한 가지만 진득하게 탐구할 여유가 없습니다. 더 많이 보려 하고 더 많이 얻으려 해서 조금이라도 진척이 보이면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옛사람들이 특히 경계했던 것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진득하게 노력하여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렇듯 옛사람들의 방식은 ‘더 빨리 더 많이’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반성(反省)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
글쓴이하기훈
[고전명구 291] 익숙해질 때까지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새로운 것이 나와 배우려고 하면
어느새 다른 것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배우기를 포기할 때가 여러 번이다.
기독교도 배우는 것을 중요시하고
주님께서도 너희가 가르치라고 하셨다.
그중에 기도가 있다.
제자들은 기도하는 법을 물어보았고
기독교의 여러 전통에도 나름의 방법이나 내용을 가르친다.
동방정교회는 기도할 때 호흡을 중요시한다.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숨을 쉴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은지 가르친다
그것들은 책을 보고 하지 말고
가르치는 사람에게 직접 배워야 한다고 권한다.
혼자 하다 잘못하기 쉽다고 한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고
간음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이런 것들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다.
늘 하다 보면 익혀질 것이고
나중에는 몸에 밸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치매가 와서
대부분을 잊어버리고 사람들도 몰라보는데
매 주일 예배시간만 되면
예배 순서와 성경 구절들을 외우고
찬미와 기도를 인도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너무 익숙해서 잊어버릴 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