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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4 20:51

하나의 벽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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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 2013.06.14 21:41
    권인숙  <항소이유서>
    =============================================


    ■부천서 성고문 사건

    진실은 감옥 속에 가둬둘 수 없습니다

    권인숙
    (1964년 8월 28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82년 서울대 가정대 의류학과 입학. 86년 6월 '위장취업'과
    관련, 공.사문서 변조 및 동 행사죄, 절도죄, 문서파손죄 등으로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고 이듬해인
    87년 7월에 석방되었다. 이 글은 86년 7월 28에 인천지법에 제출한 <탄원서> 전문이다.)



    한 젊은 여성 노동자가 이 글을 씁니다.
    과거에는 여대생이었고 지금은 수번이 이름을 대신하는 여죄수이지만, 제가 사회 속에서 처음 선택한
    직업이 여공이었고, 항상 노동자적 정신과 생활 태도로 살아 나가려 하기 때문에 나는 공장에서 일을
    하든 안하든 노동자입니다. 공문서 변조 등의, 21세기의 젊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와 같은 실정법
    위반을 어떠한 경위로 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곧 왜 내가 굳이 노동자가 되려 했는가와
    직결된다고 생각됩니다. 공문서 변조 등의 행위는 노동자가 되려는 의지의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여고 시절엔 여공이 있다는 사실, 그들을 속칭 '공순이'라고 한다는 사실은 귓전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단 한번도 그들이 십만 원도 못되는 월급에 하루 12~13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린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도 않았고 사회는 당연히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그들이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이 어느 정도 특권과 여유를
    누릴 수 있고 게다가 타고난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이고, 이 사회는 서로가 반목과 질시 속에서 서로를 짓눌러야 하는 경쟁사회이고, 우리
    가족만 화목하면 만사 'OK'라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이 사회에서 꼭
    이긴 자가 되리라는 경쟁심이 나의 내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10.26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된 산물이라고 극구 칭찬했었고, 저는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친구들과 얘기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제가 반 친구들과 다같이 '대통령 서거'
    소식에 접해서 마치 부모님 초상이라도 난 듯이 엉엉 통곡을 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국화송이를 시청 앞에 마련된 빈소에 바치며, 진정으로 슬픈 마음에서 몇 번의 절까지
    했습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게 만들었다는 YH여공들과 김영삼 총재는 그야말로 제게 철천지
    원수같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후 유신헌법은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하기 위한 있을 수 없는 변태적 법이라는 것, 또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끝없는 비판이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 나는 히틀러에게 조종당한 유겐트 소년대원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법조계에 봉직하셨던 아버지와의 대화 속에서도 단 한번도 진실을 듣지 못했고,
    그토록 정의파라고 부르짖었던 선생님들의 입에서도, 신문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진실, 죽고난 다음에야
    무엇이 옳으니, 그르니 떠드는 사람들. 나이 어린 소녀가 느꼈던 그 치떨리는 배신감과 이제까지
    거짓말만 어린 세대에게 주입시켰던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는 참으로 소화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 분노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모든 어른을 불신하고 선생님을 경멸하고 모든 언론에 문 닫아버리는
    소극적인 형태로 여고시절을 정리했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소망하던 대로 대학에 진학했고, 저 자신 진리의 탐구보다는 실질적인 기능을 하나라도
    더 쌓는 데만 관심있었고, 어떻게든 불란서 유학에 이로운 제조건을 구비하는 데 정열을 쏟으며 대학
    1학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낭만과 봉사를 꿈꾸며 간 농촌 봉사활동에서 18년의 나의 모든 허영과
    이기주의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끊임없이 일하는 저 농민들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 나가는 사람들임을 알았고, 그들이 먹고 살기에도 힘들만큼 가난한 것은 그들이 농토에
    게을러서가 아니라 '저임금 저곡가' 정책으로 농민이 생산하는 쌀의 가치를 끝없이 하락시켜,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시키고 그 잉여로 소수의 배부른 자의 특권만을 옹호하고 자기자신의 치부에 정신없는,
    소위 정치권력을 가진자의 짓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또한 농민들의 순박한 웃음과 정겨운
    몸짓을 통해 오는 그 느낌은 저들도 나와 똑같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과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
    바로 '인간'임을 알았습니다. 그야말로 항상 밥투정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하얀 쌀밥, 그 밑에
    농민들의 피땀어린 진한 눈물이 있음을 비로소 알았을 때, 저는 회개의 눈물로 며칠 밤을 지샜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인생은 커다란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좀더 확실히 한국 사회를 알고 싶었고 역사도
    알고 싶었고, 또한 구체적인 우리 민족 성원 하나하나의 삶도 알고 싶었습니다.

    폴란드 바웬사의 자유노조를 칭찬하는 신문이 원풍모방 등 숱한 민주노조를 짓뭉갠 정권은 욕하지
    않았을 때, 나는 이 세상의 잘난이들이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가를 알았습니다. 학생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잔디밭에서, 농담을 나누며 점심을 까먹는 수천의 전경과 사복형사들을 보면서, 유언비어라고
    아무리 날조.왜곡해도 광주항쟁의 처절한 2천여 민중의 죽음은 저 폭력적 억압에 의해 유지되는
    현정권의 자연스런 소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인구의 70퍼센트가 넘는 노동자.농민의 수와
    0.1퍼센트밖에 안된다는 재벌과 권력층의 수와 대비한다면, 그들 두 계층간의 생활상 차이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으로 수 명이 매달려 살고, 천여 평의 호화스러운 주택에 몇 명이 사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 나는, 이 땅은 동정하기 잘하고 감상적이기
    좋아하는 나약한 지식인을 원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땅은 한 청년이 자기 몸을 불사르는 통렬한 고발에도 치유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병들어 있었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해방 이후 계속되어 온 좌절의 역사와 군부독재의 머리만 바꾸는 철통같은
    아성에 대해 패배감과 현실 안주감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5천 년의 역사가 장구했다고, 길이길이
    이어져 왔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토록 길게 함께 해 온 너무도 소중한 민족 성원 하나하나이기
    때문에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고 이끌어줌으로써, 새로운 역사의식이 넘치는 힘찬 자력갱생의 사회로
    만들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편협하고 어리석었던 저의 심장과 머리를 무섭게 강타했습니다.
    사실 이 땅의 진실을 아는 인간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주의 뼈아픈 교훈을 아는 한민족 누가 현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있겠으며, 끝없이 계속되는
    민중들의 가난한 삶의 고통을 아는 인간이, 철거민의 집없는 설움을 아는 인간이 어찌 이 땅의 대다수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려고도 하지 않고, 단 한번도 가난한 이들에게 안락한 삶을 주기 위해 애쓰지
    않은 저들을, 민중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평범한 너와 나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제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단 하나, 진실이었습니다. 역사의 진실, 현사회 구조의 진실, 너무도
    많은 힘없는 이들의 아픔의 진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소위 공안당국이 의식화,
    좌경화되었다고 몰아치는 우리는 다만 이 땅의 역사의 아픔과 현실의 엄청난 억압과 횡포를 아는, 즉
    진실을 아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이 땅의 냉혹한 진실이 요구하는 댓가는
    컸습니다. '당신 딸' 운동권 학생이라고 툭하면 부모님 오시라는 교수님들의 무성의한 전화에 이제까지
    자식 걱정 안하고 열심히 내 가족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부모님께서는 땅이 무너지는 충격과 고통에
    1~2년 사이에 무섭게 잔주름과 흰머리가 느셨습니다. 명랑하던 집안이 끝없는 한숨과 한탄 소리로
    뒤덮였고, 한없이 흘러내리는 엄마의 눈물에 제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곤 했습니다.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부모님이 자기 자식을 어떤 사랑으로 공들여 키우는지. 자식의 기침하는 통증은 곧
    부모님께는 피 토하는 통증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러나 이 시대는 도저히 저 자신을 부모님의
    자식으로만 남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 때 자식을 붙잡지 못하고, 만주로 상해로 독립군이
    되려고 떠나는 뒷모습만 눈물로 지켜보고 한평생을 애끓던 우리 역사의 아픔은 계속 형태만 바뀐 채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 나 자신에 대한 장래의 두려움에
    방황하던 중, 우연히 만난 한 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슴은 아주 작고 초라하여 가슴에
    가득 찬 은을 내다버리지 않고서는 금을 받아들일 수 없고, 금을 버리지 않고서는 더 나은 것으로
    가슴을 채울 수 없다."고 저는 알았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으로 가슴을 채우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속에서 나는 진실로 인간다운 형상으로 새롭게
    탄생할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같이 연약한 여대생이 이 시대의 역사적 사명감으로 새롭게
    자신을 다지며, 이 땅의 민중과 온갖 고통을 함께 하려는 결심을 하고, 부모님의 가슴에 커다란 쇠못을
    박고 나의 장래의 온갖 아름다운 약속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안다는 것은 결국 진리를 구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비난과 비판을 이렇게 구분하곤 합니다.
    어떤 사실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은 비난이라 하고,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동시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비판이라고 합니다. 온통 비난만 하면서 그야말로 알건 다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저는 가장 경멸합니다. 평소에는 자기 가족의 안일만 염려하다가 선거 때 야당에 투표한 사실만으로
    마치 민주시민이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한 사람을 저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이정권이 박정권으로 바뀌고 박정권이 전정권으로 바뀌어도 우리는 아무런 발전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그것은 결국 참다운 민주국가의 건설은, 야당.여당의 정치놀음에 의해서가 아닌 이 땅 대다수
    민중 하나하나의 자각된 의지의, 주체 의식의 단단한 토대 위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억누르고, 힘없고 가난하다고 무시해도, 노동자 소리만 나오면 용공으로 몰아쳐도, 이 땅의 민중은
    갑오농민전쟁에서, 3.1운동에서, 원산총파업에서, 항일독립전쟁에서, 그리고 4.19에서, 광주에서,
    끊임없이 참 역사의 주체답게, 간사스럽지 않은 우직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싸워 왔음을 저는 압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모순도 이 민중들이 해결해 나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인정되고 있는 노조를 만들 권리마저도 끊임없는 회사와 정부의 방해
    공작으로 파손당하고,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자랑하면서 신발이 20센티미터가 안되는 어린 14세
    소녀들이 똑같은 시간을 별 댓가없이 일하는 봉제공장들은 수없이 많고, 십만 원도 안되는 월급에 매여
    사는 수백만 노동자들이 있음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들이 처절한 삶을 이기고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용트림을 보면서 저는 진리를 구하는 사랑을 실현하는, 그리고 진짜 삶을 배우는 곳으로
    노동현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없이 농토를 일구고 벼를 키우는 농민들의 성실한 땀방울을
    보면서, 저는 노동하는 인간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고, 또한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없으면 이 사회가 하루도 굴러갈 수 없음을, 진실로 그들이 우리의 소중한 추억, 주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우리도 인간임을, 우리가 바로 이 땅에서 누구보다도 대접받아야
    할 주인임을 함께 알고, 무수히 빼앗긴 우리들의 권리를 함께 되찾는다는 것은 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어졌습니다.

    '대학생은 공순이 신분이 적당치 않으니 부서 이동하라. 너희들같은 사람이 들어오면 애들이 똑똑해져서
    맘대로 부려먹을 수가 없단 말야.' 헌법에도 엄연히 명시되어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란, 대학 출신자는
    사무원이나 무슨 사(士)자가 들어간, 펜대를 굴려야 하는 직업으로의 이전을, 못 배운 년놈들은 그저
    공장에서 비지땀 흘리며 짠밥이나 먹는 직업으로의 이전이라는, 마치 이조시대의 출신계급에 구속당하여
    일생의 직업을 선정당하는 그런 식의 껍데기뿐인 자유를 얘기하는 것입니까?

    노동운동이라는 것도 노동자의 존재 기반에서 자기가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분명할진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일만 하면 순수, 열심히 작업장에서 일을 해도 무언가 문제점을
    알고 있고 해결하려 하면 불순, 이런 말도 안되는 흑백논리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 논리가
    공공연하게 정권과 가진자들의 공식적인 대응 논리로 등장하여 대학 다녔다는 사실만 드러나면 무조건
    해고, 뭐 좀 아는 것 같으면 저년 학생출신 노동자들에게 물들었다 하여 해고, 부당하다 항의만 하면
    곧바로 경찰서로 직행...

    저는 공문서 위조라는 엄연히 실정법을 위반한 행위를 했습니다. 신분제도가 철폐되었다고 떠들어대지만
    또다른 형태의 신분제도적 구속 때문에, 골이 비어야 일 시켜먹기 좋다는 가진자의 비인간적 논리
    때문에, 저는 대학에 다닌 적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다른 이의 주민증을 변조, 사용했습니다.
    목적의 정당함을 믿고 가로막는 이의 부당함을 알면서 그 벽을 깨기 위해 사용한 저의 수단에 대해,
    저는 저 스스로 잘잘못을 평가하진 않겠습니다. 물론 제가 사용한 주민증의 본인에겐 심심한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실정법을 위반하고 공장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하루 이틀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저는
    단 한번도 저의 행위를 후회하진 않았습니다. 하루 일당 2900원, 그중에서 점심값 250원 빼면 2650원
    입사한 지 2년 된 여공이 2950원. 만일 잔업을 안한다면 6~7만 원의 월급을 땀흘린 댓가로 받아
    동생들 학비다, 아버지 약값이다 하여 눈빠지게 기다리는 엄마에게 가져다 드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밤 10시까지, 때론 철야도 한푼의 돈이 아쉬워서 반가와해야 하는 우리 노동자들, 중학교 반공시간에
    볓 번이고 강조하면서 배웠던 북한의 천삽뜨기 운동, 허리 안펴기 운동이 바로 여기에 있고, 쉴새없이
    돌아가는 콘베이어에 허리라도 한번 펼라치면 밀리는 제품들, 식은땀을 흘리며 마구 삽입하여도 밀린
    건 복원이 안되어 허우적대면 콘베이어를 끄면서 쏟아지는 주임의 욕설, 끊임없는 생산량 독촉에
    아무리 눈치 빠르고 잽싸게 손을 움직여도 목표 달성은 아득하고, 그러다보면 쏟아지는 신경질과
    화풀이만이 공순이들끼리 나누는 유일한 대화가 되기 쉽고, 그렇기에 '언니 힘들지?'라는 열아홉 살
    아이의 말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던 저의 공장 생활.

    그 누구도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떠들 수 없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삼성엔 노조란 있을 수
    없다'라고 단언한 그 무지막지한 부자 양반의 뚝심의 결과가 수많은 노동자의 수만 개 일생을 얼마나
    짓밟아 놓았는데, 그 누구도 '나라가 잘살면' 착하고 고결하신 정부와 부자님들이 어련히 '알아서
    한밑천 배분해줄라고'라고 지껄일 순 결코 없습니다. 투표권 하나만 쥐어주면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겁니까? 단결권도 정치에 참여한 권리도 모두 박탁당한 채, 천만이나 되는 우리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에 끊임없이 월세방을 전전하면서, 끊임없이 철거당하면서, 전쟁같은 노동의 결과로
    얻어지는 늘어진 육신을 달래면서, 그저 허허거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산업역군'이라는 명예
    칭호에 만족하며 살아야만 합니까?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천만 노동자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의식으로 단호하게 나아가야 함은 아주 분명한 과제인 것입니다. 가진자들이 무어라고
    떠들어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공문서 변조건으로 부천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중, 형사 문귀동에게 당한 '성적(性的)
    추행.고문 사실'에 대해 몇 마디 적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한달 반이란 기간이 제게는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과 눈물의 기간이었습니다. 여자로서 참을 수 없는 성적 추행을 당하고,
    눈만 감으면 나타나던 문의 두터운 입술과 지퍼를 풀은 채 드러낸 성기와 귀에 쟁쟁한 심한 욕설,
    이것을 세상에 고발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수치심과 정의감과의 싸움. '제발 덮어두자.'고 세상에
    알려지면 어머니 아버지 약 먹고 죽겠다는, 부모님의 딸의 장래를 걱정하는 애타는 호소, 너 때문에
    부모님 중 어느 한 분이라도 어떻게 되시는 날엔 널 죽여버리겠다는 언니의 편지, 그러나 저는
    고소장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의 고문에 대한
    한이 무엇인지 아는 제가 어떻게 자기 몸만 사릴 수 있겠습니까?

    부천경찰서 전체가 똘똘 뭉친 조작극으로 맞설 때도, 증거불충분만 뇌까리며 몇 번이고 추행당한 날
    밤을 진술케 하던 검사 앞에서도, 저는 혀를 꽉 깨물곤 했습니다. '진실은 이겨야 하니까요' 열흘이
    넘는 단식으로 흔들리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도 저는 쓰러져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진술이
    한 치의 거짓이 없는, 바로 진실임을 증명해주는 숱한 증인들의 증언과, 조작극에 참여했다고 결국
    진실을 토로하는 한 형사의 자백을 들으면서 작은 흥분감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손등으로
    몇 번 가볍게 친 적밖에 없다.'는 발표와 함께 '혁명을 위해 성적 수치심마저 팔아먹는 운동권의
    악의에 가득찬 조작'이라는 그야말로 악의에 가득찬 조작극을 보았을 때, 저는 저 검은 정권에 의해
    또 한번의 강간을 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운동하는 이들의 가장 소중한 생명인 정의감과 진실에 대한
    순결성을 더럽히려는 저들! 광주 2천여 민중의 학살이라는 엄청난 사실도 유언비어라고 날조.왜곡한
    저들의 본성을 저는 다시 한번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들의 하수인에게 공정하게 수사해 달라고 고소한 것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컬한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들에게 제발 문귀동을 구속시켜 달라고 하소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진실과
    진리에 대한 참마음을 참된 모든 이에게 전달코자, 우리 교도소 양심수 11명은 물 한모금 안 먹는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언했었고, 며칠 전에 끝낸 11일간의 단식투쟁 이후 곧바로 시작한 단식의 결과,
    급격한 건강의 악화로 지난 22일 밤 5일간의 단식투쟁을 정리하고 계속 우리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워 나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저는 결코 외롭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저들의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간악한 검은 정권의 본질을
    밝히고자 의연히 맞선 수많은 이땅의 사람들이 제 옆에서 저보다 더 열심히 싸워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탄압하기 위해 부정한 정권은 강간까지 고문
    방법으로 사용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온 국민에게 낱낱이 밝혀지고, 검은 정권이 국민의
    진실과 진리를 원하는 함성에 정죄될 때까지 저는 끝내 싸울 것이고, 그리고 꼭 그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또 한 가지 부연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 공소사실에 대한 재판 결과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이 땅의 사법부는 검찰의 있을 수 없는 은폐.왜곡을 책임지고 다시 한번 진실을 밝혀
    달라는 요구에 정정당당하게 응하고 공정심사 판결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이 땅의 국민들을
    정죄할 권리가 있는 집단이라면 그 이전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실을 지켜내야 하는 더 큰 의무가
    있는 집단임을 새삼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1986년 7월 28일
  • ?
    헌법 2013.06.14 21:52


    위대했던 ‘여대생과 변호사’, 권인숙과 조영래
    [김갑수 칼럼] 부천서성고문사건, 5공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히다
    김갑수 | 2013-06-07 13:14:36         

    권양 -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였으며 지금까지 당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988년 법원을 나서는 피해자 권인숙과
    담당변호사 조영래씨

    조영래의 변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한국 최고의 변론으로 회자되는 이 글을 밤새워 작성했고 다음날 법정에서 흐느껴 울면서 읽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1990년 43세에 폐암으로... 요사한다. 이번 주는 27년 전 발생한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 권인숙과 이 사건의 규명을 위해 법정 변호와 민주화투쟁을 기획·주도한 조영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987년 6·10 항쟁은 전두환 5공체제를 무너뜨린 시민운동이었다. 주지하듯이 5공체제는 대통령을 체육관 선거로 뽑는 극히 변칙적이고 비민주적인 헌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은 끝내 6·29선언을 이끌어냈으며, 이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의 민주헌법이 마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진출처 : 인터넷 6월항쟁기념관

    물론 6·10시민혁명과 6·29선언이 성사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고난에 찬 투쟁과 별의별 희한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85년 9월 ‘김근태씨고문사건’, 87년 1월 ‘박종철군고문치사사건’, 그리고 이 두 사건의 중간 시점인 1986년 6월에 일어난 ‘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세 사건은 모두 ‘공권력에 의한 고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모두 공권력에 의해서 사건의 은폐·조작이 기도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사회적 공분을 얻게 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의 뛰어난 용기와 가열 찬 노력이라고 해야 하겠다.

    세 사건의 당사자 중에서 박종철 군은 사건 당시(23세) 남영동 대공분실 현장에서 희생되었다. 그리고 김근태 씨는 2011년 64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반면에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당사자 권인숙은 사건의 상처를 딛고 뒤늦게 대학에 복학하여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지금 명지대학교에서 여성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종철 군 사건은 2002년 6월 MBC에서 2부작 특선 드라마로 방영한 바 있다. 김근태 씨 사건도 작년 7월 31일 MBC ‘히스토리 후’에서 방영했다. 또한 정지영 감독은 김근태의 고문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제작 출시했다.

    그러나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의 경우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상프로그램이 없다. 2007년 7월 EBS ‘시대의 초상’ 편에서 권인숙을 소재로 방영한 적은 있지만 사건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위 세 사건 중에서 사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거나 알고 있는 것은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이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논의가 거의 안 된 것은 성고문이라는 특수한 성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종철은 물고문, 김근태는 전기고문을 당했다. 그런데 성고문은 거의 여성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당시 권인숙은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에 다니다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한 22세의 여성이었다.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죽음과 소녀>가 있다. 이 희곡의 제목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1993년 로만 폴란스키에 의해 영화화되었는데, 한국의 권인숙처럼 성고문 당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국에서 <진실>이란 제명으로 개봉된 이 영화는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에는 그리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과거에 성고문을 당한 여인이 우연히 자기를 성고문한 남자를 만나게 되자, 자기가 당한 것과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 ‘진실’을 실토하게 만들지만, 정작 여인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극복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는 삼엄할 정도로 진지하며 음습하다. 또한 이 영화에는 우연·우발성의 극적 요소가 적잖이 개입되어 있다. 이것은 이 영화가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고문은 개인이 개인에게 행하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사회적 현상이다. 고문을 행하는 주체는 언제나 권력의 비호를 받거나 권력에 도취된 자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고문의 상처를 치유·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인 해결 방식이 선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들의 협조와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 <진실>의 주인공이 끝내 상처를 치유·극복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사회적 현상인 고문을 개인적 수준으로 인식하고 사적으로 응징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권인숙은 <진실>의 ‘그녀’보다 단연 진실했다. 그는 <진실>의 ‘그녀’처럼 자기가 당한 사실을 혼자만 간직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나아가 철저히 사회적인 해결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작업에는 조영래라는 용기 있고 유능한 변호사가 함께 했다.

    그들은 끝까지 싸워서 성고문범 문귀동을 법정에 세워 5년 실형을 살도록 했고, 민사재판에서도 이겨서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타냈다. 오늘날 권인숙이 딸을 키우는 행복한 엄마로서, 그리고 대학 교단의 유능한 여성학자로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 아닐까?

    권인숙과 조영래의 사회적 선택과 고난 그리고 성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들은 권력이 자행한 패륜적 성고문에 대해 ‘공적 응징’을 가했다. 아울러 두 사람은 그 험난한 사건의 소용돌이 중에서도 결코 인간미와 개성을 잃지 않았다.

    소녀 시절의 권인숙은 세속적으로 말해서 ‘번듯한’ 학생이었다. 그는 오리아나 팔라치나 프랑스와즈 사강 같은 출세한 서양 여자들을 선망했다. 그가 의류학과에 진학했던 것도 빨리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유학하여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출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범상한 동네 아줌마들을 한심하게 여기던 여학생이었다. 또한 고등학생 때의 그는 교실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을 정도로 ‘애국 소녀’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기적인 ‘서구 추종녀’였던 권인숙은 어떻게 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에 그토록 뜨거운 애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남다르게 ‘애국 소녀’였던 그가 도대체 무슨 연유로 국가체제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나아가 우리는 권인숙의 이야기에서 ‘한 인간의 성장과 각성’이라는 보편적인 교양적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조영래 변호사는 비범한 역량과 뜨거운 인간애를 가진 변호사였다. 오늘날 한국의 법대생과 사시 합격생들은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조영래를 꼽는다.

    - 조영래는 서울대 전체수석을 한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공부만 잘하는 출세지향의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엄청난 집념과 열정, 시대정신으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했고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특히 그의 <전태일평전>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기록한 명저로, 이는 분명 역사적 업적이었다. 망원동 수재사건, 대우어패럴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보도지침사건, 상봉동 진폐증사건 등에서 보여준 그의 변론은 한국 인권사의 획기적 작품이었다. 이들 사건에 대한 그의 변론문은 이 분야의 '권리장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한 그는 탁월한 언론인이었다. <전태일평전>과 김지하 양심선언, 그리고 부천서 성고문사건 변론요지서 등 3대 명문만이 아니다. 그가 하루 담배 3갑 이상을 피우며 심혈을 기울여 쓴 칼럼들은 시대의 좌표가 되는 명문이었다는 데 이의가 없다. 우리가 특히 조영래를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가 절대적으로 겸손했고 따뜻했으며 아름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장기표의 시사논평 ‘왜 조영래인가’에서 인용)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경찰서장 이하 경관들이 보인 희극적 수준의 거짓말과 어리석음, ‘성고문자 문귀동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었다는 수사 검사들의 오만과 편견, 판사 영감님들의 위선과 기회주의, ‘성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한다’고 덮어씌웠던 공안당국, 이에 편승했던 어용언론, 그리고 사건을 은폐를 최종 지시한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전두환 등은 27년이 경과한 오늘날에도 얼굴과 이름만 달리할 뿐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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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일 2013.06.14 22:3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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