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서 약자는
특별한 사랑을 받네
소외된 그들이기에
하나님이라도 편애하시네"
- 이해인, ‘하나님의 편애’ 중에서…
시인은 시편 82편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발견한다. 힘 없고, 소외된 자들은 외면 당하기에, 하나님이라도 나서서 ‘편애’ 하실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약자들을 위한 한편의 위로의 시를 전한다.약자들은 흔히들 ‘갑을 관계’에서 ‘갑’으로부터 횡포나 억압 속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사람들로 ‘을’이라 불리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약자가 편애를 받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하나님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을 편애라고 표현한것 같다. 이로써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하니 다행인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약자 중에 약자는 여인들일것이다. 그 중에서도 더 힘없는 약자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한 남편을 두고 라이벌 관계에서 사랑받지 못하던 레아 (창 29:31), 아들을 낳지 못해 서러움을 당하던 한나 (삼상 1:6)가 대표적인 인물들일 것이다. 좀 비약이 큰 느낌이 들겠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 민족 역시 여성의 메타포(예, 신부)로 자주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런 약자로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편애를 어떻게 받았을까?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편애를 받고 있는 줄도 잘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라기 1장 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철 없는 아이가 하는 질문과 별 다를 바가 없지만, 곰곰히 살펴보면 질문에 스마트한 면이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히, 카마)” 사랑하셨는지에 묻지 않고, “어떻게 (히, 바마)”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묻는다. 즉, 사랑은 크기나 정도의 표현으로는 막연해서 알기 어려운 것이기에 구체적인 사랑의 방법이나 예시로 대답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그들을 사랑하셨던 방법을 예로 보여주신다. 다름아닌, 편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으니깐…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사람에게 붙였느니라”(말1:2-3). 여기서 쓰인, ‘사랑하다’ (아하브)와 ‘미워하다’ (사네)는 구약성경에서 흔히 반의어 관계로 언약 관계에서 쓰인 동사로 이해 할 수 있다. 다른 말로하면, 사랑은 선택을 의미하고, 미움은 거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조적 의미를 어휘의 선택뿐만 아니라, 문장 구조를 통해서도 드러낸다. 3절 첫 부분에 ‘에서는 미워하였으며’의 히브리어 문장은 일반 문장의 구조와 달리 목적어가 동사 앞에 놓여있다. 이를 프론팅 (fronting)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어순을 바꿈으로써 대조의 대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문법적 기능을 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 받는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말 없이도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구구절절 종주권 조약을 맺는 방식으로도 특정한 관계가 만들어 지지만, 시인이 느끼듯 소외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조심스럽게 감성적으로 다가오시는것 같다.
사 43:2-4
아 좋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편애한것이 누구의 표상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흐르는것을 성경에서 많이 찾아 볼수 가 있지요.
첫째를 마다하고 꼭 둘째를 내 맏아들이라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가인을 버리고 아벨을 택하시더니 결국 첫째 아담을 제끼고
둘째 (아담-예수)를 내 맏아들이라고 하신것도 같은 맥락인듯 하네요.
마치 엠아오 마을로 함께가는 기분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