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출판된 두 책들("화잇이 다시한 예언"과 "십자가와 조사심판"이
이설로 판정을 받았습니다. 책 본문 중에서 이 "이설"의 핵심을 소개합니다.
화잇이 1888년, 셋째 천사의 기별을 다시 예언하다.
(화잇이 다시 예언한 ‘조사심판’)
과연 조사심판이 십자가와 일치하는가?
과연 조사심판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일치하는가?
위의 두 질문은 사실상 동일한 질문이다.
위의 질문은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곧 교회에 흔들림을 가져올 질문이다.
1888년은 화잇에게 놀랍고 획기적인 해였다.
그가 교회의 근간이었던 세 천사의 기별 중에
셋째 천사의 기별이었던 조사심판을 버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셋째 천사의 기별로 바꾼 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참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라고 외쳤다.
그의 옛 셋째 천사의 기별은 더 이상 참 셋째 천사의 기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1888년 이전에 화잇이 예언하고 가르쳤던
옛 셋째 천사의 기별은 무엇이었기에
그가 1888년에 수정하여 다시 예언하게 된 것일까?
1888년 이전의 옛 세 천사의 기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첫째 천사의 기별 – 밀러의 재림기별과 재림운동
2, 둘째 천사의 기별 – 밀러의 재림기별을 거부하는 교회는 바벨론이다. 나와라!
3, 셋째 천사의 기별 – 1844년에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에서 조사심판을 시작하셨다.
위의 화잇의 옛 세 천사의 기별 중에,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은
지금은 전혀 가르칠 수 없는 오류이었음은 분명하다.
옛 세 천사의 기별은 윌리엄 밀러의 오류에 뿌리를 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셋째 천사의 기별인 조사심판의 근거도 이미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분명한 이유는 옛 세 천사의 기별 전체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근거하지 않았고
밀러의 오류에 근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888년, 화잇은 와그너 목사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바로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참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RH 1890, 4,1)
1888년, 화잇이 깨달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들의 죄가 도말되고 구원을 완성하여 주셨다고 가르친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조사심판은 십자가에서 죄가 도말되지 않았고
1844년 이후에 회개하면 지성소에 있는 죄가 기록된 ‘죄책’으로부터
회개한 죄가 도말 될 예정이라고 가르쳤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참 셋째 천사의 기별
조사심판 = 거짓 셋째 천사의 기별
그러므로 ‘조사심판’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화잇이 1844년에 예언한 '조사심판'이
그가 1888년에 깨달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일치한다고 생각했더라면
그는 결코 그가 1888년 이전에 첫 번째 예언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1888년에 화잇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고 난 후에야
비로소 조사심판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일치하지 않음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1888년까지는
화잇이 조사심판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888년 성령께서 화잇에게 주신 선물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마침내 그의 영적인 눈을 환하게 뜨게 하여
조사심판의 문제점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일치하지 않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닫고 난 후,
마침내 성경에 대한 그의 율법주의적 관점에 여러 놀라운 변화가 오게 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어 다시 예언하게 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책 “화잇이 다시 한 예언”을 참조)
이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참 셋째천사의 기별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되었고
조사심판이 더 이상 셋째 천사의 기별이 아니라면
조사심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일치 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사심판은 십자가와도 일치하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
만약 조사심판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일치한다고 화잇이 믿었더라면
그가 1888년에 셋째 천사의 기별을 다시 예언하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셋째 천사의 기별로 믿는 성도들은
더 이상 조사심판이 십자가와 일치하는 기별로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조사심판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잊어버리고
조사심판을 십자가와 일치한다고 오해하는 함정에 빠져 있는 현상이다.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교리를 잊어버렸다.(리뷰 앤 헤랄드, 1889년 8월 13일).
위의 화잇의 글은, 많은 교인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닌
‘조사심판’이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아직도 조사심판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일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의 현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밀러의 오류를 화잇이 수정하여
조사심판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예언한 것이 화잇의 오류였다.
조사심판이 오류일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조사심판이 본질적으로 오류로 시작하여 오류로 끝난
밀러의 오류에 그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화잇이 밀러의 1844년 10월 22일의 대 실망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에,
1844년을 조사심판의 시작된 해로 수정했을 때에는
그 “대 실망”의 고통이 사라지고 우선 “입에는 달았다.”(계10:10)
그러나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축소시키고
회개와 순종을 강조하는 조사심판의 행위주의적인 가르침 때문에
교회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영적인 어둠에 싸이게 되었고
영성은 매 말라갔다.(RH, 1887, 3, 22)
바로 이런 현상이 계시록에 예언된 대로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10:10)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류를 범한 화잇을 버려두시지 않았다.
화잇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미 계시록 10장 10절에 예언된
잘못된 셋째 천사의 기별(조사심판)에 대한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예언 된 대로 1888년에 그 ‘조사심판’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수정하여 다시 예언하였던 것이다.(계10:11),
그러므로 화잇이 선지자가 아닌 밀러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조사심판으로 계시록 10장 10,11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 아니라,
1844년에 범한 자신의 오류(잘못된 셋째 천사의 기별, 곧 조사심판)를
자신이 1888년에 수정하여 참 셋째 천사의 기별을 태어나게 한 것이 바로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10:11)의 성취이며 참 뜻이다.
우리는 더 이상 밀러의 오류를 우리 교회의 뿌리로 보지 말아야 한다.
밀러의 오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1844년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화잇이 이미 포기해버린 조사심판을
우리는 지금 포기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교회의 근간은 세 천사의 기별과 조사심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화잇은 1888년에 마침내 교회의 근간이었던
셋째 천사의 기별이 조사심판이었던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바꾸었다.
그와 동시에 옛 세 천사의 기별, 곧 조사심판은 그 자체가 바벨론이 되어버렸다.
1888년 화잇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영적변화는 아직도 은폐되어 있다.
십자가에서 죄가 도말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1844년에 지성소에서 시작된 대 속죄일 봉사에서 조사심판이 끝나야만
구원이 확정된다고 가르치는, 1888년 이전까지 교회의 근간이었던 조사심판을
마침내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는 완전히 도말되었고 구원이 확정 되었다고
가르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갈아 치운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죄가 완전히 도말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죄의 도말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가르치는 조사심판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화잇이 교회의 근간을 바꾸어 마침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다시 세운 것이다.
1888년에 교회의 근간인 세 천사의 기별의 뿌리가
밀러기별에서 십자가의 기별로 바뀌면서
화잇은 마침내 밀러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844년도의 잘못된 성소론의 부산물인 조사심판이
1888년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십자가 중심의 새로운 성소론으로 수정되어
시대의 소망에 다시 예언하여 기록하였다.
화잇의 옛 성소론은 바울의 히브리서의 성소론과 마침내 일치하게 되었다.
화잇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여
셋째 천사의 기별을 다시 예언한 것처럼
우리들도 교회의 근간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라 조사심판이라고 믿었던
과거의 오류에서 벗어나 화잇이 시작하였던 사명,
곧 십자가 위에 교회를 다시 세워나가는 사명을 완수하야 한다.
화잇은 그의 오류를 이미 수정하였으나
우리는 아직도 화잇의 1888년 이전의 오류 속에 살고 있다.
우리도 화잇이 체험한 그 뼈저린 수정의 아픔을 극복하고 맛본
그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더 이상 화잇이 1888년에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화잇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그가 더 일찍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알았더라면
더 일찍 조사심판이 셋째 천사의 기별 아니라고 선언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잇은 우리가 그를 오류가 없는 선지자라고 숭배하는 것보다
우리가 진실을 직시하며 그의 오류를 우리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선지자이었다.
그가 예언하였던 조사심판을 거부한 와그너로부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받아들인 화잇은
와그너가 거부하던 조사심판을 그도 거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겸손이었고, 선지자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은 위대한 용기였다.
만약 우리가, 화잇에게 오류가 없었고, 화잇이 변하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오늘의 라오디게아, 그냥 이대로 계속 가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이상구의 이설이 교회를 흔든다고 걱정을 한다.
진리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다.
그러나 거짓은 거짓끼리 서로 흔들고 흔들린다.
흔들릴 수 있는 교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리이다.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반석위에 떨어져 깨어져야 할 때가 왔다.(눅20:18)
(이상구저 십자가와 조사심판에서)
예언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을
선지자를 통하여 대언하게 하는 것 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언한 기별을 다시 수정하여 재 예언한다면
이것이 하나님 께로부터 받아서 대언한 말씀 맞나요?
맞다면 하나님께서 실수를 하신 것입니까?
그러므로
아니다 하면 엘렌은 선지자가 아니지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마틴 루터가 로마서에서 인용하여 부패한 가톨릭에 도전했던 말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성경이 누누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일 뿐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59쪽(영문)은 이렇게 말한다.
“현대의 개별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이다.
이 기별의 열매는 거룩함에 이르게 함으로 거룩한 신임장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있는 말씀을 굳이 사람을 통하여 기별로 받아야 하나 ?
그렇다면
조사 심판의 오류를 지적하고 엘렌에게 복음을 깨우쳐준
와그너와 존스를 선지자로 부르는 게 더 합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