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와 조사심판

by fallbaram posted Jun 16, 2016 Likes 0 Replies 4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참 오랫만이군요.

어느분이 민초에  이 상구 박사가 글을 쓰고 있으니

한번 들어가 보라고 해서 들어 왔는데 역시 박사님이

글을 쓰고 계셨군요.


문제의 발단에는 쉽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다른 이유들도

있어 보입니다.


저의 개인적 생각도 그냥 박사님이 하려고 하시는 기별만

전하고 갈 일을 벌집을 건드리는 사고를 치신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읍니다.


마치 어수선한 분위기를 알면서도 오히려 창문을 열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니엘의 영적 객기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선지자에 관한 저의 생각을 한번 개진해 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견이나 생각이지 주장이나 신념이 아님을

전제로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선지자

선지자의 우선적인 기능은 피노키오님이 말씀하신대로 복음이

오기까지 그리고 복음에 촛점을 맞추는 것으로 성경이 소개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역할과 기능을 미리 자신의 생애나 자신의

어떤 계시적 행위속에서 나타나게 된 기별자를 선지자라

부르고 있는 듯 합니다.


아래는 피노키오님의 글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16:16

한글번역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영문성경을 보면
"Until John the Baptist, the law of Moses and the messages of the prophets were
your guides, but now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is preached, and everyone

is eager to get in. Luke 16:16
침례요한도 모세의 율법도 선지자도 그 시기를 예수를 통한 천국복음의 때까지
Your Guides로 그 시기를 한정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성경절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
"Long ago God spoke many times and in many ways to our ancestors
through the prophets. And now in these final days, he has spoken to us though
his Son. Hebrews 1:1


예수님이 자신의 길을 미리 보여준 선지자 요나를 특별하게 인정하고

그 선지자와 율법의 사람 침례 요한을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가장 크다고

하시는 이유가 선지자의 기능의 으뜸이 곧 복음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서의

기능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어 보입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비슷한 내용도 율법이

복음의 선지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데서 기인하고 있어 보입니다.


신명기 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2. 조사심판


2300주야라고 하는 숫자가 다니엘서에서 왔는데

사실 다니엘의 신상과 돌나라의 이야기는

그 배경이 먼저 이해된 다음에 숫자가 와야 하는

순서를 놓치지 않았을까 하는 제 나름의 생각이 있읍니다.


신상과 돌나라의 충돌은

왕의 나라로 내려가는 이 세상의 역사와

성소의 나라로 내려가는 이스라엘의 역사와의 부딪힘인데

일단은 성소의 나라의 백성들이 왕의 나라로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왕의 나라를 무너 뜨릴 수 있는 강력한 돌나라의

계시가 주어진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돌나라의

출현을 마지막 재림에 있을 공중에 뜨인 돌로 해석한 것이

우선 잘못된 배경으로 보입니다.


그 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뜨인 돌" 또는 "깎인 돌" 이 되어 왕의 나라를

박살내고 은혜의 왕국을 이루어 태산이 되는 계시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 돌나라의 출현이 두가지 기능을 실행했읍니다.

첫째는 이 세상 왕의 역사를 박살내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지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단니엘서 9장 24절 이후의 내용을 보면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지하는 두개의 세력이 나오는데

하나는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이고

또 하나는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이다.


사실 기름부은자가 끊어지면서 옛성전의 기능이 중단이 되는

사건의 주도는 아래의 성경절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요한복음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히브리서 저자도 이 사실을 히브리서 10장 9절과 10절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비록 매일의 제사를 금지한 요인이 위에서 본대로 두가지가 있지만

돌나라의 출현은 사실 외부적 쿠데타가 아니라 내부적 쿠데타이며

이미 예언되어 있던 일이었다.


여기까지가 문제가 없이 수긍이 가능하다면

첫째로

기름부은 왕의 출현은 성소의 나라 육의 이스라엘을 끝내고

영의 나라의 왕 대제사장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고

둘째로

돌나라는 왕의 나라인 육의 역사를 무너뜨리고

영의 나라 즉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는 이중적 기능이

동시에 시작이 되는 깃점이다.


십자가를 깃점으로 육의 시간과 육의 연대가 끝이 나고

영속하는 시간 즉 영적 시간대로 옮겨갔다고 보는

나의 관점에서 보면 2300 주야라고 하는 육의 시간대가

잘 어울리지 않는 숫자로 여겨진다.


성경은 요단강 즉 십자가를 중심으로 육과 영의 갈림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먄 재림신도들의 신조속에는

육적인 가르침과 영적 가르침이 잘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2300주야가 아마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다.


2300주야의 해석속에는

성소가 세개가 나오게 된다.

1.모세의 성소

2.하늘에서 내려와

사흘만에 당신의 몸으로 지은 십자가

3. 그리고 이 십자가의 성소가 들어가는 또 다른 하늘의 성소와

지성소 말이다.


성경은 십자가를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보좌라고 암시하고

있고 그 보좌의 기능을 이루어 다시 하늘에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게 된 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끝으로 성경의 두 그림을 통해서 어느정도 확신이 가는

나의 생각은

에덴 동산의 그림과

갈바리 산의 그림이 서로 대조되는 명확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선악과가 중심에 있던 에덴 동산의 그림은 동산 중앙의 열매만

먹지 않으면 모든것이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생명과가 처음 익은 열매가 되어 달렸던 십자가의 동산은

이 열매만 빼 놓고는 모든 것이 살아 있지 못함이라는

죽음을 가르키고 있는 그림이다.


첫째 아담에게선 오직 죄만 생산했고

둘때 아담에게선 오직 의만 생산하는 대조적 그림이다.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되어 드리신 성소의 모든

기능에서 이미 물었고 선고했던 죄를 다시  묻는 기능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담대하게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는가?


영적 성소의 연대가 육적 시간대에 실려서 1844 까지 간다는 것에 대한

나의 의문과

영적 성소의 기능은 오직 죄를 묻지 않고 의를 묻는다고 하는 나의 견해

때문에 조사심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직도 확신없는 도중의 일로

제껴놓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화잇부인을 왜 선지자라고 하느냐고 재림교회 신학자에게

물었더니 몰몬의 조셉 스미스처럼 자신을 선지자라고 불렀기 때문이라

했다. 자신이 말한 그 칭호를 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선지자는 왕왕 한정된 시기에 한정된 무리를 위하여 한정된

기별을 전하던 기능도 있었으니까.


문선명이나 박명호처럼 자신을 신이라 하지 않았던 화잇 부인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도 있어 보인다.


오늘은 더 길어지면 논문이 될 것 같아서 이만.


다시 기우에서 말씀드리지만 아직 도상에 있는 나의 견해를

한번 펼쳐본 것이니 죄우간 쉽게 흔들리지 말기를 바란다.




Articles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