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촘스키 교수를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연찮게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 시리즈를 통해 사회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노암 촘스키 교수는 탁월한 언어학자인 동시에 지식인의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분이시다. 이번 세월호를 포함한 한국의 굵직한 사회 문제에 관심과 우려를 여러번 표하기도 했었다.
촘스키 교수가 아니었으면 미국은 마냥 좋기만 한 이웃집 맘씨 좋은 아저씨인 줄 알았으리라.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이익이 모든 외교 국방 경제 정책의 척도다. 모든 나라가 그러하겠지만, 미국은 이번 이라크 사태를 포함한 남미와 아시아의 외교에도 겉으로는 거창한 배경을 내세우겠지만 속내는 기름을 지키고 중국을 견제하는 게 목표다.
이 책이 지적하는 내용은 현 한국 정치 상황과 흡사하다. 정치인은 한 마디로 이율배반적이다. 그런 경향은 기업인들과도 닮았다. 기업인들은 작은 정부론을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작은 정부는 규제는 줄이고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부를 말한다. 그들과 친한 정치인들도 자유 경제를 강조하지만 군수 사업으로 기업에 막대한 세금을 갖다 바친다.
한국 대기업이 바라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규제는 줄이는 대신 정부 주도의 SOC 대형 건설 사업과 연구 개발 지원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넓혀주기를 요구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게 프로파간다. 즉 선전 선동이다. 언론이 이 역할을 충실히 담당한다. 동아일보는 삼성의 사돈 집안이 된 이후로 친삼성 신문으로 변했다. 다른 언론들도 그들의 막대한 광고비 때문이라도 반 대기업 성향의 기사를 싣기 어렵다. 그 대신 대기업측에 유리한 경제 이론들을 여과 없이 흘려 보낸다.
민영화, 노동 유연성, 의료 영리화……. 이같은 개념들은 언제부턴가 귀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민영화는 곧 사유화요, 노동 유연성은 고용불안을 가져온다. 특히 한국처럼 성긴 사회안전망을 갖춘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의료 영리화는 의료비 상승과 민영 보험 시장을 키워준다.
친미 친대기업 성향의 공무원,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의 주장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자들도 여과 없이 그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유는 베블렌의 말대로 유한 계급이 아니라 깊이 사고할 시간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촘스키의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그를 통해 우리 안에 거룩한 불만족을 느끼고 사고의 틀을 키워 나간다면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어거스틴 교부의 말을 기억하자. 모든 걸 의심하자. 지식인이나 기자들이 떠들어대는 말들을, 그들 등 뒤에 숨어서 조정하는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 내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는한 지도나 나침반을 보지 않는다. 먼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의심해 본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진실인지, 내가 처한 사회 현실은 옳은지. 혹여 동굴 속에 갇힌 채 불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한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