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is coming now!!!(이건 절대 낚시 글이 아닙니다.)

by 최종오 posted Mar 26, 2011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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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음료수 가게에는 헤수스라는 멕시코 할아버지가 있다.

나랑 십 몇 년 차이나는 60대 초반의 나이지만 많이 늙어보이셔서 다들 그냥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나는 그 가게의 캐시어(cashier)로 일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면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 팁을 나누어 준다.

미리 집에 간 사람들 거는 종이에다 싸서 그 위에 이름을 써서 보관했다가 그 다음날 준다.

 

헤수스는 스페인식 이름인데 영어로 하면 Jesus이고 우리 식으로 하면 예수이다.

나는 늘 그 할아버지 팁을 싼 종이 위에 날짜를 쓰고 ‘Jesus'라고 쓴다.

그 글을 쓸 때마다 기분이 참 묘하다. 

 

예수 할아버지는 윗니가 거의 없다.

술 담배를 많이 하셔서 그런지 피부도 검고 건강도 별로 좋지 않으시다.

일하실 때 보면 허리도 자주 아파하신다.

그래도 이번에 새로 얻은 젊은 부인이 아기를 가져서 그런가 일을 정말 열심히 하신다.

최근에 다른 직장을 하나 더 얻어 낮에는 여기서 일하시고 밤에는 그곳에서 새벽까지 일하신다. 

 

예수님(예수 할아버지를 단축해서 썼음)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 할 때 각자 자기네 나라 말로 한다.

서로 한 마디도 못 알아듣지만 가게주인만 빼고는 아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그래도 정말 의사소통이 필요할 때는 영어 단어를 한 20 개쯤 알고 있는 미가엘(Michael)이 중간에서 통역을 해준다.

 

몇 푼 안 되지만 우리는 팁을 참 중요하게 여긴다.

팁을 나눌 때마다 예수님께 늘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팁이 32불이면 우리가 10불씩 나눠 가지고 그분에겐 2불을 드린다.

40불이면 우리가 13불씩 나눠가지고 남은 1불은 그분에게 그냥 드릴 수가 없어서 그 다음날 그분 몫의 팁과 섞어서 많이 드리는 척하면서 드린다.

60불이 딱 떨어지면 오히려 더 인색해져서 우리끼리 20불씩 챙기고 예수님(여기서부터는 예수 할아버지가 너무 길어서 그냥 예수님이라고 부른다)께는 그냥 눈 딱 감고 안 드린다.

19불하고 20불은 그 느낌의 차이가 천지(天地)다.

창고에서 잡일하시는 분들은 원래 팁을 안 주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뭐 그래도 아무도 뭐라 안한다.

 

예수님은 일당도 제일 약한데다 팁도 거의 없으니 형편이 제일 안 좋으시다.

크레딧 카드도 없고 지갑도 없으시다.

차도, 자전거도 없어서 주로 걸어 다니신다.

게다가 최근엔 호텔 카지노 출입에 재미를 붙이셔서 돈을 홀랑 다 잃고 주머니에 먼지만 풀풀 날릴 때가 잦아졌다.

 

예수님은 낡은 청바지에 하얀 면티를 즐겨 입으신다.

그분의 면티에는 거의 모두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나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옷을 입으시고 집, 일터, 카지노,... 어디든 다니신다.

 

예수님은 여유가 참 많으신 분이다.

우리 중에 수입이 제일 적은 분인데도 항상 우리를 위해 음식을 사 오신다.

이곳에 처음 오신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래오셨다.

당신이 베푸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우리의 모습을 정말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어제는 미가엘이 나보고, “패트릭, 헤수스 무쵸 헝그리 밧 노 머니.”라고 했다.

내가 예수님에게 가서 “헤수스, 헝그리?”하면서 배를 쓰다듬는 시늉을 했더니, 예수님은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보이며 “뽀기또 끼또륵 빽또륵”하고 말했다.

밥 사먹을 돈이 없다는 뜻이 분명했다.

 

예수님께 나는 처음으로 음식을 사드렸다.

자발적으로 사드린 건 아니고 승리엄마가 “승리아빠, 자기가 헤수스 점심 좀 사줘요.”해서 그런 거다.

그동안 깨알같이 모아온 아까운 팁 30불로 사드렸다.

베트남 국수를 사드리려고 했는데 비싼 밥과 고기를 주문하셨다.

예수님은 너무 행복해하시며 맛있게 잡수셨다.

나도 뿌듯했다.

순간, 난해성경절 하나가 해석이 되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예수님)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4, 35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놀음도 안 하는 성실한 젊은 미가엘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헤수스, 무쵸 끽꼬륵 깩꼬륵.”

뭔 말인지는 몰라도 “술 좀 작작 마시고 놀음 좀 그만해요.” 뭐 이런 말 아닌가 싶다.

 

여섯 번째 부인하고 살면서도 밖에 예쁜 손님들만 오면 밖을 빼꼼이 내다보신다.

내가 쳐다보면 이가 없어 동굴처럼 된 입을 함빡 벌리시며 고개를 젖혀 웃으신다.

나도 웃는다.

 

회색빛 공해가 자욱하여 방독면이라도 써야 숨 막힘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은 우리네 환경,

이렇든 저렇든 나는 터미네이터처럼 그 세계에 뛰어들어야 할 거다.

이젠 내 인생도 끝자락을 태우고 있는데 빗나가면 돌이킬 여유도 없지.

 

지식세계에 서식하는 마귀가 걸어놓은 최면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평생 몇 십 톤을 그렇게 성실이 집어넣어도 조막만한 내 젊음 하나 책임 못 지는 산해진미는 이젠 못 믿는다..

많이 모일수록 해결할 고민만 기하급수로 생산하는 인생들을 기대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나는 요즘 예수 할아버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지갑도 없고, 차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그 할아버지, 그분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있다.

분명히 있다.

언어, 국적, 문화, 이념의 다중 장벽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항상 챙있는 모자를 쓰고 다시시는 고 이기동 선생님처럼 땅딸한 그 예수님을 난 참 좋아한다.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작으신 예수님이 소풍가방을 메고 음료수 가게로 들어오신다.

미국 생활 6년에 이제 막 Be 동사, Do 동사를 구분하기 시작한 승리엄마가 돈을 세고 있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승리아빠, Jesus is coming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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