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1 17:03
진리님께 드리는 답변 - 초막절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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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서 담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쉽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조사심판>은
각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 졌는지
다시 말해 예수님의 속죄의 공로를 믿고 의로워졌는지를 재판하는 것이지요."
의문님의 말슴대로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짤막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조사심판>은 지성소에서 속죄과정에 심판과정이 끼어든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성소 봉사는 성소봉사의 최종단계로서 그 모든 성소봉사에는 오직 한가지의 목적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속죄", 곧 속죄 뿐입니다.
그 이유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세마포를 입고 자신의 피로 시작하여 피로 끝나는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세마포와 피의 기능은 속죄, 곧 구속 뿐입니다.
세마포의 의미는 "모든" 죄인을 대속하시는 예수께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하여 인성으로 오셨다는 뜻이고
피는 모든 죽은 자(죄인)를 살리시기 위한 생명을 뜻하는 것이지요.
이 성소봉사과정에 굳이 심판이 있다면 지성소가 아니고 제단이지요.
제단에서의 심판대상은 죄인이 아니요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단의 심판과정에 따라서 이어지는 그 다음 과정으로서의 성소봉사는
일체 속죄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과정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다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10:14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님께서 염려하시는 <조사심판>은
십자가에서 단 한번의 제사(제사란 구속이지 심판은 아님)
곧 영원한 구속(히9:12)과 영원히 온전케 하신(히 10:14) 후에라야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죄인이 십자가의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렸는지 아닌지를 판단(심판)하는 일은
속죄(구원)가 끝나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끝내어주시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드렸는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피로 속죄를 완성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지성소봉사동안 계속 회개를 해야만 구원여부를 조사하여 구원이나 멸망여부를
지금도 진행중인 지성소 속죄봉사과정에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가르치는
현존하는 "화잇의 조사심판이론"(현재 신학자들이 리모델링 중에 있는 조사심판이 아님)은
어린양이 예수이며, 예수가 희생제물임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의 성소론의 관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성소론은 십자가에서 모든 성소봉사가 한꺼번에 함축되어,
단한번의 제사로서 "다 이루었다"인 것입니다.
지성소의 시은 좌는 멸망을 받아야만 마땅할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곳입니다.
지성소의 시은 좌는 멸망을 받아야만 마땅한 죄인에게 멸망을 베푸시는 곳이 아닙니다.
정말, 멸망을 받아야 할 자는.
십자가, 곧 지성소에서 피로 주신 영원한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어
감사와 기쁨으로 우러 나오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믿음으로"율법을 굳게 세우지(롬3:31) 않고
구원을 위하여 회개와 순종이라는 구원의 조건이 있다고 가르치며
십자가의 은혜, 그분의 피의 은혜로 이미 끝내주신 구원을 거부하는 자들입니다.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거부당하여 주실 수밖에 없으시고
피의 생명을 거부하는 자들은 끝내 사망을 선택하여 멸망을 자초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선택을 눈물로 허락하시며 그들의 멸망을 안타가워 하실 것입니다.
이 과정,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는 과정은
분명히 십가가를 받아드린 이후, 재림 전에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 곧 재림전의 심판은 절대로 속죄과정 속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의 은혜로 진행하는 속죄봉사는 대속죄일로 긑나고 광야의 초막절이 시작합니다.
광야에서 초막절의 삶이 재림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이 초막절 기간동안이라야만, 곡 속죄가 끝난 후에라야만 양과 염소의 분멸이 의미가 있고 가능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소의 피의 기능은 오직 속죄뿐입니다.
그러므로 시은죄가 있는 지성소에서 어린 양의 피로 하실 수 있는 일은 오직 속죄 뿐,
심판이란 그 속죄 후에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화잇의 조사심판을믿는 재림교인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초막절"을 빼앗겼습니다.
재림 때에 과연 나도 부활을 할 것인가 아닌가?
내가 과연 100% 회개를 하여 지성소에 보관된 "죄책"에 기록된 나의 죄가 100% 지워졌을까?를
걱정하며 살아가여 하는 대속죄일로서 생을 마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의 구원을 누리는 초막절은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서는 아직도 모르니까----
지금 이 땅에서 구원여부가 결정되어가고 있다는 조사심판을 믿는 사람들
곧 구원의 확신이 넘치는 초막절의 삶을 살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요단강도 결국에는 "믿음"으로만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단강에 이르기 전에
십가에서 흘리신 피가 하늘 시은 좌에 뿌려졌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 시은 죄에 뿌려진 십자가의 피가
내 죄가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눈같이 희개하여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아직도 진행중인 지성소의 속죄?. 심판?을 믿고 있는 우리 재림교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호소하십니다.
사44:22 내가 짙은 구름 같은 네 허물들을, 구름 같은 네 죄들을 "지워 버렸으니"(과거)
내게로 돌아오라. 이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과거)이라.
그렇습니다. 죄의 도말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입니다.
위의 말씀을 아직도 믿지 않으시고 조사심판을 믿으시는 교우님들에게는
구원이란 미래형에 불과합니다. "믿게 되면 영생을 주실 것이다"
부디 조사심판 때문에 확신이 없는 미래형 구원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과거형 구원을 간과핫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순간, 지금까지 지성소에서 수고하시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교우님들의 몸속 지성소에 모셔드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화잇의 조사심판을 몰랐던 바울은
[고전6: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1844년에 시작된 조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이 이미 성령의 전이 되었고 그분은 이미 무리 몸속에 거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이미 구입하셨다(과거),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과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6:20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부디 아직도 속죄중? 심판중?이신 그리스도를
아직도 지성소에서 우리 몸을 그분이 거하실 성령의 전으로 만들까 말까를 결정하기 전에
우리가 회개를 했는지의 여부를 초사하며 아직도 죄책을 펴 놓으시고
더 이상 밤을 세우시지 않고 편히 주무시도록 해드립시다.
그리고 이제 대속죄일을 뒤로 하시고 구원의 확신으로 초막절을 즐겨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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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고 공언하다 죽은자에게는 조사심판을 하시고
아직 살아서 믿는 사람들한테는 중보를 하고 계십니다.
속죄와 중보 둘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초막절은 그 모든게 끝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쫓아 보낸 다음의 일이지요.
아직 사탄이 멀쩡하게 우는 사자처럼 활동하고 있는데
구원의 확신을 가진다고 초막절이 되나요? 그건 아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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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나 개신교인도
믿노라고 공언한 분들 많은데
저들도 조사심판 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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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다가 죽은 사람은 다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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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재림교회식 조사심판 아닌데요
님이 만든 조사심판이지요
요즘 여기서 조사심판 이야기 하는 분들
같은 이야기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모두들 이설 수준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찰스 피치가 울고가고
제임스 화잇도 얼굴 찡그릴 오늘의 조사심판
수고 많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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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럴수도 있겠죠.
성경에 사람이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 했고
심판의 결과로 생명의 부활과 사망의 부활을 할 자들이 있겠다 했으니
먼저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자가 누구인가를 가릴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다 죽은 자들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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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고 공언하다 죽은자에게는 조사심판을 하시고
아직 살아서 믿는 사람들한테는 중보를 하고 계십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과의 차이가 있습니까?
혹시 공언하는 사람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조사심판을 몰라도 조사심판하십니까?
그런 것 모르고 죽은 사람을 죽은 후에 조사심판한다는 논리는 이상한데요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죽은 그 시간이 심판이 마치는 시간인데
무슨 조사심판을 합니까?
얼마나 모순된 이야기인 줄 아시나요?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심판 받습니다
죽는 날이 심판의 날이니 죽는 그 순간에 모든 게 결정됩니다
안 그런가요?
그런데 또 조사를 시작하나요?
죽는 그 순간이 영벌과 영생을 결정짓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고 조사심판에서 바꿔진다면 그건 연옥설이 맞는 겁니다
죽는 순간 모든 게 결정되고 주님 오시는 날 그 결과를 보는 겁니다
내 말이 틀린데 있습니까?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조사심판
하나님은 그 행위대로 심판을 마치셨는데
또 조사심판하고 계신다고요?
그것도 모자라서 1000년간 심판한다고요?
죽는 순간 그 도모가 소멸되어
재림시 홀연히 변화하여 부활한다는 것을 믿으신다면
조사심판 같은 허구에 목숨 걸고 있을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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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으로 태어나서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이치일 뿐입니다.
삶이 끝난 다음에 기록을 가지고 살펴서 심사하는 것이 심판인데
죽는 순간 심판이라뇨? 그러면 살았을때 조사심판 받는다는 말과 같네요?
질문 하나 드릴께요.
박사님 책 잘 보고 잇습니다.
그런데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과 계16:17의 되었다는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