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과 김빙삼
(이 글을 쓴 사람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했다
그래서 가지고 온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 경상도 사투리도 쓰지 않았다. 대구 출신이지만 30년 넘게 서울살이에 익숙해진 그는 서울 말을 썼다. 키는 169cm로 김 전 대통령보다 조금 더 컸다. 11일 서울 강남 인근에서 만난 트위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첫인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패러디하고 있는 트위터 이용자다. 성은 김씨. 올해 나이 마흔아홉살. 최근 ‘@PresidentYSKim’ 이라는 패러디 트위터 계정으로 우리 사회에 촌철살인 쓴소리를 던지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서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 트위터 계정 폐쇄를 요청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 하는 사람인지 사람들은 궁금해 했지만 그는 트위터 상에서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김 전 대통령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만 반복할 뿐이었다.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네 집구석에서 김영삼을 사칭하는 계정을 차단해달라꼬 방통위에 요구했다카는데, 설마 내보고 그카는 거는 아이겠지??? 내는 김영삼이가 아이라 엄연히 김빙삼(金氷三)이거등???”
<한겨레>가 그를 만났다. 그는 서울의 한 중소기업체 대표였다. 서울대 경제학과, 삼성그룹 출신의 엘리트 경제인이라는 것 정도가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스펙’일 것 같다. 아. 하나 또 있다. 그는 <딴지일보> 논객이다. 이건 <딴지일보>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시절이 하 수상해, 그의 얼굴과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다.
다만, 편의상 그를 ‘김빙삼’(金氷三)씨라고 적겠다. 그가 트위터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패러디 트위터 운영을 시작한 이유가 뭔가.
“6월16일 개설한 트위터다. 원래 내 개인 이름으로 트위터 계정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도 영 반응이 시원찮더라. 뭔가 간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생각난 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그 분에게 좀 우둔한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런 분 입에서 똑똑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생각을 했었지만 그분들 흉내내는 건 좀 죄송스러울 것 같더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욕할 의도가 있었단 말인가.
“전혀 아니다. 내 트위터 멘션을 주욱 읽어보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 글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입을 빌려 우리 사회,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김영삼은 그냥 풍자의 도구일 뿐, 그가 풍자 대상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하고 있나.
“나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이다.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는 비록 아이엠에프(IMF) 사태를 불러왔지만 당시에 누가 대통령을 했어도 경제 위기를 겪었을 것이라 본다. 그가 임기 중 일 제대로 못한 건 맞지만 진심으로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이를테면 역사 바로 세우기. 하나회를 해체하고 노태우, 전두환 모두 잡아 넣지 않았나.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둘 중 하나만 놓고 뽑으라면 당연히 김영삼 전 대통령을 뽑을 거다.”
-김영삼 전 대통령 쪽이 방송통신위원회에 트위터 계정 사용중지 요청하니까 이미지 관리하려는 건가.
“절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당신에게 항의하지는 않나.
“2주 전 김 전 대통령 열혈 지지자라는 사람에게 연락 왔다. 본인을 상도동과 연관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라. 내가 단순히 김 전 대통령을 흉내낸다고 생각하더라. 왜 ‘도용하냐’면서 화를 내던데 그 분이 상도동 쪽에 나의 존재를 알려준 것 같다.”
-어쩌면 당신이 잊혀졌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오히려 띄워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뭐 다시 여론에 회자되게 하는 데에는 도움 주었겠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신의 인기를 잘 활용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활용당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그를 활용하고 싶지.”
-아직 방통위로부터 별 다른 연락은 못받았나.
“아직 못 받았다. 어쩌면 으름장만 놓고 실제로는 아무 조처도 안 한 것 아닌가 싶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약 내 트위터 내용을 봤다면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을 것 같다. 공인이니까 이 정도는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보좌진들이 너무 지나치게 생각한 듯하다.”
정황상,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빙삼’씨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측근은 지난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은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방통위 신고는 보좌진들끼리 논의해서 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유명인을 활용해 패러디 계정을 만드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다.
“내가 김영삼인 척 했다면 문제겠지. 하지만 나는 김영삼을 사칭한 적이 없다.”
이건 사실이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사칭하지 않았다. 그의 프로필 사진에는 최근까지 김 전 대통령의 것이 걸려 있었지만 그의 프로필 글만 자세히 읽어봐도 금세 패러디 계정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놨다.
먼저 그의 이름은 한자로 ‘金泳三’ 이 아닌 ‘金氷三’으로 적혀 있다. 김빙삼이라고 읽는다. 소개글에도 “취미는 등산, 호는 臣山(신산), 좌우명은 大盜無門(대도무문·큰 도둑에게는 문도 필요 없다), OECD 간다꼬 갔더만, 간판이 IMF더라”고 쓰여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실제 호는 거산(巨山)이고 좌우명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김빙삼씨는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조차도 내리고 김 전 대통령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교체했다.
“사진도 그냥 바꾸기로 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헷갈리게 하는 사진이라면 바꾸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한진중공업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많이 남기더라. 나름 중소기업체의 사장인데 같은 경제인으로서 조금 다른 모습이다.
“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투자 대상이라고 보는 자본가다. 그런 면에서 사람을 경시하는 최근의 자본주의는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자신의 생명력을 연장시켜왔다. 그게 자본주의의 무서운 점인데 우리 사회는 그런 변화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그 맨 앞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본주의의 개혁을 막고 자본주의 체제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증식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했다. 그는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 고 김재정씨와 친분이 있던 관계라고 말했고,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나름의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얘기를 나눈 터라 공개적으로 소개할 만한 수준의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가 정권으로부터 세무조사 보복이라도 당하게 될까 걱정돼 그냥 인터뷰 내용에선 빼기로 했다. 김종익 KB한마음 대표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가져온 트라우마는 이렇게 강하다.
-당신은 이명박 대통령에 매우 비판적인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욕은 많이 얻어먹었지만 그렇게 주변에 더러운 사람들을 갖다 쓰진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더러운 것을 감추려고 더 더러운 사람들을 갖다 쓰는 것 같다.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것들을 더 더럽게 만들어버리는 것’도 자신의 더러움을 감추는 하나의 방법이다.
김빙삼씨는 8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명박이 잘한 일이 뭘까 참 고민을 마이 했었는데. 한 개를 꼽으라카믄, 장관이든 검찰총장이든, 청와대 수석이든 그런 인간들 진짜 조또 아이라는 걸 알게 해준 거라꼬 이야기 하고 싶다.”
화제를 돌려 ‘김영삼 3천억 비자금’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 대선 자금으로 3천억원을 주었다는 내용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여론의 화살은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해 있는 편이다. 그러나 김빙삼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려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 문제의 본질은 노태우다. 그렇게 많은 비자금을 대체 무슨 수로 모았는지가 더 큰 이슈 아닌가. 더 욕 먹어야 하는 건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3천억원을 주면서 얼마나 벌벌 떨었을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모은 돈이 1~2조원은 될 것으로 본다. 3천억원이나 주려 했으니 벌벌 떨었겠지. 한 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는데 노태우도 불쌍하다.”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누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우리 사회 민주화를 위해 사심을 완전히 버린 사람이다.”
-그래도 그의 재임 시절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졌지 않나.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면 더 심했을 거다. 그가 양극화 정책을 편 것이 아니라 그나마 덜 양극화가 덜 되도록 억제한 것으로 봐야 한다.”
김빙삼씨와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그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입으로 늘 주장하는 그런 사회 있잖나. 공정한 사회. 그런 사회 좀 됐으면 좋겠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