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쟁투 신앙
내가 종종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대쟁투 신앙”이란 말입니다
예수 안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 얻으려는 노력보다
예언의 도표를 더 소중히 여기고
대쟁투의 도표 따라 신앙의 길을 만드는 사람을 일컬어
만든 말입니다
재림교인들 중에서 일부 하는 것 보면
입으로는 오직 예수라고 하면서
실상은 대쟁투 신앙하고 있습니다
나는 각 시대의 대쟁투가 한 번 편집된 줄 알았습니다
신학대학 다닐 때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첫 대쟁투가 따음표를 하지 않고 적어서 다른 이들에게 욕을 먹자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1권에서 따음표 붙이고
그리고 그 따음표의 출처를 밝힌 줄만 알았습니다
엘렌 화잇의 대쟁투 계시는 1848년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10년 후 다시 계시를 봅니다
그 와중에 1858년도에 대쟁투 초판이 출판됩니다
그 후 대쟁투는 몇 번 증보 개정되는데
1884, 1888, 1911년입니다
이 증보된 부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저술가들의 책입니다
내가 거꾸로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내가 흔히 말틴 루터의 서적 중에서 일부 인용한 것이
영감의 글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책 전부를 영감의 책이라고 해도 되는가 묻는 부분들입니다
미국에 계시는 김 주영님의 글에 의하면
재림 교회 역사에 있어서 대쟁투가 위의 인용구처럼 3번이나 첨삭이 되었다는 겁니다
초판 대쟁투에 강신술이라는 제목으로 한 chapter 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1848년 폭스 자매의 이상한 두들김으로
현대 강신술이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chapter 에서 화잇은 토마스 페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토마스 페인의 이야기는 강신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 개정판에서는 빠졌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탐심에 대해 한 chapter도 현재 우리가 가진 개정판에는 없습니다
바벨론의 죄악이라는 chapter 에는
노예제도에 대한 정죄가 나오는데
이것 역시 오늘 우리가 가진 개정판에는 빠졌습니다.
1858년에 발행된 초판 대쟁투,
엘렌 화잇이 계시를 받고 나서 직후에
"내가 보았다" 라는 표현으로 생생하게 쓴 대쟁투에는
“일요일 휴업령”
“짐승의 표”
“미국-카톨릭-개신교의 3중 연합”
이런 것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계시록 13장에 대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해석도 비치지 않습니다.
야곱의 환난이라는 제목의 chapter에
소수의 남은 무리가 당할 환난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안식일을 포기하고 일요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는
내용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계시로 보여 주신 것들 중에서 삭제된 문건들
그런 것들이 왜 삭제되었을까요?
그것이 오늘날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기에 그랬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초판에는
몇 년 후면 없어질 노예제도에 관한 예언은 왜 나올까요?
왜 그토록 중요한
미국에 관한 언급이나 짐승의 표등 계시록 13장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올까요?
계시록 13장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해석하게 된 것은
우라이아 스미스의 공로입니다
계시록 13장의 이야기는 엘렌 화잇이 계시로 본 것 아닙니다.
우라이야 스미스는 1871년에
The United States in the Light of Prophecy, or,
An Exposition of Rev. 13:11-17을 출판하여 재림교회 예언 해석을 주도하였습니다.
이 책은1884년에
Our Country's Future. The United States in the Light Of Prophecy,
or, an Exposition of Rev. 13:11-17로 개정되어 나왔습니다.
미국이 무한의 나라, 금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신세계로 묘사되자
유럽에서의 대량 이민으로 미국에 카톨릭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에 대한 경각심이 새로워지고
교황음모설이 나돌기 시작하고
보수 개신교인들은 미국이 처한 도덕의 해이를 걱정하여
금주법과 국가적 일요일 휴업령을 제정하려 하고
바야흐로 국가적 일요일법이 의회에 제출되고
현대 강신술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던 때
우라이야 스미스의 주석이 나왔고
그 해석을 채용하여 개정된 대쟁투는 세상을 그렇게 주석한 것입니다.
(1844년 판 대쟁투에 금주법과 일요일법의 연계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데
1888년 판에 빠졌습니다)
이런 전철을 볼 때 대쟁투는 계시를 통해서 후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미래의 사건을 미리 예언하는 것만이 선지자의 책무가 아닙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대부분이 현실인식을 나무라고 예언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중예언이라고 하는 것도 그 시대에는 다중예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대쟁투는
자기 생전에 세상이 마치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엘렌 화잇이 그 세상을 보고 말한 것입니다.
그 유명한 이야기인
여기 있는 아이들 대학 가기 전에 예수 오신다 하는 말이나
여기 있는 아이들 시집가기 전에 예수 오신다는 이야기들이
자기 당대에 예수 오심을 강박관념으로 기다린 결과물입니다
마지노선이라던 20세기가 지나서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습니다
왜 우리 주위에는 재림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던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까?
엘렌 화잇 그녀가 그토록 염원하던 그 재림이 세기를 바뀌어도
일요일 휴업령은 더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전 세계가 주5일 제도를 고수함으로 두 날의 간극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세계는 경제라는 괴물에게 무한도전을 받고
재림교인이라는 우리들조차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식들 미래 설계하고
홍수가 올 때까지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현실 안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허리를 동이고 선 채로 고기를 구워 먹던 유월절 그 밤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엘렌 화잇이 처음 계시 봤을 때 없던
일요일 휴업령, 짐승의 표, 미국-카톨릭-개신교의 3중 연합 등이
우라이야 스미스의 계시록 연구 후에 삽입된 것을
나는 매우 못 마땅하게 봅니다
왜 선지자가 남이 쓴 예언 해석을
“나는 보았다”라는 대쟁투에다가 삽입을 합니까?
이런 말 하면 여러분들 중에서 날 보고 욕하실 분 많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예언에 바탕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교회라는 순수한 기독교의 한 종파라는
그런 개념으로 살아가면 더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교단적 신앙을 세우고
괜히 종말론으로 교회 떠들게 하지 말고
우리 좀 솔직하게 현실을 둘러봅시다
보수적인 신앙으로 돌아간다고 이 시대에 용빼는 재주 생기지 않습니다
교회가 예언으로 부흥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예언 같은 것은 사이비로 규정(?)하는 세상에서
예언만으로는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도하는 목사님들 중에
급박한 기별이라고 말하는 분들 몇 분이나 되십니까?
급박한 기별이 먹혀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있던가요?
자식농사에 더 바쁘고 미래 준비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부양료도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데요
정말 예수께서 이 시대 안으로 오신다면
그것 확신한다면 나는 절대로 사과나무 심는 짓 하지 않겠습니다.
내 영원한 운명이 경각간에 달렸는데 100년 대계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는 분 믿지 않으시는 게 현명할 겁니다
하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보다
내 인생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주님 주시는 영의 양식으로 만족하는 재림교인들 되셨으면 합니다
예언에 목매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내 인생에서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기다려면 안 되겠습니까?
난 이러는 것이 더 솔직하다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위 글 중 일부에는 김 주영님의 글을 삽입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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