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주사를 맞기 전에는 얼굴부터 찡그린다.
병원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니 어린 아들이 주사를 맞는데
옆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찌그러진다.
하물며 죽기 전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두려울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머니는 생전에 고통 없이 돌아가시기를 늘 기도하셨다.
잠결에 조용히 가시기를 늘 원하셨다.
어머니가 본 주위의 죽음은 고통이 많았고 또 지병이 있으셨다.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병원에서 진통제 없이 지내는 사람은 드물다.
죽기 전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고통과 함께 생을 마친다.
고통과 두려움은 동반된다.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고통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진통제를 쓰지만, 처음엔 잘 들어도 점점 더 강한 것을 자주 쓰다 결국 손을 든다.
고통이 없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신앙의 첫 단계라고 한다.
두려움을 혹자는 사랑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하고
우리말 성경에는 “경외함”으로 나오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한다.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은 내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데 그것들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해도 그렇고
심판을 생각해도 그렇다.
병원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고통의 수치를 묻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10단계로 나누어서 고통으로 얼굴이 찌그려진 것이 10이고 고통 없이 웃는 그림이 0이다.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인지 택하라고 한다.
고통이 없으면 행복할까?
아니면 행복을 위해 고통이 존재해야만 할까?
고통을 없애기 위해 신앙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고통과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고통 없이 늘 안락과 평안과 풍족함 때문에 교만한 사람이나
신앙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두려움과 고통은 더 필요할 것 같다.
두려움을 몰라 고민 없어 배부른 돼지가 되기 보다는
두려움을 알고 고민 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신에 대한 두려움이
무서움이면 복종하거나 도피하게 되고,
경외감이면 닮고자 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