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이 아니라 사랑이다

by 아기자기 posted Dec 12, 2010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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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아들에게 요즘 성경시간에 무엇을 배우냐고 물었더니 창세기 22장을 배우고 있다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이 아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며 제단에 올려놓고 아들의 가슴을 향해 칼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이삭은 하나님과 아버지 말에 순종하여 제단 위에 자진해서 목숨을 내어 놓고 누웠다.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죽도록 순종한 믿음의 대표주자로 항상 거론되는 성경 이야기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로 드리라 했다고 하며 내가 너를 제단에 올라가라하면 너는 목숨을 내어 놓고 순종할 수 있겠느냐고? 잠시 생각하던 아들은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한다.

 

“Daddy, How old are you?"                          ”아빠는 몇 살 이예요”

"I'm 50."                                                          “나는 50이 다 되었지.“

"Do you know how young am I? Daddy!"  “그럼 제가 이제 겨우 몇 살 인지 아세요?”

"You're 10 now."                                           “음, 그래 너는 겨우 10살이구나!“

 

그러고는 아들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씩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최후의 변론을 만족스럽게 마친 변호사의 자신 있는 표정으로! 순간 아빠를 닮아서^^ 영특한 아들의 재치 있는 대답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빠는 50살이나 되도록 오래 살았고 자신은 이제 겨우 10살 밖에 안 되었는데 누가 죽어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설마 아빠가 날 제물로 바칠 수 있겠느냐고 나에게 당당히 묻는 것이다.

 

그래 아들아, 맞는 말이다. 내가 어찌 너를 죽음의 제물로 바칠 수 있겠니! 당연히 너를 대신해 내가 죽어야지! 그리고 아들아, 믿어주어서 고맙다. 이 세상에서 너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부모 밖에 없단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오직 부모만이 자기 자식을 목숨보다 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세상의 부모도 자기 자식을 위해 대신 죽으려할 정도로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를 죽음의 제물로 바치라 하실 리가 있겠니?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제사로 드리라 하시는 것은 죽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려하심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아브라함과 이삭한테도 보여주셨고 십자가에서 이루셨단다!

 

나는 얼마 전에 심장수술을 받았다. by-pass와 일부 심장 절제 수술(D.O.R.)로 보통의 심장 수술보다 위험도가 4,5배가 높아 약 20%의 risk가 있다고 했다. 즉 다섯 중 하나는 수술 중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 모리아산의 그 제단을 생각나게 하는 수술대에 올려 져서 온 몸을 소독하고 드디어 마취주사를 놓겠다고 알려준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 할 확률 20%의 마지막 순간. 어떤 이들은 그런 상황이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하던데 나는 가족들 생각만 났다. 그리고 모리아산의 이삭이 생각났다. 아니 모리아산의 이삭의 심정을 나름대로 깨달았다고나 할까? 수술 받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죽는 목숨 이렇게 병으로 쓰러져 수술 받다 죽느니보다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으면 더 값있는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나의 가족들을 이제는 꼼짝없이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셔야 될 텐데요! 오전 8시에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깨어나서 눈을 떠보니 오후 4시였다. 보통 수술이 6시간 정도 걸린다 해서 그 날 오후인줄 알았는데 처음 본 간호사가 다음날 오후 4시라 알려준다. 하루가 지나고 32시간 만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아직은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실 준비가 안 되셨나보다!

 

이제 감사한 것은 나에게도 다시 누군가를 위해 죽을 목숨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나에게는 내 목숨을 내어놓고 죽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아들아 너를 위해서라면 내 기꺼이 모리아산의 제단에 내가 대신 올라가고 말고! 그럴 수 있음에 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단다. 그리고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이삭이 자진해서 목숨을 내어놓고 제단 위로 올라간 것은 복종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더 이상 부모 형제의 사랑도 온전히는 못 믿을 세상이 되었다.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 자매간에도 조금이라도 손해 볼라치면 서로 싸우고 고소하고 심지어 폭행과 살인까지 다반사로 일어나는 세상이 되었다. 즉 순수하고 헌신적인 부모 형제간의 사랑도 못 믿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물며 남을 말해 무엇하랴! 그리 생각하니 아, 그 누가 나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감사한 것은 아들아, 너와 나에게는 100% 확실하게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한 것 하나는 내가 목숨을 내어줄 만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를 위해 목숨을 내어줄 만큼 날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와 나의 사랑의 지경을 넓혀주셔서 우리가 목숨같이 소중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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