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던지 가오리다 "
이 찬송은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가장 많이 부르던 찬송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학교를 졸업하는 신학생들에게
‘금지곡’이 되었노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더군요.
요즘 목회자들의 ‘일탈’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잠재적 가능성 속에 있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이 더는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로 고백되지 않을 때,
십자가가 ‘직업’으로 전락하는 순간, ‘일탈’은 일어납니다.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주변에는 ‘정의감’으로 누군가의 불의함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문제는 불의함을 지적하던 사람도
때때로 지적질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끝까지, 묵묵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이 주신 것이기에 ‘주님만’ 드러내며 자신이 감당할 것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지는 것이 십자가이기에,
떨어질 곳이 없는 가장 안전한 곳이 십자가입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금지곡이 다시 애창곡이 될 때,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활짝 웃음을 머금고
우리에게 다가올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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