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다에 연재하던
우리 건강기별 역사 이야기
제 12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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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강 기별 시리즈 전 회를 써서 올린 것이 벌써 거의 한달이 되어 간다. 지난번 글에서 19세기 우리의 건강기별이 시작하던 당시는 비로소 과학적 의학이 시작되던 때였다는 말을 했다. (8월 28일 글 '...번지수...' 참조) 트랄의 수치료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젊은 켈록은 미시간 대학 의대와 뉴욕 벨뷰 병원 의대에서 더 공부를 하고 (8월 13일 글 '그 남자의 선택' 참조) 1875년에 배틀크릭으로 돌아 와서 요양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6년에 약관 24세에 그는 요양원의 의무원장이 된다. 배틀크릭에 1866년에 설립된 이 요양원의 이름은 Western Health Reform Institute (서부 건강 개혁 기관) 이었다. '서부' 라는 것은 미국이 시작된 대서양 연안에서 보기에 미시간이 서쪽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개혁' 은 그야말로 당시의 '못살겠다 갈아보자 ' 는 물결의 이름이었다. 의무원장이 된 켈록은 요양원의 이름을 Battle Creek Medical and Surgical Sanitarium 이라고 개명했다. 우리 교회 역사에서 크게 표나게- 알려지지 않고 넘어가는 이 사실에서 나는 우리 교회 건강기별이 살아 남고 번영할 수 있게 한 실마리를 본다. -------- Medical and Surgical 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통상 의학을 두 분야 로 나누어 부르는 말이 Medicine 과 Surgery 다. 내과 와 외과 라는 말이다. 우리 요양원은 내과와 외과로 말해지는 주류 의학에 기초한 병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두는 자신감과 방향에 관한 천명이다. Sanitarium 은 신조어다. 병원이란 돈 없는 사람들이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여겨지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sanitarium 이란 단어는 이곳은 병원보다 나은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전에도 없던, 새로 만들어진 말이다. Western Health Reform Institute 라는 이름이 마치 무슨 갱생원이나, 운동가들이 운영하는 수용소 내지는 집단 훈련소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 Medical and Surgical Sanitarium 이라는 신선하고 쌈빡한 이름은 이곳이 제대로 된 의학으로 치료하는 곳이며 지금까지 보던 병원들보다 앞서 나가는 곳이라는 밝고 기대되는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다. --------- 이후 배틀 크릭 병원은 교인들 사이에서 San 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며 일취 월장해서 미시간 뿐 아니라 전국에서 알려진 병원이 되었다. 이후 안식일교회 병원들은 Sanitarium 이라는 돌림자를 많이 썼다. 한국의 위생병원에 위생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도 Sanitarium 을 번역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 켈록은 Health Reformer 이라는 교단 건강 잡지 이름도 Good Health 라고 개명했다. 역시 전투적, 운동권적 냄새 나는 이름 보다는 밝고 긍정적인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 안식일교회 의료 사업은 이렇게 해서 주류 의학과 같은 배를 타게 된다. 그리하여 앞서 말한 당시의 유명한 뉴스타트 개혁자들이 자취 없이 사라진 반면 안식일교회 의료 사업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서 첨단 의학을 수용하면서도 계속 뉴스타트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모르면 우리는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고 방향을 잃은 설을 전파하게 되고 중구난방 짬뽕으로 돌팔이와 구별하기 힘들게 된다. --------- 켈록의 선택과 함께 안식일교회 건강기별/의료사업을 주류 의학에 더욱 단단하게 잡아 묶은 것은 다름 아닌 엘렌 화잇의 선택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