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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호남삼육고 출신 추혜선 국회의원 당선자를 소개 함.

..


4·13 총선에서 추혜선 정의당 후보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생년월일(연령):1971/01/15(45세)
-직업:정당인
-학력:호남삼육고등학교 졸업
-경력:(전)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전)방송통신정책위원회 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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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총선] 기뻐하는 정의당 비례대표 추혜선-이정미-김종대


양양 정암리 이장 며느리 추혜선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 화제

2016-4-15 (금) 15면 -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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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관·고순녀 부부(왼쪽 사진)와 며느리 추혜선 당선인.

양양 정암리 이장 며느리 비례대표 당선 화제

양양군 강현면 정암리 김동관(69) 이장의 며느리 추혜선(46)씨가 20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지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남 완도가 고향인 추씨는 호남 삼육고를 졸업,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방송통신정책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추 당선자는 “정치인 이전에 여성이며 엄마로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차별과 장애를 입법으로 극복하겠다”며 “더 이상 경력단절과 유리천정을 여성의 탓으로 돌릴 수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시댁인 양양 등 지역 주변의 현안도 잘 알고 있다”며 “지역 발전을 위해 국회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시아버지 김동관 이장은 “주변으로부터 며느리의 당선 축하를 받고 있지만 실감이 나지 않으며 주변의 관심에 약간은 부담스럽다”며 “똑 부러지는 성격이어서 국회의원 역할을 잘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양양=박기용기자 kypark901@kwnews.co.kr


....



"본 코너는 4.13 총선특집 <저평가 우량주를 찾아서>의 기획 중 하나다.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역량이나 활동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저평가 정치인을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힘닿는 데까지 열쒸미 발굴할 예정이니,

독자분들도 주저 없이 추천해 주시라"




2월 12일 금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여의도 모처에서 추혜선 단장을 만났다. 현재 공식직함은 정의당 내에 설치된 언론개혁기획단의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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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부로 공식 출마선언을 한 상태이다. (출마선언문 링크)


한 번 생각해 보시라. 정치인과 언론의 관계를 말이다.


정치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거다. 흔히 “부고 말고는 모든 기사에 이름이 나오는 것을 원한다.” 라는 말로 그 심정이 표현된다. 언론에 노출되면 인지도가 올라간다. 특히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메이저 언론에 이름이 자주 노출되면 전국구급 인지도를 얻게 된다. 중진급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필수적이라는 그 인지도 말이다.


정치인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 역시 언론이다. 언론은 어지간한 지역구 의원의 당락 정도는 맘만 먹으면 결정해 버릴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무슨 의혹 같은 거 하나 키워서 대문짝만하게 보도를 해 버리면 득표율 몇 % 정도는 쉽게 깎아 버릴 수 있다. 특히 접전 중인 지역구에서는 기사 몇 개 가지고 한 정치인의 미래를 암울하게 바꿔 버릴 힘이 있는 것이 메이저 언론이다.


그런데 방송사 노조에서 장기간 활동을 하고, 언론개혁시민연대라는, 언론사 입장에서 보기에는 눈엣가시 같은 활동만 지속하던 한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맡은 최초의 직책이 바로 “언론개혁기획단장”.


이건 초장부터 언론하고 맞짱을 뜨겠다는 얘기가 아니라면 뭐겠는가 말이다. 여태껏 어떤 야당에서도 이런 조직을 만든 역사가 없다.


이제 출마선언을 했으니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될 것인데, 그나마 정의당의 빈약한 지지율은 과연 당선가능한 비례대표 순번이 몇번인지도 담보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나 대찬 시작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한 거다. 심지어 보도사진 촬영을 해 달라고 부탁하기엔 너무 미안한 사진작가이자 과메기 쇼핑몰 사진으로 유명한 좌린님이 사진까지 찍어주신다길래 더욱 신나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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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 추혜선 단장,  : 물뚝심송 으로 표기한다. )



 :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상투적인 호구조사부터 시작하자. 언제 태어나셨는지, 어디서 태어나셨는지,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추 : 저는 71년 돼지띠.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어요.


 : 완도라니.. 낚시하러 가 본 적이 있다.



원래 완도라면 바다낚시의 메카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넒은 섬이다. 물론 낚시꾼들에게는 추자도나 가거도가 더 선호되긴 하지만, 일단 넒은 섬이니까 말이다. 



 : 우리 아버지께서 낚시배 선장이셨어요.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낚시배도 하시고, 김 양식 등의 일을 하셨었죠. 다양한 분들이 낚시하러 오시곤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 그 분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 마산에 인쇄소, 학생들 졸업앨범을 만들어 주는 회사의 사장님이 해마다 오셨던 것이 기억나요. 아들을 소개해 주셔서 오래도록 펜팔을 했었죠.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서 만나기도 했어요.


 : 상투적인 호구조사가 급작스럽게 분위기가 바뀐다. 혹시 첫사랑.


 : (웃음) 그런 건 아니고..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편지 교환하고 몇 번 만나본 것뿐이에요. 어느 날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소개시켜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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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이 급작스러운 청춘의 로맨스는 그렇게 끝이 나는 건가.. 어려서 공부는 잘하셨는가?


 : 왕년에 초등학교 때 공부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웃음)


 : 학교는 육지로 진학을 하셨는가?


 : 고1 때까지 완도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2 때 광주의 삼육고, 삼육재단 소속 학교로 전학을 했어요. 그때부터 개신교를 신앙으로 가지기 시작했지요.


당시 삼육고 재단은 제칠일안식일이라는 개신교 교단이었다고 한다.


 : 지금도 그 신앙이 유지되는가?


 : 네, 편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죠. 동네 교회도 나가고.


 : 정치하려면 여러 가지 종교를 다 가지셔야 하는 거 아닌가?


 : (웃음)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산사를 좋아하거든요. 가끔 절에 묵언수행을 하러 가기도 하고..


 : 불교신자가 되신 건가?


 : 아니 조용해서 좋아하는 거지, 불교 신자가 된 것은 아니에요.


 : 불교를 철학으로 좋아한다거나..


 : 그런 거죠. 주변에 출가하신 분도 계시고..


 : 어린 시절의 꿈은?


 : 시인이었어요.


 : 문학소녀였단 말인가?


 : 국회의원도 꿈이었어요. 시 쓰는 정치인..


 : 도종환 의원의 이름이 갑자기 떠오른다. 시를 쓰는데 정치도 해보고 싶었다는 건가?


 : 정치는 꼭 해보고 싶었어요. 완도라 하면 전라남도에서 제주도와 제일 가까운 섬이에요. 완도에는 육지와 제주도를 오가는 페리호가 지나가거든요. 아주 큰 배가 제주에서 와서 완도 앞바다를 지나 전라도로 가는데 그 배를 맨날 지켜보면서 자랐어요. 눈만 뜨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집이었고, 그 앞바다로 배가 지나가는 거에요.


완도라는 섬이 사연이 참 많아요. 예전에는 귀양지이기도 했고, 주로 육지에서 실패를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죠. 봄이 되면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서 터를 잡곤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면 사상범이었다거나 하는 식이거든요. 경제사범도 오고..


 : 사업하다 망해서 오기도 하고..


 : 그런 식이에요. 그런 사람들과 만나고 살아가면서 시적인 감수성이 풍부하게 자라났고..


 : 잠깐, 스스로를 시적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표현을 하시는 건가? 그건 남들이 해줘야 하는 말이지 본인이 직접 하기에는 좀..


 : (웃음) 그리고 방학 때가 되면 광주 서울로 유학을 간 동네 오빠들이 내려오곤 했지요. 그게 무척 기다려졌어요. 동네 사랑방에 모여 데모하는 얘기도 해 주고.. 광주 항쟁이 있던 때거든요.


 : 어린 소녀가 듣기에는 좀 무서운 얘기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 충격적이었죠.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좀 일찍 성장했던 것 같아요. 이게 제 삶을 규정했던 것 같아요. 큰 상처였고, 집단적인 트라우마였죠. 호남이라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걸 공유하고 있는 거죠.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어요. 완도 읍사무소 앞에 교련복 입은 오빠들이 와서, 광주 시민들 다 죽어간다고 도와달라고 외치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들은 가지 말라고 말리고.. 실제로 흉흉한 소문들도 많았고요.



광주라는 트라우마.. 근대한국의 정치사를 헤치며 들여다볼 때 언제나 만나게 되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연관이 되어 있고,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의 동인이 되어버린 엄청난 사건.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이나 이 광주라는 아픈 기억이 제대로 소화되고 정리되어 역사로 자리 잡게 될지,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흘러가는 와중에 열 살 먹은 소녀의 입장에서 광주를 지켜보고 있는 추혜선 단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은 어디로 가셨는가?


 : 대학은 가지 않았어요.


 : 인문계 고교를 나오셨을 텐데, 특별한 이유라도?


 : 인문계였고 남녀공학이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왔어요. 공장에 가고 싶었어요.


 : 돈을 벌러 가신 건가?


 : 그건 아니고요. (웃음)


 : 그럼 노동운동을? 무척 빠르셨다.


 : 사실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에요. 그때부터 완도 친구들도 공장에 많이 갔었죠. 그리고 사실은 공장에 잠깐 있다가 우연히 기회가 되어서 출판사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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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출판사였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있는가?


 : 지금은 없어졌죠. 사장님이 돌아가셨어요. “자유사상사”라고 하는 출판사였는데, 정말 꿈만 같았죠. 시인이 되고 싶어 하던 소녀가 드디어 출판사에 들어가다니.


편집부의 이름을 딱 걸고 일을 하는데,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어요. 그 출판사의 실체도 모르고. (웃음)


오래된 출판사가 아니고 책 한 권 낸 출판사였는데, 그때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알게 되고, 문학교실도 하고, 당대 유명한 시인들과 교류도 하게 되고, 그때 등단도 하고.. 그때 만나게 된 분 중에 소설가 공선옥 씨도 있어요. 그 땐 이름도 모르고 아람이 엄마라고 했었는데 실천문학에 소설을 발표하셨더군요. 저는 신동아에 시를 실으면서 등단을 했고..



추혜선 단장은 나름대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러나 그가 쓴 시가 어떤 수준인지 평가할 만한 능력은 내게 없기에 굳이 찾아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 그게 신춘문예 비슷한 건가?


 : 신춘문예는 아주 전형적인 등단의 경로고, 문예지 등을 통해 등단하기도 하고, 신동아의 경우도 세 명 정도 선정해서 실어줬던 것 같아요. 기간별로요.


 : 그렇다면, 고등학교 졸업한 다음에 노동운동을 할 생각으로 공장에 갔는데, 바로 또 출판사에 들어가면서 시인으로 활동을 하신 거다. 이거 뭔가 방향이 바뀐 건가?


 : 그때 시를 쓰면서도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곤 했었어요. 방향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동시에 진행되는 걸로..


그러다가 출판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소위 불온서적 관련 사건이었죠. 다른 출판사에서 불온서적 관련 문제가 생겨서 압수수색을 당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짐들을 대신 보관해서 숨겨줬던 거에요. 결국 문 닫고 도망가게 된 거에요.


 : 그러니까 문학도 일종의 저항수단으로 간주하신 건가?


 : 그렇죠. 아주 자연스럽게 그게 서로 이어져 있던 것 같아요. 백기완 선생님이 하시던 노동자 대학 같은 것도 연관이 되고, 좌파 지식인 그룹을 만나게 되고, 노동해방문학이라는 계간지에서 선배들하고 어울리게 되고..


 : 그 시절이 좋으셨는가?


 : 행복했다고 할 수 있죠.



시골에서 갓 상경한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의 청년(원래 청년이라는 단어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에게 세상은 너무나 넓었을 것이다. 그런 기회를 상경하자마자 가지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운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인생 망칠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나오겠지만 추혜선 단장의 인생역정에는 뭔가 ‘운 좋음’이 많이 깃들어 있다. 사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운이라고 볼 수도 있다. 



 : 정말 좋으셨나 보다.


 : 민예총 간사 일을 하기도 했어요. 문호근 선생이 기획실장을 하셨었죠.



문호근은 문성근 전 대표의 친형. 2001년 5월 17일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이다. 서울대 작곡과 출신으로 오페라 기획 등의 문화적인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다. 



 : 민예총 시절 얘기를 좀 해달라.


 : 그때 신경림 선생이 사무총장을 했었고, 민예총 초창기에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이었고, 문호근 선생 같은 분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었어요. 또 정태춘 씨 전국 공연, 당시에 상업음악을 접고 민중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첫 행보가 전교조와 연결해서 전국 순회공연을 했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 그런 현장에 함께 했었다니..


 : 물주전자 나르는 영광을 누린 거죠. (웃음)


 : 어찌 보면 행운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문학을 하면서도 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운동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니까..


 : 물론 돈은 없고, 시골에서 막 올라온 어린 여자애가 눈만 반짝 반짝 빛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 그런 활동을 지속하면서 뭔가 인생관이나 그런 것에 큰 변화가 온 것인가?


 : 그때 저는 직감을 했었죠. 내 삶이 이 길로 계속 가겠구나, 반골의 삶으로 평생 가겠구나,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뭔가를 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아주 미세하게 자신이 아주 일찍부터 정치를 하고 싶었다는 뉘앙스의 말을 많이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때 이철 의원도 만났습니다. 민예총에 자주 오셨거든요.


 : 이철 전 의원이 민예총과 뭘 같이 하셨던가요?



참여정부 시절 코레일 사장을 역임했던 그 이철 맞다. 



 : 그건 아닌데, 민예총 계시던 분들과 무척 친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자주 놀러 오셨어요. 그렇게 알게 되는 거죠.


 : 아, 그렇게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관계가 점점 더 넓어지는 경험.


 : 그렇죠. 예술계의 대가들을 알게 되고 그 분들을 돕다 보니,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 거죠. 그러면서, 이렇게 일을 계속하다 보면 국회의원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 거에요.


 : 드디어 정계 진출의 야심을..


 : 야심까지는 아니고요. (웃음) 그렇게 계속 활동을 하다가 광주로 다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백기완 선생의 민중당을 돕기 위해..


93년 하반기쯤에는 광주에 내려가서 사무전문직 노동운동 연구회라고 나중에 진보정치추진위원회, 진정추 멤버들, 노회찬 씨 같은 분들이 했던 그런 모임에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 그때는 무척 젊었던 시절인 듯.



그 당시 노회찬 전 의원의 이미지를 연상하다가, 문득 지금보다는 머리카락이 좀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 그 멤버들하고 활동을 하다가 광주 KBS 노조에 간사로 들어가게 된 거죠. 거기 노조 지부장이 진정추 멤버들하고 친했고,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들어가게 된 거죠. 당시 민주노총에 권영길 위원장이 활동을 하던 시대였어요.


 : 그때, 개인적으로는 20대 초반 아니었나? 굉장히 빠르게 시작하셨다. 정치 엘리트 코스 아닌가?


 : (웃음) 그렇게 까지는 아니고.. 제가 새정연 쪽 나이 많이 드신 보좌관분들하고 얘길 하다가, 어디 출신이냐고 해서 완도라고 했더니, 완도는 DJ의 처가가 있는 곳이거든요. 그 집안 분들하고도 친하고.. 그랬더니 한국 정치의 “성골”이라고.. (웃음)



특히 야권에서, DJ와 어떻게 해서든 연관이 되는 사람들을 성골이라고 부르는 유머가 한참 많이 돌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진짜 야권의 성골일 수도 있겠다. 물론 지금은 그게 어떤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특이한 것은, 그런 오래된 야권의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치고는 추혜선 단장의 나이는 꽤 젊다는 점이다. 아주 어려서부터 이 바닥에서 놀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오신 건가요?


 : 광주에서 결혼까지 했었고요. 5.18 금남로에서 얼마 전에 작고하신 문병란 선생님 주례로 결혼했죠. 민족문학작가회의 하시던..



금남로에서의 결혼이라니, 뭔가 진짜 성골 같은 느낌도 든다. 



 : 결혼 얘기는 자세하게 묻진 않겠다. 그 뒤에 서울로 올라온 계기는 무엇인가?


 : 남편의 직장이 서울에 있었고, 그냥 올라오게 된 것이죠. 그리고 다시 출판사에 들어가서 잠깐 있게 되었고..


 : 사회활동을 잠시 접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신 건가?


 : 그런 면도 있지만 계속 작가분들이나 그쪽 계통 사람들하고의 연계는 놓지 않았죠. KBS 노조 일 하면서도 그랬고.. 출판사도 계간지를 발행하는 곳이기 때문에 언론 쪽 하고 연계가 깊은 면이 있죠.


 : 결혼도 하셨고, 뭔가 삶이 좀 달라지셨을 것 같다.


 : 그 문제.. 그건 여성이 아니면 못 느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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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를 낳고,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급하면 아이를 친정에 맡기기도 하고.. 그렇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행복하냐, 어떠냐, 하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그냥 끝도 없이 달려왔다는 생각뿐이에요. 계속 한 일주일 푹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건 사실 지금도 별다를 바 없습니다. 집에 가면 5분도 앉아있기 힘들어요.



이 대목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뒤에도 한 번 더 나오지만, 추혜선 단장은 여성이다. 여성으로서 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천형에 다름 아니다. 남자들이 자신의 사회활동에 전념하면서 그 와중에 지치고 힘들다고 탄식하고 절망하는 동안 여성 활동가들은 자신의 활동에 더해 육아와 가사까지 전담하고 살아간다. 남성 활동가들이 정갈한 옷차림으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가 아침에 무얼 먹고 나왔는지, 저 사람의 와이셔츠는 과연 누가 저렇게 깨끗하게 세탁해서 다려 줬는지, 그 밑에 깔려 있는 누군가의 고통에 기반한 가사노동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 자녀분들은?


 : 딸 둘이에요.


 : 그렇게 자녀분들이 좀 큰 다음에 다시 사회생활을 하신 것인가? 경제적인 문제도 쉽지 않았을 텐데..


 : 그 과정은 뭐랄까, 제 삶에도 부침이 많아요. 여러가 지 어려움도 많았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결혼에 실패하기도 하고.. 이런 문제를 구구절절 다 얘기할 수는 없고 상처의 시기라고 할 수 있겠죠.


계간지 하다가 지역 신문에서도 잠깐 있었고, 다시 서울로 와서 재혼도 하고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산후 몸조리하고 있던 중에, 최문순 선배에게 연락이 왔어요.


 : 강원도 도지사?


 : 맞아요. 당시에는 언론노조 하실 때였죠. 98년도였나.. SBS에 노조가 생겼는데, 만들자마자 깨졌고, 그걸 다시 재건하겠다고 누가 나섰는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래서 몸조리하던 걸 털고 일어나 달려가게 된 거죠.


 : 최문순 씨하고는 또 어떻게 아는 사이신가?


 : 뭐 언론사 노조 활동하고 그러다 보면 다 알게 되는 거 아닌가요? (웃음) 그 시대에는 뭐, 하아..



시대의 격변기를 한가운데에서 관통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무게감 있는 한숨. 추혜선 단장의 활동영역이 광범위했음을 입증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당시 사회운동이라는 게 얼마나 한정된 사람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했는지도 보여주는 한숨이기도 하다. 지금이라고 그런 상황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고, 지금도 소수이고, 앞으로도 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수가 이 사회를 그나마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 그렇다면 혹시, 최문순 씨가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일자리를 소개한 건가, 아니면 활동가가 필요해서 부른 건가?


 : 경제적인 문제는 전혀 관계없고, 진짜로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SBS는 워낙 사측이 노조를 싫어하고 무노조 원칙을 삼성처럼 지키던 곳이에요. 노조 활동이 전무했던 거죠. 방송국 자체도 늦게 생겼고, 다른 방송이나 신문사에서 직원들이 왔을 거 아닙니까? 그 과정에서 노조 관련자들은 모두 걸러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조 경험이 완전히 없는 거에요.


 : 그렇다면 SBS 노조를 최초로 만든 설립자 그룹에 포함되시는 건가?


 : SBS 직원들은 아직도 제게 자신들이 제 친정식구라고 표현을 해요. 노조 활동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생각해 주는 거죠. 저는 SBS 직원도 아니었고, 노조가 채용한 사람인데도 말이에요. 그만큼 임직원들과의 스킨쉽이 많았어요. 한 식구로 느껴질 만큼.


 : 활동을 매우 열심히 하시는 스타일인가 보다.


 : 굉장히 열심히 하죠. 조합원들 노조 가입부터 해서, 일상적인 상담까지 도맡아 하고, 모든 걸 다 했죠.


 : 그렇게 일하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소모될 텐데..


 : 그때는 퇴근하면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아와서 재워놓고 다시 나가서 일을 하고 그랬습니다. 꼬박 만 7년이 넘도록 그렇게 일을 했죠. 그리고 그 성과는..


당시에는 조중동S 라는 분류가 있었어요. SBS가 조중동과 함께 엮이던 시절이었죠. 다들 그 S를 조중동에서 떼어내고자 노력을 했어요. 그걸 해낸 거죠.


처음에 SBS에 가니까, “우리”라는 표현을 써요.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것 같은 의미의 우리. 대구경북, 보수, 이런 의미의 “우리”.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뭘 한다. 이런 표현들. 정치부장, 간부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얘길 하면서 그런 소릴 한다는 거죠.


SBS에 당시 진짜 호남 출신의 직원이 없었어요. DJ 정권이 출범하면서 호남 출신을 보도본부장에 앉히려고 하는데, 사람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쟈니윤 쇼를 만들던 예능 출신, 호남 출신을 보도본부장으로 차출을 했을 정도에요. (웃음)


 : 하아.. 참 우리나라, 대단하다.


 : 제가 원래 방송계 뒷 얘기 정말 많이 압니다.


 : 그 얘기는 나중에 언제 따로 한 번 자리를 만들어서 듣기로 하자. 그런데 그렇게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신 건가? 그게 본성인가?


 : (한숨) 대한민국에서 고졸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특히 제도 언론이고, 대한민국 1%의 최고 학력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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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양형자 씨 기자회견에서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부분에서 정말 감동했어요. 사실 저는 소수 기득권자들에게 선택받은 경우에요. 저는 일부러 양형자 씨의 기자회견을 애써 거리를 두고 지켜봤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 부분에서는 정말로 뭉클하더라구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기사 양형자 씨는 그래도 삼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있었고, 유리천정을 보고 절망했겠지만, 우리같이 바닥을 구르는 여성들은 그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상처받고 고통받는 거에요.



이 부분은 학벌 문제에 좀 더 비중이 가 있는 이야기. 방송사만큼이나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엘리트급 학력을 가진 집단도 없다. 기자가 그렇고, 앵커들도 그러하고, 심지어 엔지니어들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급이 진출하여 모여있는 집단이다. 그만큼 엘리트 의식도 강하고, 학벌 문제의 폐해가 깊게 배여 있는 집단도 드물 것이다. 

그 집단에 뛰어든 섬마을 출신의 고졸 여성. 정규직원도 아니고 노조가 채용한 간사. 이런 신분의 사람이 그 집단 내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가지는 이 사회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 보통은 그런 자리에 가지도 못한다는 얘기..


 : 저는 정말로 운이 좋았던 거죠. 선택을 받았고..


 : 운이 좋게 그런 자리에 갔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한 거다..


 : 저희 엄마가 저를 보고 항상 그러세요. 사주를 봤는데 정말 운이 좋다고. 그렇게 운 좋게 자리에 가서, 나름대로 자격지심과 싸워야 하고, 자기 검열을 해야 하고, 편견과 싸워야 하고..


저는 사실 노조 간사 활동하면서 정말 바닥일부터 했어요. 현장이라는 데가 원래 그렇거든요.


여성의 문제를 운동권에서 왜곡될 걱정 없이 편하게 꺼내게 된 것 자체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에요. 오히려 성폭력이나 그런 문제들이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진영논리에 밀려 오히려 은폐되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드러내놓고 노골적인 문제들은 별로 없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 발을 맞추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엄청나게 했어야 되는 거죠.



앞부분이 학벌의 문제에 가깝다면 이 부분은 성차별에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그나마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정말 8~90년대의 진보 운동권 바닥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진짜 할 말이 없어야 한다. 

고졸, 여성, 이 두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차별과 배제의 두께는 결코 얇지 않다. 그리고 이 두 단어를 동시에 한 몸에 붙이고 활동해온 추혜선 단장의 입장은 정말로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뭐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바닥에서 그 두 단어를 등에 지고 살아남았고, 성과를 올렸다. 



 : 공부도 열심히 하셨겠다.


 : 글 쓰고 그러는 것은 좀 타고나서.. 성명서 쓰고 그러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잘하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자랑질을 하는 경향이 있다. 시적 감수성에, 타고난 글쓰기 재주라니... 



무엇보다도 SBS가 나름대로 조직에 건강함이 있었어요.


 : 건강함이라는 것은? 엘리트 의식 같은 것이 좀 적었다는 의미인가?


 : 개방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른 메이저 방송사들 같은 경우는 아주 좋은 언론인, 신화적인 인물들이 많았지만, 선민의식 같은 게 좀 강한 경향이 있었어요. 대신 SBS는 그런 게 좀 적었어요.


처음에 원래 비정규직, 계약직들은 노조에 포함이 안 되는 거였는데, 제가 과감하게 비정규직도 노조에 포함시키기로 했고, 그게 SBS에 받아들여질 정도였죠. 그 덕분에 상당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턱 같은 게 없었겠습니까?


 : 정말 고생 많으셨겠다.


 : 거기서 신장이 망가졌죠.



급성 신부전 판정까지 받았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한다.

삶을 지나치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 특징이 일찍부터 몸이 망가진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서울 출신의 고학력 인텔리 사회 운동가 남성들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매진하다 보면 몸이 망가지는 경우가 흔하디 흔한 판에서, 만 7년 동안이나 SBS 같은 거대 방송사 조직내에서, 그것도 “노조”라는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집단의 간사 역할을 수행해 놓고 몸이 안 망가졌다면 그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런 치열함이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뜬금없이 독자 여러분들께 이 말을 하고 싶어졌다. 건강하시라. 건강이 최고다. 



 : 그 시절을 생각하면 회한이 좀 있으시겠다.


 : 아니 뭐 그런 건 없고, 지금도 정말로 편하게 생각합니다. 자주 찾아가고, 누구든지 만날 수 있고, 또 그 쪽에서도 반갑게 친절하게 잘 대해줘요.


시민단체 활동하면서는 정말로 편하게 자주 갔었는데, 얼마 전에도 찾아가서 보도본부장님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선배, 데스크들이 지나가다가 제 뒤통수를 보고 들어와서는, “아니, 정당인이 보도본부장실에 함부로 들어오고 말야! 이래도 되나?” 이러기도 했죠.


 : 그게 반갑다는 의미의 농담이겠지만 실제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 당연히 안되죠. 정치인이 언론사를 그렇게 함부로 드나들면 안 되는 거에요. 저도 그 순간에 아 이제는 이러면 안 되는 거구나, 이 사람들이 “내외”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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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전에 심 대표(심상정)와 함께 언론사 순방을 했거든요. 대표를 수행해서 여기저기 언론사를 찾아다니는데, SBS를 간 거죠. 모든 언론사는 정치인들의 갑이에요. 그런데 SBS는 무척 잘 대해 주더라구요. 친정식구니까.. (웃음)


심 대표님도 현장 출신이신데 저한테 “도대체 얼마나 지독하게 잘 했으면 사람들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냐?”고 그 말씀을 하시더군요.


 : 그게 뭐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상당히 큰 성과를 올리신 것 같다.


 : 잔잔한 성과들이 누적되어 있다는 거겠죠. 저는 그런 걸 내세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제가 힘들 때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동력이 되긴 해요.



SBS는 스스로 추혜선 단장을 친정식구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추혜선 단장이 의석을 갖게 되고, 그가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의 방송사 관련 법안을 제출했을 때에도 SBS가 “추 의원”을 지지할까? 과연 언론과 각을 세우는 정치인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또다시 떠올랐다. 



 : SBS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하셨는가?


 : 일단 건강에 이상이 와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퇴원하면서 정리를 했죠. SBS 쪽에서 감사패를 만들어 주더군요. 아마 노조 간사가 전 조합원들의 마음을 담은 감사패를 받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거에요.


그리고 나서 언론개혁 시민연대에 가게 된 거죠. 거기 1기들의 시대는 가고, 활동가 한 명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중이에요.


 : 1기라면 어떤 시대를 의미하는가?


 : DJ 정부 시절에 신문개혁, 조중동 개혁에 관해 주로 일하던 분들이죠. 신문법, 지분 축소 문제, 이런 부분을 관철시키기 위해, 조중동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던 그런 시대였죠. 당시에는 조선일보에 세무조사까지 들어가고 했었죠.


그런 개혁의 열기를 등에 업고, 40여 개 언론운동 단체들이 힘을 합쳐서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만든 거죠. 그러던 시대가 끝나고, 다 정리하고 줄이고, 프레스 센터 언론노조 옆에 작은 사무실에 대표 한 분과 활동가 한 명 수준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도 안 나지만, 한때 우리 사회는 이랬었다. 건강한 언론, 제대로 된 신문을 갖기 위해 시민사회의 동력이 결집되고, 정부가 함께 나서고 했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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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에 나름대로 많은 활동이 있었지만 성과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 물론 많은 법안이 제안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절반의 성과라고 할까, 상당 부분 관철이 되지 못했던 점은 있죠.


 : 실제로 그런 법안들이 모두 어디에서 나온 건가?


 : 실제로 법안이 통과가 되면 의원의 이름이 붙어서 통과되죠. 의원 개개인들은 하나하나가 입법기관이잖아요. 그렇게 의원들의 손을 거쳐야 실질적인 법안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 법안의 내용은 시민사회단체에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아요.


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도 신문위원회가 있었고 방송위원회가 따로 있었죠. 조중동은 신문사업자의 지배적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신문위원회에서 일단 사주의 지분축소에 관해, 법정 상한선을 두고 싶었던 거에요. 법안도 제출하고 했지만 결국 무력화된 거죠.


 : 조중동이 사력을 다해서 저항했을 거 아닌가?


 : 그거야 당연한 얘기고, 야당의원들조차 그들의 로비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거에요. 결국 선을 넘지 못한 거에요. 결국 그들의 논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문도 산업인데 왜 지분을 제한하는가, 이건 과도하다 하는 논리가 퍼지면서 물타기가 된 거에요.


 : 그런 걸 보면 시민사회단체가 조중동에게 패한 것 같다.


 : 그렇게 보이죠. 그게 바로 언론의 영향력이라는 거겠죠. 이걸 넘어서려면 시민사회의 동력이 그만큼 커야 한다는 거에요. 그러나 그렇지 못했죠.


역사적으로 봐도 언론의 영향력이 지배적 권력을 담지 못하던 시절은 거의 전쟁과 혁명 때밖에 없어요. 그런 언론의 전횡을 막아내야 하는 비평과 저항 세력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최악을 막는 것 정도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꿈은 크고 이상은 높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거기에 한참 못 미친다. 

사력을 다해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언론 자체의 힘은 언제나 그들보다 더 강력했고 개혁에 저항한다. 정권까지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을 정도. 이걸 현장에서 함께 싸우면서 지켜본 사람의 입장에서, 언론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큰 꿈이고, 결국 최악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는 이야기. 

한편으로는 매우 서글픈 이야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추 단장의 실리적인 현실주의자적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심오한 얘기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에 처음 들어가신 과정은?


 : 사무차장.


 : 처음부터 굉장히 높은 자리로 가셨다.


 : (웃음) 아니 그 동안 해온 일이 있고, 경력이 있는데..


 : 가서는 뭘 하셨는가?


 : 날마다 성명서 썼죠. (웃음) 들어갔을 시점이 2005년. 참여정부 때부터였어요. 아마 제 동영상을 검색해 보시면 “기자실 폐쇄”건 관련해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그랬던 게 나올 거에요. 참여정부 시절, 언론개혁 시민연대에 사무차장으로 들어갔다가, 사무처장을 하게 됩니다.


 : 차장보다 처장이 높은 건가?


 :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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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드디어 참여정부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시적인 감수성을 지녔던 문학소녀이자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던 섬마을 소녀가 서울로 상경하여 이 사회를 바꿔 보자는 진보적 사회운동 판에 뛰어든 이야기.


그 소녀는 어느새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가 시인으로 등단도 하더니, 사회 활동가가 되고, 메이저 방송사의 노조 간사가 되더니, 언론개혁시민연대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사무처장이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신장이 망가진다.


이제는 더 이상 물주전자 나르는 아이가 아닌, 본격적인 시민사회 언론개혁 운동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런 핵심적 활동가는 참여정부라는 일찍이 없었던 특이한 정권을 맞상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2부에 계속.


시민사회 활동이라는 것도 장르가 매우 다양하다. 경제 정의를 원하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 결코 빼놓을 없는 장르가 있다면 바로 언론 관련 시민운동.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점들 중에서 언제나 최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바로 언론. 그러나 일반인들은 도대체 언론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알 수도 없고 생각해 봐도 막막할 따름이다. 그 언론의 구조를 고치기 위해 막상 의원들의 손에 들어가면 태반이 버려지는 법안의 초안을 만들고, 각종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기업인들을 설득하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하나이자 사실상 가장 큰 동력이 바로 언론개혁 시민연대다.


시인이 되고 싶은 동시에 정치가가 되고 싶었던 전남 완도에서 올라온 섬마을 소녀 추혜선은 바로 그 언론개혁 시민연대의 사무처장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나서 들어본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제 드디어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가 되었다.


(이하 추 : 추혜선, 물 :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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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와의 관계


 : 참여정부,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 참여정부 출범할 때에는 SBS에 있었어요. 그때 노무현을 지지했었죠.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어요.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완주했고, 최종적으로 3.9%의 득표, 957,148표를 득표하게 된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 그 전에 있었어요. 아마 그 분이 종로에 출마했을 때였을 겁니다. 당선되었었죠. 그때 노무현 의원의 소속 상임위가 있었는데, 제가 그 상임위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출판기금 지원 관련 것이었을 거에요.


그때, 노무현 의원 보좌관으로 있던 분이 했던 얘기가 기억이 납니다. 의정활동하고 관계가 없는 부분이에요. 당시에 노동운동하던 사람들이나 각 분야의 활동가들이 구속되고 감방에 가고 하게 되면 가정이 많이 깨지거든요. 그렇게 고통받는 가족들에게 남들 모르게 지원을 하더라는 거죠. 의원실에서 얘기 안 해주면 이런 건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죠.


보좌관들 입장에서는 그게 불만이었던 거에요. 자기 거 챙기지도 못하고 지역구 관리도 못 하면서 왜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하느냐, 이런 불만이 있었고, 불만스럽게 제게 얘길 해 준거에요.


그러나 그게 제게는 감동이었어요. 저는 진짜 그런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거든요. 원래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는데, 된다면 저런 의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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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활동하던 노조 사무국장이 정치부 기자였는데, 청와대 출입하던 분이었어요. 그 선배가 저한테 누가 대통령이 되길 원하냐고 묻길래,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길 했더니,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아직 노무현 후보의 인기가 높지 않았던 시점이거든요.


그러더니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아서 기적처럼 인기가 치솟더군요. 저는 혹시 저한테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런 상황을 예견하는 신기 같은? (웃음)


 : 사실 SBS에서 엠바고를 깨고 처음으로 노무현의 경선 여론조사 결과를 먼저 보도해 버리면서 그 현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랬는데.. 아직도 마음속이 얼얼합니다. 그 분을 생각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바라보기 이전에 뭔가 감성적으로 품을 수밖에 없는 코드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대통령이 되자 이제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로서 참여정부와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을 수가 없게 된거죠. 당시에 양문석 방통위원과 제가 언론개혁시민연대에 투입이 되어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여정부와 그렇게까지 대립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폭력단체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고.. (웃음)


그리고 한미FTA 건으로 첨예하게 대립을 했었고, 방송영역에서 IPTV 문제도 다루기 시작했죠. 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 법안을 만들고, 그 법안이 야당의 당론으로 채택이 되고 여당과 협상을 하는, 이런 수순으로 가게 되는 거죠.



상당히 많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고쳐 보려는 사람들, 반대편에서 보면 뭔가 하나씩 삐딱한 사람들, 그들 거의 모두는 2002년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었다. 노무현은 그렇게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뭔가가 있었던 사람이다. 정치가로서는 더 이상 바랄 나위 없는 굉장한 강점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나 그걸 가질 수는 없는 그런 특이한 매력. 사람들은 그 매력에 매혹되면서 한편으로는 노무현을 통해 이 사회를 진짜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선 전의 이야기. 일단 당선이 된 이후의 노무현은 현직 대통령의 신분이며 우리나라의 행정부의 수반이 된다. 그리고 사사건건 행정부와 충돌하며 현재의 구조적 문제점을 어떻게 해서든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는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을 지지하고 배신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원래 일이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게 맞는 거다.


박근혜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일을 하는데 쓰질 않고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자신의 말에 단 한 번이라도 토를 달면 바로 잘라 버리는 식으로 제왕적이고 폭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이라면 당선된 뒤에도 변함없이 충성을 맹세하고 눈치를 봐야 하겠지만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닌 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제부터는 좀 더 확실하게 변화를 위한 노력에 매진할 것을 결심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지지한 대통령과 각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 민주공화국 하에서의 권력 운용 과정이다.  



 : 한미 FTA 건에 관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가? 그건 언론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 아니에요. 그 중에 시청각 영역에서, 컨텐츠 분야 같은 것은 관계가 있죠. 예를 들어 미드 같은 것이 자유롭게 들어온다거나 하는 문제는 당시로서는 심각했었죠.


 : 지금은 넷플릭스가 들어오고 그러는 중인데?


 : 그만큼 변한 거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올드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래도 플랫폼이 개방된다는 것과 제도화된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니까요.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문제하고 또 기자실 문제는 사실 방향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그 자체가 개혁의 코드일 수도 있고, 실질적인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정했어요.


그러나 제가 문제를 삼았던 것은 그런 변화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못질을 해 버리는 것은 독재적인 방식이고 폭력적인 변화라는 얘기였던 거죠.


 : 그걸 왜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하는가 하는 지적?


 : 그렇죠. 옳은 일을 하면서도 방법이 틀리다면 지적해야 하는 거죠.



이와 유사한 문제가 많았던 시절이다. 손쉽게 표현하자면 “성급했다” 라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구상한 사회는 당시 현실 속의 대한민국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이른 무엇이었다. 그래서 다수의 동의를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제한된 임기 속에서 가급적 많은 변화를 이룩하려고 하다 보니 수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좋은 목적을 가진 일에는 좋은 수단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어려운 명제를 임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많이 놓치기 시작했던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급했고 서툴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일까?  



 : 또,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 중에 방송통신 융합위원회 설치가 있었는데, 이걸 이행하라고 압박해서 법안을 만들고 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게 나중에 방통위로 발전해서 이명박 정권으로 가서 말아먹어 버린 거죠. 처음에는 그런 성격의 조직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 과정에서 실무적인 일을 맡게 된 겁니다. 방송통신 관련해서 뭔가를 하나 하려면, 각각의 관련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는 것을 느꼈죠.


 : 좀 더 설명해 주시라.


 : 방송통신 관련 법안은 이게 국가의 기본 기능 중의 하나인 방송과 통신을 하나의 산업으로 융합시킨다는 발상이거든요. 방통 융합의 시대가 온 것이고, 이를 위해 기구를 만들고 제도를 도입하고 법을 만드는 건데요. 바로 방송통신을 산업화시킨다는 겁니다.


그 부분에서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던 거죠. 방송법은 헌법에 가까운 아주 기본적인 법안이고 여기에 산업의 성격이 가미되는 과정에서 단독 법안, 특별법의 형태로 가게 된 겁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발상이 매우 편의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부분이 입법 공백으로 남아 있게 된 겁니다. 아주 아쉬운 일이죠.



사회 변화에 따른 예측의 어려움


 : 그렇다면 그 당시의 노력이 좀 부족했다는 뜻인가?


 : 그때까지만 해도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예측을 못 한 거라고 봐야죠.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최근 SKT가 CJ 헬로 비젼을 인수했습니다. SKT는 통신사업자이기도 하지만 IPTV, 즉 BTV라는 방송도 하는 기업이에요. 그걸 헬로 비전을 인수하면서 이미 상장된 기업을 상장 폐지를 하고 다시 우회상장을 하겠다는 모양새가 된 겁니다. 이 시나리오를 보세요. 자본의 농간과 장난이 얼마나 규모가 커지는 것인가..


 :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 것 같다.


 : 그렇죠.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고, 소액주주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겠죠.


헬로 비전은 케이블 사업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지상파 사업자와 동등한 규제를 받게 됩니다. IPTV는 통신에 가까운 별도 법으로 규제를 받죠. 완전히 다른 성격의 업체가 합쳐지는 셈인데요. 과거에는 이렇게 IPTV와 케이블 TV가 한 기업 안에서 겸업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 자체를 못했어요.


당시 입법 취지를 보자면 이런 변칙적인 영업은 허용할 생각이 없던 거에요.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딱히 그런 겸업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입법 공백이라고 표현을 한 겁니다.


 : 그런 형식의 기업을 상상도 못 했으니 딱히 금지하지도 못했던 것이고, 그게 법조문 상의 구멍으로 남았다는 것인가?


 : 이제는 그런 법조항을 놓고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대형 로펌들의 싸움이 되었잖아요. 그렇게 되어 버리니까 법이 없으면 그냥 해도 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이렇게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막 생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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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미디어 분야는 다른 어떤 사회적 분야보다도 더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시장이 변하고 시장이 변하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시장의 변화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오히려 시장의 발전을 제도가 방해한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러면서 실제로 벌어지는 것은 시장을 장악한 자본의 이익에 제도가 거꾸로 종처럼 부려지는 상황이 된다. 이 상황에서 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미리부터 제대로 된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 엄청나게 중요한 임무가, 뜻밖에 국회도 아니고 시민사회 진영에 맡겨져 있었다는 점. 정부의 재정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민단체에서 오로지 이 신념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에게 그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긴다는 것, 뭔가 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가?


아직 우리 사회는 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게 현실이다.  



그런 변화들 하나하나가 또 엄청난 수익이 오가는 문제가 되거든요. 시민단체들이 처음 IPTV가 도입될 때 플랫폼에 대한, 채널 편성에 대한 문제, 또 컨텐츠를 사용하고 전송료를 받는 문제 같은 것들을 논의했어요. 그렇게 되면 또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컨텐츠와 채널 배정 같은 것이 문제가 되죠. 이런 것들에 대한 원칙이 사전에 수립되어 있지 않으면 그야말로 엄청난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해 버리는 거죠. 그 법안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 엄청난 돈이 걸린 문제이니 이해관계자들끼리의 충돌도 막심했을텐데..


 : 전부 다 불렀어요. 양문석 위원하고 같이 이해관계가 걸린 기업들을 다 부르는 거죠. 다 불러서 테이블에 앉혀 놓고 집에도 안 보내고 무조건 결론을 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다그쳤죠. 정해진 기한 내에 입법이 되야 하고, 여기서 합의안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다그친 거에요.


워크샵도 하고, 엄청나게 몰아부쳤어요. 그런 활동들이 나중에 관련 입법 과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언론개혁 시민연대라는 틀을 통해 시민사회의 동력으로 남게 되는 굉장한 훈련과정이었던 거죠.


 :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런 전체적인 이해관계의 조정 같은 문제는 사실 시민단체 수준이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감당했어야 하는 일들이 아닌가 싶은데..


 : 맞아요. 당시 국회의 상임위원 소속 의원들은 아마 이런 얘기 들으면 불만을 가지실 수도 있을 거에요. 물론 이 분야의 현직 의원들께서는 제가 해 드린 것이 워낙 많으니까 불만이 있으셔도 말 안 하시겠지만.. (웃음)


 : 속으로 기분은 나쁠지도 모른다.


 : 그럴 수도 있어요. (웃음) 하여간 그런 과정을 모두 겪어 온 것은 사실이에요.



전문성, 그리고 소통을 위한 노력


 : 그렇다면, 시민사회 활동을 해 오면서도 사실상 정치인이 해야 할 일, 그 중에서도 특정 분야의 입법 활동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경험을 다 쌓으신 거 아닌가?


 : 전문영역의 시민단체들은 사실 대부분 그런 활동을 다 합니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 분들은 또 지역구 관리 등 정치적인 업무가 많으니까, 입법 활동에 관해서는 시민사회 진영의 지원을 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시민사회 진영의 전문적인 지원이 의원들의 전문성 제고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런 일들이 진행될 때, 의원들이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함께 같이 어울려 일을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는데, 지역구 활동 등을 핑계로 모두 빠져 버리고, 와보면 초안은 다 나와 있고, 이렇게 되니까요.


 : 그런 문제도 있을 수 있겠다.



실제로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문제는 언제나 도마에 오르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전문성이라는 것은 절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 사안을 집중적으로 마스터 할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고, 그 내용으로 업계 관련자들을 설득할 정도로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다른 이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한 새로운 방향의 해법, 그것도 기술적으로 타당한 제안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문성이라는 것은 놀면서 공짜로 얻어지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피눈물 나는 공부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런 실무 과정을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다 해준다면, 의원들은 어디서 그런 경험을 얻을 수 있겠는가?  



 : 16, 17, 18, 19대 국회를 겪어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의원이라면 이용경 의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공동대표. KT 사장 출신이고.


 : 그 분은 어떻게 하셨는가?


 : 상임위에 같이 있으면서 입법활동을 같이했습니다. 보통 의원들은 구체적인 내용들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어떤 의원들은 설명 시작하고 5분만 지나면 엉덩이가 들썩들썩합니다. 방송사 노조 출신이라서 제가 위원장이라고 부르고, 그 분도 저를 추 간사라고 부르는 어떤 의원도 그랬죠.


아이, 저, 추 간사~ 그러면서 자꾸 일어서죠. 그러면 제가.. 들어, 들어, 합니다. (웃음)



이 대목은 진짜 비디오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국회의원은 일정이 바쁘다. 행사도 많고 얼굴을 보여줘야 할 곳이 밀려 있다. 그런 사람을 붙들어 앉혀 놓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도망가려고 하는 의원 나리께 책상을 탁탁 치면서 앉아서 들으라고 구박을 하는 근엄한 큰언니 같은 시민단체 활동가의 모습이었다.  



그러면 의원이 막 신경질을 부립니다. 그러면 제가, 기분 나쁘면 실명 깝니다~ 하고 협박을 하죠.


 : 현직 의원을 협박한단 말인가?


 : 아니 키워드 몇 개는 알아둬야 하잖아요. 세부적인 사항까지는 모르더라도. 자기가 자기 이름 걸고 내야 할 법안인데.


이용경 의원 같은 경우는 보좌관하고 의원하고 둘이 앉아서, 그 모든 자료를 다 학습을 합니다. 머리 싸매고 앉아서 그 많은 자료를 다 읽어 보는 겁니다. 단어 하나하나 다 이해할 때까지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의원은 처음 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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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그게, 정치인 출신이 아니고 기업인 출신이라서 더 그런 것 아니었을까?


 : 그런 면도 있었겠죠. 물론 전체적인 의정활동에 대해서는 제가 평가할 수가 없어요.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요. 하지만 전문성이라는 부분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죠. 그건 학벌이나 경험 같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의지와 책임감의 문제죠. 자신이 주도하는 입법활동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거죠. 그런 부분에서 아주 경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게 쌓여서 전문성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기본적인 학술적 지식은 필수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학벌로 절대 감당할 수가 없다. 추 단장, 아니 이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인 추 후보의 지적은 매우 정당하다고 느껴졌다.  



 : 우상호 의원 같은 경우도 매우 스마트했던 것 같아요. 천정배 의원도 그런 흡수력은 매우 좋았어요. 그런데 본인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의 일은 안 하려고 그러셔서 문제죠. (웃음)


 :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포기하고 일어서 버리는 스타일이신가 보다. (웃음)


 : 그래도 임기 내내 이 분야의 일을 절대 손에서 놓지 않고 지켜주셨던 분 중의 한 명이죠.


 : 그래도 지금 언급되는 의원들은 매우 훌륭해 보인다.


 : 그렇죠. 그나마 제가 접했던 분들 중에서 그랬다는 얘기에요. 전병헌 의원 같은 분은 아직도 저를 만나면 자꾸 뭐라 하시죠.


 : 왜인가?


 : 아니 그게 뭐.. 저는 뭔가 좀 못마땅하면 그냥 실명을 까버리거든요. 뭐 민주당 모 의원 이래봐야 아무 의미 없잖아요.


 : 그렇게 안 보이는데 무서운 분이시다. (웃음)


 : 급한 입법 거리가 나오면 그냥 물어보죠. 누가 제일 반대해요? 그래서 누가 제일 반대한다, 그러면 그냥 바로 실명으로 언론에.. 미디어 오늘 같은 곳에..


그러면 바로 전화 오고 난리가 나죠. 그럼 전 전화 안 받고 숨어 있고..


그렇게 법을 하나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 그렇게 적을 많이 만들어서 정치를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는 건가?


 : 그런데, 그래도 제가 적이 별로 없어요. 양문석 위원은 뭐 적들이 많은데.. 성격 때문인가.. (웃음)


그래도 저는 뒷수습을 다 해요.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관리를 잘하죠. 아니 앞으로 계속 일을 같이해야 되는데 어쩌겠어요.



과감한 성격. 그리고 저돌적인 일처리. 장애물이 나타나면 즉석에서 치워야 하는 성격,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또 먼저 다가가서 화해를 하는 친화력. 이런 것은 활동가들보다는 오히려 정치인에게 걸맞는 성격이다. 추 후보는 그런 장점을 타고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어떤 규제기관 같은 곳에 가게 되면 저는 절대로 빈손으로 안 가거든요. 사실 시민단체가 그런 기관에게는 고생을 많이 시키는 존재에요. 안 해도 되는 일을 맨날 시키고, 뭐 안 해주면 맨날 떠들고 어디다가 찌르고 그러잖아요. 그러니 우리들을 좋아할 수가 없죠. 그래서 우리들이 나타나면 잘 보이지도 않고 피하고 그래요.


그래도 저는 가면서 뭐라도 사갑니다.


 : 박카스라도 사 가시는 건가?


 : 사업자들, 기업들은 뭐 좋은 거 사가겠죠. 저는 그런 건 못 사니까, 시장에서 파는 과일이라도 한 봉지씩 사가고, 다들 나눠 드시라고 내밉니다. 어차피 다 같은 고생하는 노동자들 아니냐는 거죠. 우리끼리 싸우고 그럴 이유는 없어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그 분들이 당황하시더라구요. 그런 시민단체 활동가가 없었겠죠.


이런 일들을 하면서 저한테 생긴 철학은, “품어서 녹여버리자” 에요. 싸워서 깨지 못하는데 녹이기라도 해야죠.


 : 잘 안 녹아서 탈 아닌가?


 : 제 경험으로는 그래요. 꾸준히 노력하면 소통은 반드시 됩니다. 어디든지 소통이 됩니다. 그게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거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절대 없어요.



누구나 아는 얘기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하지 못하는 일이다. 꾸준히 노력하면 소통은 이루어진다. 소통이 이루어지면 변화는 시작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꾸준함은 얼마나 큰 노력을 요구하는지..


사실 잘 엄두가 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실제로 해 왔고,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는 것은 아주 작은 희망이 저 깊은 곳에서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느낌이기도 하다.  




종편 승인, 장기집권 시나리오


 : 제가 언론개혁 시민연대 있을 때, 종편 승인 심사 자료를 행정소송을 통해 받아온 적이 있어요. 12만 장 분량이에요. 박스 몇 개가 아니라 한 트럭 분량이었죠. 그 자료를 검증 작업을 한 거에요. 몇 달 동안.


 : 도대체 몇 명이나 투입되었는가?


 : 재무 관련 자료도 있고 하니까, 내용이 어렵거든요. 그래서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교수님도 같이하시고, 그 외에도 여러분이 투입되어 다 뒤졌어요.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 행정소송의 결과 언제까지 자료를 제출하라고 명령이 떨어졌을 때, 1차로 자료를 수령하러 갔거든요. 카메라도 많이 오고 기자회견도 하고 그러면서 자료를 받아 오는데, 사실은 방송 사업자들이 제출한 승인심사 자료가 처음 공개된 겁니다.


그러니까 종편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심사기관에 제출한 자료인 거에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식으로 얘기들을 했었죠.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으니까요.



이 사건은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에 종편이 처음 생기고 나서, 시민사회단체들은 그 승인 심사 과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나아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심사과정은 보나마나 부당했을 터이고, 제출 서류만 모두 뒤져보면 확실히 절차적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들 생각했었다. 그리고 판결이 나왔고 서류는 공개된 것이다.


그 과정의 실무 책임자로 추혜선 후보는 활동하고 있었다. 눈알이 빠지는 고통을 겪어 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걸 한꺼번에 주지도 않고 나눠서 준다고 하길래 제가 막 짜증을 내면서 가봤더니, 사실 그 부서도 몇 명 되지도 않아요. 여직원하고 주무관하고 한 서너 명이 앉아서 이 많은 자료를 놓고, 거기에 담긴 개인정보들을 진짜 눈알이 빠지게 하나 하나 지우고 있는 거에요. 자료를 주되 개인정보는 지우고 주라는 판결 하나 때문에.


 : 아니 도대체 거기에 왜 그런 개인정보가 들어 있는 건가?


 : 이런 거죠. 방송사를 하게 되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누굴 출연시켜서 시청률을 얼마를 올리고 뭐 이런 기획들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거에요. 그런 자료도 승인 심사 때 다 제출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 자료들이 방송사당 한 백 권씩 되니까..


그걸 가지고 판결에 또 개인정보는 지우고 줘라 하고 나니까 실무자들은 쭈그리고 앉아서 그걸 일일이 다 지우고 있는 거에요.


 : 위에서 결정 내리는 사람들은 그런 실무자의 고통은 전혀 모를테고..


 : 그런 거죠.


저도 처음에는, 앗싸~ 한두 개 회사는 날릴 수 있겠다~ 하면서 신이 나서 검토를 했는데,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든 거에요. 그 사람들도 이 자료를 만들 때 또 얼마나 신경을 써서 만들었겠어요. 합법적인 테두리를 다 지키려고 노력을 했을 거고..


그 많은 자료를 읽다 보니까, 나중에는 짜증이 나더군요. 아니 도대체 왜 판결은 공개하라고 나서 이 고생을 시키나.. 자업자득이죠. (웃음)


 : 그 결과는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다.


 : 결국 탈법적인 상황들을 다 정리해서 목록까지 만들었죠. 어떤 결과가 나왔냐면, 우리가 너무 전문적으로 검토를 해버려서, 예를 들어 무슨 계량 평가의 산식이 잘못되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니까, 담당 주무관이 무슨 얘긴지 못 알아 듣더라구요.


재무분야부터 해서 각 분야별로 문제점은 무척 많이 발견했는데, 그 모든 것이 “허가 취소 요건”으로 연결되기에는 부족했던 겁니다. 최민희 의원도 이 문제로 무척 고생 많이 하셨는데 결국은 안되더군요.


 :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결국..


 : 그 여름에 땀 뻘뻘 흘려가면서 진짜 엄청나게 고생한 건데.. 아쉬운 일이죠.



권력 차원의 의사결정이란 이런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이의를 제기한다. 거기에 따라 무수히 많은 실무자들이 땀 뻘뻘 흘려가며 성공의 기약 없는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뒤집어 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흘린 땀이 과연 아무 의미 없는 것일까?


성공하지 못한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라면, 우리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라는 격언만으로 위로받기에는 우리가 쏟아부어야 하는 노력의 양은 너무 크기만 하고, 실패는 너무 가혹하다. 



 : 그 문제는 이미 최고 권력 차원에서 이미 결정 난 사항 아니었는가?


 : 그렇기야 하지만 그래도 워낙 급하게 했으니, 중대한 절차적 결함이 있을 것으로 봤죠. 또 너무 어거지로 진행을 했고, 거기다가 종편이 4개나 탄생을 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들도 아무도 없었어요. 심사를 받던 사람들도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당시 종편 심사위원장께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광고 시장의 현황을 봤을 때, 진짜 단 하나의 종편 방송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데, 도대체 어떻게 네 개나 승인이 날 수 있었던 거냐고 물어 본 거죠. 심사위원장 본인도 모르셨답니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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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 결국 위에서 내려온 걸로 봐야죠. 청와대에서 내려온 거에요.


결국 뭐 하나만 해 주면 다 섭섭해 하니까, 당선되는데 다들 도와줬으니까, 그렇게 다 해준 걸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더군요. 이건 그저 보상 차원에서 서로 해 달라고 하니까 그냥 해 준 게 아니에요. 아마 당시에도 이미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고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라는 겁니다.


기울어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뒤집어진 운동장, 언론의 역할을 마비시키고 공론의 장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세운 거에요.


 : 그러니까 종편 4개사의 사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그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 그런거죠. 종편들이 방송 개시하고 1년 지나면 시청률이 어느 정도 될 것이고, 그렇게 몇 년 지나서 대선 때가 되면 아주 안정되게 언론의 지형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의해 추진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기 위해서 종편들이 어느 시기에 가면 어느 정도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데, 어떠어떠한 지원들이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다 계획이 되어 있던 거에요.


 : 그 쪽이 그런 일은 훨씬 더 잘하는 것 같다. 권력과 자본이 있으니..


 : 아니 그 이전에 미디어 악법, 종편들의 신문-방송 겸업이 허용된 그 법도 하루아침에 만든 게 아니에요. 2년 동안이나 준비를 했더라구요. 그 유명한 여의도 연구소에서요. 외부에 알리지도 않고 다 준비해 놓고.


 : 정말 엄청난 일이다.



시민사회의 반격과 실패


 : 그래서 당신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라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2012년 대선 때를 기다리며 우리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준비했어요. 언론 생태계의 모든 안건을 포괄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모두 모아 80명 이상의 인력을 투입해서 수십 개 이상의 대안적인 예비 법안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준비하고 대선에서의 승리만을 기다렸죠.


그리고 망했어요.



대선의 패배는 문재인 혼자의 패배가 아니고 민주당 한 정당의 패배가 아니다. 지지자들만의 패배가 아니고, 사회 각 분야에서 정권 교체를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의 패배인 것이다.


별로 대수롭지도 않게 “망했어요.” 라고 말하는 추 후보의 목소리에는 절대 대수롭지 않은 실망이 담겨 있는 것처럼 들렸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하고 승리를 기다렸을까? 그리고 얼마나 낙담을 했을까?  



 : 그러니까 그 프로젝트는 일종의 언론 지형 전체를 고려한 최상층의 청사진 같은 것인가?


 : 그런 거죠. 미디어 생태계 복원을 위한, 단일 법안이 아닌 포괄적인 그림을 그린 거죠. 엄청난 펀딩을 했고,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갔고...


모든 연구는 좋은 결과가 나오려면 절대 공짜로는 안됩니다. 연구비 주고 과제를 시켜야 하고, 그래야 품질이 나옵니다. 진짜 악바리같이 돈 모으고 앵벌이 하고, 나온 결과를 다시 출판해서 돈을 또 모으고, 그걸로 연구자들을 또 모으고..


 : 아니 그러면 그 데이터들은 지금 어디서 썩어가고 있는 건가?


 : 아니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언론, 미디어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과제로 계속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더 발전되고 있어요.


이제는 미디어 환경이 스마트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잖아요. 그 변화 속에서 언론 환경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연구에 있어서 일종의 표준이 되는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은 거죠.


 : 그렇다면 그건 언론개혁 시민연대 활동, 긴 시간의 활동을 통해 얻었던 단편적인 경험들을 모두 집대성한 결과물이라고 봐도 좋은 것인가?


 : 예, 그렇죠.



시민사회단체들이 그저 그때 그때 저쪽에서 던지는 어젠다에 대응하며 반대만 하고 싸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장기적인 프로젝트도 가동된다.


싸움은 선빵이 중요하고, 이슈 파이팅은 어젠다를 설정하는 쪽이 유리해진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 우리 시민사회의 역량이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과거와는 다르다.


단지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부족한 자본력과 인력 문제로 인해 힘들어한다. 권력에 의해 자원을 공급받는 쪽에 대항해서 이쪽 진영이 싸워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감성적이고 선정적인 이슈에만 몰리는 대중의 관심과 지원이 이런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프로젝트에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뿐이다.


저 쪽에 대기업이 있다면 이 쪽에는 대중이 있다. 대중의 관심만 모인다면 이 저울은 어느 한 쪽으로 쉽게 기울지 않으련만, 아직은 대중의 관심이 그렇게 전문화되지는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대형 기획과 정책위원장 역할을 해내면서 제가 자리 잡게 된 포지션, 언론 운동계 내에서 제 포지션이 참 독특한 것 같아요. 시민운동 진영 내부, 또 사업자들, 규제기관들, 어디와도 소통할 수 있고, 뭔가 기획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에요.


 : 매우 긴 시간 동안 활동을 하면서 무조건 열심히 하신 것만은 아니고, 어떤 맥락과 큰 그림 하에서 움직이셨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그건 제가 혼자 하겠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죠. 조직 내에서 제게 어떤 임무를 부여해 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의 노력이 모인 성과일 것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조직에 워낙 사람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맡게 된 역할도 있고.. (웃음)


또 제가 고졸이지만, 가방 끈 무척 긴 양문석 박사가 오랜 동지였고...


사람이 전부다라는 얘길 하면서 민주당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고 그랬잖아요.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걸어온 그 기나긴 길을 모두 만나는 것이며, 어마어마한 일인 것 같아요.


양문석 박사는 SBS 시절부터 함께 했던 동지이기도 합니다. 외부 자문위원으로서 말이죠.



이 정도면 언론개혁 시민연대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어본 듯하여 이제는 정치인 추혜선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정치 신인이니만큼 도대체 언제부터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부터 묻기로 한다.  



소는 누가 키우는가?


 : 잘 알겠다. 이제 언론개혁 시민연대 활동을 하시면서 거대한 청사진까지 그릴 정도의 작업을 해 오셨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직접 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신 건가?


 : 사실, 학력에 대한 문제를 말씀드렸잖아요.


 : 그건 참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이긴 하다.

 

 : 같이 일하던 양문석 위원부터 시작해서 연구진들, 비밀요원들이 있어요.


 : 왜 비밀요원이?


 : 요즘에는 갈수록 시민단체 활동을 공개적으로 도와줄 수가 없어요. 무슨 정부 수행 과제 같은 것에서 모두 제외되기도 하고..


 : 학자들의 개인적인 경력에 흠결이 된다는 뜻인가?


 : 그것도 그렇고 다양한 불이익이 주어지죠. 또 업계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회사에서 싫어합니다. 회사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몰래 도와줍니다. 전문적인 일은 다 해주면서도 자신의 이름은 빼달라고 하는 요원들이 있다는 거에요.


그런 네트워크가 존재하니까 저의 학력 부족이 보완되는 점도 있었어요. 언제든지 요청하면 달려와서 도와주니까요. 그렇게 되면 미래부 같은 곳과 얘기를 할 때 그 쪽에서 짜증을 내죠.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잘 알지? 하면서 말이죠.


 : 다 뒤에서 비밀 요원들이 가르쳐 준건데.. (웃음)


 : 그런 상황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고집이 있었어요. 말씀드렸던 고졸 출신으로서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면서 생긴 철학일 수도 있죠.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면서 젊은 친구들이 입시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죠.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주류사회에서는 여전합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어요. 그런 곳에서도 아주 고질적인 학벌 문제는 많이 남아 있죠. 어떤 면에서는 이런 공간이 더 학벌 차별이 심할 수도 있을 거에요.


 : 그런 곳에서도 대표는 서울대, 뭐 이렇게 되는 건가?


 : 당연히 그렇죠. 다른 데보다 더 심할 수도 있어요. 하여간 어느 공간이든지 탈출구가 없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런 모습들을 없애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 그렇다면 그런 걸 깨트리는 선구자가 되고 싶었다는 것인가?


 : 사실 저도 방송대학을 무려 8년째나 다니고 있어요. 주변에서 다들 권유하기도 해요. 그러나 남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더 쉬울지도 모르어요. 여자들은 더 힘들어요. 놀 시간이 전혀 없어요. 지금도 집에 가면 집안일 해야 되고, 밖에 나오면 하던 일 해야 하는데, 도대체 언제 공부를 할 수 있냐는 거죠. 도저히 못하겠더라구요. 맨날 시험 때만 되면 뭐 그리 큰일이 터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졸업하고 학위도 따고 그러면 좀 낫겠죠. 지금도 어디 학회 같은데 가면 선생님들이 저보고 그냥 박사 박사 하시거든요.


 : 그거 학벌 위조 아닌가? (웃음)


 : 다 알아요. 알면서 일부러 불러 주는 거죠. 오래됐다고.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가진 경력, 열심히 일했던 경력만을 가지고 제도권에 진입해 보고 싶다는 거에요. 그런 첫 사례를 남기고 싶어졌어요.



학벌 문제, 진짜로 성차별 문제만큼이나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이다. 선진 문명국가들이라 해서 자유롭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누구나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젊은 시절의 경험이 다른데, 단지 그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 버린다는 것은 그 사회에 제대로 된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오랜 시간 현업에 종사하면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지식과 경험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강고한 높은 벽은 한 개인의 힘으로 깨트리기 정말 힘들다.


그걸 깨고 싶었다고 한다. 그걸 깨트린 첫 사례가 되고 싶어서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무모할 수도 있지만, 대단한 도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학벌 문제를 넘어 성차별 문제까지 도전을 해 준다면 더욱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양문석 위원 같은 경우, 시민단체 출신으로 방통위원이 된 겁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그를 보고 “거리의 방통위원”이라고 비하합니다. 심지어 진짜 박사학위 보유자인데도 말이죠. 이런 식이에요. 그런 사회이더라도, 정말 이 콘크리트 같은 사회의 문턱을 망치로 깨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었어요.


재작년에 방통위원 후보의 물망에 올랐던 거죠. 거기 계신 분이 “네 생각이 그렇다면 진짜 사고를 한 번 쳐보자, 한번 만들어 보자.” 하시면서 저를 후보에 넣으려고 공모에 응하라고 권유를 해 오신 거죠. 저를 설득을 하셨어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제가 접었어요.


 : 도대체 왜?


 : 소는 누가 키우냐고.. (웃음)


아니 이 자리에서 제가 빠지면 누가 대신할 사람이 없는 거에요. 거기다가 전임 방통위원이 양문석이었는데, 거기서만 대물림하냐, 자리도 몇 개 없는데 야당 추천 몫을 거기서 또 가져가냐, 뭐 이런 말들도 많겠죠. 하지만 결국 제일 큰 문제는 소는 누가 키우냐는 거였어요. 조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거죠.


거기다가 아이가 크면서 대학에 가게 되어 경제적인 문제도 속을 썩였죠. 뭐 여러 가지 고민이 겹친 셈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다들 밖에서 보면 내가 들어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또 아니잖아요. 그런 문제도 떠올랐고.


많은 분들이 권유하고 여러 가지 혜택을 주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포기했죠.


물론 마음먹고 들어가면 온갖 종류의 공격에 대응해 싸우고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고, 또 그럴 자신도 있었고 들어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사실 제가 유력 후보였거든요. 그래도 결국 놓아 버렸죠.


 : 그 기회는 그렇게 날려 버리고..


 : 그 뒤로도 계속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사실 소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도 또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아무리 재생산이 안 되는 시민사회 단체라 하더라도 제 뒤에 있는 후배들도 또 사무처장도 해야 되고, 정책위원장도 해야 되고, 그렇게 자리는 물려줘야 하는 거고요.


거기다가 제가 직접 뭔가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점점 강해졌어요. 맨날 권한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어린 시절부터 국회의원을 한번 해 보고 싶었던 그 꿈도 작용을 했겠죠. 아무 근거 없이 구름처럼 떠다니던 꿈이 이제는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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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격적으로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그 생각,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신 건가?


 : 재작년 방통위원 자리를 포기하면서부터요.


 : 아니 그럼, 국회의원이 하고 싶어서 방통위원 자리를 포기하신 거 아닌가? 더 높은 거 하려고!!


추 : 아니 그건 아니고, 일단은 소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웃음)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 현직 정치인이 된다는 것, 엄청난 권력과 각종 특혜가 주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훨씬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중요한 결정을 뭔가 단 한 가지의 계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그리 믿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추 후보는 유독 이 대목에서 말이 조금 혼란스러워졌었다. 그만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고 깊은 고민을 했었다는 증거로 간주할 수 있겠다. 어찌 되었거나 이제 그 결정은 가시화되었고, 한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되기로 결정을 한 셈이다.


과연 좋은 결정이었을까? 과연 타당한 결정이었을까?  



 : 당시 언론개혁 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도 제가 방통위원으로 가는 걸 말렸어요. 가면 뭘 할 수 있겠냐는 거죠. 차라리 좀 기다렸다가 의정활동을 생각해보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은근히 표현을 하면서 소를 키워야 된다는 얘기를 하셨죠.


 : 아니 그 바닥에는 소 키울 사람이 그렇게 없는가? (웃음)


 : 그게 빈말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출마한다는 결정을 하니까 안 말리시더군요. 아마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실 것 같아요.


사실 미리 말씀도 드렸지만 저는 정치활동 영역과 시민사회의 영역이 구분된다거나 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저는 아주 오래동안 그 양쪽을 왔다갔다 하면서 아무 거부감 없이 활동을 해 왔거든요. 냉탕 온탕 같은 거죠.


그래서 여러 가지 관점도 모두 이해하고, 비판도 할 줄 알고 그러지만 마음에 걸리는 한가지는, 제 언어나 표현이 정치적이지 않다는 점이에요.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 제가 미숙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평가에 동의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 그렇다면 미숙하지 않다는 의미인가?


 : 그걸 얘기하려면 제가 왜 진보정당을 골랐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요.


 : 그건 바로 다음에 물어볼 질문이었는데. 왜 민주당이 아니고 정의당인가 하는 질문이다.



거대야당을 고르지 않은 이유


 : 그 얘기부터 하죠. 제가 진보정당을 고른 이유는 이래요. 심상정 대표께서 먼저 얘기를 해 주셨어요.


 : 심상정 대표와는 예전 권영길 위원장 시절부터 친분이 있으셨던 건가?


 : 얼굴이야 알고 서로 대소사 같은 것은 챙기는 수준이었죠. 언니 동생처럼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심대표께서 대표 취임하고 사람들을 영입하려던 차에 처음으로 저를 만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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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아했던 것이, 뭐 제가 운동권 스타도 아니고 기껏해야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 골목대장 하고 있는 건데, 열심히 조직 일만 하고, 실제로 맨날 언론하고 싸우는데 언론이 키워주는 스타가 될 수 있겠어요? 그런 한계는 알고 있었죠.


심지어 언론에서 불편해하니까 정당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 있는데 왜 저한테 얘길 하시냐는 의문이었죠.


그랬더니 여태껏 진보정당에서 단 한 번도 언론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들어오면 정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사실 그 부분이 떠올랐어요. 그래도 정당에 들어가면 돈도 있고, 사람들도 있고, 뭔가 자원이 많잖아요. 그러면 뭔가 좀 더 마음먹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동력과 재생산의 문제에서 시민단체는 한계가 있거든요. 제가 빨리 자리를 비켜줘서 입이라도 한 개 줄이는 게 필요할 정도의 상황인데요 뭐.


그런데 심 대표님께서 저한테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는 거에요.


일단은 의정활동에 꿈이 있고 정치인이 되고 싶지만, 정당인, 정당 자체는 별로 목표에 없다는 말씀을 드렸죠. 그랬더니 이 부분(정당활동) 자체가 의정활동의 일부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제가 마지막에 만났을 때,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가 언론 운동을 하면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게 도입이 되면 이런 나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하면서 싸워 왔는데 그거 사실 너무 과장된 얘기라는 평을 받아왔는데, 하지만 어느새 현실은 우리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 더 나빠져 있다는 거에요. 그렇게 언론 환경이 악화된 데에는 보수여당과 보수야당이 모두 책임이 있다는 거죠. 양쪽 모두 각각의 정권을 잡았던 경험이 있고, 정책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권력에 의해 언론이 장악된 구조의 달콤함을 같이 누렸던 사람들인 겁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 해봤자 그거 지금의 야당이 여당일 때 만든 법입니다. 이것은 뭐냐면 원죄가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 발목이 잡혀 있어서 절대 개선이 안 된다는 겁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이러이러하게 개선을 해보자고 얘길 하면, 야당의 모 의원은 우리가 정권 잡으면 그게 또 우리 것이 되는데 그걸 왜 개선을 하냐고 할 정도에요.


저는 이왕 제도권에 가게 된 상황이라면, 양대 정당에 가서는 답이 없다고 판단을 한 겁니다. 기왕에서 언론 구조 개혁의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면 반드시 진보 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일단은 책임에서 자유로우니까.


 : 그건 양면의 칼이다. 당연히 언론 개혁의 화두는 진보정당이 던질 수 있다. 그러나 그걸 현실에 구현해서 입법할 능력이 없지 않은가?



여태까지의 정치판을 보자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진보정당들, 언제나 옳은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 주장을 현실화할 수 있는, 법제도로 현실 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누가 도와주겠는가?  



 : 아주 현실적으로 잘 말씀해 주셨어요. 그게 가능합니다. 진보정당의 의원이라면, 오늘날의 현실을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진보정당의 초선 의원이라면 총대를 멜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 총대를 메면 일이 시작되거든요. 제가 이 바닥을 들여다보면서 알게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가 없다는 거에요. 누군가 먼저 나서지를 않더라구요.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러니 일단 나서기만 해도 일의 반은 된 거에요.


거기다가 저 같은 사람은 보수 야당의 의원들하고 무척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일을 했잖아요. 그 분들하고 연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당장 최민희 의원이 MBC 녹취록을 터트리니까 바로 선거법 위반이라고 MBC가 때리고 그걸 연합이 받아서 확대 재생산을 합니다. 이거 별거 아닌데 왜 그러나 싶어도 당장 선거를 앞둔 사람에게는 이건 대추나무에 벼락 맞는 수준의 일이에요. 엄청난 거죠. 등에 칼이 꽂히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공동대응 연대의 틀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걸 모른체 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더라구요. 이런 일을 맞게 되면 의원 개인도 보호를 해야 되고, 언론 개혁의 문제는 초당적인 문제이니 공동 대응을 해야죠.


 : 그러니까 최소한 총대 메고 나서면 야당은 움직일 수 있다?


 : 그래서 제가 설 전에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어요. 민주당에게도 제안하고 국민의 당에도 제안해서 열었죠. 최민희 의원 잘 해줬다고 하고, 공동으로 대응하자고 하고, 공동 특위까지 만들어서 준비해 뒀다가 20대 국회로 넘겨서 제대로 하면 되거든요.


제가 경계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그걸 할 수 있어요. 연대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언론 개혁의 화두를 던지고 그걸 법제화하는 과정까지도 비록 소수당 소속이지만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건가?


 :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제가 해온 과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 그걸 계산을 미리 다 했다?


 :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웃음)


저도 정의당 후보로 비례를 받아 원내에 들어가겠다 하는 건 쉽게 말하기 힘들어요. 요즘엔 민주당이건 어디건 뭔가 정확한 보장을 하고 영입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저는 와서 제가 의제를 던질 수 있는 환경이 되는가 아닌가만 봤죠.


그런데 와 보니,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성과를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긴 해요. 그래도 또 정당이라는 공간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더군요.


 : 자원이 많다고 해서 맘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그렇죠. 그래도 저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요. 야권의 공고한 연대를 구축해서 막아야 해요. 언론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저들의 영구집권 시나리오에 언론까지 모두 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포함시켜 버리는 이 상황을 막아 내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단단한 야권 공조를 건설해야죠.


 : 중요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고, 막아야 하고 시간이 별로 없는데,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단한 야권 공조를 만들어야 한다?


 : 그렇죠.


 :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웃음)


 : 아니 사실 저는 그걸 자신해요. 그런데 걱정은, 실제로 최민희 의원 같은 분도 지역구에서 살아 돌아오시면 좋겠지만, 그 외에 언론을 전문분야로 하시는 인력이 별로 안 보입니다.


 : 팀플레이를 해야 되는데 팀원이 없는 상황?


 : 그런 거죠. 주도적으로 나설 사람이 거의 안 보여요. 저 혼자 서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친정 같은 공간, 언론 노조나 그런 곳에 부탁을 드렸어요. 원외에서 목소리를 좀 내달라, 푸시를 좀 해 달라는 거죠.


언론이라는 것이 정치판에서 보기에는 무지하게 불편하긴 하지만, 이게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거죠. 언론의 물꼬를 터야 사회 전반의 개혁이 가능해지는데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하는 거죠.



엄청나게 중요한 이야기이다. 언론의 구조가 왜곡되면서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언론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언론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정치인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는다.


이것은 정확하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상황이다. 누군가 나서서 방울을 달면 좋아지는데,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면 먼저 죽게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자신이 나서서 끊어 버리겠다고 주장하는 겁 없는 신인 정치인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말은 그렇게 허무맹랑해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가능해 보인다. 그가 살아온 경력이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지는 있는가?


 : 그렇다면 이런 의제를 제시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별도로, 스스로 타고난 권력의지, 권력욕은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 저요?


 : 이 문제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게 없으면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 여기 와서 그런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겠어요. 모두가 다 그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들 하시더라구요. 물론 맞는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 권력욕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제 개인적인, 사적인 욕심인지, 아니면 제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목마름인지..


 : 사적인 욕심이라면 권력 잡아서 돈 벌어 호의호식하겠다 뭐 이런 건데 그런 것 말고, 또 권력을 잡아서 뭘 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순수한 권력 그 자체에 대한 열망을 의미하는 거다.


 : (웃음) 저는 권력이라고 표현을 해도 좋고, 권한이라고 표현을 해도 좋은데, 이 권한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매우 긴 시간 동안 아주 깊게 절감을 했어요. 옆에서 너무 오랫동안 봐왔죠. 그게 안 되니까 이제 직접 제가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웃음)


 : 그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못해서 보기 안타까워서? (웃음)


 : 순수한 권력 자체에 대한 욕망이라..


저는 정치인도 키워지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하루아침에 신인을 발굴해서 내놓는 것은 너무 속성이라는 거죠. 선거에서도 어느 한 순간에 스타가 되고 꺼지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연예계가 아니잖아요.


저는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아주 좋은 멘토를 가지고 싶고, 다행히 저는 심상정 대표와의 만남이 매우 운명적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가장 목마른 시점에, 그리고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을 한참 하던 그 순간에 먼저 연락이 왔고, 그리고 당대표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의 리더십을 아주 근거리에서 지켜보며 배울 수 있다는 행운을 잡은 거죠.


어떤 정치 신인이 당대표를 이렇게 근거리에서 보고 배울 수 있겠어요.


처음 만났을 때 정치를 하고 싶다, 생각을 하고 있다, 준비하고 있다는 의지를 표현을 했었는데, 그게 엄청나게 마음에 드셨나 봐요.


 : 바로 그거 같다. 정치를 하고 싶다, 정치를 준비하고 있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에 권력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법인데, 바로 그런 경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오늘 얘기를 계속 나누다 보니, 사실 제가 어려서부터 살아오면서 조금씩 조금씩 정치적인 코드들이 내면에 누적되어 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게 권력에 대한 의지일 수도..


그리고 그게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발현되고 있는 것 같네요.



권력욕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명예로운 권력욕은 위대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내부에 그런 권력욕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아주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단순한 물욕을 권력욕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과연 추혜선 후보는 어느 경우에 속하는 걸까? 


어찌 되었거나 인터뷰는 슬슬 마무리되어가고 약속된 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 이제 건강은 어떠신가?


 : 신장이 나빠졌다는 얘기는 아주 오래전 얘기고, 정치활동 하기에 전혀 부족함 없이 충분히 건강해요.


 : 취미생활은?


 : 산에 가는 거 좋아하고, 낚시를 좋아해요.


 : 아니 낚시라니.. 섬마을 출신 답게..


 : 유시민 씨도 낚시 좋아하시고, 노회찬 대표도 낚시 좋아하시고..


추석때 쯤 되면 완도에 돔 어장이 형성되거든요. 볼락도 물고.. 봄이 되면 도다리.


 : 하아...봄 도다리..


 : 낚시는 성과급이잖아요. 골프 백날 쳐봐야 뭐 나오나요? (폭소)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치인 인터뷰하다가 낚시 얘기에 이렇게 기습적으로 당한 것은 처음이다. 배 타고 고기 잡으러 나간 지가 도대체 몇 년 전인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바다가 보고 싶은 동시에 봄 도다리 때문에 입가에 침이 고이고 있었다. (아니 이런 얘기를 도대체 왜 여기다 쓰고 있는 거야.. )


이렇게 인터뷰를 마치려고 하는 참에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서 좀 더 얘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 내부자들 영화를 봤어요. 두 세 번 봤습니다. MBC 녹취록도 비슷한 내용이죠. 추악한 뒷거래에 관한 이야기.


제가 언론계 뒷 얘기를 잘 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내부자들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묘사입니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은밀한 일상을 드러낸 것뿐이죠. 성적인 코드들 역시 모두 다 사실로 드러났잖습니까? 장자연 씨 사건 때.


거기 보면 마케팅 파트너쉽이라는 얘기가 나와요.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언론, 재벌, 정치권력이 실제로 마케팅 파트너십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방송사 앵커들조차 재벌가에 혼맥 인맥으로 따지면 관련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이미 평정되었다는 거죠.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라도 나서서 미세한 균열이라도 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종편들은 이제 거의 재벌들이 진입을 한 거죠. 처음에는 재벌들이 소유구조에 제한이 있으니까, 이제 재벌 이외의 자본들을 끌어모았는데, 그야말로 더러운 돈들이었거든요. 그들이 그런 자본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어요?


우리는 처음에 조소했어요. 저 저질스럽고 수준 낮은 내용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겠냐고 비웃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거기에 젖어들기 시작해요. 정신을 차려보니 야당이 무력화되고 있었어요. 종편은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그게 미디어의 힘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정치를 바라보면, 안타깝게도 거대담론뿐이에요. 디테일을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야말로 진짜 디테일이 중요한 시점이 왔다고 봅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잖아요. 디테일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거에요.


이제는 그 디테일을 정확히 알고, 그 디테일이 무너지지 않도록 막아낼 수 있는 정치인들이 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 정치인들이 연대를 구축해서 막아낼 수가 있죠.


 : 그 디테일이 바로 전문성의 다른 표현 아닌가?


 : 바로 그런 거죠.


 :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판으로 유입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런 면에서 추 후보의 경우는 아주 바람직한 케이스 아닌가 싶다.


 : 그렇게 봐주시면 고맙죠. 저는 고집스러움이 좀 있어요. 활동에는 유연하지만, 결과에 대한 고집이 있다는 거에요.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저는 분명히 의제를 설정하고자 합니다.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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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걱정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활동을 해도 전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언론이 보도를 안 해준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고,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는 전략을 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 그게 바로 언론의 문제 아닌가요? 그런 언론환경을 고치자는 것 것이 제가 제시하고 싶은 의제라는 거죠.


 : 정말로 어려운 문제다. 좀 더 듣고 싶지만 이제는 정말로 마무리해주실 때다.


 :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도 즉석연설이 미흡해요. 부끄럽고 민망해서. 6개월 정도 있다가 다시 만나면 달라진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딴지일보 독자 여러분들께 제대로 된 인사를 드리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싶습니다. 그때는 후보가 아니라 의원의 입장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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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장이자 비례대표 후보인 추혜선 후보와의 기나긴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 출마한 후보로서 하는 최초의 언론 접촉이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힘들어하고 연설을 민망해하는 것,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아 보였다. 특히 언론개혁의 관점에서 정치판 최초로 직접적으로 언론사들과 충돌해 온 시민사회 진영 출신 인사라는 점. 비록 고졸의 여성이지만, 실질적인 전문성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방송,통신,미디어 전문가라는 점은 추혜선 후보가 가진 가치를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거기에 만약 추혜선 후보가 의회에 입성하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학력차별과 성차별의 두꺼운 벽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롤 모델이 되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빈약한 정의당의 지지율에 비추어 봤을 때 추혜선 후보가 의원 배지를 달고 20대 국회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이제까지의 관습대로라면 이런 스펙의 전문가를 정당에서 영입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오히려 그 뒤에 벌어질 가능성이 더 많다.


이 사회를 장악하고 권력과 결탁하고 있는 메이저 미디어들이 자신들을 향해 칼을 갈고 있는 이 초선 비례 의원을 내버려 두겠는가 하는 점이다.


부디 살아남길 기원한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권력과 언론과 재벌의 강고한 연대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내 주시길 부탁드린다.




  • ?
    변화 2016.04.23 10:36

    이 사람,
    추혜선
    추혜선 당선자의 삶과 실력이 결코 녹녹치 않음에 축하와 경의를 표한다.

    보수색채 일색인 안식교단에서 이런 인물은 의외다.
    교단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크게 환영할지..
    애써 무시할는지...? 지켜볼 일이다.


    교회가 꽃다발을 다발..다발로 걸어주어야 마땅할텐데....말이다.



  • ?
    변화 2016.04.23 20:22

    교회 유명목사,강사,교수님들 설교(강의)에 자주 소개되는 유명(?)인물들.
    미국 상원 원목 베리블랙목사,자메이카 총독,이승만대통령 주치의 등,
    이번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전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벤 카슨도 있지..

    이들 소개 요점은 이런 휼륭한 인물들이 우리교인이니
    자부심 갖자 뭐.. 이야기일게다.
    안식교에서 최초로 배출된 국회의원 추혜선님을 교회가 어떻게 소개하는지 난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추혜선님이 속한 정당은
    고양시,창원시 지역구에서 심상정,노회찬을 국회로 보낸 "정의당"이다.

  • ?
    변화 2016.04.24 19:34
    추헤선님은 인터뷰에서 분명 안식교인임을 밝혔는데
    교단(호남홥회)에서는 교인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는 현실.

    당선자가 새누리당 소속이래도 그랬을까?
    당선자가 정의당이라니 아 뜨거라!
    하는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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