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교회가 없다고 하는 말?-조회수 43 이후에 수정함.

by fallbaram posted Aug 04, 2016 Likes 0 Replies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일간 민초1님이 자신은 재림교인이 아니라고 천명하면서도

한국 재림교회의 사정을 1980년에 조국을 떠나 살고 있는 나 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세밀하게 알고 계신다. 그래서 재림교회의

아킬레스와 구조적 그리고 성서적 모순이라고 판단이 되는 부분에

어느 누구 보다 일가견 내지는 진단이 매우 통렬하다.

때문에 그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분이신가?

하는 궁금증이 계속된다.


오늘의 주제는 "재림교회의 포로됨" 이라고 하는 주제이다.

구약성경에서 줄창 다루어 온  "작은 주제" 가 아닌 "큰 주제"

이기에 한마디 하고 싶어 졌다.


이스라엘은 한번 남방왕의 나라인 이집트의 파라오에 의해서 포로로 살았고

또 한번은 북방왕의 나라인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다가 귀향한다.

그리고 그들이 또 한번 마지막으로 포로되고 있는 현상은

모세에게 준 율법의 성소안에 복음의 성소인 예수를 가두는 현상이다.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을 "종" 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에게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속에서 종이 된 역사가 없다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적은 종된 상태에서 아들이 됨으로 옮겨가는 것을

율법에서 복음으로 옮겨감이라고 하는 것을 누누히 말씀하신다.

첫 아담은 아들로 지음을 입었지만 "무언 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을

통한 하나님과 같이 됨"의 유혹으로 그는 뱀의 노예가 되었다.

그 첫째를 다시 아들로, 자유하는 자로 돌려 세우기 위해 십자가라고 하는

복음을 주셨고 그 복음으로 우리는 자유하는 아들 이삭으로 사는 것이다.


참고로 남방 (애급)의 포로됨에서 그들이 나올 때의 이유도 "사흘길을

광야로 가서 희생을 드리겠다" 고 하는 성소적 회복을 암시했고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 오는 목적도 성전을 회복하는 일이었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율법적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소의 포로가 되어

지성소라고 하는 울타리에 돌아가신 아들을 가두게 된다.

지성소에 들어 가셨다는 말이 더 중요한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가 더 중요한 말인가?


사실 이상의 설명들을 문자로 읽으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그림으로 이해하면 더 선명한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요즘에 재림교회의 정통적 소속이 될 수 없는 사정으로

곁으로 나와 있는 한 소수의 그룹들의 요청에 의해서 그들을 위해

설교를 하고 그들과 함께 재림교회의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속에서 독립적 교회를 설계하고 있다.


"재림교회의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범위속"

이라고 하는 말은 나의 표현이기 보다는 그룹들이 원하는 표현일 것이다.

시조사를 통해서 받은 교회지남과 시조도 그들은 읽고 있으며

일부는 야영회도 참석하고 있다.


사실 접장님이 말한대로 "더 나은 교회 천지에 널려 있다" 는 말을

십분 이해하고 있고 민초님이 말한 바 "재림교회의 포로됨" 이라고 하는

말도 십분 이해되는 글이다.


다만 "더 나은 교회" 는 여기에 있거나 저기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아니 내가 드리는 신앙속에 있다.

아벨이 드리는 제삿상에 올려놓은 그것이

가인이 드리는 제삿상의 그것보다 더 나은 제사였던 것 처럼.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는 "예루살렘 산이요 아니면 그리심 산이요?" 를

묻는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

다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신 그런 예배이다.

그 "신령과 진정" 의 원어적 표현은 "성령과 진리-예수"를 말한다.


요즘에 "신령과 진정" 으로 풀어가는 설교에 적은 무리가 한마음이 되고

있다. 포로됨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마음이 싻이 트고 있다.

어제도 삼육과 재림교회의 교리와 문화를  부모님 때 부터

받아서 어찌보면 재림교회의 "포로된? 한 가정주부가 " 기별의 핵심중 하나인

조사심판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고 물어 왔다.

어디를 가야 할 바쁜 중에서 대충 삼사십분 성경의 줄거리를 더듬으며

"신령과 진정" 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그들이 "신령과 진정" 이라고 하는 설교와 강의

그리고 예배를 드리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나도 교주가 될 소질이 다분한가?


있는 곳에서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만의 설교나 예배가 불가능인가?

그렇다면 그곳이 포로됨의 현장이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