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잇의 글을 보며

by 청교도 posted Jun 26, 2011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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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잇의 글, 소위 예언의 신을 바라보는 시야는 치밀한 학구적 분석이나 반면 맹신적인 축자적 계시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것처럼 영원한 세계를 지목해주는 성경의 진정한 의미가 내재된 영혼에게는 성경의 울림과 동일한 울림이 그녀의 글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취사하여 조각조각내고 팽시켜버리는 시대에 예언의 신을 선지서의 무게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일반이 그 가치를 알길 없는, 아는 자들만 아는 택한 자들만의 가보 같은 성격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예언의 신이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안식교 안에서의 소위 바리새파적 색채 때문입니다. ‘실제를 접촉하지 못한 영혼들이 그 위대한 책들을 옛적 유대사회의 유전화, 탈무드화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과 구주를 발견치 못한 저들의 편협한 박학다식은 소리 나는 괭과리가 되고 참된 길을 오도시키는 악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예언의 신은 병약하고 심리 불안정한 소녀의 글이 아닙니다. 그 글은 천진하고 단순한 심령을 찾는 세상을 향한 하늘의 통로가 된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성경의 고어적 표현 속에서 신비주의 시선으로 향하는 현대와의 시대차이를 좁혀주며 무딘 영혼들에게 생염의 말씀이 살갑게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배려한 큰 하늘의 지혜입니다.

 

많은 학문과 철학적 시선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은 것처럼 무거운 학식을 짊어진 자보다 아이의 천진한 심령을 소유한 자들이 천국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많은 지식은 교만케 하고 근심을 더한다는 지혜자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말씀입니다. 크게 변질하고 타락한 자들도 처음에는 감지가 어려울 정도의 미세한 각도의 차이였을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각도는 크게 벌어져서 불만과 의심의 싹은 자라나고 흑암과 멸망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새 자녀 지도법뿐 아니라 화잇의 글을 도외시하고 버리는 것은 우매한 자의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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