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요청에 의해서 내용의 일부를 수정합니다.

by fallbaram posted Jul 20, 2016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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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로소 한달간의 구류에서 출옥을 하고 하도 궁금해서 카스다 게시판을

들렸습니다. 거기서 토론방으로 건너 갔다가 제멋대로 히브리서 9장을

하늘에 옮겨 놓고 거기다가 1844 라고 하는 회칠 까지 한 자들의

변론과 궤변을 듣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의 내용의 핵심은

딱 두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째는 두개의 다른 성소를 말합니다.


1.

모형의 성소, 사십년에 걸쳐 있는 모세의 성소, 짐승의 피로 날마다 드리는 불순종의 제사

원형의 성소, 사흘에 걸친 어린양의 성소-십자가, 아들의 피로 단번에 드리는 순종의 제사


두번째는 두개의 다른 반차로 된 대 제사장을 말합니다.


2.

아론의 반차로 된 모세의 성소의 대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로 된 어린양의 성소의 대 제사장입니다.


그외에도

히브리서 1장 1절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상의 말씀에서 관찰하는 것은 모형과 원형의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모형의 것은 여러명과 여러 종류의 다양한 연기자들이 단번이 아닌

날마다 반복하는 것이고

원형은 그 여러명이 제각기 해야 할 기능과 역할을 혼자서 그리고

단번에 한다는 것 입니다.

예를들면 예수님 혼자서 왕과 선지자와 그리고 제사장의 역할을

하시지만 모형에서는 한명이 하지 못하며 단번에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모형은 미완성이지만 원형은 완성이라고 하는 의미에서도

다른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에 꽉차 있는 이 내용)


그래서 멜기세덱은 왕같은 제사장이고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서

우리도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베드로도 거들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한가지

모세의 성소의 회막과 번제단과 물두멍과 떡상과 촛대와 법궤와

시은소와 성소및 지성소가 몽땅 한분이신 어린양을 가리키듯이

예수님은 이미 지성소요 성소요 모든것이 되십니다.

그가 희생의 양이 되시고  동시에 제사장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성소와 지성소가 분리되어 하나는 땅에서 하나는

하늘에서 성소가 성소로 들어가고 지성소가 지성소로 들어가는

모형적 개념을 적용함은 누가 항상 말하기 좋아 하듯이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반차가 완전히 다른 대세사장의 취임이나 기능을

아론의 반차로 이해하려고 하는 그것 자체도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입니다.


아론의 반차에서 기능하는 대제사장의 직무는 단순히

속죄를 위한 기능이지만

멜기세덱의 반차에서 기능하는 대제사장의 직무는

속죄를 넘어서 복을 빌어주는 기능임을 감안할 때

더더욱 언어도단이 될 것입니다.


추가된 수정 내용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세상끝이 앞으로 오고 있는 시간적 종말이라고 봅니까.

1844년을 거치고 조사심판도 거친다음에 오는 세상끝입니까?


히브리서 1장에는 이미 그 세상끝에서 쓴 편지서가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과거)


예수안에서 일어나는 두개의 마지막 사건


초림 (마지막 날 또는 세상 끝 그리고 단번에,속죄를 이루사 기 위하여)


히 1 장 1-2절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9장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장 26절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재림  (두번째,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히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초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재림)


히 10장 37절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초림과 재림의 사이는 "잠시 잠깐"이다.

"속히 오리라"이다

비록 이천년이 지나고 또 다시 천년이 지날 것이라 해도

그것은 잠깐 이어야 하고 속히 오리라가 되어야 한다.


구원론에 필요한 두가지 조건은

속죄와 그 속죄에 대한 죄인의 믿음이다.

단번에 드리신바 되었다고 함은 속죄가 이루어 짐이요

그 속죄 때문에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믿음의 행위)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남이 재림이다.

속죄의 다른 의미는 은혜이고 은혜의 왕국이라 말하고

초림과 재림의 사이 또한 은혜의 기간이지

조사의 기간이 아니다. 심판은 더더욱 아니다.

십자가의 피로 지워지지 않는 죄가 있다고 믿는 것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주홍보다 더 진한 죄가 있는가?

그래서 조사가 필요한가?

재림의 때 까지 어린양을 바라며 그의 피에 날마다

두루마기를 빠는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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