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 꺼리 하나 던져놓고 모닥불을 지피던지
시한 수 근사하게 써 올려 놓고 다 사라져 버린 여심들 찾아
갈대의 순정을 노래하던지
그도 아니면 정치 이야기 끼어들어 환멸에 환멸을 불러내며
흑돌과 백돌 굴려 가면서 시비 한번 붙어 보던지 해야만
할 것 같은 이 조용한 민초에
이놈의 돌나라 이야기 시리즈로 자갈마당을 만들어 가고 있는
내 꼬라지가 엄청 미안하고 엄청 창피하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교회의
교리 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할 주제이고
소위 성소진리를 더 이상 진리로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이며
나의 신앙고백의 근간이 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돌에 맞아 골리앗과 금신상은 넘어지고 부서지지만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했다.
기름부은자 즉 택함을 입은 모퉁이 돌이신 분을 시온에 두었다 하는
의미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이 평행선을 달리는 약속이고 예언이다.
그 예언이 이렇게 계속된다.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여기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대상인 "그"를 놓고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견해와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는 견해가 팽팽하다.
재림교회는 "그" 를 적그리스도로 보았고 또 그 세력에 의해서 때와 법이
변개되었다는 견해를 받아 들인다.
그러나 성경의 흐름은 뜨인 돌의 역사는 오직 적 그리스도인
금신상이나 골리앗만 무너뜨린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일석 이조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시온의 산에서 "뜨인 돌" 인 십자가는 금신상 (이 세상 임금들의 역사)을 무너
뜨리고 동시에 이스라엘의 옛 성소의 제도를 무너 뜨렸다. 이스라엘의 처음 왕도
다윗의 돌팔매로 무너지게 된다.
실로 십자가는 이 세상 왕조의 몰락을 의미함이요
동시에
십자가는 율법의 마침이요
지성소의 휘장을 찢음이요
그래서
"다 이루었다"이다.
이 세상 임금들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육적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와 제도와 시간과 때를
영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도 이 세상은 이미 십자가로 인하여 심판받고 죽은 왕들이 모여
아마겟돈을 준비하고 있고
한쪽에선 무너진 성전의 모든 조각들을 붙혀서 육신에 주었던 옛 성소의 것들을
새 성소인 예수와 함께 진리로 일으켜 세우는 황페한 일들을 하고 있다.
나방이 되어 누에고치를 탈출한 그리스도는 건드리지 못하고
옛성전인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소를 더럽히는 실속없는 그
가증한 것들"과
십자가에서 다 이루고 마쳤기에 올라 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를
마가복음 16:19 히브리서 10:12 히브리서 8:1 히브리서 12:2 히브리서 1:3
뒤늦게 다시
지성소에 일으켜 세워서 십가가를 일컬어 이미 종말이라고 하고 마지막이라고 헸음에도
다시 연대를 만들고 또 지성소라고 하는 방에 가두어 세워둠이
정말 미안하고 창피한 일임을 어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