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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국사 연구자가 보는 국정화 “박근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객관적인 당사자가 아니다”워싱턴|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해외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도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큰 관심사이다. 자신들이 대학 강단에서 한국사 교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아시아학과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도널드 베이커(70)도 그 중 한 명이다.

일본 교토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베이커 교수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의 좌파 역사학자들의 일부 역사 기술에 불편함을 느끼고, 또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응하는 반대 진영의 태도 역시 이 문제를 과도하게 정치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그 답이 국정화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역사는 본디 어지러운(messy) 것”이라며 “역사 수업을 들은 뒤 학생들은 더 많은 질문을 품고 교실, 강의실 문을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국정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서 한국 현대사에서 객관적인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이 이러한 논쟁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 내 국론 분열을 치유하는데도 좋지 않다고 했다. 1970년대 광주에서 한국 생활을 처음 한 인연으로 한국사 연구자가 된 그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에서 제주와 광주의 민중항쟁을 과연 다루기는 할 것인가 의문스럽다고도 했다. 다음은 베이커 교수와의 일문일답.


ImageProxy.mvc?bicild=&canary=r5PV1C6M3R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신은 조만간 영국 라우틀리지(Routledge) 출판사에서 출간될 <동아시아의 기억과 화해(Routledge Handbook of Memory and Reconciliation in East Asia)>라는 교과서에서 한국 내 기억의 충돌에 대한 장(章)을 썼다. 한국에서 기억의 충돌이 벌어지는 장(場)으로 일제 식민지 경험(1910~1945년), 한국전쟁(1950~1953년), 박정희 체제(1961~1979년), 그리고 광주의 비극(1980년 5월18~27일)이라는 네 시기를 택했다. 그 이유는?

“나는 1971~1974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광주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 곳에 친구들이 많다. 1980년 5월에도 짧게 머물렀다. 정부군이 5월17일 광주에 재진입한 직후였다. 그래서 나는 광주 논쟁에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다. 그 외의 나머지 세 이슈들은 나의 한국사 수업 시간에 다루는 것들이다. 이 수업 시간에는 꽤 많은 한국에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들어온다. 역사 선생으로서 내 학생들에게 역사편찬이라는 이슈에 대해 노출시키기를 원한다. 이 네 가지 이슈들은 폭넓은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것들이다. 내가 20세기 한국사와 관련해 학생들이 가장 많이 토론했으면 하는 주제들이다. 그래서 내가 동북아의 기억과 화해에 대한 이 책의 한 장을 쓰도록 부탁 받았을 때 어렵지 않게 이 주제를 택할 수 있었다.”

-기억과 화해가 중요한 이유는?

“나는 이 책의 에디터는 아니고 에디터는 김미경 히로시마대 교수다. 한·중·일이 위안부, 난징대학살 등 역사 문제로 논쟁 중인 상황에서 김 교수가 있는 히로시마 평화연구소가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기획한 장기 프로젝트다. 역사는 단지 사실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역사는 사실들을 어떤 의미있는 프레임에 따라 조직하는 것이다. 역사는 개인들의 기억이 아니라 집단 기억에 관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일제 식민지 시기를 직접 겪지 않았어도 그 시기는 집단 기억으로 전해진다. 기억은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는 동북아 각국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학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왜 사람들이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지, 왜 어떤 기억들은 서로 충돌하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억은 아주 감정적이다.”

-화해라는 말은 결국 충돌하는 기억을 전제하는데 한 사회가 어떤 사건들에 대해 충돌하는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꼭 나쁜 것인가?

“충돌하는 기억은 협력을 어렵게 한다. 나는 미국 태생이다. 미국의 남부 중에서도 아주 골짜기 출신이다. (어디인가?) 루이지애나 출신이다. 당신은 남부연합기가 150년이 지난 뒤에도 논쟁이 되는 것을 보고 있다. 미국 사람들의 남북전쟁에 대한 기억은 매우 다르다. 일각에서는 그 깃발을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인종차별의 상징이다. 남부 주의 일부 사람들에게 남북전쟁은 주(州)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운 전쟁이고, 북부 사람들에게는 노예 해방을 위해 싸운 전쟁이다. 화해하기 어려운 두 기억이다. 어쨌든 그 충돌을 극복해야 하는데, 기억을 바꾸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 왜 그 사람들이 그런 기억을 갖게 됐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어떤 일본 사람들은 식민지 시기에 일본이 한국을 도왔다고 믿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런 식으로 기억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충돌이 일어난다. 그 사람들의 기억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서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억의 충돌이 존재하는 것은 나쁘다는 말인데.

“적대감을 키우고, 협력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안좋은 것이다. 그러한 충돌은 한국 내, 일본 내의 진짜 문제들에 집중하는 대신에 과거 속에서 살도록 만든다. 내가 말하는 진짜 문제들이란 가령 북한이 갑자기 붕괴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좀더 창의적으로 만들 것인가, 조기에 퇴직하면 노후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등의 문제이다. 나는 한국의 수많은 택시운전사들이 대부분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었던 것을 알고 놀란다. 이렇게 한국이 직면한 문제들이 많은데, 왜 국회는 늘 과거사 문제로 싸우고 그러는 것인가. 적대감을 키우고 협력을 더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기억의 충돌은 화해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한국인들이 특별히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역사에 집착한다고 보는가?

“모든 나라가 그렇기는 하지만 한국이 좀더 그런 것 같다. 한국은 유교 전통이 있고, 역사는 언제나 윤리적 차원에서 다뤄졌다. 역사를 윤리에서 분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미래에 대한 지침이 되기를 기대 받는다. 지금 쓰는 역사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인식이다. 게다가 한국은 매우 논쟁적인 현대사를 갖고 있다. 식민지배를 겪은 뒤 분단 됐고, 1950년대에는 전쟁의 잿더미를 경험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이 역사에 대해 더욱 민감해 하는 것 같다. 미국도 베트남과 싸웠지만 베트남과 화해했다. 북한은 그 전쟁에서 7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더 중요한 일이고, 역사가 현재에 좀더 강한 지침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ImageProxy.mvc?bicild=&canary=r5PV1C6M3R1979년10월 열린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환영만찬장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리 총리 양 옆에 앉아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에 대해 얘기해보자.

정부가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지 명령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나는 이번에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너무 좌파적이지 않느냐를 두고 논쟁에 임하는 양측의 논지를 모두 경청해봤다. 내 인상은 양측 모두 역사에 대해 과도하게 역사를 정치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측 모두 역사교과서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현대사 해석을 약화시키는 팩트들을 배제하기를 원한다. 나는 학생들이 한국사에 대한 좀더 종합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교과서들이 제공되기를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강요하는 것이 충돌하는 기억의 화해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적인 역사가들은 하나의 역사를 믿지 않는다. 팩트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 팩트들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 한 아무런 쓸모가 없다. 다른 질문을 던지면 다른 답이 나오는 것이 역사다. 여러 가지 관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하나의 교과서를 강요하면 한가지 관점밖에 담지 못한다. 좌파와 우파 모두 교과서에서 자신들에게 불편한 팩트들은 빼버린다. 어느 한 쪽이 압도하게 되면 단지 어느 한 쪽 시각만 반영한 교과서를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래를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중요한 정보들이 누락되게 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결정론적인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 역사는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 따라서 교과서 국정화는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편협한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역사는 본디 어지러운(messy) 것이다. 단지 하나의 교과서만 있다면 깨끗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역사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 교과서에서 어떤 점에 제일 문제가 될 것으로 보나?

제일 걱정되는 것은 제주, 광주에 대해서 뭐라고 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아마도 별로 기술하지 않을 것이다. 제주, 광주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나머지 한국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만약 두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다루지 않는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가 된다면 정부로부터 소외감을 더 느낄 것이다. 그들은 지금 한국의 모습을 가능하게 만든 것에 자신들의 기여도 있음을 인정 받기를 원한다. 나는 광주에서 1970년대에 처음 살았는데, 광주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좀 아는 편이다. 서울의 누군가가 광주 민주화운동을 경시하는 얘기를 하면 그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라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경험이 역사에 담겨있기를 바란다. 적어도 그러한 경험이 역사 서술에서 고려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정부가 만드는 하나의 교과서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ImageProxy.mvc?bicild=&canary=r5PV1C6M3R국정 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소속 학생들이 지난 17일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역사 화해는 어떻게 가능할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내가 이번 책에 쓴 장에서 언급했듯이 컨센서스에 이르기 어려운 감정들을 뒤로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쟁적인 시기를 직접 살았거나 부모나 조부모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들은 사람들이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한 두 세대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직접 그 시대를 산 사람들 중 한 명인데 이런 논의를 주도하기에 적절한 사람인가?

“박근혜는 객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역사논쟁과 관련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고대사나 19세기사가 아니라 20세기사, 현대사라는 점에 주목하자. 무엇보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아직도 박정희에 의해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살아있다. 그 사람들에게 박근혜가 정확한, 올바른 역사를 만들려고 한다고 하면 믿겠느냐. 절대로 박근혜가 객관적인 역사를 쓸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 객관적인 역사를 얘기하려고 한다면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쓰도록 해야 한다.”

-당신은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우파라고 생각하나?

“나는 왼쪽에 있다. 그렇다고 아주 왼쪽에 있지는 않다. 가령 나는 북한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미국과 캐나다 이중국적인데, 캐나다에서는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에 투표했고, 미국에서는 민주당에 투표했다. 내가 다소 왼쪽에 있지만, 많은 좌파 역사가들이 편견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인식한다. 내가 광주에 대해 좌파 역사학자들이 기록한 방식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런 것이다. 광주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니었다. 일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를 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거의 도시 전체가 항거한 것은 정부군에 의한 동료 시민들의 죽음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 싸웠다. 좌파 역사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것은 아니었다. 나를 좌파라고 부르면 되지만 나는 마르스크주의자나 교조적인 좌파는 아니다.”

-당신은 글에서 스스로 중립적인, 객관적인 역사학자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소개했는데.

“논문에서나 강의에서 모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어려운 것들 중 하나는 박정희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나도 박정희 시대를 살았다. 인권 문제에 대해 얘기할 것도 있고, 경제적 성취에 대해 얘기할 것도 있다. 둘 다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둘 다를 언급한다. 그래서 ‘너의 전체적인 평가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경제에 있어서는 잘 했고, 정치나 민주주의에서는 못했다. 워싱턴주립대에서 나와 함께 공부했던 카터 에커트는 20년간 박정희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박정희라는 사람 자체가 매우 복잡해서 확정적으로 하나만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 좋았는지 나빴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비록 왼쪽에 있고, 박정희에게 인권 탄압을 받은 사람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내 논문에서나 강의실의 학생들에게는 두 가지 모습을 다 제시하려고 한다. 교수로서 나의 일은 어느 한 쪽 시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보여주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왜 같은 자료를 놓고 다른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인지 학생들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역사가들이 하는 일이 그런 것이기도 하다. 같은 자료를 놓고도 다른 질문을 던지면 그 자료의 각기 다른 부분들을 보게 되고 다른 답을 얻게 된다. 내가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하는 얘기는 ‘여러분들이 이 강의실을 떠날 때 이 곳에 처음 들어올 때보다 더 혼란을 느끼면서 나가도록 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라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가 결국 화해에도 도움이 된다.”

-다시 묻자. 박근혜 대통령은 현행 역사교과서들이 너무 좌파적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그러한 인식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가?

“나는 모든 교과서의 세부내용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교과서들에서 주체사상을 칭찬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공세는 사실에 기반해 있지 않다. 학자들이 일반 대중들에 비해 좀더 진보적일 수는 있다. 따라서 교과서들이 학계 밖에서 쓰여질 때보다는 대체로 진보적인 색채를 띨 가능성은 있다. 비슷한 논쟁이 미국에도 있었다. 미국의 교육위원회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고교 역사교과서에서 다뤄져야 할 항목들을 모으려고 할 때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좌파적인 내용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해 예산 집행을 막아버린 적이 있다. 박근혜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지금의 역사 교과서가 좌파적으로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박근혜의 관점일 뿐이다. 내가 지난 주 한국에 잠깐 갔을 때 논쟁이 됐던 것 중에 하나가 일제시대에 일본이 조선의 쌀을 빼내간 것을 ‘수출’로 불러야 할지 ‘수탈’로 불러야 할지였다. 수출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쪽은 일본이 비용을 지불했다는 점을 들었다. 수탈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쪽은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양측 다 한국 농촌의 쌀이 일본으로 갔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게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른 것이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그것을 수출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한국 역사에 대해 옳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고 그것을 강요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박근혜의 교과서가 박정희의 만주군 장교 경력을 기술할 지에 대해서는 심히 회의적이다. 사실 박정희 치하에 있던 1970년대에는 그런 사실조차 입 밖에 꺼낼 수도 없었다.”

-왜 교과서 문제가 이렇게 이데올로기화 되었을까?

“한국은 정말 이념적으로 양극화돼있다. 매우 오랜기간동안 1980년대까지 좌파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갑자기 좌파들이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우파들은 아주 못마땅해 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기만 하면 당신 공산주의자 아니냐, 친북 아니냐고 묻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 내가 자란 미국 남부에서도 흑인들의 투표권에 대해 옹호하면 공산주의자냐고 했다. 한국에서는 약간이라도 좌파적인 생각을 말하면 당신 친북이냐고 한다. 내가 글에서 ‘김일성이 통일을 하려고 했다’고 기술하면 그것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 그것은 단지 사실의 기술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쓰면 엄청난 곤욕을 치른다. 왜냐하면 통일은 좋은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김일성이 했다고 하면 어떻게 말이 되느냐는 식이다.”

ImageProxy.mvc?bicild=&canary=r5PV1C6M3R베이커 교수가 집필에 참여한 역사교과서인 <라우틀리지 동아시아 기억과 화해 핸드북> 표지. 조만간 출간 예정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이념적인 논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이념적 논쟁이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히 객관적인 것은 있기란 어렵다. 각자가 답을 얻고자 던지는 질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교과서가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만든 교과서만 있으면 그런 것을 할 수 없다.”

-끝으로, 역사 교육은 자부심을 증진하는데 있는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반추해보게 하는데 있는가?

“좋은 질문이다. 고교 교육은 대개 자부심을 주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좀더 충직한 시민을 만드려는데 목적이 있다. 반면 대학에서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좀더 길러주려고 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워 할 것들이 많다. 나도 한국사 연구자로서 그 점을 행운으로 여긴다. 하지만 동시에 학생들의 독립적 사고를 파괴할 어떠한 가능성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령 고교생들에게 어려운 부분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본 식민지 권력에 대해 협력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왜 박정희는 일본군에 입대했을까, 이광수는 왜 그랬을까 하는 문제들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쉽게 빠지기 쉬운 태도는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협력했는지 잊으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많이 없었다는 점을 잊는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협력하는 것이 쉬운 길이었다. 따라서 그런 점들을 학생들에게 좀더 제공하면 과거를 도덕적으로 재단하려는 것을 피할 수 있고 학생들의 이해도 도울 수 있다. 같은 차원에서 제주에 대해서도 고교 역사 시간에 좀더 가르치게 되면 왜 제주 사람들이 그렇게 좌파적으로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일제시대를 거치며 매우 급진화됐다. 그들이 겪었던 일제시대는 본토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 이후 남한 정부가 제주의 봉기를 대했던 것에 대해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고교에서 그런 것까지 담아내기는 어렵기는 할 것이다. 고교에서는 자부심을 일깨워주면서도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할테니까 말이다. 단일한 시각만 제공한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대학에 가면 다 알게 된다. 자신들이 배운 것이 단일한 시각에만 국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학생들은 매우 분노하게 된다. 배신감을 느끼고, 더 급진화된다. 그것이 실제로 한국의 386세대에 일어났고, 미국의 68세대인 나에게도 일어났다. 나도 대학에 가서 매우 분노했다. 특히 베트남전에 대해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는 흑백이라기보다 좀더 미묘한 뉘앙스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글에서 대학에서 한국계 학생들을 가르칠 때 좀더 자부심을 느끼는 것들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학생들에 익숙해져있다. 한국계뿐만 아니라 중국계 학생들도 그렇다. 역사학도들은 역사를 진지하게 배우고 싶어하지만, 역사의 비전공자들일 수록 대개는 점수 따기 쉬울 것으로 기대하고 수업에 들어온다. 수업을 할 때마다 중국계 학생들은 내 강의 때문에 자신들 감정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대만을 독립국가라고 하면 그들의 감정은 상처 받는다. 그러니까 한국인들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일본 학생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들도 내 수업을 듣고 상처 받는다. 가령 내가 고대 한국 문화가 얼마나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줬는지 얘기하면 그들은 상처 받는다. 일본 역사가들은 그 사실을 아는데, 일본 학생들은 고교에서 그런 걸 배우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학생들의 감정을 불편하게 하는 셈이다. 그게 우리 일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 어떠한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 굳은 믿음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 교육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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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59 허수아비-이정하 6 백근철 2013.10.22 2062
15358 허무개그. 필리페 2012.03.25 1497
15357 허무 개그. 1 박양 2014.03.11 1792
15356 허공속에 묻어야할 슬픈 옛 이야기 2014.11.13 525
15355 허경영 후보의 19대 대선 공약 file 내년또출마 2016.07.13 74
15354 허경영 씨가 차기 19대 대선 후보로 공약을 페이스북에 발표했습니다. 8 file 허본좌 2015.03.19 400
15353 허(虛)의 여유 1 신비 2016.04.23 53
15352 향수(Nostalgia): [이동원 박인수] , 트리플 오카리나 합주 음악감상 2014.11.17 599
15351 향린교회가 주일학교 전도사님을 찾습니다. 16 곽건용 2013.02.23 3265
15350 향린 교회 (LA Glendale 소재) 2012년 봄학기 성서학당 개강 file 영화감독 2012.03.02 2048
15349 향기나는 대화법 3 박희관 2012.11.09 1329
15348 향기가 풍겨져 나오는 사람 1 1.5세 2010.12.03 2465
15347 햐.. 2 모르겠습니다 2014.09.13 486
15346 햐 ~~ 불로장생 불사조같이 력사에 길휘길휘 남을 진솔한 웃음 1 file 댓글 2014.10.11 569
15345 햐 ~ 놀랠 노 짜다 순발력 하나 지기 주는구나! 헌재 2015.02.25 304
15344 행함이 있어야 구원 얻는데 집착하는 님들께-미련님 참조 3 로산 2011.11.16 1101
15343 행정위원들이 유명무실해서는 안된다. 41 행정위원 2013.02.18 3866
15342 행정법원 “JTBC 다이빙벨 보도 허위사실 아니다” 돌둘 2015.05.21 211
15341 행위에 촛점, 관계에 촛점 1 고바우 2011.09.30 1738
15340 행위에 대해서 한마디 올립니다, 5 하주민 2014.10.19 468
15339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6 김균 2016.05.22 291
15338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메시지 -퍼옴- 박희관 2013.02.24 2536
15337 행복한 별 빛 내리는 석촌호수의 아름다운 봄 밤 ... 9 file 난감하네 2016.04.28 173
15336 행복한 고문님 김균 2014.05.20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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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1 행동하는 햄릿, 아름다운 별이 지다 -- 명문 추도사 2 퍼옴 2011.12.31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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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9 햇까닥한 허당깨 지게 작대기 헛매질 하다 자빠지는 소리 2 아기자기 2013.07.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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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6 핵발전소를 수출하면서 북한 핵을 벌벌 떠는 나라 시사인 2014.05.25 841
15325 해학과 감동의 어우러진 사무엘서 해설. 1 최종오 2014.07.07 841
15324 해피아와 핵피아 시사인 2014.05.01 835
15323 해월유록(海月遺錄)중에서...하나님의 나이 70세에 구세주를 낚다(찾다) 마치 문왕(文王)을 낚은 강태공처럼 현민 2013.06.29 1498
15322 해월유록(海月遺錄)중에서... 정감록(鄭鑑錄)이란? 1 현민 2014.02.11 1036
15321 해월유록(海月遺錄)에서 발췌.... "천명(天命)"에 대하여 현민 2013.06.02 1498
15320 해월유록(海月遺錄)에서 발췌 / 하나님은 진인(眞人)에게 언제,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천명(天命)을 내렸나 1 현민 2013.06.02 1608
15319 해월유록(海月遺錄)에서 발췌 / 정도령이 공자님 말씀대로 나이 50에 천명을 받았다는데... 현민 2013.06.29 1660
15318 해월유록(海月遺錄)에서 발췌 - "도하지(道下止)"와 "정도령(鄭道令)"의 관계 1 현민 2013.05.23 3268
15317 해월유록 서문 문 명 2012.04.01 3034
» 해외 한국사 교수와의 Interview 한국사 2015.10.23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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