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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의 짭쪼름한 구약 이야기(5)

 우리 하느님이 달라졌어요!

 


야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야훼께서는 탄식하셨다.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그러나 노아만은 야훼께 은혜를 입었다(창세기 6:5-8).


노아는 야훼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야훼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추위와 더위여름과 겨울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창세기 8:20-22).


1.

잊을 만하면 중동 어딘가에서 노아의 방주 한 조각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떠오른다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성서가 꾸며낸 얘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이 입증됐다고 환희에 차서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성서가 역사적 사실이란 게 그깟 나뭇조각 하나에 좌우된다고 믿는 게 제대로 된 믿음일까그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노아 방주 얘긴 꾸며낸 얘기거나 믿을 수 없는 얘기가 되나그깟 나무 한 조각의 힘이 그렇게 큰가 말이다.


우린 노아가 어느 시대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한다대략이라도 가늠 못한다그를 신화적 인물로 치부하는 학자들이 많은 게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성서를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노발대발할 말이지만 그들도 노아의 연대기를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사정이 이러니 발견된 나뭇조각이 노아의 방주 파편인지 여부를 입증할 방법은 없겠다그걸 반증할 길도 없지만 말이다어찌됐든 나무 한 조각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문제는 그까짓 걸로 성서의 역사성을 입증하려는 태도다역사적 사실이 아니면 하느님 말씀으로서 성서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듯이성서가 역사적 사실성 여부에 무관심하진 않지만 전적으로 거기에 좌우되지는 않음을 잊지 말 일이다.


이전 글에서 나는 구약성서의 많은 얘기들이 매우 축약되었거나 빈 공간이 많다고 썼다설명이 반드시 필요한 대목에서 불친절하게 설명 없이 넘어간 경우도 많고 복잡한 내용이 짧은 글 속에 함축된 경우도 많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안다고 전제하고 설명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그래서 독자는 때론 빈 공간을 메워가면서때론 압축파일 풀어가면서 읽어야 한다두 경우가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노아 얘기가 딱 그렇다이 얘긴 창세기 6장에서 9장까지 상당히 길게 펼쳐져 있지만 그래도 메워야 할 공간과 풀어야 할 압축파일이 적지 않다.


작년(2014)에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노아>가 개봉됐다영화는 개봉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특히 기독교인들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개봉을 기다렸다그런데 내용이 알려지기 전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영화를 단체 관람하려 했다가 내용이 알려지자 취소했단다영화가 성서 얘기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하긴 출처불명의 나뭇조각 하나에도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성서 얘기를 제멋대로 바꾸는 건 용납할 수 없는 폭거였을 거다영화에 대해서는 글 중간에 필요할 때마다 얘기해보겠다여기서 한 마디 하고픈 말은나뭇조각 하나에 성서에 대한 신앙을 의존하는 게 더 문젤까상상력을 발휘해서 얘기 가운데 존재하는 빈 공간을 메워 가면서 읽는 게 더 문젤까전자는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고 후자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나는 당연히 후자를 택한다노아 얘기가 하느님의 의지와 말씀을 담고 있는 하느님 말씀이라고 나는 믿는다나뭇조각이 발견되든 발견되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안타깝게도 이 얘기엔 빈 공간이 많아서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없으니 용기 있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빈 공간을 메워가면서 읽어보겠다애로노프스키가 영화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2.

흔히 이 얘기를 노아 홍수 이야기로 부르지만 내용을 잘 읽어보면 얘기는 홍수사건 자체에 초점이 놓여 있지 않다이 얘기는 유례없이 세상을 뒤덮은 홍수라는 자연 현상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그 사건 전후에 하느님과 사람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사건에 대한 얘기다. 40일 내내 쏟아져 땅을 뒤덮은 물 못지않게 사납게 출렁거렸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고 사람의 영혼이었다창세기 6-9장은 바로 이걸 말하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 마음을 들여다보겠나자기 마음속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데사람이 못 하는 걸 설화자는 수시로 한다설화자는 하느님 마음속 생각을 독자에게 알려준다이 얘기가 그렇게 시작된다.


 야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어떤가흥미진진하고 호기심이 솟아나지 않나하느님은 탄식까지 하셨다는데대체 사람이 무슨 짓을 했고 얼마나어떻게 악했기에 하느님은 사람 지은 걸 후회하고 마음 아파했으며 탄식까지 했을까질문에 대답하려면 우선 텍스트 안에서 답을 찾는 게 먼저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창세기 6-9장에선 답을 찾을 수 없다다음으로는 앞장과 뒷장을 뒤져볼 일이다앞장에선 그럴만한 얘기가 없다물론 가인과 라멕이란 악당이 등장하지만 그 정도 악당들 때문에 야훼가 사람 만든 걸 후회했다그게 말이 되나여러분은 공감이 되시나가인이 아우를 죽인 일과 라멕이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이고 자기를 해칠 사람은 일흔일곱 갑절의 보복을 하겠다고 큰 소리 친 일이 잘한 짓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다 쓸어버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좀도둑질했다고 사형에 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고대 해석자들과 후대 학자들은 홍수 심판의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이 주목한 구절이 창세기 6 1-4절이었다.


사람들이 땅 위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다.” 그 무렵에그 후에도 얼마 동안 땅 위에는 네피림이라고 하는 거인 족이 있었다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었다그들은 옛날에 있던 용사들로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사람의 딸들이 누군지는 분명하다말 그대로 사람의 딸들곧 여자들을 가리킨다문제는 하느님의 아들들의 정체다구약성서에는 신화(myth)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천상의 신적 존재와 지상의 사람이 성관계를 갖는다는 얘기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들이 왕을 가리킨다느니 엘(El) 신을 섬기는 목축업자를 지칭한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 신분을 정해줬지만 다 근거는 박약하기 이를 데 없다이상한 점은구약성서에는 신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여기처럼 가나안 신화가 구약성서에 흘러들어왔다고 보는 덴 어찌 그리 관대한지열린 마음으로 읽으면 이 얘기엔 신화적 요소들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그럴 이유도 없고.


고대 중동과 지중해 지역의 신화에는 신과 사람이 결합했다는 얘기가 널려 있다이 얘기도 그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얘기는 천상에 사는 신적 존재(흔히 천사라 불리는 존재)가 지상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그들과 결혼해서 네피림이라고 부르는 거인족을 낳았다는 거다후대전승은 이들을 타락한 천사라고 부르는데 본래 얘기에도 그렇게 볼 근거가 없진 않다그게 야훼 맘에 들지 않았다니 말이다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 족에 대해서는 구약성서에 별다른 기록이 없다민수기 13 32-33절에서 가나안을 정탐한 일부가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라고 부정적으로 보고한 얘기에 네피림이 등장한다여기엔 신화적인 색채가 없다는 점에서 창세기 6장의 얘기와 다르지만 말이다그밖에 에녹 1집회서희년서 등은 모두 거인 족을 악당으로 묘사한다.


노아 홍수와 관련된 이런 류의 얘기를 다 하려면 한이 없다이 얘기의 기원과 문학적 특성에 대해선 한 세기 이상 전에 규명되었다이 얘기가 바빌론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홍수 얘기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 못한다(바빌론에서는 신들’)이 홍수를 일으키기로 결정했다는 점한 사람에게만 그 사실을 알렸다는 점그 사람 가족만 구원된다는 점그가 신()의 지시에 따라 방주를 짓는다는 점()의 지시에 따라 동물들을 방주에 태운다는 점새를 통해 홍수가 끝났음을 알게 된다는 점방주가 산위에 머문다는 점감사의 제사로 얘기가 마무리된다는 점 등이 유사점들이다이 정도로 비슷하다면 요즘은 표절로 걸린다.길가메시 서사시가 발견된 이후로 오랫동안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하느님 계시로서의 성서의 권위가 추락하는 걸 막자는 학계와 교계의 담합’ 때문이었으리라.


이것 말고도 이 얘기는 내적으로도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이 점은 글이 짭쪼름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러면 너무 섭섭하니까 간단히 언급하겠다창세기 6-9장에 문서와 문서두 갈래의 얘기가 얽혀 있음이 알려진 것도 벌써 한 세기가 넘었다벨하우젠(J. Wellhausen)이 정리한 소위 문서가설’(documentary hypothesis) 얘기다. 1970-80년대에 우리나라 구약학계에서 이런 얘길 하면 경을 쳤다이 문제로 학교에서 쫓겨난 학자도 있다고 들었다그때 이미 서구학계에선 이 가설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말이다서구학계에서는 창세기나아가서 오경 전체를 하나의 문학 단위로 읽는 추세였다그렇다고 해서 비평 이전시대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문서가설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창세기와 오경을 하나의 커다란 문학 작품으로 읽었다는 말이다지금도 이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지금 학자들은 문서가설을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다듬기 위해 언급하기보다는 그걸 넘어서서 새로운 얘기를 하려는 발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홍수 얘기에는 유독 반복이 많은데 문서와 문서가 얽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곧 홍수가 인간의 죄악 때문이란 얘기그래서 하느님이 세상을 멸하기고 결심한 얘기홍수의 예고노아에게 동물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 얘기홍수가 시작된 얘기방주 밖의 모든 생물이 죽었다는 얘기홍수가 끝나고 물이 줄어들었던 얘기배에서 나온 애기다시는 홍수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하느님이 약속한 얘기 등이 중복 서술되어 있다이 가운데 홍수의 이유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숫자홍수의 기간마른 땅을 확인한 방법 등에 대해서 두 문서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눈이 띤다. J 문서는 홍수의 이유가 사람의 악행 때문이라고 말하지만(6:5) P 문서는 땅이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6:11). 배에 들어간 동물의 숫자도 문서는 깨끗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 숫자를 달리 전하지만(7:2-3) P 문서는 모든 동물이 한 쌍씩이었다고(6:7, 15, 19) 전한다홍수 기간에 대해서도 문서는 40일 동안 비가 온 후 61일 동안 계속됐다고(7:10; 8:6-13) 말하지만 문서는 150일 동안 물이 차 있었고(7:14) 1년 동안 계속됐다고(7:6; 8:13) 말한다가장 눈에 띠는 차이점은 문서가 마른 땅을 확인하려고 비둘기를 세 번 내보냈다고(8:8-12) 말하는데 반해 문서는 까마귀를 한 번만 보냈다고(8:7) 말한다는 점이다.


이 중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는 차이도 있다홍수의 원인은 사람이 죄악을 저질러서 땅이 부패했다고 종합하는 식으로 말이다하지만 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숫자나 마른 땅을 확인하러 내보낸 새의 종류가 다른 점 등은 얼버무리기에는 너무 차이가 크다성서는 모든 점에서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철썩 같이 믿던 시대에 이런 차이점을 발견한 사람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까를 상상하면 지금도 안쓰럽다성서를 역사적학문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런 차이들이 설명되었다홍수 얘기에는 두 가지 문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중복과 차이들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최종 편집자가 왜 이 차이들을 그대로 두었는지를이해하는 게 아닐까최종 편집자가 시각 장애인이나 바보가 아닌 한 이런 차이들이 있음을 알았을 터인데 왜 그는 조화를 꾀하지 않고 그걸 그냥 뒀느냐 말이다왜 그랬을까각각의 문서가 전하는 메시지가 공히 중요했기 때문에 얘기의 흐름이 어색해지더라도 후대에 전해야겠다고 여겼을까나는 그렇다고 추측하는데 얼마나 맞는 얘기인지 모르겠다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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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edia4lifeministries.com)


3.

짭쪼름하지 않은 얘기는 그만 두고 이젠 짭쪼름한 얘길 해보자앞에서 홍수 얘기는 메워야 할 공간도 많고 풀어야 할 압축파일도 많은 얘기라고 했다그런데 그 동안 성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기엔 관심을 두지 않고 서술된 얘기에만 집중해서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려 애써왔다하지만 성서학이 일반 문학 비평 방법인 설화비평(narrative criticism)이나 수사 비평(rhetorical criticism), 독자 반응 비평(reader response criticism) 등의 방법론을 성서 텍스트에 적용하기 시작한 1960년대 말 이후로는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성서텍스트의 빈 공간을 메우거나 압축파일 푸는 시도를 과감하게 해왔다아르노프스키의 영화 <노아>는 이 방법을 활용해서 홍수 얘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고 보면 되겠다.


하느님이 사람의 죄악이 너무 커서 그들을 땅위에서 쓸어버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다음 설화자는 그러나 노아만은 야훼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한다사건의 전말을 모두 아는 우리에겐 이 말이 뜬금없이 들리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거다대체 왜노아에게 어떤 미덕이 있었기에 그 사람만 야훼의 은혜를 입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설화자는 이 궁금증을 자기도 이해한다는 듯 바로 다음에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노아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9라는 말을 덧붙인다야훼는 사람과 세상이 속속들이 썩었다는 자신의 평가를 노아에게만 알려주고 그래서 그들을 홍수로써 심판할 터이니 방주를 지어 가족들과 짐승들이 살아남게 하라고 지시한다.


방주에 들어간 사람과 짐승들을 제외한고 숨 쉬는 모든 짐승들이 몰살당한 재난에서 오직 노아 가족만 야훼의 은혜를 입었다면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는 의롭고 흠 없고 야훼와 동행하는 사람이라는 서술은 그가 왜 야훼의 은혜를 입었는지를 설명하는 말이겠다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점은 대체 그가 뭘 했기에 야훼에게 이런 칭찬을 들었느냐는 거다여러분은 안 궁금한가고대 해석자들도 여기에 주목했다그들은 노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했을 거라는 추측으로 이 빈 공간을 메웠다시빌의 신탁요세푸스의 역사책신약성서 베드로후서클레멘트 1서 등은 하나같이 그가 회개를 선포했다고 말한다창세기 6장에는 없지만 그럴듯하니까 나는 그런 얘기가 있는 걸로 착각했었다그러니까 없는 얘길 상상력을 발휘해서 집어넣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대 해석자들도 다 그렇게 했으니 말이다우리라고 못 하란 법 있는가추측이 맞는지 그른지받아들일지 말지는 그 다음 문제다노아의 의로움은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했기 때문이란 해석은 텍스트적 근거는 없지만 오랫동안 옳다고 여겨져 온 거다.


이보다 더 곤혹스러운 점은 하느님이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겠다고 알려줬을 때 노아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맞아세상은 마땅히 망해야 해하느님이 잘 결정하신 거야.’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이 다 죽는 건 안 됐지만 그래도 다행이네나와 내 가족은 살게 됐으니.’라고 생각하며 안심했을까아니면 이를 어쩌지아무리 죄악이 극심해도 그렇지 세상을 몰살한다는 게 말이 돼나라도 뭐든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며 안절부절 했을까?


영화 <노아>는 홍수 계시를 받은 후 노아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를 보여준다성서에는 없는 얘기다이걸 요나서와 비교해보면 흥미롭다요나는 민족의 원수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걸 바라지 않았다하느님은 왜 택한 백성의 원수까지 사랑하느냐는 거다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컸으면 하느님의 지시를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갔겠나악인이 구원받는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들의 멸절을 지켜보는 것도 편치는 않은 일이다악인이 심판받아 죽는 게 괴롭지 않고 기쁜 일이라면 노아가 어떻게 당대의 의인이고 하느님과 동행하는 사람이겠는가요즘 불신지옥을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은 교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와 무관하게 그게 기독교인으로서 태도일까?


영화 <노아>는 많은 논쟁거리를 던졌는데 그 중 하나는 노아가 홍수 계시를 말씀이 아니라 꿈속에서 이미지로 받았다고 표현한 점이다노아가 야훼로부터 홍수에 대한 계시를 확실히 받지는 않았다꿈은 하느님의 계시일 수도 있지만 개꿈일 수도 있으니까따지고 보면 모든 계시는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꿈의 경우는 분명히 그렇다꿈에 하느님이 나타나서 이래라저래라 했다고 해도 그게 하느님인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나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하느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말씀한 분이 하느님인지 어떻게 확신하겠나악마가 하느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영화는 홍수 계시가 말씀이 아니라 이미지로 주어졌다고 표현함으로써이 점을 잘 지적했다고 여겨진다계시를 받고 그걸 확인하는 과정은 부득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의 노아는 고민에 빠진다꿈속의 이미지대로 홍수가 닥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성서 설화자는 하느님 마음까지 다 읽지만 노아야 어디 그런가말씀이 됐든 이미지가 됐든 그는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말씀은 이미지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해석해야 하는 건 같다애로노프스키가 말씀대신 이미지를 갖다 쓴 이유는 해석자 노아에게 더 큰 여지를 주기 위해서였을 거다노아는 꿈속의 이미지가 계시인지 아닌지 여부를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을 목격한 데서 확인한다그는 아들 함의 배우자를 찾으러 사람들 마을에 갔다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딸까지 팔아먹는 사람들의 사악함을 목격하고 하느님이 세상을 멸절하려 한다고 확신한다.하느님 계시의 진실성이 사람들 삶의 모습에서 확인된 것이다이처럼 계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건 쉽지 않다계시 받은 사람이 성서의 설화자처럼 하느님 마음속 생각까지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그래서 계시가 와도 고민안 와도 고민이다안 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고오면 그걸 어떻게 올바르기 해석할까 고민이다제대로 해석해야 실행에 옮길 테니 말이다.


4.

40일이 됐든 150일이 됐든 비가 오는 동안 방주 안에서 노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바깥에서 죽어가는 사람과 짐승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을까죽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대체 왜 이래야 합니까이게 최선입니까?”라고 하느님에게 울부짖었을까성서 텍스트는 비가 오는 동안 방주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그 안에 있던 자들이 바깥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이게 다 채워야 할 빈 공간이다그래서 영화는 몇 가지 사건들을 창작한다노아와 함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유는 노아가 함의 반려자인 나엘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얘기두발가인이 노아에 대한 함의 증오에 힘입어 방주에 올라탔고 노아와 갈등한다는 얘기노아가 셈의 아내 일라가 낳은 쌍둥이 딸을 죽이려 했다는 얘기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성서에 나오지 않는 얘길 꾸며냈다고 해서 영화는 기독교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그들에겐 이런 짓이 성서의 왜곡이다영화는 성서를 왜곡했다기보다는 해석했다해석은 빈 공간을 메우고 압축파일을 푸는 작업인데해석하지 않고 이 얘기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영화 감독은 해석의 작업을 수행했던 거다그의 해석이 옳은가 그른가는 다른 문제다성서 얘기에 엄연히 빈 공간과 압축파일이 존재한다면 그걸 메우고 풀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모호한 메시지를 재구성해냈다면 그건 왜곡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불러야 한다영화는 왜곡과 해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다고 여겨진다.


비가 멈추고 땅이 마른 후 노아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나와서 그는 의인답게 야훼에게 제사를 바쳤다야훼는 번제물의 향기를 맡고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추위와 더위여름과 겨울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여기서도 설화자는 야훼의 마음속 생각까지 꿰뚫고 있다그러고 나서 야훼는 노아와 그 후손들과 더불어 다시는 홍수로 땅을 파멸시키는 일은 없으리라는 언약을 세우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세웠다하늘에 무지개가 설 때마다 야훼는 홍수로 벌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기억하겠다는 거다이 얘기는 글 마지막에 생각하기로 하고 여기선 노아가 술 취해서 벌어진 일에 대해 좀 얘기해보자.


홍수 후에 노아는 밭을 가는 사람이 되어 포도나무를 심었다하루는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서 벌거벗고 잠들었다는 거다성서에서 술 마시고 취하는 사람 얘기는 여기에 처음 나온다그것도 벌거벗고 잠이 들었다니 술 마시는 사람은 늘 행실을 조심할 일이다세 아들 가운데 함이 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아버지의 벗은 몸을 본 그는 그걸 가릴 생각은 안 하고 형들에게 이를 알렸다형들은 겉옷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쳐서 장막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고 덮어줬단다이들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았다는 거다노아는 술에서 깬 뒤 아들들이 한 짓을 알고 함에게는 저주를 퍼붓고 셈과 야벳은 축복했다는 거다.


이 얘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아버지의 벗은 몸(물론 하체더 정확히는 생식기를 가리킨다)을 봤다고 해서 가장 천한 종이 되어 형제들을 섬길 것이라니그게 정말 그런 저주를 받아야 할 악행인가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함의 후손인 가나안을 종으로 부릴 거라니그게 그만한 특권을 누릴 선행인가이건 훗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것을 내다보고 한 말이거나 정복한 다음에 그걸 과거로 투사해서 한 말이 아닐까학자들은 그렇게 추측한다노아가 집안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가부장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야훼의 갑질을 보고 배워서 그런가별 생각이 다 든다왜 이러나정말 이래도 되나?


나만 이게 곤혹스러운 건 아니다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해석자들이 이 얘기를 곤혹스러워 했고 어떻게든 말이 되게 해석해보려고 애써왔으니 말이다혹자는 이게 동성애 금지명령과 관계있다고 봤고 혹자는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혐오감의 반영이라고 봤다다 일리 있는 해석이다나는 노아의 벗은 몸을 보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느님의 하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길 상징한다고 이해한다구약성서에서 가부장인 아버지는 하느님을 상징하기도 하니까 말이다이에 대해는 졸저 하느님 몸 보기 만지기 느끼기 141-144쪽에서 자세히 얘기했다.


노아에 대해서 그가 ’ 벌거벗고 잠이 들 정도로 술에 취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얘기한 사람이 별로 없다물론 누군가는 이에 대해 썼겠지만 과문(寡聞)한 탓인지 학자든 목회자든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서 쓴 글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그는 왜 술에 취했을까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얘긴 물론 아니다.


혹시 홍수 사건이 그에게 미친 영향에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방주에 들어간 가족과 짐승 외에는 모두 죽었다그는 긴 세월 방주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고대 해석자들의 말대로 회개를 선포했다면 자기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홍수가 끝나고 물이 빠진 다음 방주 바깥으로 나와서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을까얘기는 홍수가 있은 뒤에도 노아는 삼백오십 년을 더 살았다노아는 모두 구백오십 년을 살고 죽었다”(창세기 9:28-29)라는 무미건조한 서술로 마무리된다그의 생애가 이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을까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고 본다그가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인류의 몰살을 경험하고 정말 제정신으로 살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살아남은 사람의 슬픔살아남은 사람의 고통성서는 이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하지만 노아는 술 취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 나머지 생을 살 수 있었을까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전쟁이 끝난 훨씬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수용소에서 겪은 참혹한 경험이 그를 놔주지 않았을 거다노아는 방주 밖에서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평생 그 광경을 잊을 수 있었을까함에 대한 저주는 그의 정신적 불안이 낳은 또 다른 불행이 아니었을까이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건 세월호 참사다참사가 벌어진지 280여 일이 지난 지금세월호 특별법을 다뤄야 할 특별위원회는 유명무실하고 국민의 세금 운운하면서 배의 인양도 꺼리고 있단다돈은 핑계일 뿐 참변의 원인이 밝혀지는 게 두렵기 때문일 게다세월호 가족들은 오늘도 추운 거리를 걷고 있다노아 홍수와 세월호 참변이 겹쳐지면서 내 가슴에도 거센 물결이 출렁임을 느낀다대한민국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대한민국 국민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노란색만 봐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겠나.


5.

마지막으로 홍수로 세상을 멸절한 야훼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묻는다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은가다행히 설화자는 그걸 엿볼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남겨놓았다야훼는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바친 제물의 향기를 맡으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나는 처음으로 이 구절을 제대로 읽었을 때 말할 수 없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왜냐고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갔다고 말하는데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나홍수 이야기 서두야훼가 온 세상을 심판하기로 작정했을 때 그가 뭐라고 말했나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사람 지었음을 후회했다고 하지 않았나그래서 물로 심판하기로 했다는 것 아닌가그런데 그렇게 심판하고 난 다음에그러니까 모든 사람과 짐승을 몰살한 다음에 한다는 말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라고그럼 다시 한 번 심판해야 하는 거 아닌가앞에선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이어서 심판해야겠다더니 뒤에선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라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두 선언이 글자 그대로 똑같지는 않지만 결국 그 얘기가 그 얘기다그런데 앞에선 그래서 심판해야겠다더니 뒤에선 그래서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니이게 말이 되냐는 얘기다.


옛 어른들은 사람의 타고난 성격은 고치기 힘들다고 말했다다들 공감할 거다은혜 받았다고 성격이 고쳐지지는 않는다노아 얘기도 같은 말을 한다사람의 악한 성질은 홍수 심판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고그런데그런데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는 홍수 후에 사람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었단다. ‘새로운’ 언약을 맺으려면 뭔가가 달라져야 한다그래야 맺은 언약을 새롭다고 할 거 아닌가홍수 사건은 야훼가 부분 수술로는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해서 감행한 대수술이다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바꿔버린 수술이었다는 말이다그런데 그것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다대수술 후에도 사람 마음은 언제나 악할 뿐이었던 거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홍수 심판 후에도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말이다남은 방법은 하나야훼가 변하는 것뿐이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우리 하느님이 달라졌어요!’라는 거다야훼는 새 언약을 세우면서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추위와 더위여름과 겨울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야훼는 다시는 이런 식으로 심판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거다야훼의 마음이 변했다야훼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가 달라졌다면 그건 하느님이 변했기 때문이다달리 해석할 수는 없다.


이걸 우리는 은총이라고 부른다싸구려 은총 아닌 비싼 은총이다사람은 안 변했는데 하느님이 변해서 심판 대신 은총을 준다니까 이를 공짜라고횡재했다고 좋아 날뛰는 사람은 은총이라는 말은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은총은 하느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일었던 풍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은총을 사람에게 주기 위해 하느님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가하느님은 홍수라는 수술 칼로 사람의 환부를 도려내려 했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자신의 가슴을 도려낸 거다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을 안다는 건 그분 가슴의 아픈 상처에 손을 얹는 걸 의미하고 그 손을 자기 가슴에 얹는 것 의미할 게다아마 그럴 거다아니 분명히 그렇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 ?
    아기자기 2015.02.04 18:55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곽목사님의 글에서와 같이 여러가지로 추측할 공백이 있겠습니다.

    글에서 언급된 '에녹 1서, 집회서, 희년서" 등에도 거인족에 관해서 나옵니다.
    에녹 1서에는 "그때 사람들이 번식하고, 아름다운 딸들이 태어났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이 그녀들을 보고 탐을 냈다.
    그리고 '우리가 내려가서 아내를 맞고, 우리 자녀들을 낳자.'고 말했다."(에녹서 6:1-3) "

    "그들이 각자 여자를 골라서 아내를 삼았다.
    그리고 여자들과 몸을 섞고, 부적과 주문을 가르쳐 주었으며,
    나무와 뿌리를 자르는 것을 보여 주었다.
    여자들이 임신하여 엄청난 거인들을 낳았는데,
    거인들의 키는 1천 큐피트나 되었다."(에녹서 7장 1,2)

    즉, 에녹 1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인간이 아닌 천사들로 묘사하고
    사람의 딸들은 인간의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The life story of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의 생애>는
    같은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됐으며
    단테의 신곡과 밀튼의 실낙원에서도 이 문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문헌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죽은 후에 셋은 자기 자손들을 가인의 자손들과 분리했다.
    가인의 자녀들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곳에서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서쪽 지방에 살았다.
    셋과 그 자녀들은 아담과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보물의 동굴'이 있는 산의 북쪽에 거주지를 정했다."(아담과 이브의 생애서 11장 1,2,절)
    고 기록 되어 있다.

    '아담과 이브의 생애서'에 보면 셋과 셋의 자손들은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보물의 동굴이 있는 산 위쪽에서 살았고,
    가인의 자손들은 산 아래의 풍요로운 평지에서 살았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셋은 그의 자손들이 산 아래의 가인의 자손들하고 절대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셋의 자손들은 "순수함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불리웠다.
    그 후로 셋과 셋의 아들 에노스, 에노스의 아들 카이나인, 카이나인의 아들 마할랄레엘,
    마할랄레엘의 아들 야레스까지는 산 위에서 가인의 자손과 분리리되어 살았다한다.

    그런데 야레스대에는 산 아래에서는 라멕의 아들 게군이 있었고
    그들은 사단으로부터 악기를 만드는 법, 독한 술을 만드는 법, 전쟁 무기를 만드는 법,
    옷감에 다양한 무늬로 염색하는 염료 제조법을 배웠다.

    그래서 가인의 자손들은 풍요하고 강할 뿐 아니라 아름답고 요란하게 번쩍이는 옷을 입고 모여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온갓 육욕에 빠져 있었다한다.

    셋의 자손들이 이 때 처음으로 산 아래로 내려와서 아름다운 가인의 여인들의 모습에 유혹 당하고 만다.
    이 때 가인의 자손들은 훌륭한 외모의 셋의 남자들을 '천사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렀고,
    반면에 셋의 자손들은 가인의 여인들'을'사람의 딸들'이라 불렀다.

    결국 창세기 6장 2절"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한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인 셋의 자손과 가인의 자손인 '사람의 딸들'은 서로를 취하여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았고
    그들의 타락과 죄악은 극에 달했다.

    그래서 셋의 자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리우지 못하고 '악마의 자녀들'로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생애서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생애서에 나오는 특이한 것은
    야레스가 노아 홍수를 예견하고 배에 실을 것을 지정해 주는 것이다.

    가인의 딸들과의 결혼을 금지한 명령을 어겨서 그 자손들이 타락한 이유로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큰 홍수가 닥칠 것인데
    그 때에 '우리 조상 아담의 몸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가지고 나와
    보물의 동굴에 보관 중인 세 가지 보물 즉,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방주에 실으라고 노아에게 말한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생애'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결국 우리 조상들과 그 자녀들 가운데 므드셀라와 라맥과 노아등
    셋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거룩한 산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산에서 내려가서 가인의 자녀들과 더불어 죄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산에 돌아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 세 사람만 거기에 머물렀다."(아담과 이브의 생애 22장 10절)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를 내린 이유가 셋의 자손들이
    '그 거룩한 산'에 남아 있지 않고 가인의 자녀들과 어울리고 결혼해서
    죄악에 빠졌기 때문에 홍수를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노아만 살은 이유도 '그 거룩한 산'에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압축파일 하나 풀어 보았습니다^^


    추) "이걸 우리는 ‘은총’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은 홍수라는 수술 칼로 사람의 환부를 도려내려 했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자신의 가슴을 도려낸 거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을 안다는 건 그분 가슴의 아픈 상처에 손을 얹는 걸 의미하고 그 손을 자기 가슴에 얹는 것 의미할 게다.“ 아멘!

    "하느님의 은총을 안다는 건" 창세기 6장 8절의 말씀대로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AD."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보았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달라진 마음(은총),
    사실은 본심을 들키신 것이고 그것을 본 자만이 구원에 들 수 있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신앙의 철이 든다'고 표현하는데,
    어떤 분들은 '심층' 신앙이라고도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 ?
    Rilke 2015.02.05 05:23
    곽 목사님, 감사 합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자기만의 여러개의 껍질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에게 있던 껍질 하나가 최근 몇년동안 깨어지고 있습니다.

    목사님때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때는 고등학교에서 이과 문과를 나눌때 거의 항상 자기 적성을 보기보다는 공부잘하는 사람은 이과 그리고 --- 문과. 이랬습니다 (물론 저도 이과). 이과생들은 공부를 훨 잘했드랬습니다. 수학 과학 뿐만 아니라 사회 영어 국어 까지.

    그때의 기억이 오랫동안 제 생각을 사상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도 보니까 비슷한것을 발견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Science, Engineering 으로 가는것을 보았습니다 (?). 일반 교양 수업이나 경제 수업을 들어도 이공계 학생들이 문과학생보다도 성적이 더 잘 나오는것을 보았지요.

    그 후로 굳어진 "이과 우등주의"가 오랫동안 저의 머리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서 보니까 이공계생들은 다 밑에서 딱가리를 하고 문과생들이 회사 우두머리 그리고 사회의 주인이 되어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몇 소프트회사 말고).

    그러면서 최근 몇년동안 신학 (?) 의 거장들의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껍질 (사상, 생각)이 깨지는것을 보았습니다. 숫자로 바라보는 세상만큼 문자로 바라보는 세상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그리고 깊이 들어가며는 공식 (법칙) 보다도 생각 (사상) 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지요. 똑똑하다고 하던 많은 천재 과학자들은 결국 정치, 철학, 경제, 신학 앞에 조용히 무릎을 끓었으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노아의 홍수와 창조에서 시작해서 "시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신학에 철학에 밀리거나 보조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과학자들은 무언가 발견하고 발명하고 만드느라 다른 생각을 할틈이 없어요. 그래서 위대한 몇몇 을 제외하고는 "사상" 이나 "철학"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박사 바보"라는 소리를 많이 듣지요.

    창세기와 욥기를 처음 공부할때는 과학자들이 쓴 많은 책을 읽었는데, 결국은 신학자들의 책을 볼수 밖에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과학의 눈으로 볼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과학으로 증명되는 책이 아님을 깨닿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결국 믿음으로 영감으로 사상으로 받아 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라는 끈을 놓고 성경을 대하니, 이제는 성경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여유가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영화 "노아"도 그렇게 부담이 안되었습니다. 그럴수 있겠구나.

    홍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성경 기록자들이 홍수이야기를 쓴 주된 목적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대에 후대의 사람들에게 무었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것이 주 목적이 아니었쓸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신학을 보조하는 과학이 되며는 안되겟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학의 시녀 ?). 그냥 신학하는 과학자, 과학하는 신학자로 살아가야 겠습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키워가고 있는데, 요즘 인문학의 대세는 과학적 방법을 많이 도용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통계학을 이용하고, 이제는 과학기기를 이용하고,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입니다.

    노아홍수와 창세이야기를 읽고 생각할때 마다 드는 생각은,

    땅콩박사 워싱턴 카바의 이야기에 나오는 한구절 입니다.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워싱턴 카바박사가 어느 조그마한 시골에 갑니다. 그곳은 매우 가난해서 어떻게 하며는 이들을 잘살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곳 토양이 땅콩을 재배하기에 아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땅콩을 재배하는법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이 잘 따라해서 땅콩이 풍년이 되었습니다.

    땅콩이 풍년이 되니까 땅콩가격이 똥값이 되어 버렸어요. 모든 사람들이 카버박사를 원망합니다.

    백성들이 잘살게 되기를 원해서 도와 주었는데 오히려 수많은 원망을 받아서 너무나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밖에 나가서 밤하늘을 보면서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저 밤하늘의 별들은 왜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합니다.

    "너한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면 수많은 별들중에 지구는 왜 만드셨습니까?"
    "그것도 너한테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왜 만드셨습니까?
    "그것도 너한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 땅콩은 왜 만드셨습니까?"
    "그래, 땅콩을 가지고 실험실로 가거라."

    카버박사는 땅콩을 가지고 실험실로 가서 땅콩을 갈고, 정제하고, 볶으로, 튀기고, ,,,, 그래서 수많은 땅콩제품이 나오게 됩니다. 땅콩버터, 땅콩 화장품, 땅콩 우유, 땅콩



    결론은 "너한데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너가 진정 알고 싶은 질문을 해라" 하시는 하나님 음성이 자주 떠오릅니다.

    오늘날 교회에 사람들에게 진정 해야 하는 질문, 사람들이 진정 알고 싶어하는것은 무었일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무었일까?

    창세 이야기도 노아 홍수 이야기도, 출애굽이야기도, 어쩌면 바빌론포로로 있으면서 (돌아와서) 힘들어 하는 백성들을 위로 하고 깨우치려고 쓴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과연 우리 과학자들은 무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오늘은 글이 과학자 답지 않게 횡설수설이네요.



    항상 영감있는 글을 올려 주는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본 신학자들 평가: 구약학자들이 신약학자들 보다 똑똑하다 (?).


    아기자기님도 감사 합니다.
    좋은 답글 (?) 이네요.

    글과 이름이 매치가 안됩니다. 글이 아기자기 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아기자기 아이러니"로 이름을 개명함이?


    cheers,
  • ?
    곽건용 2015.02.06 07:14
    보잘것없는 제 글에 두 분이 길고도 좋은 내용으로 가득찬 댓글을 달아주셨으니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몇 줄 써봅니다. 일단 저는 과학자들을 매우 존경한다는 걸 말씀하고 싶습니다. 과학자들의 두뇌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전에는 그쪽을 돌아가지 않는 제 머릴 탓해도 보고 부모님을 원망도 해보고 했습니다. 뭐 하느님을 원망하는 데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릴케 님이 인문학과 신학 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높여주시니 어질어질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해봐도 문과 체질입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2 때 문과와 이과를 나눌 때 이과를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장로교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진로라는 게 참으로 어이없이 바뀌더군요. 고1때 담임이랑 사이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이유 없이 얻어맞은 적도 여러 번이었고 한 번은 어머니까지 불려왔지요. 그때 제 어머니는 담임에게 "제 아이가 옳지 않은 걸 보면 욱 하는 성격이라 선생님이 좀 피곤하실 수도 있습니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시는 바람에 제 고1생활은 더 괴로워졌습니다. ^^

    제가 나온 신일고는 좋은 대학 많이 보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과보다는 이과로 학생들을 보내려 했지요. 제 담임도 아이들을 이과로 보내려고 회유와 협박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의대를 가려고 했던 제가 문과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이런 담임에 대한 반항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난 악착같이 문과로 가야지! 뭐 이런 거였지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저는 태어나길 문과체질이네요. 의대 갔더라면 아마 졸업하지 못했을 겁니다. ^^

    각설하고, 제가 길게 글을 썼으니 노아 홍수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어제 오늘 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은, "한 처음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라는 말에서 '창조하다'는 말이 뭘 뜻할까 하는 겁니다. 그게 목수가 가구를 만드는 것처럼, 기능공이 쇠를 깎아 공구를 만드는 것처럼, 아니면 3D 프린터로 뭔가를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말일까? 하느님의 창조를 이런 식으로 생각해왔으므로 진화론과의 대립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실제로 구약성서는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nihilo를 말하지 않지요. 창조 이전에도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은 하느님의 창조를 무로부터의 창조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됐을 이유가 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 이유와 무관하게 무로부터의 창조는 매우 중요한 진실을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그리고 우주를 목수가 책상 만들듯이 에플회사가 맥북 만들듯이 만드신 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럼 뭐냐고요? 글쎄요... 아직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공부도 더 해야겠구요.

    다시 한번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바벨탑에 관한 얘기를 거의 마쳤습니다. 다음 주중에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이번엔 더 재미가 없네요. ㅠㅠ 노아 얘긴 영화라도 있었는데 이건 그런 것도 없고... 영화 <바벨>이 있긴 하고 좋은 영화긴 하지만 계속 영화 얘기만 하는 게 쫌 뭐해서 관뒀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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