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새 님, "내 탓이오" - 계명 없이도 이러한 깨달음이 올까?

by 계명을 posted Jul 16, 2016 Likes 0 Replie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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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새 님이,

재림교회의 기둥들을 전혀 조심스러워 하거나,
삐죽 됨이 없이,
마구 파헤치고, 뽑아 버리려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어리석은 자의 소회(4)-다 내 탓이오" 편을 
읽었다.

씨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전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다.
그동안 줄기차게 이곳에서 
했던 예기들이다.

그래서 그가 쓴 전 글들을 찬찬이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런데 아니다.
동의가 안된다.

십자가 그리고 예수에 대한 열정은 같다.
예수에 대한 사랑의 노래는 같은 데,

지성소의 능력은 부인한다.
계명의 능력은 부인한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는 “인간은 무가치함을 느끼고 구원자 앞으로 저절로 나가게 된다."라고 했다. 

구원자 앞으로 누군가가 이끌고 왔다.

“내 탓이오” 가 바로 몽학선생이란다.
그러면 “내 탓이오”라는 깨달음은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참으로 궁굼하다.

명상?
자기수양?
철학적인 사고?

성경은 분명히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된다 하였다.
그러면 율법과 계명외에 다른 몽학선생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찌 되었던 구속주에게 만 이끌어 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 예수에게 열정이 생긴 인간은,
“인간의 무가치함을 느끼고 구원자 앞으로” 나가는 경험을 매일 한다.
그래서 매일 죽는 경험과 매일 구속주 앞으로 나가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성경은 이 것을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는 일이요,
“두루마기를 빠는”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일은 반드시 피와 계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성소에 제 집 드나들 듯이 해야한다.
매일 죽고 매일 사는 일은 지성소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 구원 얻었으면 되었지 무슨 매일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가?

모르는 소리!
매일 사우나를 해도 시원하고 기분 좋듯이,

우리가 받은 생명은 매일 받아서 새롭게 해야 하는 생명이다.

참으로 신명나고 기분좋은 일이다.
매일 생명을 받는 일은 말이다.

한번 구원얻고 깡 믿음으로 “믿쉽니다” 하고 나가면
예수가 기억해 주겠지 하는 믿음도 훌륭하다고 본다.

그러나,

매일 생명을 몸으로 체험이 되어, 더 믿어 가게 되는 것.
깡쓰지 않고도 쉽게 믿어지는 믿음이다.

“내 탓이오” 출처가 어디서 왔건,
지성소 없이도, 계명의 몽학질 없이도
또 하나의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동시에,

결과는 정말 같은 길이 될까?
지성소 없이도 되는 일일까?

주의 깊게 좀더 관찰해 볼 생각이나,
많이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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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이 위대한 명제아래 서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나쁜 악한 죄인인지를 깊이 통렬하게 깨닫게 된다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오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오
자신이 지금도 엄청난 죄인이라는 사실 앞에 서게 되면
아니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 할 수 없는 죄 라는 존재를 깨닫는다면
죄의 힘을 그 슈퍼 파워를 절감한다면
인간은 무가치함을 느끼고 구원자 앞으로 저절로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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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하셨다.

계명없이도 위와 같은 깨달음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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