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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2 16:02

오강남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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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사슴은 들판에서 먹이를 찾으면 "유유~" 소리내어 운다.

주변에 있는 사슴들을 모아 함께 나누어 먹고자 함이다.

이른바 녹명(鹿鳴)이다.

 

매일처럼 사슴에게서 배우고 싶다.

녹명이라는 마음의 빗으로 일상에서 얼킨 생각들을 갈무리한다.

자칫 길을 잃기 쉬운 복잡다난한 현실에서 내가 살아가는 작은 나침반이기도 하다.

 

나누는 것.

나눌 수 있는 것의 가치를 찾고, 소중히 키우는 것

오늘의 녹명은 내적평화다.

 

*

 

안팎으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쩍쩍 갈라진 마른 땅에 그 어느때보다 '평화'라는 단비가 절실하기만 하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

하늘에서 뚝 떨어질 평화가 아니라 우리속에서 우러나오는 평화가 더불어 강물을 이룰때

비로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진정한 평화다. 

 

시의적절한 움직임이 일고있다. 

불교계에서 종파를 넘어 범사회적으로 '대 평화' 메시지를 전파하는 의미있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지난 2월 27일 대한불교조계종 범어사가 주관한 <불교 평화론과 평화운동 그리고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6.25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기조연설 내용에 귀기울여본다.

"불교 및 이웃종교의 평화론과 통일의 길"이다.

 

우리 내면의 비무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유유~"

 

평화를 나누자.     

 

.........................................................................................................................................................................................................................

 

불교 및 이웃종교의 평화론과 통일의 길

-내면적 비무장을 위해-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들어가면서

 

 

먼저 이런 뜻 깊은 자리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최 측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정전 60주년을 맞아 불교의 평화론과 한반도 평화 통일을 모색하는 이 세미나는 평화를 추구하고 통일을 앞당기려는 우리 모두의 여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수불 스님을 비롯 애쓰신 분들의 혜안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시다시피 21세기의 화두는 무엇보다 ‘생명·평화’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는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등 큰 전쟁은 물론 세계 곳곳에 전쟁이나 분쟁이 그친 날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흑백, 선악으로 재단하는 서구식 이분법적 사고를 최고 가치로 떠받들던 20세기는 이런 면에서 실패의 세기라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20세기의 여파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사상적 대립과 갈등이 빚어내는 비극적 결과로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크게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같은 정치·경제 사상의 대결, 중동에서의 이슬람교와 유대교 간의 갈등, 아일랜드에서의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 등 종교 사상의 대립, 작게는 집단이나 개인 간의 사상적·종교적 충돌 등은 우리 시대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열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열병의 최대 희생자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전쟁으로 몇 백만 명이 희생당하고, 남북으로 갈라져 생사도 잘 모르는 이산가족이 수 없이 생기고, 아직까지도 남북 대결과 긴장으로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이 누적될 뿐 아니라, 남북의 군비 경쟁으로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하고, 남북 경협이나 통일 한국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혜택과 특권을 모두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평화와 안녕을 목표로 하는 종교가 실제적으로는 이런 전쟁이나 분쟁이나 충돌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이를 촉발하거나 심화시키거나 연장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보기에 따라 세계 분쟁의 태반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종교와 관련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종교인들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불교를 비롯하여 여러 종교가 전쟁을 촉발하는 원인제공자가 아니라, 전쟁을 미연에 예방하고 전쟁 지역에서 진정으로 전쟁 억제자, 화해자, 중재자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제게 주어진 제목에 따라 평소 종교와 평화와 통일에 대해 제가 생각하던 바의 일단을 피력하여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웃 종교는 평화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여기 대 주제 취지문에 보면, “서양에서는 나의 동일성을 고집하며 타자를 배제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이성과 교양이 가장 증대된 20세기를 전쟁과 학살의 시대로 몰고 갔다”고 했는데, 사실입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와 역사를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이분법적 세계관과 역사관을 서양에 물려주었습니다.

 

 

이런 세계관과 역사관에 영향을 많이 받은 종교가 유대교였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이런 역사관을 채 받고, 이것은 다시 공산주의의 유물론적 투쟁사관으로 계속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공산주의는 역사를 기본적으로 갈등과 투쟁의 역사로 본 셈입니다.

 

 

이런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세계에는 두 개의 대립적인 세력이 있고, 이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를 제거하거나 자기에게 종속시켜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Pax Romana’(로마의 평화)라는 것도 로마 제국이 다른 모든 세력을 억압하고 강제적으로 통치할 때 얻어진 싸늘하고 강제된 평화를 뜻합니다.

 

 

물론 이런 종교들도 평화를 가르칩니다. 유대인들도 평화라는 뜻의 ‘샬롬’을 인사말로 쓰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들도 인사로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하는 뜻의 ‘아살라무(as-salamu)’라는 인사말을 하고, 더욱이 ‘이슬람’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평화라는 뜻의 ‘살람(saalam)’과 어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땅에는 평화’라는 말을 연계하는 것은 물론, 예수님 자신을 ‘평화의 왕’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평화가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 이렇게 평화를 강조한다는 것은 평화가 없기에 그만큼 평화를 희구했다는 역설적 진리를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심지어 공산주의 등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던 문화권이나 종교계에서는 평화보다는 분쟁이나 전쟁이 더 지배적인 현상이었다고 보아 틀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에서도 전통적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투쟁적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그 구체적인 예가 있습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그리스도교 내에서 지금까지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서구 역사를 참회하고 화합과 일치를 지향하겠다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정신을 실천하려고 생긴 중추 기관이 1948년에 생긴 ‘세계교회협의회(WCC)’입니다. 이 기구의 제10차 총회가 금년 10월30일부터 11월8일까지 부산에서 열리기로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그리스도교 대표들이 매 7년에 한 번씩 모이는 이 총회는 세계 그리스도교에서 올림픽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7천 여 명이 모이는 WCC 총회는 다양한 사상이나 종교, 문화, 삶의 스타일 등을 두고 그 동안 계속 대립과 갈등으로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사는 것이 참된 의미의 그리스도교적인가 하는 것을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금년의 주제는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입니다.

 

 

이런 기구의 총회가 부산에서 열리는데, 한국 보수 교회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주도가 되어 1월13일 이와 관련한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자기들은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애, 종교 다원주의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물론, 이웃 종교인을 모두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겠다는 이른바 ‘개종전도’를 자제하라는 신중론에도 반대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고,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데, WCC가 이런 입장을 인정해야만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 협조하겠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한 공격적이고 배타적이고 전투적인 선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1.13 선언문이 발표되자 기독교 진보 진영에서 반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의 반대 성명이 있고, 기타 한신대, 성공회대, 감신대 등 신학대학 교수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등 에큐메니컬 단체에서 1.13 선언문을 공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2월4일에는 생명평화마당 신학위원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공동 주최로 “에큐메니칼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선언문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한국 기독교의 절대 다수는 한기총이 발표한 것처럼 다른 종교, 다른 이데올로기, 다른 생활양식을 자기들의 문자주의적이고 표피적인 성경 해석에 따라 무조건 배척하는 이런 근본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런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 간의 평화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스위스의 저명한 신학자 한스 큉이 “종교 간의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한 말이 맞는다면, 한국 보수 기독교가 이웃 종교에 극히 배타적이고 전투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공산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이런 태도를 가지고는 종교 간의 평화도, 세계 평화도, 남북 화해도, 심지어는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평화도, 기대하기 곤란하다는 것은 거의 자명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반면, 잘 알려져 있듯, 동양의 전통 종교는 사실 모두 이분법적 세계관이 아니라 화합과 상생을 중요시하고 살생을 멀리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른바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입니다. 불교에서 가장 많이 말하고 있는 화엄의 법계연기설은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힘 있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편이냐 네편이냐” 따지는 ‘냐냐주의’가 아니라 ‘나도 너도’ 함께 살자고 하는 ‘도도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발표자들께서 화쟁론을 비롯하여 불교에서의 평화론을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것으로 믿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주 저는 부처님의 출생지 네팔에 가서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를 방문했다가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산맥과 페와 호수가 보이는 산 위에 우뚝 세워진 ‘평화탑(Peace Pagoda)’에 가보았습니다. 일본 불교 종파 중 가장 전투적이고 배타적이라 할 수 있는 니치렌(日蓮) 종에 속하는 후지이(1885-1985) 스님의 주도 하에 세운 탑이기는 하지만 아시아 불자들의 평화 염원을 담아 세운 듯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현재 이런 평화탑이 세계 8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있는 평화탑은 니치렌 종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동양에서는 불교 뿐 아니라 유교, 도가 사상가들, 심지어 묵자(墨子)같은 사상가도 그 동기는 각각 달랐지만 모두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평화를 가장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철두철미하게 가르치는 사상가는 노자님이었습니다. 노자님은 도덕경에서 “도로써 군주를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을 써서 세상에 군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무력을 쓰면 반드시 그 대가가 돌아오게 마련이어서 군사가 주둔하던 곳엔 가시엉겅퀴가 자라나고, 큰 전쟁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르게 됩니다.”(제30장)고 경고했습니다. 또 “욕심이 없으면 고요가 찾아들고 온 누리에 저절로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제37장)고도 했습니다.

 

 

유교 경전 대학(大學)에 보면 우리 인간이 밟아가는 여덟 가지 단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궁구하고, 앎이 지극해지고,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인격을 도야한 사람이 가정을 올바로 꾸미고, 사회를 다스리고, 궁극적으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큰 배움의 궁극 목표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많은 젊은이들에게 대학 교육의 목표가 ‘취업’이라는 현실이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배움의 목표가 ‘평화’였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통일을 저해하는 통일에의 염원

 

 

그러면 이분법적 사고를 기저로 하고 있는 공산주의나 기독교는 열외로 하고, 이렇게 비 이분법적이고 평화지향적인 동양 사상을 물받은 오늘 한국에, 7천만이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이 한반도에, 왜 통일은 되지 않고 오히려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이나 분쟁이 그칠 날이 없고, 크게는 남북으로 대치되어 으르렁거리는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의 생각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저해하는 가장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일에의 염원이 통일에 대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덮어놓고 통일을 좋아하는 그것이 바로 통일에의 걸림돌이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나 역설로 들립니다만 이런 이상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배경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통일’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 말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사용합니다. 하나는 여럿이 어느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뭉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가 무조건 단색적으로 똑 같이 한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 하면 "unity"와 "uniformity"의 구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 보완관계, 상생관계를 가지고 ‘화합’하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누구나 무슨 일이 있든 한 색깔, 한 모양, 한 생각, 한 행동으로 똑 같아야 한다는 ‘획일성(劃一性)’을 뜻합니다.

 

 

전자는 음양이 서로 다르면서 둘 다 함께 ‘태극’이라는 변증법적 종합으로서의 하나를 이루는 것이고, 후자는 음양이 한 가지로 음이 되든지 양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자는 이것‘도’ 살리고 저것‘도’ 살린다는 뜻에서 이른바 ‘도도주의’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 하나로 하나가 된다는 이항대립(移項對立)이나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의미에서 ‘냐냐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어로 하면 전자는 ‘both/and’ 사고요, 후자는 ‘either/or’ 사고입니다. 사실 동양사상은 물론 세계 종교의 심층을 보면 모두 이렇게 다름이 화합을 이루는 both/and를 이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음양을 어우르는 태극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의 십자가나 물고기, 유대교의 다윗의 별, 불교의 만(卍)자 등이 그 예입니다.

 

 

이런 상생적, 상보적 통일이 아니라, 획일주의적 통일은 요즘 같은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통일, 참된 의미의 통일은 이런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획일화된 단세포적, 단색적 통일을 염원한다면 이런 통일에의 염원이야 말로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서로 모여 화합을 이룬다는 의미의 참된 통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모든 말썽과 불화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런 식의 통일은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 아니라 이 겨레를 비롯하여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을 죽이는 일이라 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두가 한 가지로 통일되기를 바라는 획일주의적 사회는 무엇보다 생명이 없는 싸늘한 사회입니다. 모두가 주어진 하나의 윤리 강령, 하나의 가치 체계를 가지고 그것만이 세상에 유일한 무엇인 것처럼 떠받들고 살아가도록 강요당하는 사회입니다. 지극히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사회로서 개인의 자유스런 사고나 독립적 행위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권위나 체제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내가 남과 같지 않아도 못 견디고, 남이 우리와 같지 않은 것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개인의 창의성이나 독창성이 나타날 여지가 없습니다. 로봇처럼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는 금속성 정확성만이, 그리고 죽은 듯 창백한 일사불란(一絲不亂), 모방과 눈치의 순응만이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통일을 원한다면 이런 그릇된 의미의 ‘획일성으로서의 통일’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서로 다름을 포용할 수 있는 정신 구조와 마음가짐을 다짐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만사가 똑 같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려면 모든 면에서 꼭 맞아 떨어져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서로 달라도 ‘틀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다르면 어느 한 쪽이 반드시 틀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통일하자고 주장하는데, 실생활에서 감옥 같은 특수 목적을 위해 프로그램 된 사회가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모두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고집이 있는 한 그야말로 융화와 화합으로서의 통일을 기대하기는 곤란한 일입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저는 이렇게 획일적인 의미의 통일이라는 독소적 견해를 해독할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이고 친숙한 가르침으로『논어』에서 공자님이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생각해 봅니다. 참된 의미의 통일이란 물에 물탄 것처럼 싱겁게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목표, 한 가지 이상, 한 가지 구심점을 향해 서로 다른 것이 모여서 새로운 차원의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체의 독특성을 인정하면서 뭉치는 화합(和合)입니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조화된 음을 내는 것입니다. 모자이크처럼 조화된 모양을 내는 것입니다. 김치에 들어간 온갖 종류의 재료들이 어울려 조화로운 제3의 맛을 내는 것입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 서로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권리를 존중하면서 하나 더 높은 차원의 무엇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는 데 합의한다(We agree to peacefully disagree.)”의 태도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화로운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서로 달라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것은 조화를 이루는 방해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필수 요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서로 다른 것이 없는 데는 조화라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상대방의 개성이나 의견을 짓누르거나 그 생각을 억누르고 꺾어버리려는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 획일주의적 사회, 그런 마음 바탕에서는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는 참된 의미의 통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화합과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 진정으로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열려진 마음, 상호 존중과 신뢰의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할 줄로 압니다. 특히 힘 있는 쪽에서 먼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자님의『도덕경』제61장에 보면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스스로를 낮춤으로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향해 내려감으로 큰 나라를 얻습니다.”고 했습니다. 남북 관계에서 남쪽이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지금껏 한 말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일종의 ‘다원주의적 시각’을 함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동양사상은 다원주의적 시각을 강조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적 용어로 하면 7세기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주장한 ‘화쟁(和諍)’ 사상입니다. 원효는 그의 유명한 화쟁론에서 일종의 다원주의적 시각을 강조합니다. 그는 실재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가 당면하는 여러 가지 상충되는 범주들, 예를 들어 있음(有)과 없음(無), 빔(空)과 몸(體) 등을 다룰 때, ‘어느 한 쪽의 견해에만 집착하면’ 우리는 결국 실재를 분명히 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한 면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양쪽을 보완적으로 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화엄(華嚴)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과 함께, 원효가 제창한 이런 다원주의적 시각이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정신적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 평화와 내면적 비무장

 

 

매년 ‘세계 노벨평화상 수상자 세계 정상 회의’가 세계 여러 곳을 돌며 열리고 있습니다. 제11차 회의는 2010년 11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65주년을 맞아 히로시마에서 ‘핵무기가 없는 세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렸습니다. 그동안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과 노동운동이나 사회봉사로 수상한 단체의 대표 등이 참석했습니다.

 

 

참석자들은 한 결 같이 이 세상이 핵무기가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세상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제안이 나왔습니다. 세계 지뢰퇴치 운동으로 평화상을 받은 조디 윌리엄스는 미국이 세계 평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기에 미국이 제 정신을 차리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가난이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므로 가난을 퇴치해야 한다. 이제 국가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개별 도시 간의 공조, 젊은이들 간의 우의를 통한 협력으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무력이나 군사력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생명, 평화, 문화, 교역 등 소프트웨어가 힘임을 자각해야 한다.’ 등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게는 달라이 라마의 발언이 특히 의미 있게 들렸습니다. 그는 20세기를 세계 인구 2억 명을 희생하면서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 ‘유혈’의 세기로 규정하고, 이제 21세기를 ‘대화’의 세기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계라는 이상을 실현하려는 방법으로 ‘비무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결국 궁극적 해결은 ‘외적’이 아닌 ‘내적’ 비무장에 있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와 가슴을 가리켰습니다. 세계 평화는 우리 속에 있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없앨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권력이나 물질에 대한 욕심을 기본으로 하는 ‘물질적 견해’에 지배되면 사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총체적 견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 의존돼 있다는 연기법을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과 저것, 너와 나,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어울려 있는 존재이기에 세상이 잘못되면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집단만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원수를 파멸하는 것이 곧 나를 파멸하는 것”이기도 한데 왜 싸우겠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베트남 출신 팃낫한 스님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로워라.”고 하고, 또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먼저 우리의 마음 안에 평화를 만들거나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어느 한 편이 옳고 어느 한 편이 그르다고 편을 가르고 옳다고 생각되는 쪽의 편을 들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쪽을 비난하는 편가르기를 중단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두 쪽 다 자비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근 도법 스님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가면서

 

 

달라이 라마나 팃낫한 스님의 이런 안목이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하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불교 지도자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불교인뿐 아니라 각자 자기 종교의 심층에 이른 종교인이라면, 아니 인류의 평화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나아가 이런 생각들이 우리 사이에 더욱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이 오늘 남북 화해와 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이런 평화‘론’이라고 하는 ‘이론’ 뿐 아니라 이런 이론을 실행에 옮기는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행동이 요구되고 있고 우리는 그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여불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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