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치유 사례들

by 눈뜬장님 posted Jul 12, 2016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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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성애 치유에 관계하였던 전문가들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Bieber 박사는 20년간의 조사를 한 후에,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바뀔 가능성은 약 30%에서 50%까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치료된 환자들은 10년 동안 관찰한 결과, 여전히 이성애자로 남아있었다고 밝혔다. Masters와 Johnson은 67명의 동성애자와 14명의 레즈비언을 치료한 결과, 6년 후에 71.6%의 성공률을 보고하였다. 정 신과의사인 Wilson박사는 기독교인인 동성애자를 치료하였을 때에 55%의 성공률을 나타내었다고 주장했다. 임상심리학자인 Kronemeyer박사는 약 80%의 동성애 남성과 여성이 치료 후에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이성애자로 변화되었다고 밝혔다.

 

미 국정신의학협회가 1973년에 동성애자들의 압력에 의해서 동성애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이 있기 전에는 동성애 치료에 성공한 결과들이 잡지에 많이 실렸는데 그 이후에는 철저하게 삭제되었다. 그러한 업적들이 정책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동성애 단체들이 반대하기에 이제는 정신과 의사들도 동성애 치료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1992년에 미국정신의학협회가 동성애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에 반발하여서,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서 NARTH(National Association for Research and Therapy of Homosexuality)라는 단체를 창립하였다. 일 년 후에는 약 50명이 참여하였으며, 2007년에는 1500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동성애 인권단체의 협박에 시달린다. NARTH의 창립자인 Joseph Nicolosi는 남성 동성애의 치유방법을 다루는 책을 썼다는 이유로 많은 항의 전화와 편지를 받았다.

 

이 제부터는 동성애에서 치유된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 갈보리채플교회의 이요나목사는 XTM케이블 토론에 나와서 ‘나도 43살까지 홍석천씨와 똑같은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사춘기 때부터 동성애 성향을 느껴 온 이요나 목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생인 친척 형제로부터 지속적인 동성애 성폭행으로 동성애에 중독이 되었고 동성애로 말미암아 젊은 시절을 상실하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요나 목사는 25년 전 이태원에서 동성애자들을 위한 게이바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동성애자로 살았던 그가 이성애자로 바뀐 데는 예수를 영접한 후 12년 동안의 뼈를 깎는 믿음의 투쟁으로 43살에 본래의 성으로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전 동성애자 앤드류코미스키(Andrew Comiskey)는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동성애에 대한 매력을 가지게 되었고, 비밀로 간직했다가 대학졸업 후에 전적으로 동성애적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떤 파티에서 집단강간과 구타를 당한 그는 진지한 고민에 빠졌으며, 1976년 11월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 UCLA에서 공부하다가 부인 애넷을 만났고 후에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를 취득했다. Vineyard Anaheim에서 전동성애자들을 위한 지원그룹을 시작했고 곧이어 데저트스트림 사역(Desert Steam Ministry)을 창설하였다. 현재 데저트스트림 사역의 대표로서 동성애회복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앨랜챔버스는 사춘기와 청년기에 동성애의 문제와 씨름하였지만 지금은 이성애의 삶을 살고 있고, 레슬리챔버스와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현재 플로리다 올란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의 대표로 활동하며, 세계적으로 돌아다니며 동성애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주로 한다.

 

마 이크즈눙은 13년 동안 5명 심리학자와 2명 정신과의사를 만나 상담을 받았고 8년 이상 프로그램과 책을 읽었지만 치유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서, 근원이 되는 깊은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의 핵심이 되는 수치심과 여전히 굴레로 작용하고 있는 아픈 기억들에 대해 치유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동성애자로서 엑소더스 인터내셔날을 창시한 프랭크웨덴은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동성애의 치유는 가능할 뿐 아니라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Parents and Friends of Ex-Gay and Gays의 전대표였던 Richard Cohen, 아프리카계 미국인 레즈비언을 위한 잡지 Venus의 편집장이었던 Charlene Cothran, CCM 가수이자 작곡자인 Dennis Jernigan, National Coming Out of Homosexuality Day의 회장이었고 Kerusso Ministries의 창시자인 Michael Johnston 등이 동성애로부터 벗어난 대표적인 인물들로 꼽히고 있으며, 전동성애자단체 엑소더스인터내셔널에 의하면 동성애를 벗어났거나 벗어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세 계적으로 동성애에서 벗어나려는 자들을 돕는 단체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서, 북미의 전동성애단체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은 북미 120개의 사역단체와 전 세계 150개의 사역단체를 포함하는 가장 큰 전동성애 단체가 되었고, 가톨릭의 Courage, 장로교의 One By One, 감리교의 Transforming Congregations, 유대교의 JONAH가 있으며, 소년을 위한 Exodus Youth, 그리고 전동성애자 교사 및 학생을 돕기 위한 NEA Ex-Gay Educators Caucus가 있다. 또 다른 북미의 대표적인 전동성애단체로는 앤드류코미스키가 1981년에 창설한 데저트스트림 사역이 있으며, 유럽의 전동성애단체 Exodus Europe, 영국의 True Freedom Trust, 스웨덴의 Medvandrarna, 노르웨이의 Til Helhet, 덴마크의 Basis, 핀란드의 Aslan, 벨기에의 Different, 네덜란드의 Onze Weg가 있다. 기타 지역의 전동성애단체로서 1978년에 Peter Lane은 Liberty Ministry라는 호주의 첫 전동성애단체를 창설하였고, 중동에는 유대교인을 위한 Atzat Nefesh와 이슬람교인을 위한 Al-Tawbah가 있다.

 

한 국에는 2006년 11월에 설립된 웰스프링이 2007년 9월부터 첫 동성애자 지원그룹 모임을 시작하였다. 또한 이요나목사가 세운 크리스천상담실과 한국성경적상담자협회가 동성애자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 크리스천상담실은 2000년 5월에 이요나목사가 다음카페에 ‘이요나 크리스천상담실’을 개설함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15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하여 온라인-오프라인 상담을 통하여 꾸준히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이미 많은 동성애자들이 회복하여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성경적상담자협회는 2007년 1월에 미국성경적상담협회의 김주원 박사, 박영률, 이요나목사, 금주학교 대표 김도형목사 등에 의해서 설립되었으며, IABC, NANC, BCF와 공동협의회를 구성하여 동성애, 성중독, 알코올, 마약, 게임 중독, 우울증 등을 상담 치유하고 상담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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