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수녀의 귀환

by 여적 posted Feb 02, 2016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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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슴 얼굴을 닮았다고 ‘소록도(小鹿島)’라 했다. 그러나 1916년부터는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한 ‘버림받은 섬’이었다. 손발이 잘려나가고 얼굴이 문드러지는 병은 가장 가혹한 전염병으로 치부됐다. 남성환자에게 정관수술을 시키는 ‘단종법(斷種法)’까지 공포했다. 사후엔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신을 해부했고, 칼로 난도질한 시신은 화장장으로 보냈다. 천형(天刑)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반인권의 행태들이었다.


1962년과 1966년 이 섬에 꽃다운 20대 수녀 둘이 찾아왔다. 당시 소록도병원장이던 조창원씨는 “백로 두 마리가 사뿐히 섬에 내려앉았다”고 표현했다. 오스트리아 교구청 소속의 마리안 스퇴거와 마거릿 피사렉 수녀였다. 수녀들은 소록도를 사랑과 희망의 땅으로 바꿨다. 장갑도 끼지 않고 짓물러가는 환자들의 손발가락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피고름이 튀었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마스크와 장갑, 방역복까지 칭칭 동여매고 환자들을 다루던 의료진조차 처음엔 ‘미친 짓’이라고 만류했다. 마리안 수녀는 훗날 “6000명 환자를 일일이 치료하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했다”고 밝혔다. 버림받은 환자들을 보살핀 두 수녀에게 ‘큰 할매(마리안), 작은 할매(마거릿)’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저 숨은 곳에서 베풂과 기적을 펼쳤다. 모든 상과 인터뷰 제의를 거부했다. “그냥 할머니 자원봉사자가 하는 일인데 뭘…”이라 했다. 그러던 2005년 11월21일 새벽 두 수녀는 작별인사도 없이 귀국길에 올랐다.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둘은 광주에 도착해서야 편지 한 장을 부쳤다. 짐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제대로 일할 수 없고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우리의 잘못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떠나는 두 수녀의 손엔 40여년 전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하나씩만 들려 있었다. 두 분 중 ‘큰할매’ 마리안 수녀(82)가 5월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은할매’ 마거릿 수녀(81)는 치매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흐릿해진 정신이지만 소록도의 추억만은 또렷하다는데….                                 <경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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