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불성설인지 역설인지?

by fallbaram. posted Jul 07, 2016 Likes 0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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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큰 결핍은 인물의 부족이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심령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제일먼저 아래의 제목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 활보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삼육대학의 사진이 나타난다.

전인교육을 실현하는 교회

선지자의 글 내용이 그대로 적용이 된다면 삼육대학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동문들은 이미 중보자 없이도 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육개월이 아니라 언제나 그렇다는 말이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한 범죄의 행동으로 망가진 씨에서 나왔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같은 책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도 써 있다.


선지자가 말하고 우리 교회가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읆조리는 아래의 말이 성립이 되려면,


“인류의 가장 큰 결핍은 인물의 부족이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심령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


로마서의 내용들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같은 책에 기록한 또 다른 내용대로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고 하는

칭의적 의에 이른다고 해도 나침반은 될 수가 없고

양심도 고정된 의를 유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늘이 무너질지라도"는 더더욱 아니다.


찬미가의 한 소절처럼

복음은 이런 것이다.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이 찬미와 선지자의 글과는 그야말로 남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바늘과 같이 만나지 못할 극한의 대조이다.


한국재림교회의 성경학자이신 어느분이

모든 시작은 창세기 1장과 3장 까지에 들어있다고 하셨다.

위대한 관찰이다.


그 안에서 시작이 된 선악과의 유혹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백성이라고 하는

영역안에서 마지막까지 아니 종말까지

따라오는 성경역사의 중심적 기별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인류의 가장 큰 결핍은 인물의 부족이다." 로 시작하는

이 그럴듯한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인가 아니면

하나님 답지 않은 소리인가?


나는 언제나 이것 때문에 고민한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하시던 그 음성과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어디에 서야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예수의 말씀을 살려야 하는가?

아니면 선지자의 말을 살려야 하는가?


우선 이것이 먼저 해결이 되면 지금 민초의 관심사인

"동성애" 자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판결이 날 것 같은데...


이 문제를 놓고

누가 날 시원하게 해 줄

냉수 한그릇 퍼다 줄 사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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