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성소가 정결해진다는 의미 (장문입니다. 관심있는 분들만 클릭하세요)

by 엘리야 posted Jul 08, 2016 Likes 0 Replies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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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날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4-5)


성경 요한복음을 보면 서글픈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 새벽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울고 있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묻습니다.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요20:13)


그 때 슬픔이 가득한 마리아가 천사인줄도 모르고 대답을 합니다.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요 20:13-14)


참으로 서글픈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였던 여자, 그리고 예수께서 가장 가까이

두시며 가장 많이 사랑하셨던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도대체 어디에 가져다 두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서계심에도 알아보질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나셨고 바로 마리아 곁에 서 계신데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21세기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로 오르사 우리를 위해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 승천하신 예수님을 누가 어디에

가져다 두었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어디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현대 진리를 아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예수님이 부활, 승천 이후

하늘 성소에 들어 가셔서 제사장이 되셨음을 천명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이미 확정되었고 그래서 조사 심판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간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은 회개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이 거룩한 곳인데 무슨 조사 심판을 통해 하늘이 정결하게

될 필요가 있느냐면서 조사 심판에 대한 강한 부정을 드러냅니다.


과연 그런가?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그것으로 우리 구원과 구속이 다 완성되고 끝났는가?

그런데 왜, 다 끝났는데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 들어가

무엇 때문에 제사장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셨을까요?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은 직무는 철저히 죄와 죄인과 연계된 직무이거든요.


우리는 오늘 히브리서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셨다는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땅의 모세 성막은 하늘의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한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이 땅의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하늘 원형과 실체에서

우리 구속을 위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소는 철저히 인간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이 담긴 모형입니다.


성막 첫 부분인 뜰에서 양 잡는 곳과 번제단과 물두멍이 그렇고,

성소의 떡상과 촛대와 분향단이 그렇고, 지성소의 언약궤와 시은소

그리고 그 성소에서 진행된 매일의 의식과 해마다의 의식이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인간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을

우리에게 낱낱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형과 그림자에서 행했던 것은 그 성소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정확히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매일의 봉사는 매일 제사장들에 의해 진행이 되면서

날마다 죄 짓는 연약한 백성들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년에 딱 한 번 있는 해마다의 봉사는 오직 대제사장이

유대력 7월 10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도말하는

일을 했던 아주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대속죄일이 끝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 용서와 도말의 기쁨을

초말절 행사를 통해 누리고 나누었습니다.

이전 시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의 절기 중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오순절은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성취되어 있습니다.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은 가을 절기로

예수님의 재림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1840년대 윌리암 밀러의 재림 운동으로 대속죄일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나팔절은 성취가 되었고 2300주야의 끝인 1844년 10월 22일

대실망을 당한 바로 그 때 드디어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간원하시던 우리의 제사장 예수께서 대속죄일의 성취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이 놀라운 장면을 다니엘서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9-10)


여기 말씀은 분명히 하늘입니다. 결코 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하늘에서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거기에서 심판을

베푸시는데 책들이 펴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인자 같으신 이 곧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이 땅이 아닌

하늘 아버지 앞에 나아와 영원한 권세와 나라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왜 하나님 앞 곧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가셨으며

왜 그 영원한 나라를 받으셨는가요?


그 답이 같은 다니엘서 7장 22절에 나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


예수님이 지성소에 들어가신 긍극적 목적은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것과 성도들에게 영원한 나라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이 복음인데,

그 복음이 행하여진 사건마다 보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사건들이 반드시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로 오실 때는 하늘의 별들이 움직였고

동방 박사들이 그 별들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왔지 않았습니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 가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울려 퍼지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는 하늘이 어둑해지고 해가

빛을 잃어 캄캄함이 온 세상을 덮었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는 지진이 나면서 돌들이 옮겨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는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하여 행해 주신 과거적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재림하실 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천지가 진동하고 온 대지와 바다의 물들이 흉용하게 뛰어 놀며

상상도 못한 천연계의 이상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 행해 주실 미래적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승천하셔서 재림하시기까지 과거적 복음과 미래적 복음

사이에 현재적 복음 즉 승천하신 주님은 재림하시기까지

어디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고 계신지가 중요한데

그 복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그 무엇이 있었습니까?


이 엄청난 일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 2300주야가 끝나는

1844년 10월 22일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이 장면

그래서 드디어 영원한 권세와 나라를 받으시는 이 놀라운

장면을 위해 재림 운동을 일으키시어 온 세상의 이목이

이 사건에 집중되게 하신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2300주야의 끝인 1844년 10월 22일 윌리암 밀러와

재림운동가들이 당한 실망은 하나님의 철저히 의도한 계획표대로

그대로 진행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즉 십자가 사건은 제자들에게 대실망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온 세상에 알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며칠 전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온 나라와 백성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것처럼,

하나님은 2300주야가 끝나는 1844년 10월 22일 바로 그 때

예수께서 드디어 마지막 인류를 위해 죄를 영구히 도말하시어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는 그 일을 위해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이 엄청난 사건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재림 운동을 일으키게 하시고 쓰디 쓴 대실망의 경험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


그렇습니다. 서기 31년 봄 푸른 하늘을

가르시면서 하늘로 승천하신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니엘서에 예언된 2300주야가

끝나는 때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시는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형과 그림자에서 이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할 일은 무엇이었나?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레 23:27-29)


모형과 그림자였던 지상 성소에서의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적 대속죄일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철저히 자신들을 살피면서 "스스로를 괴롭게 하'여야 합니다.


성도들의 회개와 고백을 통해 용서 받고 "가리움을 받은"

죄들은 지상 성소에서 제사장들을 통해 성소로 옮겨진 것처럼,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 성소 기록에

상징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늘 성소에 죄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죄의 기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는 그 모든 죄의 기록들을

완전히 도말하심으로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 성소의 대속죄일에 최종적 절차인 대제사장이

모든 죄들을 "아사셀을 위한 염소" (레16:8,10,26) 머리에

안수하여 떠맡기고 그 염소를 광야로 내 보내 죽게 한 것처럼

인간을 범죄 하게 한 죄의 근원인 사단에게로 그 모든

죄의 책임을 전가시킴으로 하늘 성소는 비로소

온 우주 앞에 정결케 함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성도들은 구속 받아 영원히 영화로운

영생적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속의 계획 속에 등장한 공간적 청사진인 성소제도는

우리를 위해 성육신 하사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과거적 복음과

부활 승천 이후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현재적 복음,

그리고 우주에서 영원히 죄를 도말하시고 재림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적 삶을 열어 주실 미래적 복음을

완벽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소는 인간 구속을 위해 하나님이 고안하신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속죄일이 왜 심판의 날이었는가?


여기서 문제는 "왜 죄를 영구히 속하는

대속죄일이 심판의 날이었는가"입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하시는 "성도를 위한 심판"은

성도를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성도의 억울함을

풀어 주어' 결국 구원 얻게 하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속죄일의 심판에 접근하여야 합니다.


왜, 대속죄일이 '심판'과 관련이 있는가?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레 23:29)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괴롭게 하는 자'들은 그 지성소 봉사를 통해

그동안 매일의 봉사를 통해 고백 되어진 죄들의 도말과 함께

예비 된 초막절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 날은 '그 백성 중에서

영구히 끊쳐지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백성의 구원과 멸망을 결정짓는 날이기에

그 날을 심판의 날로 묘사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초막절에 참예한 자들에게 대속죄일은

분명히 '쭉정이에서 자신들을 알곡으로 빼어 낸' 복음이었지만,

'백성 중에서 끊어짐을 당한 이들'에게

그 날은 두려운 심판의 날이었음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예언의 신의 기록]

이 두렵고 엄숙한 때에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

우리는 은혜의 시기의 끝을 향해 신속히 다가서고 있다.

우리 각자의 영혼이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것인가?”라고 묻게 하라.

언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의 심판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될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과연,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가!

우리가 의인으로 간주될 것인가

아니면 악인의 수에 끼게 될 것인가?” (1기별,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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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속죄일은 죄를 고백한 백성들 즉 성도들을 대상으로

그들 중 누가 과연 스스로 괴롭게 했는지 안 했는지를 심사하는

조사 심판의 과정과 함께 또 다른 두 국면의 심판의 양상을 보여 줍니다.


즉, 아사셀 염소를 무인지경 광야로 추방한 것은

황폐된 이 지구에서의 사단의 1천년 동안의 감금을 표상하는데,

그것은 재림 시에 시작되고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심판의 두 번째 국면을 보여 줍니다(계 20:4; 고전 6:1-3참고).


이 천년기의 심판을 통해 구속받은 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며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하여 "왜 그들이 구원 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또한 대속죄일의 봉사를 통해 결국 정결해진 성막은

불이 악인들을 소멸하고 지구를 정결하게 할 때

곧 마지막 집행 심판의 결과를 표상하고 있습니다

(계 20:11-15; 마 25:31-46; 벧후 3:7-13참고).


죄의 도말 곧 성소 정결은 과연 필요했는가?


1년 365일 매일 계속된 [매일의 봉사]를 통해 죄를 고백하여

죄에서의 가리움을 경험한 백성들은 1년 동안 그들이

고백한 죄들이 제사장을 통해 옮겨진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대속죄일 봉사를 통해 완전히 도말되어

성소가 정결케 되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사실인가?

이미 고백되어 짐승의 피 흘림을 통해 벗어난

그 죄들이 왜 아직도, 여전히

성소에 남아 있어야 하며, 죄의 도말이 필요한가?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첫째, 죄의 긍극적 책임을 사단에게 전가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지은 죄를 어린양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그 죄의 긍극적 책임은

무죄하신 예수님이 아닌, 죄의 근원인 사단이 져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지상성소의 대속죄일 봉사는

철저히 고안된 놀라운 복음의 청사진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나, 지성소 봉사가 끝나기까지 죽임을 당치 않고

살아 있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 이후

1천년 동안 결박당하여 아무도 미혹할 수 없는

지구에 있게 될 사단의 운명을 표상하고 있다(계20:1~3참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지성소 봉사를 모두 끝마치고 나온

대제사장이 모든 백성의 죄를 상징하는 그 것을

그 염소에게 안수하여 전가 시킨 다음,

무인지경의 광야로 내 몰아 결국 죽게 하는 것은

대쟁투 종국의 사단의 운명을 적절하게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표상]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레 16:20-22)


[성취]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계 20:2-3)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나오실 때

나는 그의 예복에서 방울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가 나오시자마자 온 지상의 거민들은 흑암으로 덮였다.

. ..(중략)...

모든 상황은 결정되었고 모든 보석은 헤아려졌다.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 뜰에서 잠시 머무르신 후

그가 지성소에 계실 때 고백된 죄악들을 죄의 창시자요

죄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사단에게로 옮기셨다.” (초기, 280-281)


왜, 성소 정결이 필요한가?


둘째, 더렵혀진 단과 지성소, 회막을 위해서였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레 16:16-2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더렵혀진 지성소, 회막, 단입니다.

더렵혀진 이유도 명백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레 16:16)입니다.


매일의 봉사를 통해 고백되어진 백성들의 죄들은

분명히 성소의 단과 지성소와 회막을 더럽혔다.

이것들을 대제사장이 염소의 피를 취하여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 성소도 더렵혀질 수 있는가?


모형과 그림자로 주신 지상 성소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백성들이 고백한 죄들은 그 순간 짐승의 죽음으로 용서 받고

그 죄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었으나 짐승에게로 전가된 죄들은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제사장에 의해 성소로 옮겨졌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죄들은 제사장 손에 들린 '피를 따라서'

성소에 들어 가 성소와 휘장과 회막을 더럽힌 것입니다.


성소는 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제사장이라도 반드시 "피를 가지고"만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 후 하늘 성소에 들어가실 때

어떻게 제사장이 되어 들어가실 수 있으셨는가?


유다 지파의 예수님은 레위 지파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히5:6,10)

혹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히7:16)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히 9:12)들어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신 그 피는 무엇인가?

누구의 죄로 인한 피였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적으로 우리 인류 모두의 죄들인 것입니다.

나와 너, 우리와 모두의 죄의 피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날마다 고백하고 회개하는 바로 그 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상적 성소에서 그러했듯이 이 죄들은

예수의 고귀한 피를 따라서 하늘 성소에 상징적으로 옮겨졌고

그 죄로 인해 하늘 성소는 상징적으로 더럽힘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과

우리의 선행이 기록된 [기념책]과 더불어 우리 죄들이

낱낱이 기록된 [죄의 책]이 있으며 하나님은 이 책들을

펴 놓고 "책들에 기록된대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단7:9,10;계20:12;빌4:3;말3:16;느13:14;시56:8;전12:14 참고).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지은 죄들이 한 올도 빠짐없이

죄의 책에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회개의 기도를 따라 그 죄들은 영구히 도말되기도 하고

남아 있기도 합니다.


[예언의 신의 증언]

“영원한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날마다 하늘의 책들에

기록의 양(量)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한 번 입에서 나온 말,

한 번 나타낸 행위는 결단코 돌이킬 수 없다.

천사들은 선악간의 행위를 다 기록하여 둔다.

세상의 가장 강한 정복자도 단 하루의 기록을 취소할 수 없다.

우리의 행위, 우리의 말, 심지어 가장 은밀한 동기까지도

모두 행복과 불행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쟁투,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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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머물러 계시는 동안, 우리가 죄의 고백과 회심으로

죄의 책에 기록된 죄들을 도말 받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복음인 것입니다.


“속죄의 봉사가 마칠 무렵의 광경은 실로 엄숙하다.

거기에 관련된 관심은 참으로 심각하다.

심판은 오늘날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신속히, 얼마나 신속히 오늘날 살아 있는 자들의

사건이 취급될지 아무도 모른다. " (쟁투, 490)


앞서 본 것처럼 우리 죄의 긍극적 책임인 사단이 져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종국적으로 우리의 모든 죄들은

하늘로 옮겨져 있고 다니엘서가 예언한 2300주야가

끝나는 때부터 이 모든 죄들로 인해 더럽혀진

하늘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사업이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를 통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가 끝나는 때에

그 모든 죄의 흔적들은 하늘에서 영원히 도말 되는 동시에

죄의 창시자인 사단 곧 마귀에게 지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단을 불로 소멸함으로 사단과 죄,

사망과 음부를 영원히 끝장내시고 만물을 새롭게 함으로

오직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오직 믿음으로 산성도들에게

죄의 흔적조차 없는 신천신지를 선물하실 것입니다.


의인들의 모든 죄가 죄의 창시자 사단에게 옮겨지며,

사단은 그들의 받을 벌을 모두 받아야 할 것이다......

정결하게 하는 불길 가운데서 악인들은 모두 멸망을 당할 것이다.

뿌리와 가지 뿌리인 사단과 가지인 그의 부하들이 다 멸망한다. 살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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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대쟁투의 종막입니다!!!


죄의 장본인인 마귀 사단에게 모든 죄가 옮겨지고

그 죄 값으로 사단이 영구히 유황불로 소멸되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복음의 절정이요 끝이요 긍극이요 최후이요 마지막인 것입니다.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 (쟁투, 678)


대쟁투가 끝나는 그 날이 구속의 완성인 것입니다.

우리 앞에 다시는 영원히 죄와 죄인들이 사라지는 그 날이

예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구속이 완성되는 날인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 21:1).

악인들을 태우는 불은 세상을 정결하게 한다.

저주의 흔적이 다 사라졌다. .....

죄와 죄인이 다시 없으며 하나님의 온 우주는 정결하며

대쟁투는 영원히 끝난 것이다(살아, 430)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제공된 구원의 완성이며 구속의 종결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 성소가 완전하게 정결케 되는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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