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엔 출입을 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 역시 경계가 없으신 분이군요.
이따금씩 속이 쉬원하고 후련한 이야기 카스다에서 하시는것 보면서 글하나
띄우고 싶었읍니다.
생각의 울타리가 연세에 비해 엄청 넓고 진취적임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울타리 안에서 정말 잘 모셔야 할 분임을 느끼고 삽니다.
건강하시지요?
감사합니다
글고
존경 합니다.
여기엔 출입을 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 역시 경계가 없으신 분이군요.
이따금씩 속이 쉬원하고 후련한 이야기 카스다에서 하시는것 보면서 글하나
띄우고 싶었읍니다.
생각의 울타리가 연세에 비해 엄청 넓고 진취적임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울타리 안에서 정말 잘 모셔야 할 분임을 느끼고 삽니다.
건강하시지요?
감사합니다
글고
존경 합니다.
아래의 댓글은 카스다 글동네에 달았던 내용입니다.
ㅇㅇㅇ 선생님
소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던 그 청년 율법사에게
대답하신 이가 다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어쩌면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으로
취급하는 내 자신이 십자가에서 강도만난 자를 구하는 일을 하실 것이라는 비유를 말씀하신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가 신학이 잘못되어도 그것을 용서하실 그분이라는 따스함이 느껴지지만
신앙 (마음의 표현)의 표현이 잘못되면 양과 염소의 비유처럼 끝내 영생의 문턱에서 편가르기를
하실것이라는 하나님의 속내를 보게 됩니다.
어쩌다 이 교회는 스스로 마지막 교회요 진리 교회요 또 남은자들이라는 신학적 결론으로만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속도" 로 달려 가고 싶은지 모를 일입니다.
뭐 그런것이 다 틀리다는 말이 아니고
오직 예수의 말씀을 들을때에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고 물음하던 그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무언가 따뜻한 것들이 서로와 서로를 향해서 흘러 나오는 신앙이 그리운
계절이 마지막 시기가 아닙니까?
그분이 인을 치실 때
신학은 바로했지만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자들을 인치시지 아니하고
그러나 신학은 다소 어그러 져도 마음이 따뜻한 자들을 인치신다 하면
우린 바깥으로 쫒겨나서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되지 않을까요?
오직 사랑이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가 믿고 앙망할 때에
거저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않을까요?
초면에 실례를 범했읍니다
용서를 빕니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는 무리들은
초막 3개 짓자는 수준에 머뭅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아낙네 수준이지요
거기서 난 민초같은 집창촌에 안간다 하면서
혹시 내 욕 하는 놈 없나하고 들여다 보는 한심한 ㄴ ㅕㄴ 놈되지 않으려면
그냥 동네 마실 다녀오듯 하면 되는데
여기 안 오는 것이 훈장이나 되는듯 까발리는 연/놈 보면
진짜로 구역질 나거던요
왜 진리라는 것이 이렇게 타락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