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뜰 솔숲 에 쉼 없이 7월의 장마비가 내려삿는다.
뜨돌아 다니다가
켈리포니아 에서 십여년 몸기대며 사는동안
돌아만 가면
7월의 푸름과 흥근한 빗물속으로
첨벙 그리면 그렇게 살리라 했던 그 젖음 이다.
그런데도
오늘 은 우울하다.
그렇잖아도 피할수 없는 시간의 것들이
내게 던져저 있는데
그런데
조건 을 놓고
일방적으로 내 이름 부르며 또 다른 정해 버린 시간 을
통보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이 이곳에서 마지막 글이 될는지도 모르고
또 스스로 장을 덮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되도록 이면 솔직한 글이 되었어면 할뿐이다.
그렇다
업압 받는다 고 하는 성 소수 자들이. 다 옳아서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용납 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매도 불구하고
그들 성 소수자 들이 응용해 사용하는 노아 의 표지를
우리는 왜 이해 와 포용 을 해야 하는가 ?
그것은
그들의 가증한 성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 행위자 로서 의 같은 인간의 연약성 을 이해 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나는 왜
아래 김원일 님 이 퍼올린 글에 단 나의 댓글 삭제 요청에
불응하며 그 성 소수자 들을 향한 포용성 에 도리어
분노로 표출 하고 있는가 ?
바로 노아깃발 을 흔드는 그들의 연약성 이
도리어 교활한 조직성으로
가치의 종교적 성,
가치의 인류 역사 의 성을 허물고 파괴 하고 또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깃발의 표지 에 합세 하여
정치적이고 인류애 라는 이름을 가리개 로 하여
비열한 유희 를 꿈꾸는 무리들의 부추김 들을
가증 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또 이런 지식인 아비들의 역활 이 죽은 사회에서
그 어미들의 절망 때문이다.
이 모방된 노아의 깃발은
이미 이해관계의 상표 기 되었어며
실제로 가치 재판에서 어이없게 요구될 만만찮은 댓가로
우리에게 청구 되어 오기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원일 님 은 왜 분노 하는가 ?
성 소수의 권익 때문인가 ?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 하면 종교 적이던 역사적이던
그 가치를 지켜야될 사회적 어미몫 을 갖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성소수자의 인권 이란 표지를 내밀고
가치를 요구하는 흑인 학생 까지 그의 말대로 가차없이 매몰 시킨다
생리 와 인간의 가치를 구별 못할
어리석은 자는 아니지 않는가 ?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초야에 뭋힌 보잘것 없는 한 필부의
댓글을 갈바서 이렇게 시간협박 을 하는걸까 ?
그 모방된 노아 깃발 의 교활한 조직성 에서
부추기 는 유희 로 그를 함께 그려넣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
미국 어느주 에서
게이 에게 남편을 잃고 자녀들도 뿔뿔이 잃어벼린
슬픈 한국 여인을 만난 일이 있다
7월 의 소낙비 소리 아래서
그를 기억하며 흙으로 만난다
내 딸이
그럴진데
이런 소리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