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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17 / 사순절 첫째 주일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만나다!

출애굽기 3:1-12

 

곽건용 목사

 

시작은 미미하고 보잘것없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딸들을 도운 덕분에 그의 데릴사위가 된 모세는 40년간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양치기로 살았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는 그 긴 세월을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요? 몸은 비교적 한가했을지 모르지만 마음까지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있었던 일들이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자기가 태어났을 때 벌어졌던 일들,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되어 왕궁에서 살았던 세월, 동족 히브리인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 가족들에 대한 생각 등으로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날도 늘 그랬듯이 그는 양떼를 몰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짓는 농부의 삶이 ‘전원적’이지 않듯이 양떼를 치는 유목민의 삶 역시 그리 ‘목가적’이지 않습니다. 농부의 삶이 전원적이지 않고 목자의 삶이 목가적이지 않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목동의 일은 매우 힘들고 따분하다고 합니다. 유목민은 양떼에게 먹일 풀이 있는 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습니다. 한 곳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양떼에게 풀을 먹이다가 더 이상 먹일 풀이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옮기곤 했습니다. 한 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풀을 찾아서 먼 곳까지 가야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가서는 안 됐습니다. 그러면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동은 해 뜰 무렵 양떼를 몰고 나서서 해질 때는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날도 양떼에게 먹일 풀이 넉넉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모세는 그날 광야를 지나서(히브리어로는 ‘광야의 뒤쪽으로’)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 시내 산이라고 불린 이 산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스라엘은 거기서 야훼 하나님을 만났고 모세를 통해서 토라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날 모세가 거기 다다랐을 때는 호렙 산이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모세는 그 산이 하나님의 산인지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호렙’은 히브리어로 ‘황량한 곳’ ‘버려진 곳’ ‘불모지’라는 뜻입니다. 이 언어의 유희가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산이 푸른 수목이 우거진 낙원이 아니라 황량하게 버려진 불모지라니 말입니다. 불모지에서 모세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거기서 야훼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절대자를 추구하는 한 사람의 종교인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치는 그 절대자를 대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을 얼굴을 맞대고 만나서 직접 소통하는 것이 아니겠나 말입니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바로 그 경험을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신비한 경험인 절대자와의 직접적인 대면의 경험 말입니다.

 

이 엄청난 경험의 시작은 미미하고 보잘것없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고작 떨기에 불이 붙었는데 그 떨기가 타 없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떨기’는 ‘와디’라고 부르는 광야의 마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 1미터 정도 되는 식물입니다. 와디는 우기에는 물이 흐르지만 건기에는 마른 땅이 되는 시내를 가리킵니다. 작은 장미꽃 같은 꽃이 피고 산딸기 비슷한 열매를 맺는 떨기는 히브리어로는 ‘스네’라고 부릅니다. 떨기에 불이 붙는 것은 중동의 광야에서는 흔히 보는 풍경입니다. 고온건조한 날씨에 바람이 불면 떨기는 자기들끼리 마찰해서 불이 붙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떨기가 숲을 이루진 않으므로 불이 옮겨 붙지 않으므로 불은 타다가 절로 꺼져버립니다.

 

모세는 떨기에 불이 붙어 타는 것을 봤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의 만남은 이렇듯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다면 무심히 지나치고 말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냥 지나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역사에 ‘만약’은 무의미하다지만 그래도 만일 모세가 떨기가 타는 걸 보고도 이상히 여기지도 않고 다가가지도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답은 없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일하십니까? 어떤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실까요?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성서는, 하나님은 사람의 역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일상의 삶과 역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펼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영역과 사람이 일하는 영역이 따로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누르고 눌리고 빼앗고 빼앗기며 만수산 드렁 칡 얽히듯 이런 저런 모양으로 얽혀서 살아가는 역사의 현장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마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의 역사에서 어떻게 당신의 뜻을 이루실까요?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정도로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책이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작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제 기억에 한 10여 년 전에는 매일 3 5천 명의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그 숫자가 늘어나 거의 5만 명에 육박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숫자가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늘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생명의 하나님이 이런 현실을 가슴아파하시지 않을 리 없습니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가슴이 아픈데 하나님이야 오죽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들을 먹이고 싶으실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먹이시느냐는 점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하셨듯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불가능하지 않겠지요. 과거에도 그렇게 하셨는데 지금이라고 못 하실 것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네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 돌멩이로 떡을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한 방법 말입니다. 악마가 불가능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에게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유혹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쓰시지 않습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을 겁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적도 있는데 이 방법 역시 쓰시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하나님이 아니므로 정확하게 안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저는 그 이유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기적을 통해서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먹이신다면 하나님은 그 방법을 끝없이 반복하셔야 할 겁니다. 한 번 먹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터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들은 기아문제 해결을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맡겨두겠지요. ‘하나님이 다 해결하시는데 우리가 신경 쓸 거 있나?’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야 할 공감과 사랑은 메말라버리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모으는 작은 정성으로 기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외식 한 번 덜 하고 모은 작은 돈을 자선단체에 보내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신다는 얘기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사람들이 구조적, 제도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라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너무도 평범해서 마치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구세주 예수님을 허름한 여관방에 딸린 마구간의 더러운 말구유에 보내시는 분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뭔가 깜짝 놀랄만한 비상한 것을 하나님께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손길을 끝내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모세와 하나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날도 하나님은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떨기에 붙은 불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그 떨기에 시선을 고정한 것은 우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연처럼 보이는 이 일이 사실은 필연이었음이 곧 밝혀졌지만 말입니다. 그는 한참을 탔는데도 떨기의 불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을 봤습니다. 신기했겠지요. 그래서 그는 자세히 보려고 떨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자기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자기가 끌고 온 양떼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광야 한 가운데서, 양떼들 울음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곳에서 누군가가 자기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얼떨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말로 이렇게 길게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로는 ‘히네니’ 단 한 글자입니다. 영어로는 ‘Here I am!’이고요. 매우 평범해 보이는 이 말은 모세 이후 수많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했던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당신 뜻을 이루시려고 누군가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순종했던 사람들이 했던 응답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세가 마지막으로 말을 했던 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그의 아내가 첫 아들을 낳았을 때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라고 탄식했던 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 수십 년을 살면서 말을 안 하지는 않았겠지만 성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이후 처음으로 한 말이 ‘히네니!’였던 것입니다. Here I am! ,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때 야훼 하나님이 정말로 오랜만에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제가 지난주일 설교 말미에 미디안 광야는 야훼 하나님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신 곳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 장면을 가리켜서 했던 말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을 그렇게 모질게 억압하고 괴롭혀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시지 않고 무행동으로 일관하셨던 야훼 하나님이, 모세가 갈대상자 안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그가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쳤을 때도 침묵하셨던 야훼 하나님이 드디어 길고긴 잠에서 깨어나셨습니다! 물론 성서는 하나님이 말도 하지 않으시고 행동도 하지 않으셨지만 계속해서 사태를 주시하고 계셨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출애굽기 2장 마지막은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고 전합니다.

 

오랜만에 입을 여신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후에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대적’인 세상에서 상대적인 존재로 살아온 모세가 절대자를 만났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있다가 없어지는 ‘유한한’ 세상에서 살다가 죽어 없어지는 ‘유한한’ 모세가 ‘무한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이 세상을 초월하신 분을 만났습니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 한 구석이 잠시 열린 그 사이로 찬란한 빛을 본 겁니다. 절대자를 추구하는 한 종교인이 그 절대자를 직접 대면했다면 그보다 더 놀랍고 신비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종교의 역설은 절대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그 절대자를 결코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생을 구걸하는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세는 절대자를 만나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그것을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절대자 야훼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발은 땅을 딛고 서 있었지만 영혼은 하늘에 닿았던 것입니다. 절대자와 소통하는 절대적인 순간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절대자와 소통하는 절대적인 순간의 경험

 

이 순간만은 세상 모든 일이 먼지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히브리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죽을 뻔했던 일, 이집트 공주의 눈에 띠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그녀의 양자가 된 일, 동족 히브리인들의 고된 노예의 삶을 눈으로 목격한 일, 살인과 도망, 미디안 사제의 딸과 결혼하여 양치기가 된 일 등등, 지난 40년 동안 그가 겪은 모든 일들이 부질없이 느껴지지 않았겠습니까. 절대자와 대면하는 그 순간만큼은 말입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야훼 하나님은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겁니다. 거룩하다거나 성스럽다는 말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흔히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겨있는 의미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무엇인가를 성스러운 것, 거룩한 것으로 인식하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종교는 존재하는 것에서 성스러움, 거룩함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인간의 행위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존재하는 것이 지금 내가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이라는 진실, 존재하는 것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깊다는 진실, 그래서 결국 존재 그 자체가 신비임을 경험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는 절대자의 존재를 설명하거나 설득하거나 그분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절대자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언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들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이 언어이므로 이 경험을 말과 글로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음악이나 그림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들이 말보다 보편적이지는 않습니다.

 

성서는 글로 쓰였습니다. 성서에서 궁극적으로 절대자와 만난 경험을 전달하는 수단은 글입니다. 성서의 언어는 궁극적으로는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을 전하려는 불완전한 수단인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에 관한 모든 말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지시어’라고 말들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는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이 손가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 얘기도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신비한 경험의 표현입니다. 절대자와 만나는 경험, 절대자와 부딪치는 절대적인 경험을 말로 전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거룩이 무엇인지, 성스러움이 무엇인지 말로는 설명하지 못해도 그것들을 어렴풋이나마 느낍니다. 이 인식과 느낌을 말로 표현해서 타인과 후대에 전하지요. 물론 거룩과 성스러움을 느끼고 인식하며 표현하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구약성서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중동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았습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두 문화권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약성서와 두 문화권의 종교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흔히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라고 뭉뚱그려서 얘기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차이는 다양한 면에서 나타납니다. 그 중 하나가 구약성서는 거룩, 또는 성스러움을 ‘장소’에 붙박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구약성서에서는 영원토록 거룩하거나 성스러운 장소는 없습니다. 물론 구약성서에도 거룩한 장소가 있습니다. 성전을 세운 예루살렘이 대표적인 거룩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구약성서에서 한 장소가 거룩한 까닭은 야훼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야훼 하나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야훼 하나님은 한 곳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속되게 말하면 늘 돌아다니시는 분이란 얘기입니다.

 

 

이제 그만 땅으로 내려와라!

 

그러니 구약성서에서 한 장소가 영원히 거룩하거나 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을 떠나는 순간 그 장소는 더 이상 거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여 하신 말씀, 곧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또 너희는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마태 23:16-19)라는 말씀과도 통합니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붙여야 뜻이 분명해집니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단이냐 그 제단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냐?

 

구약성서의 종교는 ‘장소의 종교’가 아니라 ‘시간의 종교’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중요한 것은 성지(聖地)나 성소(聖所)가 아니라 성스러운 시간, 곧 안식일과 역사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장이 모세가 야훼 하나님을 만나는 절대적인 경험, 곧 절대자와 대면하는 종교적 체험의 최대치를 ‘역사적 현실’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모세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나 신발을 벗으라 하신 야훼 하나님은 곧이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야훼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절대자의 만남에 황홀해 있었을 모세를 야훼 하나님은 현실로 끌어내리셨습니다. 구약성서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하늘을 맛보게 하지만 거기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여운을 간직한 채 땅으로 급전직하하게 하는, 바로 여기에 구약성서 신앙의 진실과 참맛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미 시간이 많이 갔으므로 이 얘기는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 ?
    지경야인 2013.02.24 10:45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제가 소원하나 빌고싶은데 절대 안들어주실것같아서요.

    흑흑흑

    자신의 아들도 한갖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그것도 모자라 여행지에서 마굿간 말구유에 태어나게 박대하신분이

    제 소원을 들어주실리가 없겠군요

    우렁우렁하고 대단한 하늘 태양처럼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쪼잔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닥불같은 작은 형체로 보이시는 주님이시니

    제 소원을 들어주실리가 없겠죠

    제가 가난이 지겨워서 벼락부자가 되고싶어서 로또나 한장 사서 유일하게 저혼자 당첨되어 몇 백억원의 당첨금을 주시라고 기도하려 했는데

    에이 오늘 보니 쪼잔한 하나님이시네요

    그래도 감사의 눈물이 나는것은 주님이 그래 주셨으니

    이젠 초가삼간도 황궁보다 감사한 맘으로 살겠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쪼잔하게 사셨는데 감히 제가 엄감생심 그런 편한 생활을 꿈꾸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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