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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성의 의미를 음미함

 

유금의 연행과 이조원반정균이 한객건연집에 쓴 평비이를 고리로 이어진 연경과의 지속적 서신 왕래는 이조원의 생일 시회로 이어지면서 이들을 극적으로 고무했다중국 당대 지식인과의 실시간 교유란 이전에는 꿈꾸기 어려운 일이었다조심스레 열린 사적(私的채널이 지속적으로 조금씩 확산심화되고 있었다.

 

 

 

서울대 도서관 소장 『중주십일가시선』 중 이조원 소전 부분.

 

1777년 9월 11이조원의 생일 시회가 열리기 석 달 전에 유득공은 한 권의 작은 시집을 엮었다제목이 중주십일가시선中州十一家詩選이었다제목 그대로 중국 당대의 문인 중 홍대용과 숙부 유금이 가서 직접 만나 교유한 11인의 시를 묶은 앤솔러지였다.

수록된 인물과 수록 작품 수는 다음과 같다.

 

육비(陸飛) 51수 엄성(嚴誠) 16수 반정균(潘庭筠) 4수 이조원(李調元) 37수 이정원(李鼎元) 1수 축덕린(祝德麟) 1수 박명(博明) 2수 주후원(周厚轅) 1수 곽집환(郭執桓) 10수 이미(李美) 2수 손유의(孫有義) 2

 

모두 11명 127수의 작품을 수록했다이중 육비와 엄성반정균은 홍대용이 만났던 인물이고나머지는 유금이 연행 도중 직접 만났거나 간접적으로 교유한 인물들이었다유득공은 서문에서 이 시집을 엮는 감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요동벌과 발해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었다명색은 비록 외국의 번방이라 해도 운남(雲南)이나 귀주(貴州등 멀리 떨어진 여러 성()에 견준다면 굉장히 가깝다다만 강토의 제한 때문에 안팎으로 나뉘고 보니 한 시대를 나란히 살아가면서도 마치 천년 전의 옛사람과 한가지다비루하고 아는 것이 적은데도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는 자는 일생토록 송강의 농어와 동정호 금귤의 맛을 알지 못하니 어찌 크게 슬프지 않겠는가예전 신라의 최치원(崔致遠)과 김이오(金夷吾)는 중국에 가서 고운(顧雲)과 장교(張喬)를 만났다.또 고려 때 이제현(李齊賢)은 우집(虞集)과 조맹부(趙孟頫)를 사귀고이곡(李穀)은 황진(黃溍), 게혜사(揭傒斯등과 교유하며 능히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문단을 내달렸으니 주고받은 시문이 이제껏 사람의 눈에 찬란하게 빛난다하지만 이런 경우란 천년 백년에 단지 몇 사람밖에 없다명나라 때만 하더라도 사걸(四傑)이니 칠자(七子)경릉파(竟陵派)니 운간파(雲間派)니 하는 이들의 풍모와 명성이 천하를 뒤흔들었다하지만 우리나라의 제공은 귀를 쫑긋 기울이고도 아무것도 듣지 못하다 몇 대가 지나 출판된 문집이 우리에게 건너온 뒤에야 비로소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이 있었던 줄을 알게 된다이는 큰 도회지에 과실이 썩어나는데도 궁벽한 향촌에서는 그저 앉아 기다리다가 때가 늦고 마는 것과 한가지다.

내가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화가 이에 이르러서는 크게 탄식하며 답답해하여 마지않았다진계숭(陳繼崧)의 협연집篋衍集과 심덕잠(沈德潛)의 국조시별재國朝詩別裁를 읽고 나서는 더더욱 중국의 인문이 성대한 줄을 깨달았다.하지만 유독 앞서지도 뒤지지도 않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병술년(1766)에 담헌 홍대용이 연경에 갔다가 엄성과 반정균육비 등 세 사람을 얻었고올해 정유년(1777)에 숙부께서 연경에 갔다가 우촌 이조원 선생을 얻었다또 수레를 기울여 사귐을 논하고 인편에 소식을 부쳐온 사람이 8인이다. (중략우리나라로 전해진 이들의 시를 채록해 직접 점검교정하고사람마다 소전(小傳)을 붙여 1권으로 만들어 동지들 두세 사람과 함께 나누었다저 최치원과 김이오이제현과 이곡의 유풍(遺風)과 여운(餘韻같은 것은 내가 감히 바라지 못하겠지만 훗날 이 책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우리가 조금 일찍 과실 맛을 누려본 것만큼은 알 수 있을 것이다정유년(1777) 중양절 이틀 후 유득공은 쓴다.

 

 

『중주십일가시선』의 유득공 서문 끝 부분. 글 끝에 '차진문봉(此眞文鳳)'과 '유득공인' 인장 2과가 찍혀 있다. 유득공의 친필로 보인다.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가서 중원의 선비와 우정의 교유를 나눈 것은 신라 때의 최치원과 김이오고려 적의 이제현과 이곡 등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예를 찾기 어렵다조선조에 들어와서 조선 문인과 명나라 인사의 개인적 교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중국에 뛰어난 명사가 있다 해도 몇 세대가 지나 그들의 문집이 간행되어 조선에 들어온 뒤에나 아그때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있었구나하고 감탄하는 형편이었다중국의 문예사조 동향은 늘 몇 템포 느리게 조선에 전해졌다저쪽에서 이미 시들해진 뒤에 이쪽에서 뒤늦게 불이 붙곤 했다늘 엇박자였다.

그런데 홍대용과 유금이 이제껏 아무도 못한 일을 해냈다그래서 엮게 된 이 시집은 조선 선비와 교유의 인연을 지닌 당대 중국 시인들의 시만으로 이루어져 동시대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특별히 위 원문 중에 앞서지도 뒤지지도 않고(不先不後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與我同時者)”에 방점이 콱 찍힌 앤솔러지인 것을 유득공은 특별히 자부하고 강조했다이 동시대성이야말로 18세기 문예공화국의 공민권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우정의 풍경

 

홍대용을 필두로 연암 그룹은 특별히 우도(友道)의 문제에 집착했다특히 연암은 세명리(勢名利), 즉 권세와 명예와 이욕 획득의 수단과 방편으로 전락해버린 우정의 변질을 개탄했다그의 마장전馬駔傳은 우정의 문제를 정면에서 심각하게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젊은 시절 이들의 교유는 나이를 잊고 처지를 잊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보석처럼 빛났다.

이덕무가 1768년 6월 29일에 동인들과 몽답정(夢踏亭)에 놀러갔을 때 시축(詩軸)에 쓴 짧은 소서(小序)가 그의 연보에 실려 있다다음이 전문이다.

 

박제가의 소매를 뒤져 흰 종이 한 폭을 얻었다부뚜막에서 그을음을 구하고 냇가에서 그릇 조각을 주웠다시를 지었는데 붓이 없었다.내가 솜대 줄기를 뽑자 윤병현(尹秉鉉)은 운부(韻府)의 낡은 종이를 꼬았다유금은 돌배나무 가지를 깎고 박제가는 부들 싹을 씹는다.연꽃 향기가 풍겨오고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며 폭포의 포말이 끼쳐오는 주름진 바위에서 썼다.

 

예쁘고 아름다운 광경이다시회를 열자고 간 나들이에 지필묵연이 없었다한여름 흥에 겨워 술만 챙겨 덜렁거리고 간 걸음이었던 모양이다. ‘자네 종이 있나?’ 박제가가 소매를 뒤적거리더니 말한다. ‘여기 한 장 있습니다.’ ‘한데 먹이 있어야 말이지.’ ‘부뚜막의 그을음을 긁어보세.’ ‘벼루도 없는걸.’ ‘가만저 냇가에 굴러다니는 깨진 그릇 조각에다 개면 되겠군.’ ‘붓은 어쩐다?’ ‘만들면 되지 뭐.’ 이런 대화가 오가고 나서 그들은 즉석에서 붓 제작에 들어갔다이덕무가 가는 솜대 줄기를 꺾어 붓대로 어떠냐고 묻는다유금은 돌배나무 가지를 깎아 이게 더 낫다고 우긴다. ‘붓대만 있으면 뭘 하나?’ 윤병현이 시 지을 때 참고하려고 소매 속에 넣고 다니던 운부를 꺼내 뒤의 해진 쪽 한 페이지를 찢더니 가늘게 꼬아 노끈을 만든다. ‘붓털은 어찌한다지?’ 박제가가 이미 섬유질이 풍부한 물가 부들의 새순을 끊어 결 따라 우물우물 씹고 있다잠시 후 붓 터럭 대신으로 쓸 만한 가닥만 남은 섬유질이 준비되었다돌배나무 가지에 섬유질 가닥을 대고 종이 노끈으로 칭칭 감자 아쉬운 대로 붓이 만들어졌다. ‘이제 되었군.’ 그릇 조각 벼루에 그을음 먹을 개어 부들 새순 붓에 찍어 각자 지은 시를 박제가가 내놓은 종이에 이덕무가 쓰기 시작한다. ‘글씨가 이게 뭔가잘 좀 쓰게.’ 깔깔깔 웃다가 시에 대한 평을 주고받다가 가져간 술을 마시면서 무더운 여름날의 한나절을 개운하게 보냈다연꽃 향기매미 울음폭포의 물보라는 후각과 청각과 촉각을 공감각적으로 재구성한다젊은 날 이들의 우정은 이렇게 반짝반짝 빛났다세상에 이런 우정은 다시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들은 홍대용의 건정동회우록乾淨衕會友錄을 접했다국경을 넘어 이룩되는 참된 우정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답답하고 부러웠다연암 박지원은 이 책에 써준 서문에서 우정이 다만 출세의 방편으로 전락해버린 조선의 현 세태를 비판하며 양묵노불(楊墨老佛)이 아닌데도 의론의 유파가 넷이고사농공상(士農工商)이 아니건만 명분의 갈림이 넷이라고 적었다노론과 소론남인과 북인으로 편을 갈라 다투고그것도 모자라 문반과 무반중인과 서족(庶族)으로 구분하는 편협한 조선의 풍토에 숨 막혀한 것이다당동벌이(黨同伐異)! 같으면 패거리 짓고다르면 공격한다네 유파와 네 갈림이 다시 16가지 경우의 수를 낳는 것을 보면조선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패가 갈려 다투고 싸우는 일이 일상인 나라였다뜻이 맞아도 당색과 신분이 다르면 싸늘하게 외면하여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홍대용이 중국에서 오는 길에 만나 사귄 벗 손유의는 훗날 홍대용이 세상을 떴을 때 박지원이 부고를 보내 항주의 세 선비에게 그의 죽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인물이다그의 시도 중주십일가시선에 수록되었다손유의의 직업은 삼하현(三河縣)의 염점(鹽店), 즉 소금 가게 주인이었다그를 통해 다시 등사민(鄧師閔)을 소개받고등사민은 자신의 친구인 곽집환(郭執桓)을 연암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일개 장사치인 소금 가게 주인과 조선의 사대부가 대등하게 교유한다는 것은 조선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연암과 이덕무 등은 평생 본 적도 없는 곽집환을 위해 그의 문집 회성원집繪聲園集에 서문과 발문을 써주고박제가 등은 그의 거처를 위해 연작시를 기꺼이 지어주었다이는 유금이 연행에 나서기 여러 해 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연암은 회성원집발에서 이렇게 썼다.

 

옛날에 벗에 대해 말한 사람이 벗을 두고 혹 2의 나[第二吾]’라 하기도 하고, ‘주선인(周旋人)’이라고도 했다이런 까닭에 글자를 만든 사람이 ()’ 자에서 빌려와 ()’ 자를 만들고, ‘()’ 자와 ()’ 자를 합쳐 ()’ 자를 만들었으니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이 양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하지만 말하는 자는 천고의 옛사람을 벗삼는다[尙友千古]’고 한다답답하구나이 말이여!천고의 사람은 이미 흩날리는 티끌이나 서늘한 바람이 되었는데 장차 누가 나를 위해 제2의 나가 되며누가 나를 위해 주선한단 말인가?

 

벗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벗은 제2의 나다나를 위해 모든 일을 주선해주는 사람이다새의 두 날개요 사람의 두 손이다날개 없는 새는 날 수가 없고두 손 없는 사람은 뛸 수가 없다벗이 없는 이는 날지 못하는 새이고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이다벗은 2의 나라는 이 강렬한 명제는 중국 최초의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그의 교우론에서 처음 한 말이다.

 

 

마태오 리치의 초상화와 『우론友論』의 첫 면. 본문 첫 줄에서 "나와 벗은 남이 아니다. 나의 절반이고 제2의 나다. 벗 보기를 마땅히 나와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구절이 연암 그룹을 열광케 했다.    

 

 

천고를 벗삼는다는 답답한 그 말!

 

옛사람들이 입에 달고 산 말은 상우천고(尙友千古)천고의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다는 뜻이다현실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마음 나눌 벗이 없다다만 옛글 속의 고인만이 내 마음에 위로를 준다그래서 지금을 버리고 오래전에 이미 티끌로 변한 고인을 벗으로 삼는다고 한다연암은 이 말이 얼마나 딱하고 답답한 얘기냐고 말했다어째서 그런가옛사람은 제2의 나일 수 없고나를 위해 아무것도 주선해줄 수 없는 관념 속의 존재일 뿐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나는 2의 나를 어디 가서 찾을 것인가이덕무는 서해여언西海旅言에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사봉(沙峯)의 꼭대기에 우뚝 서서 서쪽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았다바다 뒤편은 아마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다용과 악어가 파도를 뿜어 하늘과 맞닿은 곳을 알 수 없다한 뜨락 가운데 울타리로 경계를 지어 그 너머로 서로 바라보는 것을 이웃이라 부른다이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이편 언덕에 서 있고 중국 등주(登州)와 내주(萊州)의 사람은 저편 언덕에 서 있다서로 바라보아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바다가 넘실거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이웃 사람의 얼굴을 서로 알지 못하는 격이다귀로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며 발로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해도오직 마음으로 내달리면 아무리 멀어도 다다르지 못할 곳은 없다이편에서는 이미 저편이 있는 줄을 알고 저편 또한 이편이 있는 줄을 안다그럴진대 바다는 오히려 하나의 울타리일 뿐이어서 보고 또 듣는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하지만 가령 무언가를 붙잡고 흔들흔들 구만리 상공에 올라가 이편 언덕과 저편 언덕을 한눈에 다 본다면 한집안 사람일 뿐이니 또한 어찌 울타리로 막힌 이웃이라 하겠는가?

 

황해도 장연 바닷가 백사장에서 중국 쪽을 바라보며 떠올린 이덕무의 생각은 조금 특별하다뭍에서 보면 바다가 가로놓여 서로 볼 수 없지만하늘에 올라가 보면 조선과 중국은 바다라는 작은 울타리조차 의미 없는 한집안 사람일 뿐이다귀로 못 듣고 눈으로 못 보고 발로 못 디뎌도 마음으로 만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우정의 논의가 기어코 국경을 넘어서는 현장이다이 글은 1768년에 썼다홍대용이 다시 만날 수조차 없는 중국 선비와 천애지기(天涯知己)를 맺은 일이 당시 이덕무를 이처럼 크게 고양했던 것 같다그도 그런 우정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옛사람의 상우천고와 홍대용의 천애지기는 같지만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먼저 상우천고가 공간을 고정해두고 시간만 잡아 늘인 수직적 사고라면천애지기는 시간을 앞세워 공간의 장벽을 넘는 당대성과 동시대성에 바탕한 수평적 사고다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문자를 매개로 한 일방적이고 선형적인 사유가 쌍방향 소통을 전제로 한 교감적 사유로 바뀌었다나는 이를 한 논문에서 병세의식(幷世意識)’이란 개념으로 명명한 일이 있다.1 병세의식은 동시대를 나란히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이다이 동시대에 대한 인식은 국경을 초월한다반대로 이 병세의식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바로 곁에 있어도 그는 내 벗일 수가 없다지금이 답답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지만이들은 관념 속 옛사람을 상우천고하는 대신 국경 너머 저쪽의 벗들과 나누는 우정을 통해 천애지기의 병세의식을 키워나갔다.

 

 

소전 속의 정보들과 제2탄 열상주선집

 

한편 중주십일가시선에 실린 각 사람의 소전에는 다른 기록에서 보지 못한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다주로 유금을 통해 얻은 정보를 추록(追錄)하는 방식을 취했다어디까지나 현장성이 중요하다예를 들어 육비에 관한 기록에서는 숙부께서 정유년 봄에 연경에 가셨을 때 이부원외랑 나강 사람 우촌 이조원과 만나 육비가 이미 진사에 뽑혔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해 집에서 지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여 육비의 과거 급제 사실을 알렸다엄성의 소전에서는 뒤에 들으니 엄성은 민중(閩中땅에 가서 관사(館師)가 되었다가 학질을 앓아 집에 돌아와 죽었다김재행이 만리봉(萬里峯)에 올라가 길게 통곡하니 듣는 이가 비통해했다담헌은 필담 중의 명어(名語)를 따로 초해서 철교어록』 1권을 엮었다고 썼다철교어록이란 별도의 한 권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조원 소전에서는 내게도 시를 주어 자신을 이지지기(異地知己)라 했다또 소상(小像) 1본을 보내며 자신의 생년월일을 말해주고한객건연집에 실린 여러 사람이 술을 따라 멀리서 축수해달라고 했다중국 사람이 벗과 교제함에 있어 정이 참되고 말이 도탑기가 이와 같다고 적었다이로 보면 이조원의 생일 시회는 애초에 이조원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그는 앞서도 늦게 얻은 딸의 이름을 시 속에 넣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함으로써 딸이 오래 살기를 소망한 일이 있다그가 유득공을 두고 이지지기즉 다른 땅에 사는 나를 알아주는 벗이라고 호명한 것은 인상적이다.

이 밖에 짧게 스쳐 만난 사람의 시도 수록했다기록이 남지 않은 유금의 연행 당시 행적이 이를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그중 중강각사(中江搉使박명과의 만남이 흥미롭다그는 몽골인이었다호는 석재(晳齋또는 서재(西齋)로 원나라 세조의 후예다옹방강과 가까웠던 그는 의주 건너편 책문(柵門)에 오래 살아 조선 사신들이 연행 때마다 으레 그의 거처를 들렀다그는 나중에는 이 일로 몹시 피곤해했는데유금도 그에게 들렀던 모양이다.

 

숙부께서 정유년 봄에 연경에서 돌아오면서 그를 방문하셨다머리카락이 이미 성성하였다그와 필담을 해보니 국가의 전고와 군읍의 연혁에 대해 묻기만 하면 척척 대답하는데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또 향을 사르고 차를 끓이며 골동품 감상하는 것을 좋아했다숙부께서 평소 성력(星曆)에 밝았으므로 서양의 방법 중 알기 어려운 것을 들어 점검해보았다또한 모두 명확하게 설명해주었다스스로 뽐내기를 2만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역사의 기록에서 빠진 일을 많이 알고 변증하는 것을 즐겼다. (중략숙부의 당호가 기하실인데박명이 예서체로 써서 주었다필치가 자못 굳세다.

 

 

 

동화필화집』에 실린, 박명이 유금에게 써준 기하실 글씨. 

 

동화필화집에 이때 박명이 유금에게 써준 기하실 세 글자가 친필로 실려 있다필치가 굳세다고는 했지만 명필로 알려진 그의 글씨가 이때는 힘이 빠져 그랬는지 그다지 신통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유득공은 중주십일가시선을 엮은 지 19년 뒤인 1796년에 병세집幷世集을 엮는다그후 자신과 이덕무박제가 등이 연행에 참여해서 직접 만났던 인물들을 대거 보충하고, 1764년에 조선통신사행으로 일본에 갔던 원중거(元重擧)가 일본 문사들에게서 받은 시를 첨가하여 말 그대로 한중일 세 나라 동시대 문인들의 시집으로 확장해 묶었다교유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들의 자신감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1777년 가을에 보내온 편지에서 이조원은 자신의 시에 대한 네 사람의 평을 요청했다자신이 한객건연집에 평비를 달아주었으니너희도 내 시에 똑같이 해달라는 뜻이었다이 말에도 그들은 감격했다자신들을 대등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한편으로 이조원은 네 사람에게 다음 사신 편에 한객건연집』 이후에 쓴 다른 시도 계속해서 보내달라고 청했다네 사람은 신이 나서 다시 한객건연집의 후속 시집을 준비했다이 시집에는 열상주선집洌上周旋集이란 이름을 붙였다열상은 한강 가란 뜻이고 주선은 앞서 연암의 글에서 보았듯 벗을 나타내는 이들만의 용어였다그러니까 열상주선집이란 한강 가에 거주하는 벗들의 시집이란 뜻이다.

이들은 한객건연집』 이후의 작품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시를 엄선했다현재 시집의 실물이 전하지 않아 규모와 편집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막상 준비는 했지만 이 시집은 11월 동지사 편에 북경으로 건네지지 못했다흡족한 선집을 엮기에 시간이 부족했다대신 그해 12월 5일에 열린 이조원의 생일잔치 때 지은 시를 포함해 그사이에 오간 교유에 관한 시들이 시집 속에 수록되었던 듯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네 사람 중 이덕무와 박제가가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이듬해인 1778년 3월에 진주사(陳奏使)의 일원으로 그토록 그리던 북경 땅을 밟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두 사람의 북경행은 떠들썩한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냈다이덕무와 반정균의 만남도 이때 이루어졌다모든 것이 짜맞춘 듯이 진행되었다.

 

1 정민18,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병세의식한국문화』 54(서울대 규장각학국학연구원, 2011), 183~204쪽 참조.


출처 : http://cafe.naver.com/mhdn/7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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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실 2013.07.31 00:24


    문학 동네 카페 http://cafe.naver.com/mhdn 에 정민 교수가 지난 1년간 하바드 옌칭 도서관에서 후지스카 교수의 저장 도서를 중심으로

    18세기 한국 중국 시인들의 교류와 우정에 대해 연구한 것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위의 글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집들은 카페에 있는 정민 교수의 앞 글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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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8 16세 아이가 성경을 대하는 법 2 김균 2015.08.25 234
15087 16일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비밀문서 추적 1 file 2주기특보 2016.04.15 63
15086 16일 밤 “댓글 흔적 없다” 17일 “가능성 없지 않아” 말 뒤집은 경찰----달인 대회 나가면 경찰이 일등하겠다 4 먹통 2012.12.17 1490
15085 1700년의 역사의 폐허속에 묻혀 버린 "하나님의 희생으로 세워진 안식일" 에 대하여 6 김운혁 2014.03.11 933
15084 170년 전의 UB 통신 1 file 김주영 2014.10.22 603
15083 1800년간의 역사의 폐허 속에 묻혀 있었던 주님의 피로 세우신 안식일 김운혁 2014.06.26 611
15082 1800년대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려고 했는데...못하신 이유 예언 2015.05.11 192
15081 1800여년 후에 3 김균 2013.12.14 1189
15080 180도 상반된 대응 180도 2015.07.21 120
15079 182:61 로 가결된 반역 6 김주영 2013.11.05 1760
15078 1844 년 졸업하지 않으면 이 교회는? 11 김주영 2016.06.18 347
15077 1844년 10월 22일을 새삼스레 말하는 장로교 목사 12 김원일 2014.02.21 1475
15076 1844년을 넘어서는 시간 예언은 없음 9 임용 2015.02.09 402
15075 1844년이후 죽은자도 144,000인에 포함된다는 구절 9 file 루터 2015.02.03 273
15074 1844년이후에는 재림시기를 찾으라고 주신적이 없음. 19 루터 2014.09.10 495
15073 1863 년 "건강기별 묵시" - 화잇은 무엇을 보았나? 8 file 김주영 2015.05.24 426
15072 1888기별거절한당시 상황에 대해 루터 2014.11.12 464
15071 1888기별자인, 존스와그너가 죄짓고 넘어지지 않았는가? 2 file 루터 2015.02.23 233
15070 1888년과 이설-김 **님 5 로산 2011.01.28 1687
15069 189조원의 비극 걱정원 2015.02.04 235
15068 18년과 2년. 2 2년 2014.12.04 538
15067 18대 대선선거무효소송 재판 지연 대법관 탄핵소추안 발의 청원 7 친일청산 2016.01.30 93
15066 18대 대선선거무효소송 재판 지연 대법관 탄핵소추안 발의 청원 친일청산 2016.02.19 73
15065 18대 대선을 승리로 이끈 좌빨들! 5 18대선 2012.12.2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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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한국 중국 시인들의 동시대성과 우정_ 정민 교수 1 무실 2013.07.31 1758
15062 19 세 이상 성인들만 읽을수 있는 글.. 3 김 성 진 2012.05.18 4064
15061 1914년 안식일교회의 배도사건 1(두번째시험받은사건) 5 file 루터 2014.09.08 620
15060 1914년 안식일교회의 배도사건 2 file 루터 2014.09.08 854
15059 1937년, 미시건 플린트 vs 1981년, 항공관제사 파업 4 대전유성 2011.06.27 2227
15058 1939년 9월 1일 김균 2013.09.12 1640
15057 1950년대 우리나라 힘든 모습 - 사진 모음 잠 수 2010.12.24 2373
15056 1977년생/이민우/연지동 1 이민우 2013.06.20 1803
15055 1979년 12월 8일 비공개 재판 김재규 진술 신생 2014.03.01 1381
15054 1991년에 멈춘 시계 1 로산 2012.09.28 1408
15053 1993년 그 때 그 사건 14 김주영 2011.11.03 1862
15052 1993년 사건, 조경묵 목사 , 재림교회 목사였습니까? 8 Rilke 2011.10.27 3586
15051 19년 전 거짓말을 또? 노 동자 2015.08.04 179
15050 19님과 김주영님에게, 대쟁투나 어디에도 사상영감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3 KT 2011.08.31 1647
15049 19세기의학과 21세기 의학의 대결 김균 2015.05.12 243
15048 1동영상 - 대통령의 그날, 2동영상 - 대통령의 하루 1 대통령 2014.09.19 698
15047 1면 전면을 백지로 발행한 신문 3 백지 2016.06.21 75
15046 1세기 예수 vs 21세기 예수 16 계명을 2015.08.25 217
15045 1인 1명제 4 Windwalker 2014.10.07 451
15044 2 세들의 이민교회 이탈.. (Silent Exodus) 22 김 성 진 2012.07.04 3744
15043 2,000년 대한민국 대통령은 누구였지요? 1 아리송 2013.05.19 2192
15042 2. [평화와 행복] 평화 = 가족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5.04.19 44
15041 2. 아이를 낳다 1 김균 2014.05.11 1004
15040 2.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젠더의 다양성 4 김원일 2016.07.05 127
15039 2/2 송정섭박사의 식물이야기 오늘의 꽃 2 file 난감하네 2016.02.01 50
15038 2/3 의석 가지고 있을 때 뭐했는데? 발목이나 잡고 청와대 집사노릇 밖에 더 했냐? 로산 2012.04.09 2752
15037 20-30년 후에도 이럴 것인가? 로산 2011.01.03 1114
15036 2002 wc 6월의 함성 대~한민국 5.1 대한민국 2016.08.29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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