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시’ 입선작, 세로로 읽으니 찬사가 아닌 ‘비판’
전체 글은 추앙 일색이지만 첫 글자만 따서 세로로 읽으면 
‘한강다리 폭파 국민 버린 도망자…보도연맹 학살’ 글귀
공모전 주최한 자유경제원 뒤늦게 수상집 목록서 삭제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이승만 시 공모전’ 입선작 ‘우남찬가’. 4일 오전 현재 이 시는 작품집에서 삭제돼 있다.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이승만 시 공모전’ 입선작 ‘우남찬가’. 4일 오전 현재 이 시는 작품집에서 삭제돼 있다.
뉴라이트 성향의 보수 단체인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적을 비판하는 내용을 몰래 담은 시가 입선작에 당선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4일 자유경제원이 공개한 ‘제1회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 수상작품집’(▶작품집 바로 가기)을 보면, ‘우남찬가’라는 제목의 시가 입선작 8편 가운데 하나로 등재되어 있다. 4일 오전 이 작품은 수상집 목록에서 삭제되어 있다. 자유경제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해 평균 20억원 상당의 지원금을 지원하는 단체다. (▶바로 가기 : [단독] 전경련, ‘위장계열사’ 자유경제원에 20년간 매년 거액 지원)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장은 보수 논객 복거일 작가다.

입선작 ‘우남찬가’는 “한 송이 푸른 꽃이 기지개를 펴고/반대편 윗동네로 꽃가루를 날리네/도중에 부는 바람은 남쪽에서 왔건만/분란하게 회오리쳐 하늘길을 어지럽혀/열사의 유산, 겨레의 의지를 모욕하는구나”라는 단락으로 시작한다. 언뜻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줌 용기의 불꽃을 흩뿌려/강산 사방의 애국심을 타오르게 했던/다부진 음성과 부드러운 눈빛의 지도자/리승만 대통령 우리의 국부여”, “폭력배 공산당의 붉은 마수를/파란 기백으로 막아낸 당신/국가의 아버지로서 국민을 보듬고/민족의 지도자 역할을 하셨으며” 등의 구절의 그 예다.

하지만 이 시의 각 문장 첫 글자만 따서 세로로 읽으면, 내용은 달라진다. ‘한반도분열 친일인사고용 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국민버린도망자 망명정부건국 보도연맹학살’이라는 글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커뮤니티 루리웹에 글을 올린 한 누리꾼은 입선 상장 사진을 올리며 “몇 달 전 이승만 시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써서 유머 게시판에 올렸더니 반응이 좋았다”며 “그래서 (공모전에) 냈더니 입선. 상금 10만원으로 여친이랑 고기 먹었다”고 썼다.

누리꾼들은 “영혼을 판 줄 알았는데 세로드립(일종의 말장난으로 가로 쓰기가 쓰인 글의 문장들의 첫글자를 조합하면 원문과 관계가 없는 전혀 다른 단어 혹은 문장이 나타나게 하는 암호성 글)이었다”, “리승만, 린민군이라고 적었는데 심사위원단이 눈치를 못챈 모양”, “애초에 저런 공모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나라 노답 인증인 듯”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