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뿌리"에 대한 애증(Hainamoration)

by 잔나비 posted Oct 31, 2012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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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제가 자주 묵상하는 시가 있어서 올려드립니다. 

   간혹 불편한 표현이 나와도 원문 자체가 그러하니 너그러이 양해바랍니다요^^;



    거대한 뿌리 

 

 

 

 

  김수영.jpg   시인 김수영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베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노옴, 관리들 뿐이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려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리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 거리에서 시구문 진창을 연상하고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메 씹니다 

통일도 중립도 개쫒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아이스크림은 미국노옴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가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면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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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뭘까요? 




저는 김수영의 시가 솔직해서 좋습니다.


그는 외래 문명의 물밀듯이 들이치는 혼란 시기에 사는 비판적 지식으로써

여러가지 철학과 사상들을 공부했었습니다...그런데,,

 

그는 다시 우리의 것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을 자기 속에서 확인합니다.

자기의 근본에 대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다시 괴기 영화 맘모스와 같을 정도로...

아니, 우리의 상상보다 더 크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끝을 얼버무립니다.

우리의 전통을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서

그 굵고 튼튼한 뿌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소스라치게 놀라는 시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도, 우리의 나라, 우리의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기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사랑, 그것과의 연애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 어느 순간 우리 자식들 앞길에 발목을 잡는 어떤것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마비시켜 버리는 이 거대한 뿌리 앞에

의도적으로라도, 본성적으로 매우 힘들지만, 철저하게 냉철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의 사명입니다. 

저도 아프지만, 그렇게 생각하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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