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제주도에서 피란생활을 하다가,
다시 또 한 해를 지낸 추억이 서린 통영을 향해
고속 뻐스에 몸을 맡긴채, 베낭 여행을 시작했다.
커다란 뻐스이건만, 승객은 열명도 되지 않는데도,
서울에서 30분마다 떠나는데, 시간이 되니 정시에 출발을 한다.
가는 길에 마침, 공룡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고성을 거쳐
저녁 늦게 통영에 도착했다.
뻐스 터미날에 내려,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에게
해저 턴널 가까운 호텔로 가자고 했다.
60년만에 찾아 온 사연을 알게 된 운전기사가,
택시 비용에서 거스름 돈을 더 내주며,
좋은 여행을 바란다는 인사를 한다.
미국에서는, 택시를 타면, 팁으로 오히려 더 드린다고 하며,
돌려 받은 거스름 돈들을 되 돌려 주었다.
호텔은 하룻밤 숙박료가 4만원인데, 생각보다 깨끗하고 친절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문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이곳 별미라고 하며 청정해역에서 채취한 굴로 끓인국을 주는데,
아직 익숙치 않아서 인지 별 맛을 모르고 출출한 김에 그릇을 모두 비웠다.
드디어, 60년 전에 뛰놀던 해저 턴널 입구로 가니,
옛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이 변해 있었다.
자동차들이 다니던 , 해저 터널은 길 중간을 막아놓고
보행자들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턴널 위로 큰 다리가 두개나 세워, 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니고 있었다.
옛날에는 터널 입구에 커다란 공터가 있어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벌려 각종 생선들과
야채들을 팔았지만, 지금은 앞 바다를 메워 넓은 수산 시장이 되어있었다.
멀리보이던 등대도, 지금은 바로 코 잎에 있다.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가 있었던 동호동 항구 언덕에 있던
안식일 교회당도 오래 전에 팔고 이전했단다.
유우명이, 이영숙(이용진 목사님 딸) 이와 함께
문무진이도 공부를 하던 초가집도, 지금은 전설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옛 추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해저 터널을 걸어 건너가
남해의 최고 인조 명물이라는 케이블 카로 미륵산에 올랐다.
마침, 서울에서 살다가, 그곳 미륵산 정상에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중년분과 동승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의 말이, 지난 며칠동안
바람이 몹시 불어 케이블 카가 운행을 중단했었단다.
그날 따라, 날씨가 청명하여, 한산도 일대 절경은 물론,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훤히 바라 볼 수가 있었다.
돌베개 선생님
통영도 다녀오셨군요.
통영과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저는 통영과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툭하면 통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냥 통영이 좋았습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욕지도란 섬도 3번이나 들어갔었는데요?
별 이유가 없었어요 그냥 들어갔어요.
언젠가 로산 장로님께서 쓰신 글을 보니 욕지도 주민 거의 전체가 안식교인인 때가 있었다더군요.
안식교가 가진 영원한 복음이란 것이 저꼬라지 한시적인 복음 이었습니까?
돌배게 선생님께서 언급하시는 한곳 한곳 모두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모두 저의 발길도 닿았던 곳입니다.
당장 달려가고 싶습니다.
왜 이리도 그곳을 가고 싶은거지요?
돌베개 선생님 항상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