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의 평화를 위하여 요셉이 할수있었던 단 한가지..(조사심판 2편 마지막회)

by student posted Nov 20, 2012 Likes 0 Replies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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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 도착한 형들은 요셉에 집으로 인도 됩니다요셉이 그들을 크게 대접하기 위해서 였지요그러나 그들은 두려워 했습니다.  "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며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 가도다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조금만 예상밖의 일이 일어나도 '아구야 죽었구나' 하고 무서워 하는게 그들의 심리 상태 였습니다요셉이 그들을 애틋하게 사랑하는 형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 이었지요그들은 요셉을 자신들의  생사여탈을 절대 권력자로만 보았기 때문에  조금만 낌새가 이상해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우주의 권력자인 "창조주인"으로 보느냐 아님 우리를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시는 "창조 아버지"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이 어떤 류의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는 우리들의 "신앙적"  태도가 결정된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  마음에 평화를 얻을 것이냐 아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것이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그래서 우리들 신앙생활의 풍요로움은 어떤 미래가 우릴 기다리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이 우릴 기다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이아닐까요?


괜히 마음 졸였던 형들은  들을 위해서 엄청나게 차려진 진수 성찬을 보고 놀랍니다.   마치 우리도 구약에서 표면 적으로엄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가슴 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차려진 엄청난 복음의 진수 성찬을 보고 놀라는 같이...


요셉은 막내인 벤야민에게 다섯배나 많은 양의 음식을 줍니다과연 형들이 그런 막내를 질투하지 않고 보살피는 관대함을 보여주나 아니나를 "시험" 보기 위해서... 요셉이 형들을 "시험" 이유는 실패할 경우 복수 하기위해선 아닐껍니다그럴려면 진작 복수를 했었겠지요요셉은 형들이 자신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서슴없이 자신을 대할 심적 준비가 되었나 아닌가를 시험해 이라고 생각됩니다.   자기들보다 약한 입장에있는 막내 벤야민을 대하는 보면서, 요셉은 자신이 강자의 입장에서 형들에게 베푸는 관용을 그들이 이해할수 있는 심리 상태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할수 있어야지만 요셉과의 만남이 형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테니까요.


누군가 돼지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죠 말이 맞다고 생각 합니다.   옹졸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이타적이고 마음이 넓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 이해할수 없다고 봅니다자기가 느껴보지도 못하고 경험 하지도 못한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수 있겠습니까해서남들도 자기와 같이 이기적이고 옹졸하게 판단하리라 생각하겠죠...아는게 밖에 없으니.


그러므로 형들이 약자인 벤야민을 관대와 자비로 대하는 것은 그들이 그들을 향한 요셉의 관용함을 진정으로 이해하는데 필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보다 가난하고 연약한 형제들을 관대히 돌보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올바로 이해하는 필수 조건이 된다고 생각 됩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약한자들을 두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하십니다 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이 아닌 "맏형" 으로 만나는 "준비"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밟는 순간마다 요셉은 애틋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어 계속 통곡합니다.   형들은 아무것도 모른체 요셉이 베푸는 "조사심판" 받고 있었지만, 그걸 주관하는 요셉은 형제들에 대한 타오르는 그리움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고 숨어서 통곡 해야했던 시간이었지요우린 어언 160년간 이어 지고 있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조사심판"   의미에 대하여   관심이 없건만, 그일을 주관 하고 계신 예수님에겐 애틋한 그리움과 눈물로 범벅된   시간이었던 같이... (이이야긴 나중에 다시).


이제 요셉이 마지막 "시험" 준비 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돌려 보내면서 벤야민에 자루에 은잔을 넣고 나중에 자신의 청지기를 시켜 들을 쫒아갑니다그리곤 형제중 누가 "은잔" 훔쳤다고 우기게 하죠형제들은 당연히 그런 일이 없으므로 은잔이 형제들 물건중에 발견될 경우 사람은 애굽에 남아 종이 되기로 약속합니다그리곤 결국 "없어진" 은잔은 벤야민 자루에서 발견 되고 맙니다.


아마 옛날 형들 같았으면 벤야민을 버리고 갔을 겁니다멀쩡하고 착한 동생도 팔아치워 버리는 형들인데 동생이 잘못해서 벌을 받아야 했다면야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겠지요그러나 형들은 달라 졌습니다.   벤야민과   같이 애굽으로 돌아 갑니다


요셉이 형들을 크게 꾸짖은후 은잔을 훔친 벤야민만 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호통을 칩니다그때 유다가 대답 합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 하셨으니 우리와 잔이 발견된 자가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 44:16)   형들은 들의 운명을 벤야민과 하나로 묶어 버렸습니다 들은 은잔을 훔치지 않았지만 동생과 같이 죄인으로 취급받고 받기를 자청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지은후 우리들과 운명을 하나로 묶어 버리셨지요창조주시요, 우주의  왕이신 그가 자신을 낮추시고 죄인인 우리와 형제가 되셔서 죄인 취급 받으시고, 죄인의 죽음을 자청하셨습니다.   요셉의 "조사심판" 결실을 맺는 순간 이었습니다그렇게 잔인 했던 요셉의 형들이  예수님의 성품을 반사하다니!


요셉이 대답합니다.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 하리라...너희는 평안히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이니라." ( 44: 17).  유다가 다시 대답 합니다. "...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찌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 되었거늘 이제 내가...아비에게 돌아갈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46:22, 30-32)


유다가 한말이 바로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속으로 생각하신 말입니다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분의 미숀을 포기 하도록 엄청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보실때, 그의 희생으로 성취 된게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희생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감사하기는 커녕,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어머니 마저도 '제발 내려왔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제자들은 도망가고...    한명은 자신을 팔아 넘기고...그렇게 자신에게 목숨바쳐 충성하겠다 외쳐대던 제자는 저주로서 자신을 부인하고...그렇게 목이 마르건만  누구도 물한컵 갖다 주지 않는 정말 자격없는 죄인들... 들을 위해서 영원히 죽음의 암흑속에 갇힌다정말 이들에게 그런 가치가 있나


그때 예수께서 스스로 대답 하십니다  "아니다, 아니다 절대 이대로 돌아갈수 없다 불쌍한 "동생"들의 생명이 아버지의 생명과 서로 결탁 되었거늘 어찌 혼자 돌아 간단 말인가내가 이들을 구하지 못하면 영원히 아버지 앞에 죄인이 되리라차라리 내가 이들 대신 암흑속에 영원히 갇히리라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선 어떤 희생도 치루리라!"


이젠 유다와 형제들은 예수그리스도의 품성을 깊이 반사 합니다그들의 마음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막내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됩니다소위 "at-one-ment" (속죄, 하나됩) 이루어 진것이죠.   이렇게 자신을  내던지는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요일 4:18).   이것이  요셉이 베푼 조사심판 결실 이었습니다이제는 형들이 두려움 없이 요셉을 만나서 그의 용서를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이지요.   그들의 눈물의 재회가 45 에나옵니다


그러나 요셉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창세기 50장에 보면 야곱이 죽습니다야곱이 죽고 나니 형들이 다시 불안해  졌습니다.  "요셉 형제들이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50:15).  45 장의 "아름다운 재회" "도로아미타불" 되는 순간입니다요셉이 울며 형들을 벌써 용서한 사실을 다시 상기 시킵니다그리고 요셉의 죽음으로 (50:26) 이야기는 막을 내리죠.


이이야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막을 내릴수 밖에 없었습니다비록 형들이 100% 진심으로 요셉의 용서를 받아 들인다 해도, 형들의 무의식 속에 "이기심"  살아있는한 , 그들은 언젠가 다시 불안해 질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유는 편에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이기 적인" 동기는 ""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절대자" ""으로 여기기 때문이죠언제 어떻게 "절대자"에게  당할지 모르기에 "절대자" 앞에선 불안한게 당연지사 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자" 요셉이 살아있는한 형들은 무의식 중에서 불안할수 박에 없었지요.   요셉이 언제 자기들을 "해꼬지"할지 모르기 때문에...   요셉이 살아 있는한형들은 불안해지면  용서빌고, 요셉은 울며 용서하고, 용서 빌고, 울며 용서하는악순환의 연속이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죽어야지만, 순환이 완전히 끊히게 됩니다. 죽은자는 이상 "절대자" 아니므로...


그래서 조사심판의 중심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을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절대자와 피조물 수종 관계가 아닌 형제로써 우리와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분은 우리를 "친구" 삼으시길  원합니다.  ( 15:13,15).     그러기 위해선 "죽으실" 밖에 없었습니다이것이 십자가의 다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절대자의 죽음을 요구합니다절대자가 없어질때까진 우린 평화를 누릴수 없기 때문이죠예수님께선 우리에게 "절대자" 아닌 친구로 다가 오시기 위해 십자가를 선택 했던 것입니다십자가 위에서 "절대자" 신분이 완전히 붕괴 되었지요, 그리고 결국 죽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어떤 "조사심판" 노력도 "도로아미 타불" 될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의 무의식 세계를 청소하는 "조사심판" 초점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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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말씀드린 "조사심판" 과정이 어떻게 1844 연관이 있는지그리고 "조사심판" 과정이 종말론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를 이야기 할때가 것같습니다 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부르짖었던 "구원" 무었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구원" 전제가 틀리면 서로간의 대화가 불가능해지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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