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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개입 3종 세트를 밝혀라"

시사INLive | 천관율 기자 | 입력 2013.08.06 08:54

7월24일부터 본격 시작된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여야의 구상이 정면충돌했다. 민주당은 '큰 그림'을 그렸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정상회의록 유출 의혹을 한데 엮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음모'로 규정했다. 남은 문제는 물증을 찾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연전술'을 준비했다. 유리한 전장을 신중하게 고르고, 보이콧 카드를 수시로 확인하며 민주당의 공세에 바람을 뺐다.

야권이 그리는 그림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먼저, 2008년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MB)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다. 이에 발끈한 MB는 2007년 정상회의록을 가져오라고 국가정보원에 지시한다. 이는 회의록 정국의 핵심에 있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올해 6월28일자 < 서울신문 >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얼마 후인 2009년 5월, 국정원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검토'라는 요약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는 올해 < 월간조선 > 2월호의 보도로 공개됐다. < 월간조선 > 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서 국정원은 'NLL 문제 북한 입장 지지' '과도한 저자세로 국가위신 실추' 등을 문제라고 지적하며, 현재 여권이 기대는 논리의 원형을 제공했다.

더욱이 이 보고서는 향후 대응 방안을 이렇게 적고 있다. "국정원은 이 같은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및 10·4 선언의 문제점을 대내외에 전파하여, 북한·좌파의 전면 이행 주장을 제압하고 우리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해 나가겠음."

이 보고서를 MB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MB 본인이 직접 한 말로 유추할 수 있다. 퇴임을 앞둔 올해 2월5일자 < 조선일보 > 인터뷰에서 MB는, "취임하고 (회의록을) 보니 '안 밝혀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국격이 떨어지는 내용이었다"라는 말을 했다.





ⓒ뉴시스 7월26일 국정원 국정조사에는남재준 국정원장w과 여당 의원들이 불참했다.

회의록 유출, 오래 준비한 카드

이상의 내용을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MB 정부의 집권세력은 2007년 남북 정상회의록에 'NLL 포기 의사'가 담겨 있다고, 정치 공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믿은 듯하다. 내부 보고서임에도 표현이 단호하고 'NLL 포기'를 기정사실화한다.

둘째, 이미 2009년부터 정상회의록 내용을 어떤 식으로든 내부와 외부 모두에 공개할 수 있다는 발상이 확인된다('대내외에 전파'). 보고서에서 정상회의록이 최고 수위의 비밀문서라는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 조선일보 > 인터뷰에서 MB는 "이제 검찰에서 일부는 나왔으니까 NLL 문제는 밝혀지겠지"라고 말한다.

둘을 조합하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인식한 전임 집권세력이, 언제고 이 내용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옵션을, 권영세 주중 대사의 표현을 빌리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으로 염두에 두었다는 의혹이 된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은 "애초에 '대 노무현 기획'으로 시작되었을 회의록 열람에서 뜻밖의 '대형 아이템'을 건졌다고 본 것 같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검찰 수사로 전방위 압박하는 와중에도 대화록 카드는 뽑지 않았다. '더 큰 일'에 쓰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 서울신문 > 인터뷰에서 정문헌 의원은, MB가 2010년에 한번 더 요약 보고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2009년에 보고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민주당 국정조사 관계자들은 대체로 이때부터 NLL 대화록을 이용한 모종의 기획이 준비되었다고 본다. 대선 국면의 돌발 상황이 아니라, 오랜 준비가 있었다는 의혹이다. 신경민 의원은 국정조사 첫날 'NLL 음모'라는 표현을 들고 나와 이런 기류를 대변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16일 대선 3차 TV 토론. 박근혜 후보(오른쪽)는 "불법 댓글 증거가 없다"라고 말했다.

정상회의록 카드의 일단이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대선 국면이었던 지난해 10월8일이다. 이날 정문헌 의원은 정상회의록에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다는 폭로를 감행한다. 당시 상황은 박근혜 대선 후보가 역사관 논란과 캠프의 '문고리 권력' 논란 등으로 최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다. '컨틴전시 플랜'이 가동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권영세 당시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은 12월10일 정상회의록 공개 카드를 '컨틴전시 플랜'이라 칭하며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음을 시사한다. 나흘 뒤인 12월14일, 김무성 당시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은 부산 유세에서 정상회의록에 나오는 이른바 '문제 발언'들을 줄줄이 읽어 내린다.

그러나 대화록 원문이 공개됨으로써, 그동안 조각조각 나 있던 단서들이 하나로 꿰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의 12월14일 유세는 그동안 전혀 주목받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록 원문이 공개되고 김무성 본인의 말실수가 겹치면서, 이날 유세는 회의록 유출 의혹의 핵심 단서로 떠올랐다. 원문 공개가 없었다면 이런 위험은 피할 수 있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원문 공개 '결단'이 국익 훼손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정치적으로도 여권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회의록 유출 사건의 핵심은, 정상회의록이 오래전부터 '대선 카드'로 준비되어왔다는 의혹이다. 이렇게 보면 국정원 댓글 사건과 회의록 유출 사건은 동전의 양면이다. 여기에 경찰의 댓글 사건 수사 결과 은폐 의혹까지 합치면, '국가권력 대선 개입 3종 세트'가 된다." 또 다른 민주당 국정조사 전략통의 요약이다. 즉, 민주당 국정조사팀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전방위 선거 개입 사건의 한 지류로 본다. 따라서 댓글 사건을 포함한 선거 개입 사건 일체를 조사해야 한다는 전략을 들고 나온다.

첫 이틀 동안의 국정조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첫날인 7월24일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권영세 당시 상황실장의 발언을 추가 폭로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정조사의 범위를 벗어났다"라고 공세를 폈지만, 민주당은 "국정원 선거 개입의 한 축이 댓글이라면 다른 한 축이 회의록 유출"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날에는 민주당 정청래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대선 직전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이는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수사 결과를 무시하고 '증거 없음' 발표를 하도록 했다는 유력한 근거다.

정청래 의원은 경찰 수사 영상에 이어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3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불법 댓글 증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재생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 은폐 의혹 역시 박근혜 캠프와 미리 공유하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역시 국정원 댓글·회의록 유출·수사 결과 은폐가 '대선 개입 3종 세트'라는 의혹에서 나온 공세다. 박근혜 후보의 영상이 나오자 새누리당 국정조사 위원들은 발언 시간 초과와 위원장의 편파 진행을 탓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새누리당, 댓글 사건으로 범위 축소

새누리당의 대응 전략도 국정조사 첫 이틀 동안 윤곽이 드러났다. 먼저, 국정조사는 댓글 사건으로 한정한다. 첫날 국정조사는 민주당 의원들의 대화록 유출 공세가 국정조사 범위를 벗어났는지에 대한 공방으로 수도 없이 끊겼다. 첫날 오전 국정조사부터 권성동 새누리당 간사는 "본회의가 국조 특위에 위임한 권한을 민주당이 벗어나고 있다. 재발 방지 약속이 없을 경우 오후 회의를 보이콧하겠다"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새누리당 국조위원들 대부분은 댓글 사건의 법리 논쟁을 준비해왔다. 김진태 의원은 댓글 사건을 수사한 검사의 운동권 이력을 문제 삼기도 했다. 댓글이라는 '좁은 전장'으로 상대를 끌어들여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댓글 이슈는 상대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보호하기도 쉽다.

다음으로, 특이한 전략도 들고 나왔다. 민주당에서 회의록 유출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새누리당 국조위원들은 입을 모아 "노무현 정부의 사초 폐기 사건은 이번 국정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언뜻 들으면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를 변호하는 말 같다.

내용을 따지자면, 민주당이 제기하는 회의록 유출 의혹과 국가기록원의 회의록 실종 사건은 별개 사건이다. 하지만 국정조사 첫날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유출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이를 '사초 폐기 사건'으로 '자동 번역'해 "사초 폐기 사건은 국정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내용상 정합성은 논외로 하고, 상대적으로 유리한 전장으로 논점을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국정조사 파행 카드도 계속해서 만지작거린다. 첫날에는 보이콧 위협을 계속 내놓았고, 둘째 날에는 실제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셋째 날인 7월26일에는 국정원을 대상으로 한 국정조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새누리당은 정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의 특수성을 이유로 비공개 조사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새누리당은 셋째 날 국정조사를 통째로 보이콧했다.

여야의 구상은 얼추 드러났다. 야당은 몇 개 이슈를 이어서 보여줄 '그림'은 거의 완성했지만, 확실한 연결고리를 물증으로 내놓아야 하는 것이 숙제다. 여당은 자신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좁은 전장'(댓글이나 회의록 실종과 같은)으로 야당을 끌어들이거나, 상황에 따라 국정조사를 마비시키는 것도 가능한 옵션이다. 하지만 여당이면서도 '판깨기 전술'을 너무 자주 사용하는 탓에, 개별 전투에서는 이겨도 큰 틀에서 여론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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