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안교교사를 위한 조언=조사심판이 어떻게 교리가 됐을까?
요즘 나이를 먹어가니까
교리에 대한 견해가 나 스스로 변하는 것 같다
기독교는 바울의 독백처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로 돌아가야 한다
십자가를 더 잘 설명하는 것이 지성소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십자가에서 죄의 도말이 안 이루어졌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아직도 우리는 율법적인 기독교를 믿고 있기에 은혜위의 은혜를 모른다
내가 조사심판 안 믿는다고 하나님의 심판을 안 믿는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고 심판 받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했으니
특별한 조사심판 받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그것 또한 변형 시킨 것 있는데
예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라
아래는 내가 이곳에서 쓴 적이 있는 글인데
못 읽은 분들을 위해서 다시 퍼 왔다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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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조사심판을 엘렌 화잇이 계시를 보고서 글을 쓰고
교회가 그것을 인정하므로 교리의 한 축을 이루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재림교회의 교리는 엘렌과 무관하다
대부분의 교리가 만들어질 그 때 제임스는 엘렌이 그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가 계시를 본 것도 그가 나중에 추인한 것들이고
남이 본 것, 남이 연구한 것을 발전시킨 것이 대부분이다
조사심판도 엘렌이 먼저 계시를 보고 대쟁투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대쟁투가 기록되기 전에 조사심판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쓰여 졌던 것이다
밀러주의자들은
다니엘 7장의 심판 장면, 다니엘 8장 14의 성소정결과
계시록 14장 7절의 심판 등은 재림 때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그 말은 1844년에 조사심판이 마친다는 뜻이다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한 것에 따라
상급을 주시는 시간인 집행심판이었다
찰스 피치는 요한 계시록 14장 7절의 심판은 세상의 멸망을 언급하였다
심판에 관한 수년간의 연구 끝에 안식일 준수자들은 이러한 심판을
재림 전 심판 또는 결국 그들이 부르게 될 조사심판이라고 보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해석은 그들의 질서에 분열을 초래하였다....
20세기의 어떤 비평가들은 재림교회가 대실망의 변명으로
1844년 이후 재빨리 재림 전 심판을 끼워 넣었다고 가르친다.
상당히 그럴듯한 해석 같지만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르다
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재림 전 심판이란 개념은
1844년 10월의 대 실망 전에 있었다.
이 조사심판은 조사이어 리치가 1830년대 후반에 발전시킨 개념으로
심판은 부활 전에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그의 주요한 주요 사상이었다.
1841년 리치는
“어떤 세상 재판정에서도 죄수가 재판 받기 전에 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러실 수 있겠는가!“라고 기고하였다
상당수의 밀러주의자들은 1844년 10월 전에 리치의 개념을 채택했다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상급을 주신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재림에 앞서 누가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할지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리치의 개념은 쉽게 받아 들여졌다
리치는 재림 전 심판-조사심판-이 다니엘 7장 25절의 예언적 기간인
1260일이 끝나는 1798년에 시작해서 2300주야의 끝인
재림 전에 마쳐질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1845년 1월 아폴로스 헤일과 조셉 터너가
또 다시 결혼 예식 비유에 대하여 더 깊은 이해를 요구했다
그들은 누가복음 12장의 혼인 비유가 그리스도께서 결혼식에서부터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태복음 22장의 결혼식 비유는 임금이 자신의 하객들이 결혼 예복을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를 조사하는 심판의 장면이라고 묘사하였다
그들은 다니엘 7장의 심판을 혼인예식과 연결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10월 22일에 들어서서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새로운 봉사를 시작하셨다고 결론 내렸다
지금이 심판 기간이란 단어는 그들이 먼저 사용했었다
1845년 3월에 밀러는 다니엘서 7장의 심판과 계시록 14장의 심판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조셉 베이츠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이 문제를 보았다 그리고는 1848년 후반에 들어서
“죽은 성도는 지금 심판 받고 있다”라고 주장했었다
그래서 조셉베이츠는 안식일 준수자로서는 제일 처음 재림 전 심판을 가르친
첫 번째 지도자였다
1849년 1월 5일 엘렌 화잇은 조셉 베이츠의 의견을 같이 한다
그 당시 엘렌은 초기문집 36쪽에서 그 문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각 사람의 구원이나 멸망에 대하여 결정하기 전까지는
지성소를 떠나지 않을 것임을 보았다“
그러면 불같은 성격의 제임스 화잇은 어떤 견해를 가졌을까?
1850년 9월 말 제임스는 재림 전 심판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베이츠와 의견을 달리하고 이렇게 기록했다
베이츠와 다른 견해라는 것은 바로 엘렌 화잇과도 다른 견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판에 관하여 출판되었던 상반된 견해들에 의해 혼란을 겪어왔다...
어떤 이(베이츠를 지칭)는 심판 날이 재림에 앞서 온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단정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되어 있지 않다“
제임스의 견해는 심판의 큰 날은 1000년이 걸린다는 것으로 재림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이 서서히 바뀌었는데
1854년 2월 리뷰지에 J.N. 레프버로우가 쓴 재림 전 심판에 관한 글을 기고하게 함으로
그는 조사심판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 같이 기록했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죽음에서부터 끌어올려지기 전에 심판 받을 것이다
집이나 혹 교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조사심판은 첫 번째 부활 전에 이루어질 것이다
악한 자들의 심판은 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 동안 진행 될 것이며
그들은 그 기간의 마지막에 일어날 것이다“
조사심판이란 용어는 1845년 2월 초 엘론 에버츠가 처음 기록으로 남겼고
1857년 안식일 준수 재림교인들이 재림 전 심판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재림전 심판-조사심판-은
엘렌 화잇이 처음 시작한 것 아니다
아이로니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계시가 다른 이의 글이나 성경연구에서 시작되었고
유지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글이 재림교회에 남아있는 게 아니고
증언으로 남은 엘렌의 글만이 유일무이한 재림교회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계시가 엘렌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시로 보여주셨다고 믿는 것이다
또 하나
음식물에 대한 계시 즉 채식을 주로 하는 재림교회 특유의 음식문화도
그 시대에 많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기고하던 문제였으며
엘렌은 그들과 더불어 건강교육자의 일인이었다
마22장의 혼인잔치와 조사심판과의 연관은
바로 아폴로스 헤일과 조셉 터너의 작품이었다.
그게 오늘 재림교회 교리화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