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옆 동네에서는....코메디인가? 집단 이지매인가?

by 이지매 posted Jul 17, 2015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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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님,

나는 님이 집사인지 누군지 잘 모릅니다.

님이 나를 전혀 모르고 있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여자분이라고 호칭했습니다.

 

님은 나와 박금하 장로를 형제로 호칭하며

싸잡아 인신 공격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물론 님이 선호하는 글을 올리는 김종수 목사에게

박금하 장로님이 쓴 댓글은 지나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 시절부터 생업보다 더 교회 일을 사랑하고

헌신하고 봉사해 온 형님이

평생을 섬겨온 교회와 목회자를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내가 학생 시절부터 보아 온 형님은 목회자보다도

더 부지런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성경과 예언의 신을 읽고

늘 기도하며 늘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 형님이셨습니다.

나이 육십이 다 되신 형님은 지금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산에 올라 기도하고 성경과 예언의 신을 읽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형님이 교회를 사랑하여 염려하는 마음은

내가 볼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입니다.

제 형님이 과거 수입이 좋을 때 서울에서도 가장 십일조가

많이 나오던 교회에서 오랫동안 십일조도 1등을 했던 전력이 있었고

교회 신축시에도 당시로서 거금을 헌금했었으며

형님은 어려웠던 시절에도 집 전세금을 빼서라도 교회에

헌금하던 그러한 재림 신앙으로 살아 오셨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교회를 개척하는데 전심을 다하고

수 많은 교회를 섬기고 수 많은 목회자들을 겪어 본 형님이

어떻게 해야 목사가 목회를 잘하고 교회가 부흥되는지를

그 스스로 경험적으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글 하나 올리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정력이 소모됩니다.

이곳에 글올 올리지 않고 쉴 때의 행복을

글을 사명감으로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를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매일 너무도 많은 글을 올리는 김목사에게

형님은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었고

전화로 그러한 부분을 말씀 드려 자제를 요청했나 봅니다.

 

김목사 역시 나에게 먼저 토론 중단의 글을 올려

나도 글을 올리지 않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계속 글을 올리는 김목사에게

알아 들으라고 아마도 노골적인 그러한 글을 올린 것 같습니다.

 

물론 나는 형님의 그 댓글이 잘 된것이라고 여기질 않습니다만.

 

그런데 관리자가 그 댓글 밑에 토론에 대한 원칙적인 글을

올려 주셨고 나도 아멘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관리자가 원글로 경고하는 글올 올린 글에서

김진희님이 나서서 쓴 글을 나는 보면서 그야말로

경악했습니다.

 

내용도 천박하여 충격이었지만

김진희님 글 속에 나타난  품성이 그야말로 경악스러웠습니다.

 

그러한 품성을 가진 사람이 박금하 장로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요

우리 형제를 향해 인신 공격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입니다.

 

"메롱"이 뭡니까?

아무리 천박해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교회 장로에게 말입니다.

 

김진희님,

말을 가려 쓰시기 바랍니다.

감정대로 말하고 글을 쓰면

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성경 연구의 주제인   

144000인에 들어가기 힘듭니다. ^^

 

이것은 진심으로 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님은 나를 머리는 좋은데 오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의 글 상대인 김목사의 글에는 사랑과 포용이 있으나

내 글에는 오만이 묻어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 님의 판단이겠으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목사에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과 예언의 신을 중심으로

사람의 말이 아닌 "오직 가라사대" "오직 기록되었으되"의

글이 어떻게 오만일 수가 있겠습니까?

 

색안경을 쓰면 그 안경 색대로 세상이 보이듯이

님이 선호하는 내용의 글을 쓰는 사람은 사랑과 포용이,

님이 싫어하는 내용의 글을 쓰는 사람은 오만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신앙적 확신과 자신감이 때로는 타인들에게

오만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제 스스로 잘 압니다.

그렇다고하여 제 글 속에 오만이 묻어 있다고 판단하여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님 스스로

님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님의 그러한 말은 박금하 장로가 김종수 목사에게 쓴 글을 보고

화가 나서 감정적 처사로 말하는 님이 얼마나 이중적이며

자신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김진희님의 나에 대한 공개적인 그러한 글이야말로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도 명예훼손

혹은 모욕죄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질 않습니다.

그대신 나와 가까이 한 분들이 나를 잘 알듯이

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늘 사랑이 충만함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머리는 안 좋은데 늘 사랑, 용서, 친절, 베품, 나눔, 도움, 봉사,

헌신, 희생 등을 목표로 하루 하루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죄 많은 죄인입니다.

 

1990년에 척박한 안성 땅에 교회를 개척하고 복지시설들을 세우면서

지금까지 그때 연결된 사람들이 20년이 넘도록 내 곁에서 나를

도우며 목숨 다해 주님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나의 삶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곳에서 나의 글을 읽고 머리는 좋은데 오만하다는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박금하 장로에게 '당신이 하나님이냐  신학자냐?'고 힐문한

김진희님 스스로 님을 하나님 자리에 앉혀 놓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믿으실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경을 주제로 토론하면서

절대로 나의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강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25년 전 척박한 황야와 같은 땅에 단신으로 내려와

교회를 개척하면서 수 없는 타교파 교인들과의 오랫동안의 토론

경험을 통해 다져지고 이루어진  멧집인 것 같습니다.

 

성경을 주제로 하는 토론에서 인간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이미 스스로 백기를 든 것을 인정하는 셈인 것이지요.

 

지금 이곳에서 여성 목사 안수 제도를 강력히 주장하는 제 형님과

나는 명백하고도 다른 성경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으로 인해 그동안 몇 번이고 형님과도 토론과 논쟁이 있었으나

우리 둘은 카스다와 재림 마을에서 나오면 언제나 전화로

하루에도 몇 번씩 재미있게 농담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지내곤 합니다.

물론 만나면 더욱 정다운 사이가 됩니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가지고 토론하는 자리게 제일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기 한량이 없습니다.

내가 확신하여 생명 다하여 사랑하는 진리에 대해 반론이나 이견들이

나올 때 처럼 여유있고 기쁘고 즐거울 때가 없는 셈입니다.

진리를 증거하여 상대방을 자유케 하는 일도 대단히 기쁜 일이고

그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내 스스로도 너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와 다른 144000인에 대한 견해를

김종수 목사가 올렸다고 하여 나는 단 한번도 내 감정이 상하거나

그런 적이 없으며 평소 좋은 인간적 관계를 유지해 왔던

김목사에게는 더욱 더 그러했습니다.

 

댓글에서 내가 한 말의 의도는 나에게 먼저 토론을 중단하자고 한 분이

오히려 더 많은 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는 '진정한 목회자의 실력은

이러한 한정된 곳에서 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 몇 사람의 칭찬과 격려에 고무되지 말라'는

뼈있는 말로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에게 목회 선배로서 해 준

충심한 권고였지 결코 인신 공격의 말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밝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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