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부하는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할례가 필요 없다고 했다.
어제 다룬 5장에서
바울은 '이왕 자르려면 끄트머리 조금 자르지 말고 다 짤라 버려'
할 정도로 극한 발언까지 했다.
우리야 별 생각 없이 그 글을 읽지만
사실 굉장한 얘기다.
할례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표로 주어진 것이다.
이거 한시적인 것이란다 라는
아무런 암시도 없이
하나님이 직접 영원한 언약의 표로 명령하셨다.
이 세상에 남자들이 태어나는 한
영원히 안 없어질
(유대 남자들만 아닌 모든 남자들이 달고 태어나는)
신체 부위에 대한 명령이다.
그런데
그 영원한 언약의 표로
하나님의 직접 명령으로 세워진 제도가
갑자기 폐지되었다.
누가 그랬는가?
교회와 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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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하나님의 제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할례의 경우
경험에 의한 논증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아 글쎄 무할례자도 회개하고 성령을 받더이다!' 라는 보고를 했고
사도들은 그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성경을 찾아 보니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
유대인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위한 것임을 상기했고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기에 이른다.
순서는
경험이 먼저였고
그 다음이 성경 재해석이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할례 필요 없다
작파해 버려라
까지 발전함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의 표
할례는
일격에 격파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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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
경험으로 얻어진 지식으로
성경을 재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이 명백히 명령하고 있는 것도
일순에 무효화시킬 수 있다.
두려우신가?
계속 두려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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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캐 쿠보 박사는 최근의 스펙트럼 기사에서
노예제도, 할례제도, 여성차별제도
셋을 비교하면서
왜 둘은 없어졌는데 하나는 그대로 남아 있는가 한탄했다.
셋 다 모두
성경에 그 근거와 예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노예제도는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것 아니다.
그것이 허물어지는데 수백년이 걸렸다.
점차 진행된 일이다.
할례제도는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교회와 사도에 의해 단칼에 죽었다.
여성에게 안수안하는
차별제도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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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아 글쎄 이방인들도 회개하고 성령을 받더이다!!' 라고 보고한 것처럼
'아 글쎄 여자 목사들도 교회를 부흥시키고 목회에 성공하더이다!!'
라는 보고 만으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왜 성령의 길을 막는가?
예루살렘 회의가 그랬던 것처럼
'흠... 혹시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셨나?
흠... 혹시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았던 것 아닌가?
흠... 우리 성경을 다시 한 번 다른 눈으로 읽어볼까?'
왜 이러지 못하나??
'여자도 가장, 사장, 학장, 총장, 서장, 소장, 행장, 이사장, 장관, 판사, 검사, 총리, 대통령 잘 하더이다'
세상은 이미 그 경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성차별을 제도적으로 금하고 있는데
교회는
무슨 배짱으로
아직도
'성경에 어쩌고 저쩌고' 해 가면서
'그것만은 안된다'
그러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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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한다.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셔서 설립된 제도
교회와 사도가
일시에 작파해 버렸다.
교회에 그런 권한 있다.
두려우신가?
계속 두려워하시라.
하물며
하나님이 세우신 것도 아닌,
세상은 노예제도처럼 여기고 있는
이 망할 제도를 놓고도
이렇게 어물어물 하고 있으니...
예루살렘 회의 처럼
그럴 신앙과 용기 없으면
무슨 위원회 무슨 총회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 처럼
그럴 안목과 용기 없으면
무슨 장이네 무슨 지도자네
무슨 교수네
신학자네 어쩌네...
부끄럽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