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끝나고 집으로 가는데 승리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승리아빠, 지금 어디야? 나 뜨거운 물을 뒤집어썼어, 지금 빨리 와.”
나는 얼른 차를 돌려 일터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창고 안에서 승리엄마가 얼음 팩 두 개를 얼굴에 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상의 안에도 얼음을 가득 담은 비닐봉지를 넣어둔 것이 보였다.
승리엄마는 덴 부분의 화끈거림과 얼음찜질로 인한 오환으로 몰골이 흉했다.
음료수에 들어갈 재료를 삶을 물을 옆 통으로 옮기던 도중 팔에 힘이 빠지는 바람에 뜨거운 물을 얼굴부터 뒤집어썼다고 한다.
평소에 엄살을 잘 안 떠는 승리엄마지만 지금은 많이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린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을 말장난삼아 종종 했었는데...
내가 승리엄마를 대신 해서 일했다.
그동안 승리엄마는 창고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얼음찜질을 했다.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는데 승리엄마가 가게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
간다는 말도 없이 힘없이 나갔다.
예전에 동물의 왕국을 본 적이 있다.
사자들이 떼거리로 덩치 큰 물소를 공격하고 있었다.
물소가 거의 죽어갈 무렵 마지막 힘을 다해 휘두른 고갯짓에 암사자 한 마리가 물소의 뿔에 옆구리를 찔렸다.
나가떨어진 사자는 비틀거리면서 무리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엎드려서는 헐떡이며 철학자처럼 먼 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레이터 말로는 그 사자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나머지 사자들의 행동이었다.
자신들의 구성원 중 하나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물소 잡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분명 이렇게 저렇게 피가 섞인 가족일 텐데...
오래 전에 본 건데 그 장면은 언제나 내 생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승리엄마를 보는데 바로 그 암사자가 생각이 난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한 시간, 한 시간,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일하던 일턴데...
승리엄마는 그때 그 암사자처럼 자신의 터전을 떠난 것이다.
난 그 승리엄마와 함께 하지 못했다.
승리엄마의 일을 대신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 물소에 들러붙어 있었던 사자들이 생각이 났다.
이를 악물지 않았더라면 손님들 앞에서 눈물을 쏟을 뻔했다.
거스름돈을 확인하는 척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일 끝나고 집으로 왔다.
제일 먼저 승리엄마의 얼굴을 봤다.
12라운드 경기를 마친 권투선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통은 가슴부터 배까지 빨갰다.
그래도 생각보단 심각하진 않았다.
수민이는 엄마보고,
“엄마, 엄마는 오페라에 유령에 나오는 주인공의 가면 써야겠다.”
라고 말했다.
모습은 좀 그랬지만 승리엄마의 분위기는 밝았다.
승리엄마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승리아빠, 가족을 보니까 병이 다 나은 것 같아. 가족이 제일 좋은 치료제야. 아까 집에 오면서 많이 울었거든. 너무 아파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게 만드는 말이다.
가족, 행복,...
이런 것들이야 말로 진짜 천연치료제인가 보다.
아마시(?), 현미밥, 숯가루,... 이런 것들보다 훨씬 좋은...
하루를 쉬고 승리엄마는 다시 일을 나갔다.
천연치료(?) 덕인지 얼굴에 물집까지는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생글생글하면서 나갔다.
아픔이 섞인 행복감이 밀려왔다.
돈이 없는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행 3:6
나도 제자들처럼 돈이 없다.
게다가 제자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낫게 하는 능력도 없다.
귀신을 쫓아낸 적도 없다.
물위를 걸은 적도 죽은 자를 살린 적도 없다.
그렇다고 세상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상, 계시, 현실, 꿈, 몽롱, 인터넷... 그 어떤 방식으로든 난 예수를 본 적이 없다.
그의 음성조차 들은 적이 없다.
그래도,....
난
예수를
믿는다.
.......
그리고 난 그를 사랑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 20:29
최종오님의 믿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일상적인 생활가은데서 신앙을 실천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감동적인 글 읽고 감사해서 한 자 남갑니다.
영육간에 건투를 빕니다.